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두 대 왈 장군, 족 대 왈 적"이란 말이 있다. 머리가 크면 공부를 잘 해서 장군이 되고, 발이 크면 몸이 빨라서 도둑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왜곡된 말이지만 어릴 때부터 머리가 크고 이마도 넓었던 나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공부 잘하겠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었다. 어린 시절 머리가 커서 어른들 말씀처럼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못 하지도 않았었다. 반면에 발은 작아서 지금도 달리는데는 젬병이다.
머리를 박박 깎고 다니던 중학교 시절 팔방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 머리가 앞뒤로 나오고 좌우 옆으로도 울퉁불퉁하게 튀어 나와서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런데 사실은 내 머리도 이 친구 머리처럼 팔방머리이다. 앞뒤로 튀어나온 짱구머리에 좌우 옆머리까지 울퉁불퉁하게 나왔으니까 나야말로 사방팔방 머리인 것이다.
요즘에는 젊은 엄마들이 아기들을 키울 때 뒷머리가 나오라고 일부러 아기들을 바닥에다 엎드려서 키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앞뒤머리는 물론이고 좌우 옆머리까지 울퉁불퉁 튀어나온 이상하게 생긴 머리 때문에 고민했었다. 어릴 적에는 앞집에 살던 친구가 박박 깎은 내 머리를 보고 정수리가 학교 운동장만 하다고 놀리기도 하고 대갈장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중학교 때는 머리가 크다고 해서 가분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에는 사방팔방 불품없이 튀오나온 큰 머리가 너무 싫었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뒷머리가 반듯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었다. 어린 마음에 뒷머리가 반듯하게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모자를 써야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과 군 생활을 할 때는 머리에 맞는 모자가 없어서 애로 사항이 많았었다. 어지간히 큰 모자는 머리에 걸치지도 않았다. 아주 큰 특대 모자를 사서 써야 하는데 일반 가게에서는 특대 모자를 살 수 없었다. 가게에서 제일 큰 모자를 사다가 모자 안감을 뜯어내고 크기를 늘린 다음 써야 겨우 머리에 맞을 정도였다. 이렇게 모자를 억지로 늘려서 쓰다 보니 모자가 늘어져서 모양새도 그렇고 폼도 나질 않았었다.
나이 든 후에도 모자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았었다. 직장에서 단체로 등산이나 야외 활동을 나갈 때 다른 사람들은 멋진 선글라스에 스포츠형 모자를 쓰고 한껏 멋을 내고 나가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눈이 부셔도 선글라스는 시력이 나빠서 쓸 수 없었고 모자는 머리에 맞는 모자가 없어서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큰 머리와 부실한 시력 때문에 멋진 선글라스와 폼 나는 모자를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세월이 변해서 그런지 요즘에는 멋진 선글라스도 끼고 모자도 쓰고 있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고 난 이후 등산과 낚시 등 야외활동을 자주 하다 보니까 선글라스와 모자가 필요해졌던 것이다. 몰론 예나 지금이나 뚜껑이 있는 일반 모자는 쓸 수가 없다. 주로 뚜껑이 없는 선캡 모자를 쓰고 있는데 선캡 모자는 일반모자와 달리 고정된 모자 테가 없어서 크기를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선캡 모자는 나같이 머리가 큰 사람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편하게 쓸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운전이나 낚시를 할 때 쓰는 편광 안경은 안경점에서 도수를 넣어서 끼고 있다.
요즘 들어 우리 집에 모자가 많아졌다. 몇 년 동안 취미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모자를 하나 둘 사다 보니 이제는 모자가 20여 개가 휠씬 넘는다. 주로 낚시 할 때 쓰는 낚시 모자와 등산이나 운동을 할 때 쓰는 모자가 많은데 모자 종류도 용도와 목적에 따라서 모양과 크기도 다양하고 색깔도 여러 가지이다.
우선 낚시 모자는 계절별로 낚시 옷에 맞는 빨강 모자와 검정 모자와 카키색 모자와 살구색 모자 등이 있고 그리고 모자 종류도 용도별로 여름철에 쓰는 밀짚모자에서부터 군용색의 정글 모자에 카리스마 모자와 삿갓 모자, 벙거지 모자, 작업모자 등이 있고 젊은이용 빈티지 모자와 우산처럼 생긴 우산 모자도 있다. 아침저녁으로 조깅이나 운동을 할 때는 가벼운 스포츠형 모자를 쓰고 등산이나 야외할동을 할 때는 차광막이 있는 벙거지 모자나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이밖에 추운 겨울철 등산이나 아침달리기를 할 때 쓰는 털모자도 몇 개 있다.
금년에도 모자를 몇 개 샀다. 모두 낚시용 모자인데 계절별 옷차림과 어울리는 다양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빨간색 모자와 노란 줄이 새겨진 검정 모자,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카키색 빈티지 모자를 샀다. 내년에도 낚시 모자를 몇 개 더 살까 생각 중이다.
먼저 노란 모자와 아이보리색 모자를 하나씩 사려고 한다. 낚시를 하면서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와이셔츠에 노란 낚시 모자를 쓴 다음 까만 선글라스에 빨간 장갑을 끼고 멋진 낚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그리고 겨울과 봄철에는 아이보리색 모자를 쓰고 산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적에는 머리가 커서 써보지 못했던 모자를 나이 들어서 다양하게 골라가면서 쓰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더욱 화려한 색깔과 디자인이 멋진 모자에 관심이 더 간다. 그래서 요즘에는 하얀 와이셔츠에 빨깐 조끼를 입고 까만 선글라스를 낀 다음 빨간 모자를 쓰고 낚시를 다니고 있다. 덕분에 10년은 더 젊어진 느낌이 든다.
퇴직 후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이 되면 낚시를 다니고, 바닷물이 많이 나가는 날은 소라와 골뱅이 등 해루질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