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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발전 65 4,875 2009.01.29 15:06
 

작년 11월 15일 아버지께서 텔레비젼에 나오셨다.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3일] 프로의 [겨울고개, 연탄 길 이야기-서울의 마지막 연탄공장]이었다.
 
dscf2649jyjbaljeon.jpg 



사실 나는 그 방송의 기획의도도 몰랐고, 그런 프로가 있는지도 몰랐다.
방송이 있기 며칠 전 동생이 전화를 하여 몇 날 몇 시에 아버지와 형이 티브이에 나온다고 하여 보게 된 것이었다.  무슨연유로 방송에 나오는지 동생에게 되물었으나 동생도 정확하게 모른다고 했다.

형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형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카메라 기자 몇 명이 연탄공장에 상주하며 연탄공장 돌아가는 상황과 연탄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카메라로 상세히 담아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형과 아버지가 일하는 것도 카메라 기자가 동행하여 찍었다고 했다.
형의 말은, 우리나라 연탄산업에 대해서 취재하는 것 아닌가? 라고 말했다.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것은 [다큐멘터리 3일] 이라는 프로였고, 기획의도는 [이 프로그램은 ‘특정한 공간’을 ‘제한된 72시간’ 동안 관찰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21세기 오늘의 한국사회의 단면을 ‘특정한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세밀하게 관찰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런 상황변화와 인간군상의 일상을 통해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방송이 나오는 날 나와 집사람은 방송을 한참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몇 시간을 찍었다고 하니 많이 나올텐데 왜 안나오나 하며, 유심히 보고 있는데 종반부에 약 2분정도의 분량으로 아버지가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나오는 화면의 나래이션은 이랬다.



[상략]



“그거는 뭡니까?”

“아 이거 지게야 지게”

“요즘은 지게 많이 안 하시던데······.”

“아유 이층 삼층 이런데도 막 올라 간 다구”



[오늘 목적지는 빈 몸으로 오르기도 버거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이게 몇 장 올 리 신 겁니까?”

“스물다섯 장이요.”



[연탄 스물다섯 장, 구십 키로그램의 무게를 지고 할아버지는 묵묵히 계단을 올랐습니다.

일흔 두 살의 노인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

“근데 다른 지역은 집게로 하시던데, 왜 지게로 하세요.”

“아 집게로 하는데, 지게로 하면 깨끗하잖아.”



[할아버지는 이런 가파른 길을 수천 번 올랐을 겁니다.······.

그것은 아마도 할아버지의 칠십 평생 인생의 무게는 아닐까요?]



[하략]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라고만 부르던 호칭을 나래이터는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일흔두 살의 노인이라는 나래이터의 말은 나의 가슴을 찍는 비수가 되었고, 머리가 멍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객관적으로 우리아버지는 일흔 두 살의 노인이고, 집에서 손자 손녀들 재롱떠는 것을 보면서 인생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 연세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가파른 계단을 구십 키로의 연탄을 지고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dscf2634jyjbaljeon.jpg 



아버지는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일만 해 오셨다. 옛날 우리집이 경기도 이천에서 인천으로 이사했을 때부터 아버지는 연탄 일을 해오셨다. 햇수로 치면 오십년을 연탄 일만을 해 오신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게와 리어카로 일을 하시다가 2.5톤 타이탄 트럭을 사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작은형이 운전면허를 따게 된 때부터이다. 이십팔 년을 조수를 했으면 운전면허를 땄어도 벌써 땄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운전의 운자도 모르신다. 아버지에겐 일과 집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큰형과 작은형은 아버지와 함께 연탄 일을 했었다. 그러다가 큰형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찾아서 직장을 구했고, 작은형도 연탄일이 싫어 잠시 다른 일을 했었으나, 경기가 좋지 않아 아버지와 함께 연탄 일을 다시 시작한지 오년이 되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방과 후엔 연탄 일을 많이도 했다. 고등학교 겨울방학 때는 일한 댓가로 용돈도 제법 벌어 쓰곤 했었다.



우리집의 이력이 이렇다 보니 아버지가 연탄 일을 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당연히 연탄 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형제들의 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흔 두 살의 노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좁디좁은 이층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보면서 세월이 흘렀음을 느꼈고, 아버지께 무심했던 내가 미워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방송을 보고나서 며칠 후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신다.

카메라 기자가 이것저것 많이 찍었는데 하필 지게질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 자식들 보기가 미안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랬을 것이다.

