[르포] 바다가 텅 비었다

신상품 소개


회원 랭킹


공지사항


NaverBand
[ 휴게실 ] 어째 이런 일이

[르포] 바다가 텅 비었다

0 2,834 2004.01.09 12:17
"양미리가 반으로 줄었어요"

강릉/ 정환석 기자

어획량 50% 하락하고 사람도 떠나

2004년 새해를 맞이하기 이틀을 앞둔 지난달 29일 사천항 부두. 멀리서 작은 어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는 선주를 붙잡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얼굴만 멀뚱히 쳐다볼 뿐 시큰둥하다.

기자에게 왜 그렇게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곧 알 수 있었다. 이 선주는 “이곳은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양미리’가 주로 잡히는 곳이나 어획량은 지난해에 비해 반이상 줄었다”며 “12월만 폭풍주의보가 8번이나 발효돼 출항을 못한 날도 부지기수”라고 불만스러워했다. 한마디로 “파리를 날렸다”는 얘기다.

사천항 부두에는 많은 아주머니들이 그물에 걸려있는 양미리를 빼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항구는 세밑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이 한산하다. ‘사천항 간이 집하장’ 11호 상가안에서 담배를 피고있는 할아버지에게 요즘 항구 분위기를 물었다.

사천항에서 태어나 70년 이상을 살고 있다는 김수열(73) 씨는 “양미리가 많이 잡힐 때는 한번 출항하면 400통(1통에 600마리)을 잡는 어선도 있었지만 지금은 1통도 못 잡는 어선도 있다”며 “양미리 가격도 예전에는 1통에 2~3만원 꼴이었는데 최근에 10만원까지 올라갔다”고 쓴입맛을 다셨다.


'대영호' 사장은 “요즘같아서는 장사할 맛도 나지 않는다”며 오후 시간에 가게 문을 닫고 떠났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그는 또 “사천항은 주문진항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우럭, 광어, 돔, 대구 등 철따라 값비싼 어류가 잡히는 천혜의 항구”였지만 “지금은 어획량이 크게 줄어 젊은이들도 많이 떠나고 외지 사람도 잘 오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같은 집하장에서 5년전부터 소매업을 하는 ‘대영호’ 사장은 “명태는 이곳에서 10여년전부터 자취를 감췄고 대구는 예전의 2~30%에 불과하다”며 “최근에는 따뜻한 물에서 산다는 은어(도루묵)까지 잡히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요즘같아서는 장사할 맛도 나지 않는다”며 오후 시간에 가게 문을 닫고 떠났다.


태풍 영향으로 연안 생태계 파괴되고 크기도 작아져


수중 카메리로 촬영한 사천항 바닥. 카메라가 바닥에 튕기며 움직이는 자리에 뿌옇게 진흙이 날리고 있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문제는 어획량 감소뿐만은 아니다. 최근 잡히는 어류의 크기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항구에서 30년째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부산집’ 손달연(45)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양미리의 길이는 30cm정도였는데 태풍 매미가 올라온 후 올해는 15cm도 안된다”며 “굵기도 팔뚝만 했는데 반으로 줄었다”고 한숨을 내쉰다.

항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 같은 바다 생태계의 변화를 “태풍 루사와 매미의 영향 때문”이라 입을 모았다. 원래 이곳 연안 수심은 30m정도였는데 최근 태풍이 쉽쓸고 간 뒤 수심이 15m정도로 낮아졌다. 태풍때문에 산에 있던 토사와 쓰레기들이 바다로 밀려와 바닥 모래를 덮었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으로 바닥 모래밭에서 서생하던 양미리들이 진흙으로 덮힌 바닥에서 생활하지 못해 알을 낳기도 힘들고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연우’ 박성호(52) 선주는 사천항에서 유일하게 수중 카메라를 사용해 고기를 잡는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연우’ 박성호(52) 선주는 사천항에서 유일하게 수중 카메라를 사용해 고기를 잡는다. 따라서 다른 어민들보다 바닷속을 보면서 고기를 잡기에 수익이 높은 편이다. 양미리 어획량은 작년보다 반이 줄었지만 가격은 반이상 올라가 작년보단 벌이가 좋다고 귀뜸했다. 하지만 2001년엔 미치지 못한다.

박 선주는 기자에게 고기를 잡으며 촬영한 황폐화된 바다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바다속은 황량했다. 진흙 바닥위에 자망식 어망이 깔려있고 간간히 어망에 양미리가 걸려있을 뿐이었다. 해조류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카메라가 바닥에 튕기며 움직이는 자리에 뿌옇게 진흙이 날리고 있었다. 촬영된 화면은 양미리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 그나마 낫지만 대부분의 연안 바닷속은 이보다 더욱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선주는 “태풍으로 시설물이 파손되면 정부가 복구해 준다지만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누가 복구해 주느냐”며 “어민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민들도 고기를 잡기만할 것이 아니라 육지의 목장처럼 바다 생태계를 가꾸고 키우는 것도 함께 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0 댓글
 
포토 제목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