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분노와 깊은 슬픔이 복받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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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분노와 깊은 슬픔이 복받쳐...

14 3,253 2005.02.02 00:39

andante



반갑습니다.
수은주가 올 겨울 들어 가장 낮게 내려갔다는군요~
정말 추운 날씨입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주의하시고
북쪽에 계시는 분들, 빙판길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서점엘 갔다가
가족을 잃은 슬픔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 편지글 모음 책을 한 권 샀습니다.
남편을 보낸 아내의 편지, 아내를 보낸 남편의 편지, 자식을 보낸 부모의 편지 등
눈물없이는 읽을 수가 없었던 가슴 저미는 글들이 빼곡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를 발췌하여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 여기에 올려봅니다.
서로 살을 부대끼며, 절절하게 사랑하며
세상 사는 일이 결코 만만찮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연 중에 하나지만
글이 너무 진실하고 또 안타까워
연민과 함께 세상에 대한 분노와 깊은 슬픔이 복받쳐
펑펑 울면서 읽은 책 한 구절을 여기에 옮깁니다.


punggyung67.jpg


여보, 석중 엄마!
당신을 보낸 지도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려.
일곱번의 계절이 오가는 중에도 당신은 여전히 그대로겠지?
서른 여섯살의 젊고 예쁜 당신 사진이 눈에 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거울을 보게 되는 내 마음은 그저 자신이 처량하고 한심스러울 뿐이라오.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해맑은 모습으로 웃고 있지만
이제 40대 중반을 넘긴 나는 끈 떨어진 신발짝마냥 쓸모없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구차한 목숨 차마 놓지도 못하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오.


오늘 난 당신에게 죽을 죄를 짓고 말았소.
당신 없이도 정말 애비 노릇 하나만큼은 잘 하고 싶었는데
기어이 석중이를 아동보호소로 보내고 말았소...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 법적으로는 석중이의 부모자격을 잃어버렸소.
아동보호소에 보내려면 친권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규정때문이오.
미안하오, 여보!
정말이지 죽어서라도 당신 얼굴을 볼 면목이 없구려.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석중이를 아동보호소에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건
순전히 나의 무능함 때문이오.


솔직히 내 몸 하나도 간수하지 못할 처지가 되어
더 이상 석중이를 지킬 여력도 자신감도 없어진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오.
차라리 내가 먼저 죽었어야되는 건데
엄마노릇, 아내노릇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당신이 먼저 가고나니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소.
언제부턴가 석중이는 집에서도 말 한 마디 없는 아이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나쁜 길로 빠져드는 것 같았소.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다니며 꼬맹이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온갖 못된 짓을 일삼고 다니다 경찰서에 붙잡혀간 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오.
어린 것이 엄마없이 자라기도 서러웠을텐데 애비라는 위인은 병에 걸려 돈도 못벌고...


내 몸 아프니 자연 하나뿐인 아늘놈한테마저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오.
소풍날, 그 흔한 김밥 한 줄 내 손으로 싸주질 못하고
한참 응석 부릴 나이에 병든 애비 수발이나 들어야했으니...
석중이 잘못은 하나도 없소. 다 내가 일찍 죽지 못한 탓이오.
애비 구실도 못하는 위인이 부모랍시고 살아있으니
사회에서 주는 혜택도 못받고 늘 용돈이 궁해 기죽어지냈던 걸 생각하면
진작 혀를 깨물지못한 내 자신이 저주스러울 따름이오.


석중인 그래도 착한 놈이오.
녀석을 아동보호소에 입소시키기로 결심하던 날, 모처럼 부자간에 외식이란 걸 하러갔었다오.
자장면그릇을 앞에 두고 아들녀석과 마주 앉았는데 갑자기 웬 설움이 그리고 북받치던지
난 고개도 못들고 한동안 물컵만 만지작거리고 있어야만 했다오.
"아빠, 저한테 할 말 있는 거 다 알아요..."
제딴엔 아빠가 가엾어보였던지 녀석이 먼저 말문을 터주며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하더군.
아마도 학교 선생님이 무슨 언질을 준 모양이오.
그대로 놔두었다간 장차 무슨 사고를 치게 될런지 알 수 없다며
아동보호소에 보낼 것을 제의한 사람도 실은 녀석의 담임선생님이었다오.
그곳에 가면 일단 세끼 밥 걱정 안하고 열 여덟살이 될 때까지 공부도 시켜준다니...