일흔두 살의 노인이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도대체 자식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나를 포함한 우리 형제들에게 돌아오는 세상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미안했을 것이다.



우리 형제가 아버지께 연탄 일을 그만 두시라고 해도 아버지는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아마 내가 아버지의 입장에 있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받아 살아가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남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dscf2680jyjbaljeon.jpg 



아버지는 평소에 말씀이 별로 없으시다. 우리 형제에 대한 애정표현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우리형제들, 어린시절 팔뚝이나 손을 만지고 쓰다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얻은 듯 눈가에 주름만큼만 웃으셨다.



아버지는 연탄 일을 하여 우리 4형제를 다 키웠다. 따라서 많이 배우지 못했고, 좋은 옷 입고, 맛난 것 많이 먹고 자라지 못했다. 나와 내 동생이 공고와 상고를 졸업한 것이 최고학력이었다. 학교에 낼 학비가 없어 매번 기한을 넘겨야 낼 수 있을 정도로 가난했다. 큰형이 공장에 다녀 월급날 통닭 한 마리 튀겨오면 할머니까지 7명이 먹어야 했다. 어린시절 한 조각이라도 더 먹기 위해 눈치 보며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때는 아버지가 미련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생전 자식들에게 뭐 해준 것도 없다는 불만도 가졌었다. 특히 우리 형제들 공부를 좀 더 시켜줬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연탄 일을 몇 십 년을 했으면 돈도 많이 벌었을텐데, 자식들 결혼할 때 보태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했다. 자식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전 전화 한통 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서운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아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라왔다.



그런 내가, 불혹의 나이를 훌쩍 지나왔다.

불혹의 나이에 아버지께서 구십키로의 연탄을 지고 이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힘겹게 세상 속에 계신 것이었다.

왜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 공부 제대로 시키고 싶지 않으셨을까?

왜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 결혼할 때 뭐라도 보태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왜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으셨을까?

아버지는 그렇게 해주지 못한 자신이 답답했을 것이다.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수 있었다.  

나는 내 불만만을 생각하고 그 생각 속에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다니, 너무 늦게······.
 
dscf2693jyjbaljeon.jpg 



나는 아버지께 감사한다.

무심하다 할 정도로, 지금까지 아무말씀 없이 내가 하는 대로 지켜봐 주셨던 아버지께 감사한다.

내 몸, 어디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아버지께 정말 감사한다.


 

사랑합니다.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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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댓글
김해장유아디다스 09-03-07 17:41 0  
늦게남아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발전님의 글에는 항상 사람사는 가슴이 뭉클한 뭔가가 느껴집니다.
발전님 글을 읽고나면 항상 "가족"이 생각이 나고
특히 "부모님"생각이 나게 됩니다.
훌륭한 부모님이 계시고 발전님이 계시고 훌륭한 부모님을 둔 발전님의
아드님도 계시고 정말 보기 좋은 가족입니다.
가족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발전 09-03-08 12:37 0  
지난주에는 어디 안 다녀오셨나요?
흥부낚시에 사진은 올라왔던데요.
다녀온 조행기가 안 올라옵니까?
이달 하순께나 슬슬 움직여 보려고 합니다.
열기 끝물인데, 쿨러 한번 못채워보네요. ^_^
오짜멸치 09-03-14 13:17 0  
이제서야 이글을 보네요..
참 인자하게 보이는 어르신입니다.

저희 아버님도 올해 일흔둘인데 가까이 계시는데  더 못챙겨 드리는거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가 왔길래 깜짝 놀랬는데, 저희집 안부를 먼저 물어 보시니..
-저 참 불효자식 입니다. 평소에 안부전화 안하고, 오는 전화에 뭔일 생긴듯 놀라니 ....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발전님 가내에 두루 평온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발전 09-03-24 22:48 0  
닉네임 밑에 보이는 번개탄과 연탄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 모습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께 잘 해드릴려고 하는데.
그게 가식이 섞여 있는것 같은 느낌입니다.
평소에도 우리아버지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그냥 ......
오짜 멸치님 정말로 오짜 멸치가 있나요?
육자 멸치로 키워서 멸치도 회로 썰어서, 사시미 먹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고, 대물하시고, 안낚하세요
megi 11-04-30 22:10 0  
인간의 길은 그길 ....
자식이 즐거우나 슬프거나. 꼭 같은 걱정 에 .
가슴에 담은 표현 하지 못 하고 ,
굿 굿 이 지켜볼뿐 ,,,,
마지막 희생으로  후세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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