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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약속

3 1,678 2006.08.17 16:26
"엄마! 오늘 수요일이야."
큰아들 녀석이 학교를 마치고 헐레벌떡 현관으로 뛰어들며 하는 말이다.
"응? 근데, 수요일이면 왜?"
"엄마, 수요일은 수산물 먹는 날이잖아."
남해 문항리 어촌 체험을 가슴 한켠에 남겨 놓고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하며 깜빡 잊어버린 내 모양새가 민망했다.
아이 손을 잡고 시장으로 향했고, 남해 할머니표 미역국을 찾는 막내 도영이를 위해 바지락을 사고, DNA가 풍부하다는 싱싱한 고등어도 몇 마리 샀다. 맛있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남편이 '수요일은 수산물 먹는 날'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고, 난 빙그레 웃으며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며칠 지난 뒤
"엄마, 오늘 무슨 요일이야?"
"화요일. 그런데 왜?"
"그러면 멸치 먹으면 안 돼. 바다에서 나는 건 수요일만 먹는 거야." 멸치 볶음을 먹으려는 내게 여섯 살 막내 도영이가 하는 말이다. 수산물은 늘 먹으면 좋은 것인데 수요일은 더 많이 먹자는 설명을 해 주었건만, 결국 그 날 저녁엔 도영이의 억지로 아무도 멸치 볶음과 김을 먹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우리 집은 수요일만 되면 수산물을 꼭 먹어야 하는 무언의 약속이 생기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참살이 식 습관으로 거듭나게 해주었던 '아름다운 어촌 찾아가기' 행사가 생각난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특별한 휴가 계획도 없이 집에서 에어컨 켜고,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보내기로 했다.
어른들이야 경제적이고 힘들지 않아 ‘좋아라’ 했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왠지 '이건 아니야' 라는 불평이 나오려고 할 때쯤 희소식이 들려왔다. 바다에 관심이 특별한 남편의 빠른 동작 덕분에 한국 어항 협회에서 주관하는 '아름다운 어촌 찾아가기' 다섯 번째 행사인 문항리 어촌 체험단이 되었던 것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생각 때문에 큰 기대 없이 ‘가족이 함께’ 라는 것에만 의미를 두기로 했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 일정이였지만 정말 알토란같은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첫날 방문했던 국립 수산 과학원 패류 연구 센터에서는 김병학 연구사님의 우리 수산업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산물 먹거리에 대한 안도감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 어장이 점점 줄어가는 악조건 속에서도 피조개의 복원화, 패류의 번식, 신품종 개발, 참굴 양식 사업 등등. 우리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시는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께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이런 양식 사업들이 정부 지원과 더불어 꼭 성공하시길 기원하며 연구원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렸다.
특히 아이들에게 유생들을 현미경에 비춰주며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와 연구소를 돌아보는 행운까지 갖게 해 줘서 한층 더 유익하였다.
저녁 캠프 파이어 시간에 수산물 시식이 있었다.
“야! 이게 조개구이, 생선구이의 참 맛이구나!”
여기저기서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글거리는 숯불 위에서 아파하듯 입을 벌리는 조개들이 안쓰럽기는 했지만, 몸 속 보물을 내주는 조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맛있게 먹는다.
바다 냄새와 바다 맛을 함께 즐기는 그 매력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횟감으로만 만났던 전어 역시 숯불에 올려놓고 왕소금을 뿌려가며 먹어 본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전어구이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라는 말에 일백 번 공감한다.
그동안 ‘왜 이런 참맛들을 많이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가’ 하는 때늦은 후회까지 들었다. 꺼져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문항리의 아름다운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 날 일정에 가슴을 설레며, 아침 일찍 일어났다.
창밖의 바다와 섬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행복감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함께하며 건강한 가족, 함께할 수 있는 바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잔잔한 물결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아침 식사 후, 마을 어르신들을 도우미로 모시고 드디어 쏙(가재과에 속하는 쏙은 갯벌의 미생물을 먹고사는 갑각류라고 한다)을 잡으러 갯벌로 진군한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쏙을 잡으려면 쏙잡이 깃대가 필요했다. 서예 붓처럼 생긴 깃은 막대 끝에 머리카락이나 동물의 털을 붙여 사용한다.
