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갑작스레
이렇게 허망하게 손을 놓을 꺼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하루 빨리 완쾌되길 간절했을 땐 조급한 시간의 흐름 이였고
일분일초라도 빨리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기 까지
주어진 시간은 너무 길었다.
불과 두 달 사이 일어난 일들이 아직은 꿈만 같아 잠에서 깨면
불러보는 너에 이름은 온기조차 어려 있는데
너는 다시 오지 못하는 먼 길을 떠났구나..
의족을 하고도 밝고 활기 넘치던 너 이었기에 남은 한쪽 다리를 마저 가져 가실거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까지도 난 겨운데
놀라서 부산으로 쫓아간 나를 오히려 위로 하던 너였다
남남으로 만나 오누이를 맺고부터 단 한 번도 남이 아니었던 너였고
네가 없는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너에 말처럼 전생에서 우린 남매
였을꺼란 생각이 든다
부끄럼 잘타는 내가
조금은 쑥스러워 하거나
두어 번 찾아주신 손님을 기억 못해 당황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누야~ 손님들 눈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으면 콧구멍을 보세요~
그렇게 언제나 날 까르르 소녀처럼 웃게 해주던 너 였으며
거제 한 이년 남짓 일하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누야~~하고 부르며 들어서던 살가운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한데...
10여년이 넘은 세월 동안 누나 앞에선 찡그리거나 화를 낸 적 없으며
자 잘못을 앞서 조건 없이 순종하던 너였다
자신보다 남을 배려 할 줄 알았고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손해를
먼저 생각 했었고 무엇이든 하나 더 해줄 수 있음을
낙으로 행복으로
감사로 알던 너 이었음에 몇 날 며칠 눈물이 마르도록 울었다
동생들 마다 부르는 호칭이 제 각기 달라
말썽 자주 피우는 성이 녀석은 누나
멋쟁이 휠체어 신사 솔***은 깍듯이 누님
그리고 준이는 누야~
남편과 생일이 같은 날이라 장난처럼 인자 누야는 니 생일 잊자뿔란다
이뿐 각시가 맛난거 많이 해줄테니
이눔아 누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어디서 저리 참한 복덩이가 왔을꼬 고마운 기라 잘하고 살거레이~
하면
누야~~쪼매만 잘하끼다
이눔이 먼소리 하노 끝도 없이 잘해야제 업어주고 살아
아니~~내가 하는 말은 누야 한테 하는 것 보다는 쪼매 더 잘한다고~
응 그러믄 된다 더도 덜도 말고 그래만 하면 일등 남편이제
찬은 입에 맞드나 물으면 응 근디 누야 클났다
놀래서 와~
응~ 누야가 해준 찬보다 맛이...
맛이 와? 입에 안맞나
아니다 안맞기는 누야가 해준것보다 쪼매 잘맞아 몸무게 늘어가 클낫다고
많이는 절대 아니니 서운타 말고
이늠이 누나 놀리면 괘씸죄에 해당 되는거 모리나
누야~~소문만복래 래~~요
늘 밝고 씩씩한 동생이
두 다리를 다 잃고 나서 처음으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못난 누나 걱정 할까봐 언제나 명랑하게 웃던 웃음소리 대신
누야~ 인자 이래가 멀 해먹고 살겠노..
이노무 **먼소릴 그래하노 설마 느그 두식구 누야가 못먹여 살릴까바
느그 누야 그리 능력 없는 사람 아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치료 잘 받고 상처 아물면 곧장 내려 온나
느그 식구 오면 할 일이 산더민데
씨잘떼기 없는 걱정은 붙들어 메놓고 알아 들었제
한번만 더 누나한테 그딴소리 해봐라 가만 안둔다
그 말 한지가 두 달도 채 안되었는데
전화를 끊고 기가차서 하늘을 쳐다보며 가엾은 녀석인데
두 다리를 다가져 가시면 우얍니까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돼서 내 작은 둥지로 날아온 새 한 마리
날지는 못해도 조그만 기대고 일어서게 살펴 주시지..
