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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별곡(풍경 '70)

8 2,285 2006.09.23 11:58
늘 입석표밖에 없었습니다.
줄 서는 것도 힘들었지만 기차는 기다려 주지 않았지요.
다음 기차는 자정에 출발이니 내일 아침에나 고향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남대문 우체국에 가서 또 줄 서서 시외전화를 신청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고향 이장님댁 전화통이 아마 오늘은 불이 날 겁니다.
만돌네 큰 아들, 밤나무집 막내딸, 방앗간집 쌍둥이, 송진사댁 일곱째 딸, 나루터 오서방 여동생...
이장님댁 아줌씨, 작년처럼 순서 바꾸지 말고 방송 잘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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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걸었고, 찐 계란도 몇 알 먹었으니 기어히 밤차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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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운이 좋아 좌석을 찾으면, 수원역쯤에서 주인이 나타나지요. 다시 팔걸이에 걸터 앉았다가 엉덩이가 저리면 출입구로 나갑니다. 출입구 안쪽 2급 명당자리는 이미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신문지를 깔고 잠자리 채비를 했네요...
바깥 화장실 앞의 계단 덮개를 내리면 1급 명당이 생기는데 여기도 일가족이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아무래도 팔걸이가 제격인지 다시 객실로 들어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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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는 좌석제가 아니었습니다.
아줌씨가 가방부터 던져놓네요.
바보처럼 계속 줄만 서다가, 등신처럼 다음 차를 기다립니다. 역시 운이 좋으면 통로의 목욕탕 의자에 앉는 행운이 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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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열차에 손잡이가 붙어 있으니 천만 다행입니다.
역시 대한민국의 억척 아줌씨들,
안 되는 일이 없다지만 되는 일도 별로 없다는 이 땅의 넝쿨같은 여인들,
송편을 빚을려면 어떻게든 막차를 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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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자 뻔하게 만나는 것들, 결코 제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사립안의 정경들, 올해는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포도알로 꾀는 고염나무, 내 첫사랑처럼 떫어 속았던 데고지 감나무, 텃밭의 수탁을 쫒는 복실이, 조부님의 되백이 담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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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약, 진딧물약이랑 못통...
뭐 하나 변한 게 없다싶어 동구밖으로 나가봅니다.
대추밭 건너편, 칠 벗겨진 예배당 풍금조차 그대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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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켠의 시레기는 시도 때도 없이 말리는데,아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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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게 있네요.
선물로 사 온 막내 여동생의 체크 무늬 부라우스가 아무래도 작을 것 같아요. 가슴이 제법 부풀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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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나흘 달마냥 바뀌지 않는 고향집, 어머니의 술독이 영원한 진미의 취기이듯 잣나무 뒷산의 까치집이랑 느티나무의 진부한 숨소리마저 참으로 진솔한 자리, 바로 있어야 할 그 자리임에 늦은 경외의 안도로 흐뭇할 뿐이었습니다.
한 줌의 논두렁이 마실(里)을 연명하듯 그건 씨족의 탯줄로도 어엿했습니다.
먼 훗날, 그것이 한시적이었을지라도 나와 고향이 최선의 시절을 공유했던 그 미학적 구도는 영원히 유일할 것입니다.
비록 느티나무가 없어진 여분의 날부터 마실의 쉰 숨소리가 철근 콘크리트의 가위에 눌려 사경을 헤맬지라도, 아니 산허리를 잘라 신작로를 관통하고 드디어 샛강을 돌려 하수를 토하고 죽더라도 오래전의 나의 구도는 물푸레 그늘못에서, 때론 밤바다 갯바위에서, 어느 포구의 선술집 주인장의 소이부답(笑而不答)에서 영원히 오버랩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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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 신작로 건너 간이역엔 두 개의 긴 의자가 있었습니다.
아버진 누군가를 이별해보면 시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시인을 못 봤고, 의자에 있던 사람들을 기차가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곧 만돌네 큰 아들, 밤나무집 막내딸, 방앗간집 쌍둥이, 송진사댁 일곱째 딸, 빨간 입술 연지를 그린 나루터 오서방 여동생이 기차에서 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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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 수퍼마켓에서 못다 산 법주병을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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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쟁이 영감네 담벼락을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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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꿈마당 우물터에 들어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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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들의 하얀 웃음이 기다리는 곳,
해마다 솔잎 송편을 빚어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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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수님이 키를 내던지고 달려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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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님, 아버님께 문안드리고, 고방 시렁의 낚싯대를 찾아 작년에 낚았던 월척자리 소리못에 앉으면 만돌네 큰 아들과 방앗간집 쌍둥이가 질세라 나타나지요. 한바탕 방죽이 떠들썩하면 금새 저무는 한가위 해거름에도 우리들 망태기는 넉넉합니다.
솎은 붕어살국에다 부추랑 시레기 넣고, 마늘 풋고추에 된장 고추장 서너 술 퍼담아 재피가루로 맛덤을 내면 나루터 오달자가 초당으로 탁배기를 나릅니다.
오달자는 아마 오늘도 유행가 신곡을 부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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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달이 성님 감밭 홍시는 오달자 가슴처럼 터질 듯합니다.
주둥이에 홍시칠하며 돌아오는 길,
소리못 들길에,
코스모스가 추억처럼 피었습니다.

