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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삶

바닷나비 47 4,970 2008.03.12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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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겨진... 아내의 삶 ♤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고 있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물끄럼히 쳐다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렇고 그런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으응...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받지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언제쯤이던가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던 것이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에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던 것이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반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더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낸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말했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당신에게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여보!...  
img_17_20583_17?1181918252.gif 좋은 글에서/ 바닷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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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댓글
초짜애플 08-03-28 01:19 0  
허전한 맘에 작은술에 많이 취해버렸네요 취한김에 우연히  바닷나비 님이 올려 놓으신 글에  눈물이 흐릅니다 제 일인냥 ... 나두 그런일이 있다면 어쩌지..? 하는 맘으로 ... 감당할순 없을겁니다  제가 바보가 아니라면 바닷나비님의 현재 상황이 아닌것 같은데? 그저 아니시길 바랍니다  ..... 암튼 간만에 울어 봅니다  행복하세요~~~....
오대양육대주 08-03-28 01:24 0  
형님 그니까 형수님한테 잘해줘여 ㅋㅋㅋ
맨날 낚시갈 생각만 하지말구~~~
바닷나비 08-04-07 22:00 0  
초짜애플님 ...
이렇게 좋은 글에서 가져왔는데 현실처럼 받아주시니
감사드리며 저또한 에플님의 북받치는 감정에 공감합니다.
가정에 늘 꺼지지 않는 행복으로 이어지시길 ...^-^
소록도감시 08-03-28 12:33 0  
어제 그제 계속 술만 먹고 들어갔는데 새벽에 깨어나보니 와이프가 제옆에 있더군요
항상 제옆에 있는 와이프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바닷나비 08-04-07 22:02 0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소중한 것과 행복이라는 것은
그리 멀리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이처럼 소중함을 간직하신 님이 부럽습니다.
늘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
김여사 08-03-30 09:43 0  
휴일아침에 이가슴이 끝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나의 사랑하는 동반자 김여사도 고인과 같이 암과투병중입니다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잘되지않습니다  가족이 아무리 잘보살펴 준다고한들  그고통과 심정을 다 읽을수있을까 생각하니  불쌍하고 가엾고 안스럽고 무어라 형용할수가 없읍니다 무언가 해줄수가 없는자신이 미안하고 답답할뿐입니다  늦으나마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닷나비 08-04-07 22:08 0  
아~ 김여사님
이게 도데체 뭔 말씀인지요. 몰랐지만 무척이나 힘드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투병중인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시길 소망드리며 아내에게는 님뿐입니다. 빠른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김여사님 부디 힘내십시요.
한국전층팀 08-03-31 21:33 0  
ㅡㅡ;;;
마음이 넘 아프네요,,,,,,,,,,
있을때 몰랐던 당신의 빈자리가 크다는
음악까지 넘 슬프게 합니다,,,ㅠㅠ

이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바닷나비 08-04-07 22:10 0  
언제나 그렇듯 따스한 감성을 가진 울 전층님...
그래서 한국전층님에게 관심이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_-
나도고기 08-04-14 18:16 0  
바닷나비님,
다시 들렸읍니다, ^^*
이젠가 저젠가 언제 또 글올려주시나 아무리 기둘려도 영~~
소식이 안계셔서 ㅎㅎㅎ
별일은 없으시죠??
 혹시 무슨일이라도 있는줄알고 죄송합니다,ㅋ~
바닷나비 08-04-24 03:59 0  
나도고기님 ,,,, 반갑습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
이렇게 바닷나비를 기다려주시니 너무 넘~ 고맙습니다.
덕분에 ,,, 저는 잘지내고 있지만 나도고기님께서 늘 객지에서
고생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올린 글로 인해 ,,, 보시는 분의 마음에 작디 작으나마
소중한 느낌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항상 가져본답니다.
나도고기님의 기다림에 진정 감사의 글을 전합니다.
사랑해정경아 08-04-16 19:18 0  
바쁜 일상에 쫒기며 다람쥐 챗바퀴돌듯하는 우리네 삶에서
진작 사랑하고 위해줘야할 이들을
우리네는 간혹...
이런저런 연유아닌 연유로
망각아닌 망각을 할때가 있죠...

오늘 촉촉히 봄비가 내리고 있읍니다.
이유없는 나만의 이른 술자리후...
우연히 님의글을 접하고 보니
가슴속 깊은곳에서부터 아련히 저며옴을 느낍니다.
망각속에 잠든 소중한이들에 대한 나의 모습들이
새롭게 비추어지는 얘기네요...

예전에 아버지란 소설을 한번 읽어 본적이 있는데
그때마냥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떠나고 없는 소중한이의 빈자리는...
글쎄요...
세상의 그무엇으로도
저는 채울수 없을것 같군요...
가슴아픈 내용이지만 잘읽고갑니다.
바닷나비 08-04-24 03:15 0  
사랑해정경아님,,,, 주신 덧글이 너무나도 매끄럽습니다.
특히 진작 사랑하고 위해줘야 할 이들을,,,, 그리고 망각아닌 망각
님의 글처럼
망각속에 잠든 소중한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자화상일런지도 모르겠군요.
사랑해정경아님의 애정어린 댓글을 살풋 가슴에 담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수국 08-05-29 15:54 0  
고개 숙이고 반성합니다.........내용에 일부는 꼭 내 이야기 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겠지요?..........잘 읽고 갑니다.
바닷나비 08-06-17 21:02 0  
수국님 .... 정말 잘하셨답니다. ^^
지금부터 잘하면 되겠지예... 오히려 제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글로 인해
정말 머찐 삶이 되셨으면...(^^)
답글이 늦어 미안스럽구요. 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06뽈락 08-07-04 02:14 0  
꾸벅~~

나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글 입니다.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내에게 함부로 행동했던 못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여

올 봄에 결혼하고 처음으로 당신! 못난 내 만나서 힘들지요~
했더니 이내 눈가에 이슬이 맷히더군여

평생을 타성에 젖어 한량끼가 있는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아내!
사업에 실패하여 생활고도 책임 못지는 못난 남편을 만나 힘든 나날을 보내는 아내!

여자는 남자하고 겹상도 할수 없다고 시대에 뒤 떨어진 사고 방식을 가진 남편...
이제는, 몆년 있으면 50줄에 올라서지만 지금 부터라도

여보! 아픈데 없어요 라고 손을 잡으며 진심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 해야 겠네요
좋은글, 모자라는 저의 부분을 채워 주는글, 감사합니다. ^^
바닷나비 08-07-20 22:48 0  
06볼락님 이제사 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아마... ~
모든 이들의 마음의 거울같은 글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시죠.
이제.... 이제 좀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부부가 함께 기쁨과 아픔을
더불어 나눠가지는 ... 그러한 의미있는 세월을 보내실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모쪼록 올려주신 흐믓한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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