이제 겨우 좋은 사람 만나 새로운 삶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찬 한 가지해서 보내면 빈말이라도 우리 누야 반찬은 우에 이리 맛나노
누야 이번엔 나한테 보내지 말고
옆에 누구누구가 조금 어렵다
거기로 보내도고 난 왜 늘 누야한테 미안한 짓만 할까~~요
그렇게 연결되었던 찬 한 가지 나누어 먹기
보내는 건 넉넉지 않아도 되돌아오는 건 아름드리 행복
그렇게 9년이 지난 어느 날
준아 ~누나 손목에 건초염인가 머시깽인가 친구라 찾아와서
많은 찬은 못하것는디 우야노
누야~ 인자 그만 해라 인자 그만해도 된다 누야 건강이 우선이니
울 누야는 아프믄 안되는 사람인데 우야노
내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던 내 동생
많은 이야길 하지 않아도 잡은 손으로 환히 보이고 전해지던 무수한 이야기들
희한하게도 그런 교감이 통해 서로를 손바닥 보듯 하였고
누가 뭐라 해도 개의치 않았으며
더런 선생님처럼 오빠처럼 인생의 정도를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소갈머리 좁아터진 마음 안에 바다를 심어
누야~~사람이 마음을 열면 바다도 담을 수 있데~요
근데 그 마음을 닫으면 바늘 하나도 들어가지 못하게 좁아 진데요.
사는 동안
무늬만 사람으로 살아선 안 됨을 각인시켜 주던 멋진 내 동생
어느 정도 완쾌 되어 가겠지 싶었는데
동생 처에게서 걸려온 전화
누님.. 저 사람이 말문을 열지 않습니다.
귀도 잘 들리지 않구요
내 귀가 의심스러워 지금 뭐라 했나요
내가 잘못 들은 건가요 자다 날벼락도 아니고 지금 먼소린가요
어이가 없어 흐르는 침묵 끝에
누님...저 사람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되었는지 치료가 불가능하답니다.
병원에서 3개월 이야길 하는데
제가 보고 싶은 사람 있냐 물으니 대답은 안하는데 누님을 보고파 하는 것 같아서요
저사람 눈만 뜨면 누님 이야길 제게 했거든요
오시면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모르고 있으니 절대 울지는 마십시오.
그럴께요 절대로 동생 앞에서 눈물 보이지 않으리다.
전화를 끊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남편도 알게 되고
잠시 짬을 내어 밤낚시 온 용철 아우와
삼천포 아우님 차를 타고 남편과 부산 고신의료원으로 향하고...
미어지는 가슴을 다독이며
눈물 보이지 않으리라 들어서니
진통제에 못 이겨 잠든 동생 얼굴이 어린 아이 같다
반만 남은 몸뚱이는 어느덧 상해 들어가고
얼마 전 봤던 동생 얼굴인가 싶을 만큼 앙상하다
기가막혀 침묵만 흐르는데
처가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아무도 몰라봅니다. 심지어는 저 까지두요.
얼마 전까진 알아보더니 지금은 전혀요
동생 손을 잡으려니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워 주길레
나도 모르게 이딴건 왜 껴야 하냐고 버럭하니
그래도 끼셔야 합니다. 손이라도 잡아 보실려면요
장갑을 끼고 동생 얼굴을 만지며 준아 하고 부르니
희뿌연 눈동자를 굴리며 누야~하며 대꾸를 하는데
울지 않겠노라 다잡는 눈물이 홍수처럼 밀려 나온다
어서 기운차려야지 같이 바다도 가고..
다 알아듣는 듯 기운만 차리면 될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데
더는 그 자리에 서있는 거조차 벅차서..

돌아온 후 하룻밤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몸뚱이 어디에 그리 많은 눈물은 저장 되어있을까
울다 지쳐 이제 안 나올 만도 한데..
가슴은 뻥 뚫려 축구공이라도 들락거릴 것 같고
함께 한 시간들이 동생에 얼굴이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두 다리만 가져가시지 그것도 모자라 저 가엾은 녀석을 데려 가려 하나이까.
정녕 그럴 수밖에 없으신지요.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전화를 하니 받질 않아 문자를 남기고 한참 후에야 동생 처한테서 전화가 온다
악바리 같이 울지 않던 사람이 목이 멨다
누님 어려우시겠지만 한 번 더 시간 내주십시오.
부모님이 계시는 것도 아니니 믿고 의지 할 때라곤 누님 밖에 없습니다.
제발 저사람 좋은 곳으로 편히 가라고 누님이 빌어 주십시오.
동안 꾹꾹 다지던 눈물을 쏟아내며 통곡을 하면서
누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사람 하도 누님 이야길 많이 해서 동안 샘을 내기도 했습니다.
저사람 말끝마다 누야 한테 신세를 갚아야 하는데..
저사람 무거워 못가나 봅니다.
