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1년(신묘년)에 충무공은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하신다. 공께서는 곧 왜란이 있을 것을 짐작하시고 좌수영 관할 아래 군역 가능한 청장년들들을 징발하여 그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군비를 보강하신다.
1592년 4월 12일 드디어 거북선을 완성 시범 항해를 하시는데, 이충무공 전서(이하 '전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4월 12일 [양력 5월 22일]<신축>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배를 타고 거북함의 지자, 현자 포를 쏘았다. 순찰사의 군관 남한이 살펴 보고 갔다. 정오에 동헌으로 나가 활 열 순을 쏘았다. 관청으로 올라 갈 때 노대석을 보았다.)
하루뒤인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왜구 해적 1차 함대가 90여척으로 절영도(絶影島/영도)를 점령하고 2차 함대 350여척이 부산포 앞바다에서 전열을 정비하는 긴박하고 숨막히는 전황은 아쉽게도 이틀만에야 여수의 충무공의 본부로 전해진다. 원균의 전통은 4월 15일 해거름에 전해진다. 그러나 충무공 곧바로 장계를 올리고 순찰사 이광, 병마사 최원, 우수사 이억기에게 지체없이 공문을 보내는 비상연락을 취하신다.
4월 16일 부산 거진(巨鎭/절제사 본부)이 침몰하고 나흘만인 17일에 부산이 함락된다. 제대로 손 한번 쓰지 못한 영남우수사 원균의 전통은 18일 오후 두 시에 충무공에게 닿는데 이미 동래, 양산, 울산이 함락되고 왜구는 파죽의 세로 대구, 경주로 북진중이었다.
충무공은 칼날에 울분을 삭이시며 19일 700명의 신병을 점검하신다.
20일 다급한 영남관찰사 김수는 충무공에게 지원요청을 바라는 장계를 청한다.
(달은 그믐으로 향한다.
그믐사리의 세찬 물기둥을 뚫고 충무공의 함대는 곧 옥포에 닿으리라.
이 땅이 어떤 땅인데!
충무공, 이순신은 원균과 다르다. 백성이 초개처럼 스러질 때 장군은 칼날에 어리는 촌부의 눈물을 보았다. 남편의 코가 베이고 아내의 귀가 떨어지고 솜같은 아이들이 족제비 앞의 병아리처럼 짓이겨질 때 장군은 동헌의 노대석에(路臺石) 돌산의 사릿물로 일휘지도를 갈았다.
공의 생애, 바다에서 싸우는 첫 전투,
'조금달이 뜨는 오월 초이레, 옥포에서 만나자')
壬辰年五月初一日
舟師諸會前洋 是日 陰而不雨 南風大吹 坐鎭海樓 招防踏僉使興陽졸(백사람졸/인변에 군사졸 씀/통신사전에 없음)鹿島萬戶 則皆 憤激忘身 可謂義士也!
[전서에서/수군들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이 날은 흐리되 비는 오지 않고 마파람만 세게 불었다. 진해루에서 앉아서 방답첨사(李純信), 흥양현감(裵興立), 녹도만호(鄭運) 등을 불러 들였다. 모두가 격분하여 제 한 몸을 생각지 않으니 실로 의사들이라 할지어다!]
그러나 겁을 먹어 무기고와 군량미를 방치한 채 도망간 자도 많으니 이를 어쩌랴!
남해에서 돌아온 송한련(宋漢連)의 보고는 남해현령 기효근(奇孝謹), 미조첨사 김승룡(金勝龍), 상주포, 곡포, 평산포 만호들이 왜적의 소식에 겁에 질려 달아났다고 하니 기가 막히다.
2일 정오에 배를 타고 진을 치고 각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니 기꺼이 싸울 뜻을 가졌는데, 낙안 군수 신호(申浩)만이 회피함에 실로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피하려 한들 될 법이나 한가!(중략)
이날 저녁의 군호는 '龍虎'이고 伏兵은 '山水'라 하였다.
충무공은 5월 3일 새벽 경상우수사 원균의 회신을 받고 아침 내내 내리는 가랑비를 보며 하루를 초조하게 보내신다. 오후에 광양현감 어영담, 흥양현감 배흥립을 불러 전황을 숙의하시고 전라 우수사 이억기의 수군 이동을 초조하게 기다리시는데, 防踏(여천군 돌산면)의 판옥선이 첨입군을 싣고 오는 걸 이억기인 줄로 보고되었으니 실로 아연함이 이를 데 없으시다. 얼마 후 녹도 만호(정운)의 보고로는 우수사 이억기의 도착은 없고, 왜구는 점점 서울에 가깝다니 비통함을 참으시다 中衛將 李純信을 호출하여 4일 새벽에 출정함을 하달하신다.
그런데 이럴수가!
여도(呂島/고흥군 점안면 여호리)수군 황옥천이 왜적의 소문에 집으로 도망가자 공께서는 체포하여 효시로서 장졸앞에 본보기를 보이셨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나라가 풍전등화인데...
충무공은 전선 24척을 모아, 5월 4일 캄캄한 새벽에 여수를 떠나 드디어 대출정의 진군에 임하신다. 이미 수색대 척후조인 우측후 김인영, 우부장 김득광, 중부장 어영담, 후부장 정운은 개이도(여천군 화정면 개도)를 수색하며 출발하였고 평산포, 곡포, 상주를 지나는대장선(大將船)들과 미조에서 합류키로 지시하셨다.
왜구 해적들아, 이제 너희들은 죽었다!
이 분이 누군지 아느냐!
소금기 있는 바다라면 사죽을 못 쓰는 영국인들에게 세계 4대 海戰史에 한산대첩을 기술토록 하신 성웅 이순신이시다.
먼동이 터 온다.
칼날에 이는 장군의 서릿발,
함대는 지금 미조항을 지난다.
***
[註1:초고 및 전서의 원문을 '국가기록유산'에서 옮기는 작업이 너무 방대함으로 독자들 중 혹시 원문을 보신 분이 계시면 귀중한 자료로 사용하겠습니다. 국가기록유산은 원문 자귀만 나오고 복사가 불가능합니다. 위의 5월1일 일기는 초고와 전서 공용분입니다. 이후는 번역본만 이용하겠습니다. 원문 복사자료가 없으면 위 원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이것이 한계입니다. 그러나 인명 및 지명은 되도록 원문에 충실하겠습니다.]
[註2/문헌 및 자료]
*난중일기 완역본/노승석/동아일보사 출판/2006년 초판
*난중일기 역본/이민수/범우사/2000년 12월 3판
*칼의 노래/김훈
*이희승 국어대사전
*musicman33.finesugar.com/난중일기 양음력 구별 싸이트
*국가기록유산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 임진일기
(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 壬辰日記)원문/국보 제76호
*섬원주민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ogokdo.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