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사람
2002년 11월
어린 시절 이웃 마을에 육환이라는, 부족하고 덜떨어진 사람이 있었다. 150센티가 조금 넘을까 말까 하는 작은 키에 입은 앞으로 툭 튀어 나왔고 얼굴과 눈, 코, 귀, 입 등 이목구비가 모두 작아서, 불품없이 생긴 얼굴에 씻지도 않고 항상 남루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녔다.
여기에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한 삐쩍 마른 몸집에다 말도 잘 못하는 반벙어리요, 걸음걸이도 또한 가관이었다. 약간 구부정한 자세에 한쪽 팔은 등 뒤에 올려놓고 다른 한쪽 팔을 앞으로 휘~이 휘~이 하니 내저으며 넘어질 듯 휘청휘청하니 걸었다. 또 세수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눈에는 허옇게 눈곱이 끼었고 불품없이 작은 코에는 누런 콧물이 흘러내렸으며 얼굴과 손은 모두 시커먼 했었다. 몸집이 작아서 헐렁하게 입은 옷은 오랫동안 빨아 입지 않아서 반들반들하게 기름때가 찌들었고 씻지 않은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었다.
60년대 어린 시절, 우스꽝스럽게 생긴 바보 육환이가 마을에 나타나면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뒤쫓아 다니면서 "야~, 바보야! 야~, 바보 육환아!" 부르면서 놀려대기도 하고 심지어 침을 뱉거나 흙덩이나 돌맹이 등을 집어던지기도 하였다.
이런 바보 육환이에게 믿을 수 없는 신기한 일이 있었다. 인근 마을에 초상이 나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초상 첫날 아침부터 일찍 찾아온다.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이다. 부족하고 덜떨어진 바보 육환이한테 "어느 마을 누구네 집에 초상이 났다"라고 알려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서 찾아오는지 참 용하게 잘도 찾아온다.
지난 88년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찾아왔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김없이 찾아왔었다. 덜떨어진 바보라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데도 그야말로 귀신같이 안 찾아가는 초상집이 없었다. 얼마나 용하게 초상집을 찾아오는지 "육환이가 오지 않는 초상집은 이상한 초상집이다."라고 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 사람의 혼령이 육환이를 찾아간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한 일이다. 바보라서 바깥출입을 못하는데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반벙어리라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초상집과 잔칫집을 찾아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육환이는 아마 신들린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바보 육환이가 초상집에서 하는 일은 동네 사람들이 주는 음식이나 술 등을 얻어먹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허드렛일을 하였다. 주로 고인이 입고 있던 옷가지나 소품 등을 태우기도 하고, 또 고인이 마지막으로 묵었던 방 안을 청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바보라도 속셈은 있어서 상가에서 허드렛일을 해주고는 상주가 얼마라도 돈을 주지 않으면 돈을 줄 때까지 떼를 쓰면서 가지 않았다고 한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상여가 나갈 때 만장을 들고 초상집에서 주는 음식이나 술을 얻어먹는 게 고작이었는데, 80년대 이후에는 약간의 허드렛일을 해주고는 상주에게 청소비를 요구한다고 한다.
바보 육환이는 초상집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에 결혼이나 회갑 등 잔칫집에도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동네 꼬마들이 뒤쫒아 다니면서 장난을 치고 욕을 하면서 놀려대도 가지를 않았다. 어쩌다 동네 사람들이 장난삼아서 바보 육환이에게 술을 따라 주기도 했었는데 바보 육환이가 술을 마시고 취하면 정말 우스꽝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꾀죄죄하고 불품없는 행색에 술에 취해서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어눌하고 쉰 목소리로 무슨 노래인지 혼자서 흥얼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60년대 어린 시절, 육환이는 우리 동네의 바보 대명사였다. 그 당시 동네에서 누가 이상한 말이나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 "에라, 바보 육환이!" 또는 "에이, 육환아!" 아니면 "육환이 같은 소리 하네!" 하면서 놀려대곤 했었다. 바보 육환이는 그래도 집안은 괜찮았던 모양이다. 예전에 들리는 얘기로는 늦은 나이에 벙어리 여자와 결혼을 해서 잘 생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비록 못생기고 덜떨어진 바보였지만, 하나뿐인 아들한테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육환이 아들도 부모한테 대단한 효자였다고 한다.
50년 전 일이다. 60년대 바보 육환이를 쫒아다니면서 놀려대던 코흘리게 꼬마들이 이제는 쉰을 넘어 어른이 되고, 또 그렇게 귀신같이 초상집과 잔칫집을 찾아다니던 바보 육환이도 몇 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 살아 있다면 60대 후반 아니면 70 안팎쯤 되지 않았나 싶다. 부족하고 덜떨어진 사람들이 그렇듯이 바보 육환이도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동네 꼬마들이 그렇게 뒤 쫒아다니면서 귀찮게 놀려 대고 흙덩이를 집어던져도 손으로 때리는 시늉만 했지, 한 번도 혼내거나 때린 적이 없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꾸부정하니 앞으로 넘어질 듯 휘청휘청 걸어가는 모습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어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동네를 지나가던 육환이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