그러니 누님이 덜어 주세요. 고통 없이 편히 가라고..더는 눈뜨고 못보겠습니다
병원 문을 열기도 전 독한 진통제도 듣질 않아 새 나오는 신음 소리는
나의 온 몸을 마비시키는 듯 했다
매사 잘도 견디는 너 였기에 한쪽 다리 부분이 잘리는 날에도
누야 걱정 하지마 더한 사람도 있는데 멀..이까짓것 머시라고 웃으며 전화하던 너였기에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이 너무나 아파 둘이서 손을 잡고 빌었다
일초라도 빨리 데려가 달라고 저렇게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버려두지 말고
어서 데리고 가주십사..
집으로 돌아 와서는 전화기를 잡고 동생 처한테 문자를 보냈다
혹여 내가 그 녀석 임종을 못 보게 되면 곁에서 이말 전해 달라고
언젠가 그녀석이 몹시도 바람 부는 어느 여름날에 내게 한말인데
누야..내 이야기 들어바라
먼데..
우린 안있나 전생에 남매였다 그것도 억쑤로 의좋은..
하도 둘 사이가 애틋해
이생에 다시 남매로 만나게 해 주신기라
그런데 후생에도 남매로 만날끼다 그때는 안있나
내가 오빠야로 나고 누야는 내 동생으로 만날끼라
그건 왜 그러는데? 물으니
그땐 내가 오빠야로 나야된다 그래야 내가 맨날 누야 업고 다니면서
못된늠들이 내 동생 괴롭히고 놀리믄 혼도 내주고
힘든일 있으모 오빠야가 다 처리할끼니 그땐 꼭 내가 오빠야로 날끼다
그래야 내가 이담에 누야 볼 면목이 생긴다 아이가
누야 ~우리 이담엔 살만하모 큰집 짓고 행님이랑 조카들이랑 나 장가가모 울 각시랑
다 같이 살자 알았제 자 손가락 걸고 약속..
그랬으니 그녀석 보고 그 약속 꼭 지키라고 전해줘요
우리 그땐 그 녀석 만나면 둘이서 꽁꽁 묶어놓고
절대 혼자 빨리 못 가게 잡아서 혼내 줍시다.
문자 보내고 3일째 되는 날 울다 지쳐 새우잠이 들었는데
동생이 찾아왔다
누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상처도 깨끗이 낫고 흰 정장에 말끔한 차림 이였다
아이고 이놈아 이리 깨끔한걸 그동안 누나 속을 그리 썩히노
다가와 내손을 가만히 잡으며
누야~ 나 인자 누야 하고 한 약속 지킬라고..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누야 울지마라
누야가 울모 나 발길 안 떨어져 빨리 못 간다
그러니 울모 안된다 내말 알아 들었제
더 좋은 세상에서 큰집 짓고 기다릴라고 먼저가는 것 뿐이니
울지마라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남편께 저 녀석이 이제 가나보오 하직인사 하러 왔습디다.
다른 때 같으면 또 그늠의 방정 맞는 꿈 하면서 핀잔이라도 줄텐데
남편도 깊은 한숨만 내리쉬고..
정확히 6월 24일 오전 11시 57분에
동생 처한테 전화를 걸어
꿈 이야길 전했다

어젯밤 잠시 잠든 사이 말끔하게 찾아 왔더라고
그러니 마음 다잡고 보낼 준비 하라고..
근석이 약속 지킬려고 먼저 가는 것 뿐이니 절대 울지마라 하더라고
그러니 우리 그 녀석 편히 가게 울지 말자고
그리고 같은 날 6월24일 오후4시 동생은 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능소화 피는 계절에 그 꽃의 슬픈 유래처럼 그렇게...
동생을 보내기 전 내 기도는
일초라도 빨리 거두어 주심에
피 말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사 였고
동생이 가는 날은 약간의 비가 내려주고 바람이 함께 이길 간절했었다.
외로운 녀석 이였으니 홀로 가는 먼 길이나마 외롭지 않토록...
영정사진 속 내 동생이 말을 걸어온다.
울 누야~~ 파이팅 힘내요 울지 말고..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도 울지 않았다
비와 바람이 동생 가는 길 외롭지 않게 마중 했으므로
그리고 바람이 내 볼을 스치며 속삭였다.
더 행복한 만남이 기다릴 거라고...
담 생엔 니가 오빠야 해라 꼭 그래서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오래도록 남아 지켜 주길...
사랑하는 내 동생 좋은 곳으로 가란 소린 않겠다.
넌 틀림없이 특 좋은 곳으로 갈 것임을 알기에
구름에 얹힌 새털 보다 더 가볍게 부디 잘가라...
2012년 6월28일 새벽..사랑하는 동생 인준이를 보내고 ...
Pardonne Moi - 남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