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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순 할머니의 일기

16 2,280 2006.01.21 21:30
9순 할머니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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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아흔, 세상 떠날날이 머지 않았지… "

올해 아흔인 홍영녀 할머니는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일흔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는
삐뚤빼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망이지만
20여년 동안 써 온그의 일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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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 마음 누가 달래 주나"

"그 누가 이 내 마음을 달래 주나"

"청개구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다지 슬픈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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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쓸쓸해, 가슴이 서러워…"

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
산 마을로 너머 가시는 햇님은
어김없이 너머 가시네.
햇님 나는 나는 쓸쓸해.
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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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바다위에 떠 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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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두운데…,햇님이 나오셨나
햇살이 고개를 들면그는 창가로 다가가
햇님에게 인사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여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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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
홍 할머니는 새 내복 보다
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
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딸들이 사다 준 내복 조카들이 사 온 내복들이
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 것 입어
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을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나 죽은 후에 다른 없는 이들 입게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
딸년들은 낡은 옷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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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
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
씨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
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
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자식을 눈뜬 장님으로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 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
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메룻찌’로, 고등어는‘고동아’로
오만원은‘오마넌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
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
'이슬똘 오떼로' 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 것은
이 에미를 흉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
써놓은 글들을 숨겨 놓는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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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할머니가 닦고 또 닦았던 고무신
딱히 외출할 계획도 없는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말린 홍 할머니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고무신에
다시 먼지가 쌓이고
그는 신어 보지도 않은 채
더러워진 고무신을 또 닦아 햇볕에 내 놓는다

그는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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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
눈물짓는 홍 할머니
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노년의 외로움이 절절이 담긴 그의 일기는
그만의 일기가 아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
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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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댓글
동네사람 06-01-21 21:55
잔잔한 내용속에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게하는 좋은글을 접하게해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공상두 06-01-21 22:32
난정님 감사합니다.

나의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게하고 가슴에는 뜨거움이 울컥.....

저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83세의 저의부친과 모친이 있습니다.

사형신고를 받은지 어언 3년이 지났것만 아직까지 아무탈 없이지네고

있는 부친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3년전 3달밖에 못사신다는 말기 암진단을 받고 덤으로 사시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 ...이제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하늘이시여 감사...

작년 겨우 25를 겨우 넘긴 살감섬돔 2마리를 가덕도에서 잡아 아버지에게

드렸드니 무척 맛나게 드시면서도 연신 바다낚시는 위험하다고 가지말라는

이야기와 골패와 낚시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할머니의 골병만 드리고 떠난

할아버지 이야기 등등....아...아버지,어머니 저는 등산가면 정상에서 항상

소주한잔 놓고 빌고 ,낚시가면 제일먼저 소주 한잔 바다용왕에 바치며

이렇게 빕니다 "산신할배요 자는짬치 아부지 델고가 주이소"

"용왕님 자는 짬치 아부지 어무이 델고 가이소"


생크릴 06-01-21 23:32
난정님 방가...아자!

장문의 감동스런글로

독자에게 태어난 장남을 무척이나

아끼셨던 저의 할머니를 떠올리게하시는군요...

이미15년이 지났건만 기억이 새롭게 떠 오릅니다.

좋으신글로 다시금 감사드리며 감기 조심 하세요...^^
난정 06-01-21 23:52
동네사람님 부끄럽습니다..^^(- -)(_ _)

공상두님 고생이 많으시네요..
주무실 때 고통없이 편안하게 가시길..(- -)(_ _)

생크릴님ㅋㅋ 감사드려요(- -)(_ _)
초장만머꼬 06-01-22 01:05
못 배우신 부모님은 똑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돌아 가시기전 3개월 전부터 신변에 물건을 정리 하시고
전화도 자주 오시고 집에도 말씀없이 오시고.....
지금 생각 하면 눈물만 나네요.

난정님^^*
난정님도 할머님을 무척 좋아 하신데....
이시절에 가끔씩은 돌아봐야할 내용인것 같습니다.

