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들
(2002년 8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베란다 창문 너머로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는 아니지만 왠지 우중충한 날이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출근을 하려고 옷을 입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 있는지 작은 형수가 아침부터 전화를 했다. 혹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집사람 옆에서 통화하는 것을 들으니 요즘 조금 물때인데도 동네사람들이 골뱅이와 자하를 많이 잡았다고 우리보고 한번 잡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 이미 철이 지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자하가 나오는가 보다. 엊그제 많이 잡은 사람은 열 사발 넘게 자하를 잡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번 고향 앞바다에 가서 바람도 쐬고 자하도 잡아보고 싶었는데 내일 모레 일요일까지 자하를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하가 없으면 낚싯대 하나 사서 망둑어 낚시도 하고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도 찾아뵐 겸 한번 가 봐야겠다.
주말에 망둑어 낚시를 하려고 릴낚시 채비 한 벌을 사는데 그물 살림망까지 4만원 넘게 들었다.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고 난 이후 여가시간을 활용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망둑어 낚시채비와 자하 잡는 포망과 조개와 골뱅이 등을 잡을 수 있는 손전등과 쇠갈고리와 쇠꼬챙이 등을 사는데 모두 10만원이 넘게 들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나는 바다 낚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타고난 성격이 조급하고 인내심도 부족한 나는 느긋하게 앉아서 입질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민물낚시보다 낚싯대를 담그면 바로바로 입질이 오는 망둑어 낚시를 더 좋아한다. 햇살이 나른한 늦가을 오후, 허리께까지 빠지는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운 다음 낚싯대를 아래위로 살살 고패 질을 해주면 쉴 새 없이 물고 늘어지는 망둑어의 팔팔한 몸부림이 너무 좋다.
나는 망둑어 낚시하는 것도 좋지만 이 밖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다. 겨울철과 봄철에는 간편한 등산복에 작은 배낭을 둘러맨 다음 스틱하나 들고 가까운 산으로 등산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 다니면서 한가롭게 산행을 하는 것도 좋다. 재수 좋은 날에는 아담한 춘란 한 두 뿌리 캐어 와서 아파트 화분에 키우는 재미도 좋다.
봄철과 가을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다에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이따금 집사람과 함께 바다에 나가서 상쾌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조개도 잡고 바지락도 캐고 소라와 골뱅이를 잡는 재미도 좋다.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면 고향 앞바다에 가서 깨끗하고 싱싱한 자하를 잡는 것도 좋고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백중사리 날 밤에 손전등을 들고 천천히 바닷물 속을 걸어 다니면서 골뱅이도 줍고 조개와 낚지도 잡고 소라와 박하지를 잡는 재미도 쏠쏠하다. 운이 좋으면 덤으로 커다란 키조개와 맛있는 새조개도 몇 개 잡을 수 있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멋진 공기총을 하나 사서 수렵도 해보고 싶다. 중후한 레저용 자동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멧돼지와 토끼와 꿩 사냥도 해보고 싶다. 말 잘 듣는 사냥개와 하얀 눈이 내린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토끼도 잡고 커다란 멧돼지와 노루 사냥도 해보고 싶다. 나무 가지위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참새들도 잡아보고 싶고 푸드득 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꿩 사냥도 한번 해보고 싶다.
서예도 배우고 싶고 묵화도 배우고 싶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 퇴직을 하면 정신수양도 할 겸 한문과 서예를 배워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가훈도 써주고 좋은 글도 써주고 싶다. 서예공부와 더불어 묵화도 배워서 매화며 국화와 난초, 대나무 등 사군자를 일필휘지 멋지게 그려보고 싶다.
바둑공부도 좀 더 하고 싶고 책도 많이 읽고 싶다. 몇 년 후 퇴직을 하면 마음이 맞는 친구와 향기 좋은 차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수담을 나누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가을철 책읽기 좋은 날에는 하루 종일 문학전집과 에세이 등을 읽고 긴긴 겨울밤에는 무협지와 연애소설책을 밤새워가며 읽고도 싶다. 이밖에 일기도 쓰고 싶고 또 여건이 되면 나만의 책도 한 권 써보고 싶다.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과 밀림이 우거진 아마존 정글도 다녀오고 싶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코끼리와 사자와 얼룩말 등 온갖 야생동물들이 뛰어노는 것도 보고 싶고 아마존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 원시인들의 생활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 또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수양하는 스님처럼 조용히 살아보고 싶고 외부와 단절된 무인도에서 로빈손 크루소처럼 그렇게 혼자서 살아보고도 싶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 꿈이 많은 건지 아무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혼자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보고 싶고 조용한 시골집 마당에서 닭과 귀여운 토끼도 키워보고 싶다. 집 앞에 조그만 화단을 만들어서 난초와 예쁜 꽃들도 가꾸고 싶고 섹스폰이나 대금, 트럼펫, 하모니카 등 악기도 하나 쯤 다룰 수 있도록 배워보고 싶다. 노을이 지는 해변에서 바다를 무대로 멋지게 섹스폰 연주를 한번 해 보고 싶다. 아무튼 나이든 이후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되겠고 돈도 적당히 있어야 하겠다. 멋진 노후,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