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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9일에 얼핏 생각나는 일..ㅋ
2004에서 1960을 빼면 44.. 하하 그러니까 벌써 44년 된 이야기일세.
당시 나는 서울사범학교 병설중학교 3학년학생이었지.
그 날은 꽃 피고 새 우는 따뜻한 봄날 4월 19일, 바로 내 생일이었어.
그 때 하필 나는 학급 주번(당번)이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조급하게
담임선생의 종례를 기다리고 있었지. 수업 시간은 이미 모두 끝났고.
주번은 下校가 다른 애들보다 더 늦는다는 거 알지?
왜냐면 교실청소하고 책상정리하고 문닫고,등등.. 모두 마치고 나와야하니까.
그런데 이날 따라 종례가 늦어지는 거야. 담임 선생께서 좀체로
나타나질 않으시는 거야. 우리반 아이들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상태였지.
주번인 나는 기다리는 틈을 이용하여 봉걸래로 청소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학교 분위기가 무언지 술렁거리는 어수선한 분위기였지.
학교 마즌편에 있는 한양대에서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고.
우리 학교 교문은 꽉 닫혀서 아무도 밖으로 못 나간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말하자면 데모가 벌어졌다는 이야기야.
교실 뒷쪽을 청소하던 나는 갑자기 뭔가가 속에서 꿈틀거리는 걸 느꼈어.
빨리 나가서 학교 밖 상황을 알아보고 싶기도 했고
또 생일날이니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기도 했고...
담임은 교무회의가 길어지는지 빨리 안 나타나시고...
결국 나는 어떤 막연한 분노가 치밀어 오름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들고있던 봉걸래를 거꾸로 잡고 마침 앞에 놓여 있던 양동이를 힘껏
내리후려쳤던 거야.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람..! 때 마침 그때 담임 선생께서
교실로 막 들어서시는 찰나였지. 결과는 뻔하지. 그 광경을 보신 담임..
냅다 뒷쪽으로 오시더니 그 넙적스런 손바닥으로 내 몰캉한 뺨을 디립다..
이번에는 선생님 쪽에서 내리후려치셨던 거야. 봉걸래 아닌 손바닥의 차이 뿐.
눈에서 불이 번쩍`` 나더니 뺨이 뜨거워지더군. 아니 눈도 물기와 더불어
뜨거워지는 듯했어. 나는 끽'소리 한번 못하고 그저 묵묵부답으로 머리를 조아렸지.
담임선생은 신사이셨기 때문에 몇마디 설교와 더불어 그걸로 끝났지만...
웬 일인지 모를 슬픔이 물밀듯.. 내 가슴을 쳤어.
'오늘이 내 생일날인데..., 이게 뭐람...'
내 열다섯살 생일날에 생일 케익은 고사하고 무참하게 뺨이나 맞고 욕이나 듣고...
요즘 같으면 방과 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잔치 벌이고 희희낙낙거리고 있었겠지?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는.. 그날 마침 배도 고픈데 뺨이나 맞았다는.. 그런 사실을..
요즘 세월에 보면 참으로 어이없기도 한 이야기를... 40여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나는 비로소 털어놓는다. 다른 뜻은 없다. 그냥 단순한 하나의 추억담이었다.
그 때 우리 3년 3반 담임은 이기화 수학 선생님,
무척 과묵하신 경상도 사투리의 젠틀맨이셨는데...
실력이 좋으셔서 그 얼마 후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학교를 그만 두셨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지금 쯤 75,6세 되셨을 듯하다. 여전히 강건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고 싶다.
[그 날 학교 파한 후 4.19데모가 벌어져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걸어갔다.
버스는 당연히 끊어졌고. 왕십리도 인파. 동대문도, 종로도 인파인파~.
종로4가. 콩볶는 총소리 탕탕탕탕~!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의 물결.
창경궁 담길로 원남동, 원서동 지나 계동 우리집에 도착하니,
나의 큰아버님께서는 벌벌~ 떨며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세 집 털어 하나 뿐인 머시마, 養子인 이 조카놈, 동생의 아들인 이놈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던 거다. 그때 내가 데모대의 일원으로 총맞아 죽었으면 생일날 죽었다고 신문에 났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을 한동안 했었지,크크~ 1900년생이셨던 그분. 부디 天福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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