기대 부푼 마음으로 깃대를 꽂고 쏙과의 한 판 승부를 걸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속 태우는 쏙과의 숨바꼭질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고, 기다림을 포기할 무렵 깃대에 작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몇 초의 실랑이 끝에 살짝 달려 올라오는 쏙의 몸을 잡는 순간 나도 모르고 환호성을 질렀고 주위에선 박수를 보내주며 함께 기뻐했다.
아이들도 여기 저기 파 놓은 구멍에 깃을 넣었다 뺐다하며 쏙잡이에 한창이다.
가족과 함께 자연을 만끽하는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쏙잡이의 묘미를 느낀 뒤 우리 가족은 바지락 캐기에 도전을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마산에 잠깐 살았는데 집에서 가까운 곳에 갯벌이 있었다. 그 때 놀이가 숟가락 하나만 들고 나가서 조개를 캐왔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된다. 아이들과 호미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 조개를 찾았지만 물때가 맞지 않은 탓인지 생각만큼 쉽게 바지락을 얻을 순 없었다.
조금의 인내력을 요할 무렵, 한 개 두 개씩 보석을 얻기 시작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가끔 보던 그 바지락들이었지만 색다른 의미와 기쁨이 더해진 소중한 것들. 막내는 게를 잡아 통에 담으면서 게걸음을 흉내내어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깜짝 파티 쏙 요리 시식. 시원한 국물 맛과 아삭아삭 거리는 쏙의 특유한 맛은 남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체험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충렬사, 이락사, 거북선 견학은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덕분에 살아있는 역사 공부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 막내는 “엄마,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돌아가셨을까요?” 하며 질문을 한다. 그리고는 이순신 위인전을 펼쳐놓고 더듬거리며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뿌듯하다.
남해는 찾아 갈 때마다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된다.
유명한 송정 해수욕장이나 보리암을 제외하더라도 곳곳에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가 될 수 있는 휴식처가 너무도 많다.
특히 문항리는 하루 두 번 작은 섬과 연결되는 길이 열려 더 매력적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섬으로 들어가는 그 신기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펜션에 버금갈 정도로 잘 지어진 회관은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어 더욱더 좋았다.
휴가철만 되면 해외 여행만 선호하는 현대인들에게 우리 바다의 아름다움과 신비, 그리고 좋은 먹거리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나는 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한다.
한국 어항 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고.
그러면 소중한 보물을 건질 수 있으리라고.
우리 집은 수요일이면 특별한 날이 된다.
아이들은 미역국에 고등어구이를 먹으며 바다의 고마움을 느끼고 어부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가족 사랑과 더불어 마음까지 넉넉한 풍요로움을 느낀다.
“행복이란?”
내년에 다시 찾을 문항리가 고향처럼 그리워 벌써부터 마음 설렌다.
돌아오는 수요일엔 남편과 소주 한잔을 나누어야겠다.
물론 싱싱한 전어회와 함께.

(2005년도 해양수산부장관상 어촌체험기 우수상 작입니다. 우리 마나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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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참볼락 06-08-17 17:39
가족의 소중함이 수산물 먹기에 함축 되어 있네요.
어릴때 부모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의 마음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읍니다.
행복이란 늘 서로를 사랑하고,함께하며,풍요로움을 느끼는게 아닐련지......
하늘손자 06-08-17 21:29
우리집 장남왈 "아부지 조개구이 함묵업시다.
나"알았다 광안리 가서 3만원치 사다가 집에있는 오븐에 꾸묵자.
"에이~~가서무야 맛있지.."이자슥이 우리식구 양끗 묵을라모 10만원은 넘을낀데^^!
수요일은 미역국에 우리수산물!!! 울마누라도 교육좀시켜야겠네요^^!
노난다 06-08-18 15:14
너무나 아름다운 글입니다!
바다을 곁에두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생생한 산교육을... 그에 마음깊으신 엄마의 진솔한 마음 글!
~아이들이 무척 사랑스러우시겠습니다 !
3남매! 휼륭하게 자라길 기원드립니다!
늘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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