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자주 다니는 은밀한 아지트가 있다. 고향 인근에 있는 산과 바다에 나만의 은밀한 아지트가 있는데 갈 때마다 손맛도 즐기고 먹을거리도 푸짐하게 가져올 수 있는 냉장고와 같은 곳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비밀 아지트가 두세 군데 밖에 없었는데 지난해 직장에서 퇴직한 후 소일삼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보니 새로운 아지트를 하나둘 만들게 되었다. 언제든지 나만의 은밀한 아지트에 가면 멋진 감성돔은 물론이고 맛있는 소라와 골뱅이와 박하지에 청정 고사리까지 먹을거리를 푸짐하게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 집 냉장고에는 반찬거리가 많다.
1호 아지트는 가까운 동백정 인근에 있다. 이곳 아지트는 주차장과 제법 떨어져 있어서 혼자 느긋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고 이따금 감성돔과 우럭과 광어 등 묵직한 손맛도 볼 수 있는 곳이다. 1호 아지트는 낚시를 배운 후 10년 가까이 다녔던 아지트인데 지난해 초봄부터 발전소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요즘에는 새벽물때에 두세 시간 정도 도둑 낚시를 하고 있다. 다른 한 곳은 발전소 배수구 앞 홈통이다. 이곳은 10년 전 처음 낚시를 배운 곳인데 밑밥 없이 낚싯대 하나 들고 간편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까운 곳이라 주말이나 일요일에는 낚시꾼들이 많아서 낚시하기 힘들지만 평일 날 혼자 조용히 낚시를 하다보면 하루에 감성돔을 서너 마리 정도 잡을 수 있는 일급 아지트이다.
그다음 2호 아지트는 고향 월명산에 있다. 월명산은 주변 풍광이 좋아서 이전부터 자주 등산을 다니는 산이다. 재작년 봄 어느 날 등산을 하다가 등산로 주변에 있는 고사리 밭을 발견했었다. 처음에는 풀숲에 숨어있는 고사리를 찾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얼마 꺾지 못했는데 지난해 몇 번 다니다보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기고 또 어디에 고사리가 많은지 포인트를 발굴하게 되었다. 보통 한번 가면 두세 시간 동안에 2킬로 가까이 꺾어 오는데 지난해는 예닐곱 번 가서 15킬로 가까이 꺾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글쎄 10여만 원이 조금 넘을까? 하지만 산행을 하면서 자연산 청정 고사리를 꺾는 손맛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다.
지난해 발굴한 3호 아지트는 고향 앞 바다에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꽝이 없는 특급 아지트이다. 언제든지 이곳 아지트에 가면 주먹만 한 소라와 박하지와 바지락을 푸짐하게 잡아올 수 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나이든 후에도 소일삼아 종종 고향 앞바다에 나가 소라를 잡고 고동을 따고 바지락을 캐곤 했었다. 지난해 늦가을 망둑어 낚시를 하러 갔다가 박하지와 소라를 잡았는데 주먹만 한 소라와 어른 손바닥만 한 박하지를 잡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았다. 그 후 몇 번 박하지를 잡으러 다니다 보니 박하지는 펄과 바위가 있는 바닷물 속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잡는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다. 박하지를 잡는 요령은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날 두꺼운 목장갑을 끼고 물속에 있는 바위 밑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박하지가 커다란 집게발로 우악스럽게 손가락을 무는데 이때 집게발을 가만히 잡아서 물 밖으로 꺼내면 된다. 어느 정도 잡는 요령을 터득하면 한물 때에 5킬로 이상 잡을 수 있다. 바닷물이 많이 나가는 날은 소라를 잡는다. 펄과 돌이 적당하게 섞여 있는 바닷물 속을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소라가 보이는데 언뜻 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간혹 바위에 붙어 있는 소라도 보이지만 그 크기가 작다. 큰 소라는 펄 속에 숨어서 등 윗부분만 살짝 드러나 보이는데 소라 등 쪽에 쩍 같은 것이 달아 붙어 있어서 돌과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손으로 당겨보면 이따금 어른주먹 만한 소라가 잡히기 때문에 허리를 낮게 숙이고 천천히 돌아다녀야 펄 속에 숨어 있는 소라를 잡을 수가 있다. 지난해 이곳 아지트에서 어른 주먹만 한 소라를 30킬로 가까이 잡았고 박하지는 50킬로 넘게 잡아서 일부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간장 게장을 담아서 가까운 친척들과 나눠 먹고 있다.
4호 아지트는 집에서 30여 킬로 떨어진 이웃 동네에 있다. 맛이 담백한 골뱅이를 잡을 수 있는 아지트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고향 앞 바다에 가면 노랑조개와 골뱅이가 많이 잡혔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인근에 새만금방조제가 들어선 이후 바다의 물길이 바뀌고 유속이 느려지는 바람에 고향 앞 바다에 펄이 쌓여서 노랑조개와 골뱅이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동안 골뱅이를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재작년 한 친구로부터 이웃 마을에 골뱅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날씨가 풀리면 언제 한번 골뱅이 잡으러 가야지 했었다. 그동안 낚시 일정과 겹쳐서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한 달 전 인근 마을로 노랑조개를 잡으러 가서 골뱅이 포인트를 발굴하게 되었다. 골뱅이는 바닷물 수온이 오르는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날 밤에 손전등을 들고 바다에 가면 바닷물 속에서 이동하고 있는 골뱅이를 잡을 수 있다. 물론 낮에도 잡을 수 있는데 낮에는 물 밖에서 골뱅이가 지나간 자리와 조그만 골뱅이 눈을 보고 잡는다.
마지막 5호 아지트는 지난해 새로 발굴한 감성돔과 농어 포인트이다. 이곳은 발전소에서 1호 아지트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고향 친구와 새로 발굴한 감성돔 포인트인데 찌낚시와 원투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낚시인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한적한 포인트라 혼자 조용히 낚시를 즐길 수 있어서 내년에 기대되는 비밀 아지트이다. 그리고 진입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얼마 떨어지지 않는 테트라포드에 좋은 농어 포인트가 있어서 내년에는 이곳으로 농어 루어낚시를 다닐까 생각 중이다. 또 다른 포인트는 배수구 앞에 있는 갯바위이다. 지난해 늦가을 마땅한 낚시 포인트가 없어서 이곳 갯바위에서 몇 번 농어루어 낚시를 했었는데 예상외 손맛을 보았다. 무엇보다 루어 낚싯대 하나 들고 간편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금년에는 이곳에서 자주 루어 낚시를 시도할 생각이다.
나만이 아는 은밀한 아지트,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곳, 냉장고에서 먹을거리를 꺼내오듯 이것저것 푸짐하게 잡아올 수 있는 나만의 은밀한 아지트를 순회하느라 요즘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그래서 금년에도 가까운 곳에 새로운 비밀 아지트를 두세 개 더 발굴하려고 한다. 먼저 집에서 가까운 남산이나 월명산에 고사리 아지트를 한두 개 더 만들고 다음은 가까운 바닷가에 망둑어낚시 아지트와 겨울철 별미인 가리맛 조개를 잡을 수 있는 아지트를 새로 만들려고 한다. 이미 발굴해 놓은 다섯 개의 아지트에 6호와 7호 8호 비밀 아지트를 더 만들어서 봄철부터 한 겨울까지 이곳저곳을 차례대로 순회하면 그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퇴직 후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이 되면 낚시를 다니고, 바닷물이 많이 나가는 날은 소라와 골뱅이 등 해루질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