특히 나처럼 명색만 부모지 집에서 물심양면으로 돌봐줄 형편이 못되는 환경이라면
차라리 보육원 생활이 석중이를 위해서도 낫다는 판단이었소.
하지만 난 이제 겨우 열 세살밖에 안된 아들녀석에게
이제부터 아빠는 널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을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오.
그랬는데 이 녀석이 뭐랬는지 아오?
"아빠, 나 거기 갈래요, 거기 가면 나중에 취직도 시켜준다니까...
아빠도 아픈데 내가 자꾸 나쁜 짓만 하고다니면 결국 고아가 될 거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나 거기 갈테니까 아빠 빨리 나으세요, 응?
내가 용돈을 많이 벌어 병원에 입원시켜줄께요."
자장면이 퉁퉁 불어터지도록 우린 울기만 했소.


당신이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시름시름 죽어갈 때도
마냥 엄마를 보채며 이거 해내라, 저거 해내라 잔투정에 칭얼대기도 유난했던 철부지가
어느덧 못난 애비 속내를 다 들여다보고...
여보, 난 이 아이가 설령 도둑질을 했다해도 야단치거나 잘못을 탓할 자격도 없는 놈이라는 생각에
터져나오는 눈물을 삼킬 수가 없었다오.
그렇게 부자가 엉엉 울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을 마치고 지금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오.
녀석도 잠이 안오는지 무척이나 뒤척거리고 있다오.


이제 팔다리가 퉁퉁 부어 나도 더 이상은 글을 쓰지 못하겠소.
당신없는 세월은 건강하던 나에게 중증 심장장애라는 몹쓸 병만 안겨주고 말았소.
엊그제까지만 해도 난 당신사진을 보며 이렇게 기도했었소.
"여보, 나 하루빨리 좀 데리고 가주구려"
당신도 내 기도를 들었겠지?
하지만 이제 기도내용을 바꾸어야겠소.


여보, 조금만 더 날 지켜주오.
석중이녀석 철 들어 이 못난 애비가 녀석의 장래에 짐이 되기 전까지만
그때까지만 살아서 녀석 면회도 가고 가끔 용돈이라도 쥐어줄 수 있게 해주시오...
그러니 내 몸도 빨리 나을 수 있게 도와주고 , 당신 보고싶어 당장이라도 가고싶지만
나라도 없으면 석중이가 얼마나 쓸쓸할까
내가 무능한 탓에 친척들마저 등을 돌려 녀석과 나는 세상에 단 둘뿐인 가족인데...


세상에 의지할 데라고는 아무 데도 없는 불쌍한 석중이를 위해서라도
당신 나 좀 일으켜 세워주구려.
지금도 난 많이 아파...
석중이 녀석 먼 길 가기 전에 먹이려고 사골을 조금 샀는데
지금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다오.
미애, 나 좀 일으켜세워주오.
보고싶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고...응?

보내는 이, 영원한 당신의 남편 정우
받는 이, 여보, 미애


punggyung62.jpg


책에서 옮겨적은 이 글이 저작권은 물론 출판사에 있겠지만
이렇게 온라인으로 옮겨온 행위에 대해 어떨런지 모르겠군요.
혹시라도 이 글때문에 조금이라도 침해받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길 바라며
즉시 사과를 하고 삭제를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글은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생각케합니다.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아픈 곳이 너무나 많은 게 우리 사회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주위를 둘러보고 추스리는 사람들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행복한 나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빌딩 숲 속에서 난 바다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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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댓글
천성산 05-02-02 08:11
주위의 안타까운 사연을 볼때마다,
아~대한민국, 소리가 절로 나오지요,
법, 한번정해 놓으면 융통성 한조각 없는,
공직자들, 그러다가, 어려운 사연이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돼면,세상 어려운일 자기네가
모두 해결할듯이 호들갑 떠는,그사람들,
자기네 밥그릇 챙기기바빠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
돌볼시간이 없는겄인지___