***경주월드

[ http://kr.blog.yahoo.com/fish20017/folder/8.html ]
야후의 제 아이디는 '강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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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생크릴 06-09-26 10:02
안녕하셨습니까?
정겨운 사진들이지만
정말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모습이군요..

특히 정겨운건 낚수꾼으로써
보이는건 낚숫대 뿐...ㅎㅎ

앞받침대와 뒷꽂이에 얹힌 낚숫대.
묵직하니 튼실하게도 생겼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요...꾸벅.
호미 06-09-26 10:46
시절은...

오쟁이 영감네 담벼락을 돌아....그렇게 가뿟읍니다~

때로는 그립읍니다
어쩌면 궁상맞고..
흑백 사진마냥 우중충한 그 시절이...

울긋불긋 화류계 꽃단장 녀자같은
총천연색 이~ 좋은시절에 문득문득 그리운건~
모땜시~그런지~ 휴~~~~~

그나저나~
읍천에서의 환대에 변변히 인사도 못드렸읍니다
해량하여 주시옵고 감사드립니다

시절을 보낼라꼬~ 계절이 또 바뀌네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칼있어 마 06-09-26 13:20
캬! 한편의 다큐멘터리 입니다.
우째 저래 좋은 그림들을 ...,
입에 물고 풍기는 파리약, 조거 참 어릴적에 되게 신기해서 다쓰고 나면 물 부어서
불고 난리였는데,
새록새록 살아나는 추억과 함께 초심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계시죠?
맨날맨날 행복하소서! ^_^

여름햇살이 따가울수록 과육은 단단히 여물고
온라인 글귀는 부드러울수록 인격이 단단히 여문다.
-칼있어마의 9월 인낚캠페인-

경주월드 06-09-27 09:39
호때기 파리약,
코로 숨 쉬어야 하는데도, 입으로 숨 쉬니
파리약이 입으로 넘어 오지요.^^
석유맛 나는 아리한 디디브이피... 요즘 건망증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 듯...^^

호미님,
아나로그 AM 나지오는^^
고장도 안 나는지, 이번 토요일에 또 온답니다.
하선장 동해는 주의보도 없이 늘 on air 군요. ㅎ.
이상하지요. 낚시벗은 헤어지면 금새 그리운 것이...^^

생크릴 아우님,
받침대와 뒷꽂이,
'노가다'하는 후배가 만들었는데,
볼수록 장인(匠人)^^정신이 깃들어 있어 가보로 보관중입니다.

오늘이 초엿새, 곧 한가위입니다.
저 감나무 홍시처럼, 모두모두 넉넉하시길...
섬원주민 06-10-01 19:53
저 시절의 행복지수가 지금보다 높았을 겁니다.
아련한 고향으로 데려가는 월드님의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저 코스모스 길로 체크무늬 브라우스 입은
달콤한 소녀와 함께 거닐고 싶습니다.
주책이겠지만요....
경주월드 06-10-04 10:33
어~ 섬님이시네!
한국에 있었수?
몇 안되는 진국인데...아니 멀국인가요.^^
요즘은 왠지 섬님같은 분이 그립답니다...ㅎㅎ

손아귀에 꽉 차는 붕어,
토실토실한 두 마리 손 맛,^^
어디 그런 데 없수?
생크릴 06-10-09 10:50
섬님 명절을 잘 보내셨습니까?

땡땡이옷에 짭짜름하면 안됩니꺼?...ㅎㅎㅎ
거제우연낚시 06-10-21 01:32
늦은밤...
몇며칠 깊은잠을 못이룬 덕에 안구가 탈이나 연고를 발랐더니
잘 안보입니다.
다시금 정신도 안구도 밝아질때 찬찬히 봐야 할것 같습니다.
언제인지 기억엔 없지만 딱한번 강화에서 서울역으로 와 저 진풍경을
몸소 체험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직 젊은 세대인데...
호미님의 댓글속 추억에 저도 물들어 가는것은 ㅎㅎㅎ
어르신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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