늦은시간 이지만 한잔 하고 자야 겠습니다.


거제우연낚시 06-01-22 02:46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기에 이토록 가슴 절절 닿겠지요.
칠갑산과 어우러진 글귀 한자 한자...
님의 모습 어필되면서 저에 가슴을 두드립니다.
머언 남쪽 바다에 어린 조카들 돌보시며 기거 하시는 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말을 하네요...
사랑한다고...뵙고 싶다고...
경주월드 06-01-22 16:56
댓돌 위 하얀 고무신, 어머니 고무신,
어머니를 태워 다닌 고무신이 백 년의 사연도 태웠네요.
저도 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오늘은 제가 고무신을 닦으렵니다.
구름도사 06-01-22 22:30
글을 모르고 못 배웟다고 무식한것이 아닙니다.
새옷이 헌옷보다 좋다는걸 몰라서
아니면 몸에 익은 헌옷이 편해서
헌 옷을 고집하실까요?
할머니에게는 이미 새옷과 헌옷이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일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할머니의 철학입니다.
할머니는 스승입니다.
글을 먼저 알고 많이 배운사람들이 모르는것을 아시는....
난정 06-01-22 23:50
큰 아들 가슴에 묻으시고 삼년을 넘어시도록 밖갓 출입을 삼가시고

저히들 등하교 시간때 만큼은 좁다란 봉창으로 말없이 손 흔드시고

어여 댕기오라시던 울할매가 요즘 많이 ..

혹 게시는 곳에 산 짐승이라도 왔다간 모양 이네요?

그동안 자식새끼 키운다는 이유 명절이면 차 밀린다는 핑게로...

오늘 그동안 낚시질해서 얼려둔 참돔이랑 감시랑 해동해서 손질 합니다.

한마리는 울 할매 드리고 한마리는 울 아부지 드리고 ^^

요즘 방학도 없는 두 알냄이 요놈들 콧구녕에 바람도 넣어주고

아무리 어려워도 요번 설엔 꼭 한번 댕기 올랍니다.


* 초장님 우연님 경주님 구름도사님 그저 고맙고 감사 드립니다
항상 건강들 하시고 몇일이면 설 이네요 행여 가시는 고향길
무사히 다녀들 오시 옵소서. (- -)(_ _)
개구장이오빠 06-01-23 00:04
친 할머니 한살때 돌아 가시고...

지금은 외가쪽으루 고모할머니...이모할머니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랑 갔이 가면 울 애기 울 애기 하시네요...저두 나이가

조금 돼 는디....ㅠ.ㅠ

꼭 거시기 하면 꼭 오신다꼬.................



어릴적 아버지 따라 낚시 다닌 생각 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잘 계시는지.....

이층에 사시는 어머니 안 본지도 몆일 됐네요

내일 아침엔 이층에 올라가 봐야 겟죠.....어머니 얼굴 잊얼까봐?



어느덧 낚시 40년..........역쉬 바다낚시가 좋아요
nonanda 06-01-24 11:07
*지금은...아무도 안게시는....
할매와 어무이를 절실히 생각케 만드는군요!!
밤이면 더더욱 간절할것을...
사무실이라 속내도 못 비치고...
옥상에 가서
찬공기 맞으면서..
한대 물고서
허공을 함 봐야겠습니다!

난정님!
홍할머니의 강녕하심을 빌어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새벽 06-01-25 12:02
9순의 할머니 일기
정말 좋은 글 을 접했음니다. 사진 또한 명작 이네요

민물 뿌구리 06-01-26 12:02
님 .. 가슴이 시리네요 낚시가 좋아 인낚에 와 . 님의 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함니다..
생크릴 06-01-26 12:56
보고 또 보고...

이 글을 여기에만 두실게 아니라

어디 유명 사이트 야후나 네이버..에 라도 올리시죠...^^
호미 06-01-26 13:33
가슴이 따땃~ 해지는글~ 잘보고 토낍니다~ ^^
지발물어라 06-01-28 18:20
너무나 아름다운 할머니에 대한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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