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에 가면 반공탑이라는 작고 하얀탑이 있는 동산이 보입니다. 지금은 그곳에 팔각정도 들어서 있고 아담한 꽃밭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바라본 추자도의 중심지역인 대서리 뒷골목입니다. 앞에서 보면 마치 여느 도시같이 많은 식당간판과 술집, 그리고 다방이 보입니다만 이렇게 뒤를 조금만 돌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똑같은 삶을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살아가다 보면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화가날 때, 비켜가고 싶을 때, 주저앉고 싶어 친구의 작은 토닥임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조용히 뒷걸음쳐 뒤를 돌아봅니다. 용기가 그리고 오기가 생길 법도 합니다만 그런 감정보다는 차라리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러다 보면 나를 추스리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듯 합니다. 그래서 치열한 삶의 현장이 여유롭게 보이는 뒷골목입니다.
추자도의 작은 마을 예초리 뒷가에 있는 해변입니다.이 해안에는 자갈밭도 있고 누군가는 이 돌들이 제주도 본섬과 너무 틀려 화강암도 아니고 현무암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바위냐고 물었습니다. 저도 알지 못하고 알았다고해도 바로 이건 무슨암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추자도의 하늘은 낮습니다. 맑은 하늘은 높아야 하는데도 추자도의 하늘은 낮기만 합니다. 지평선을 보기가 힘든 사람에게 낯선 해변에서의 수평선은 하늘이 낮다는 걸 깨우쳐 줍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보다 낮은 하늘입니다. 얼마나 아둥거리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남에게 보이는 삶을 위해 살아 왔는지 하는 생각에 하늘이 너무 맑고 낮아 고백하고 싶은 아늑한 곳입니다. 모르는 바위의 성분이 그런 여유를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걸어보고 싶은 봉굴레산의 오솔길입니다. 예전에는 비포장이었는데 지금은 포장되어 미끄럽진 않습니다만 더 작은 길이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습니다. 길가에 있던 산딸기와 나리꽃이 새삼 아름다워 걷는 내내 시간가는 줄 모르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길에도 아픈 사연을 안고 머나먼 타향에서 이 세상과 등진 젊디 젊은 뱃사람들의 넋도 베어 있을거고 혹은 육지에서 신부감이나 신랑감을 데리고 와 고향의 부모님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려던 설레임도 간진하고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설레임 보다는 편안함과 부드러운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생각나는 곳으로 계속 남아 있기를 빌어봅니다.
멀리 뿌옇게 예초리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담을 때 일행이 씩 웃으며 날려준 어쩌면 하나도 웃기지 않아야 할 말 한마디에 숨이 막힐 정도로 웃다 겨우 떨리는 손 진정하고 찍은 재미있는 미소가 있는 곳 입니다. 지금은 그 감정이 많이 사라졌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조금은 아픈 추억이 있는 마을입니다. 상처를 내는게 익숙한 우리에게 상처를 받는다는 건 내성이 부족한 생명체에 바이러스가 들어와 모든 것을 마비시킬 정도의 아픔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소한 말로 행동으로 그리고 거짓과 위선으로 상처를 주고 살아왔는지 가늠도 안됩니다만 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들풀처럼, 또 다시 고개드는 저 풀잎을 닮고 싶어집니다 .

여기는 가기도 힘들고 가는 도중에도 계속 자동차 길이 있을까 걱정하며 지난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 근처까지만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진이에서 빠져나온 길이 반대편 예초리까지 연결되어져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바다를 보면 너무 아름답지만 그 반대로 망자들의 많은 무덤이 가까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비석하나 없는 작은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어 다른 곳에 있는 검은 묘비에 화려한 꽃들이 놓여진 묘지에 비하여 초라하지만 그런 삶도 더 값진 것 같아 자주 찾던 곳입니다. 우리는 늘 화려함만을 쫓으며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살아 왔는지 모릅니다. 보이는 작은 갈대가 작은 나무가 새삼 소중해 보이기만 합니다. 저녁에 혼자 이 산을 혼자 오르고 내리며 오싹한 기분에 "진짜 사나이"하고 기억도 안나는 군가들을 부르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
신양항에 혼자 떠있는 작은 배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떠나올 때의 추자항입니다.이 작게만 보이는 배에도 여러명의 선원이 함께하며 그들만의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얼굴을 담고 싶었지만 그 치열한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는게 예의가 아닐거라는 동행한 분의 말에 곱고 여린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잠시 주저앉고 싶었던 곳입니다. 삶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어떤 분들은 치열하고 빈틈없이 자신과 주위를 대하며 사는 게 그런 삶이라 합니다만 전 그런 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질고 손해보고 이해하며 뒤엉켜 사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해 봅니다. 어떤 분 때문에 "감히"라는 말을 언제부턴가 잘 쓰지 않습니다만 감히 제가 인생을 얘기한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떠나올 때의 항구는 항상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눈물 흘리게 할 때가 많습니다. 한참을 다시 보아도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고 만남이었습니다. 기분좋고 편하고 가끔은 기대고 싶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간을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떠나가는 배의 일부입니다)" 그렇게 떠나오고 말았습니다.아마 거기에는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라는 메아림이 있었는지도....아직도 거기에서 웃고 있을 황선장과 윤선장 내외의 어질고 배려하는 그리고 넓은 마음이 보입니다. 비록 초라함일지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