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군요.
어머님의 노고가 어떠셨을지 생각하니
먹먹해 집니다.
친정 모친께선 늘 이르셨지요.
지금은 엄마가 아무리 설명해도 에미 마음 모른다.
니가 자라 결혼을 하고 시집가서 아이 낳고 키워 봐야
에미 심정을 알것이야...
이제야...
이제야...
이 나이 되고서야 그 말씀이 헤아려 지니
둔한 우연 어머님 생각에 늘 목이 메입니다.
예쁜 각시와 아들 볼수 있어서 좋았고 고마워요
언제나...
말씀은 안하셔도 지금도 미우신가 봅니다...
돌아가신지가 30년이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그시절 저희 아버지도 남한텐 한없이 호인이셨지만...
가정에는 별루셨던 모양입니다...
남일은 만사 제쳐놓고 하셨지만 정작 자기집일은 나몰라라...
저와 다르게 ... 키도 크셨고 잘생기셨던 아버지 곁에는 늘 여자들이...
그게 어머니를 제일 맘 아프게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로 인해 돌아 가실때까지 별거를...
잡안의 어르신들이 저를 위해서라도 함께 함께 사실것을 권유하셨지만..
어머니께선 거절 하셨죠... 저는 어머니랑 살면서 아버지가 늘 보고싶고 그리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 그때 아버지를 오랫만에 보았는데..
저를 안고 서럽게 우셨습니다... 그리고 2년뒤 아버지도 제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몇일 앞두고 돌아 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3일전에 행동이 이상하셔서 해남에 계시는 고모님께서 ...
제가 내려왔으면 하고 전화 하셨는데.. 어머니께서 거절..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 왔을때
해남 고모님께서 "왜 이제 왔냐? 이 무심한놈아 니애비 숨 끊어 질때까지 너만 찿았는디
하시면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임종도 못보고 ... 아버지 묘도 아직 못찿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오랫만에 이쪽 들어와보니 많은 여러 일들이 있었네요..
올 가을엔 좋은일만 있기를 바랄께요...
며칠전에 댓글을 읽고 선뜻 답글을 달지 못했습니다.
그 아림들이 보이고 만져짐에...
미소가 너무 맑기만 해서 아픔이란것을 모르고
살아온 님인줄 알았지요.
너무 동안 이라 우연보다 한참 어리려니 했는데
우리 세대의 아버지상...
비슷한 동질감에 감나히 어깨를 토닥여 봅니다.
가까이 있음에도 느닷없이 보고파 짐도요.
지나는 길에 차한잔 핑계로 들리시구랴
우연의 가려운곳을 콕 집어 긁어 주시는 분 같습니다.
사실은 제목을 그렇게 지을까 했지요
사부곡...
동구밖 아름드리 느티나무 처럼 그렇게 우연을 들여다 보고 계실것 같은..언제나 감사하오며
건필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