날씨가 엄청 차갑습니다
일석님 건강 조심하십시요.
중년신사 05-02-02 11:38
마음이 터질듯이 아파옵니다.
찡한사연에 눈물이 핑돌고 저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부부가 한날 한시에 같이 생을 마감할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석중이 커서 아빠한테 효도하는 그런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빕니다.
석중이 아빠도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조원아빠 05-02-02 11:55
우리는 우리의 불행이 모든 것이냥 생각합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의 불행 보다 더 큰 아픔을
간직한 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게 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가족의 소중함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빈가방 05-02-02 14:24
빨리 건강해져서 자식하고 함께 살수 있길 바래봅니다.
마지 못해 살아가는 이웃이 너무 많아진 것같습니다.
어점 사는게 고민의 연장이고 괴로움의 상징인지도
그래도 마음대로 할수 없는게 삶인지도 ...
비운다는 마음은 얼마나 무거운지 던져 버릴려고해도
도무지 떨어지지 않으니 힘든것 같습니다..
잠시 자신을 돌아보고 갑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셔요...
도오옴 05-02-02 14:42
먼저 존글을 올려주신님께 감사 드리고 요
우리가 보는것은 오직 발끝만 보고있따라는것은 느낌니다
조금만더 멀리 본다면은 이런 분들을 .......
너 나 할것옵이 안타가울 뿐이네요
있을때 잘 하라는 말이 함더 생각 나네요
감사 함니다
콧털 아쩌씨....^*^
조경지대 05-02-02 15:13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사연입니다.
갑자기 중앙시장 뒤처진 횡단보도에서 연세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늘 마늘을 까시며 노점을 펼치고 계신모습이
떠 오릅니다.
가끔 지나치며 우리 주위에 고통을 참으시며 살아가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것을 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빨리 우리도 복지국가가 되어야 할텐데.......
가슴이 저려옵니다.
김일석 05-02-02 15:50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을 올린 것 같아 여러 님들께 죄송합니다.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겨우 겨우 내딛습니다만
정신과 일상의 구석구석에 만연해있는 이기를
더불어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좀 더 이타적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가족 중에, 내 이웃 중에, 내 나라에
조금씩 노력할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러는 저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진실한 모습으로 노력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댓글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추운 날,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섬원주민 05-02-03 16:24
일석님 글 보니 왜 눈물이 나려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 원문을 보면 더욱 그렇겠죠...
함 만납시다. 갑장!
김일석 05-02-03 16:31
잉?
경기도와 부산인데 어디서 만날까요?
춘삼월에 오곡도에서 만날까요?
원주민님, 혹 부산 오시면 전화 한번 주시길 바랍니다.
소주 한 잔으로 우리 갑장의 우정을 쌓아봅시다...^^
경주월드 05-02-03 22:52
오랜만입니다, 김일석님^^
春雪이 창에 난무하니,
주눅 든 분매화 필동 말동 합니다.

내일이 재봉춘이니 立春大吉 하시길...
김일석 05-02-04 15:49
월드님, 반갑습니다.
필동 말동한 매화...
그림이 절로 그려집니다....^^
언제 경주 가게 되면 차 한 잔과 꾼들만의 수다, 기대합니다.
월드님, 늘 건강하세요~!
가자낚시점소봉대 05-02-04 16:01
일석님...
안녕하셔요.

세상에는 이모 저모 사람숲에 가려....
눈물흘리는 이도 참 많습니다.

님의 글...접하니....
가슴이 애이도록 아파옵니다.

코털아찌~
늘 건강하시구요.
위에 계시는 님들....모두 모두...구정새해 다복하시길 빕니다.

김일석 05-02-05 00:40
가자님, 어제 늘근감시님께서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시더군요~
덕분에 참 오랜만에 가자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감시님께선 가서 하룻밤 자고오자고 하시는데
제가 시간이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조만간에 그쪽으로 놀러가게 될 것 같습니다.
만나뵈면 무척 반가울 듯합니다.
신포세이돈 05-02-05 03:44
님의 글을 접하니 가슴이 찢어질듯 아픕니다
작금의 현실에 통탄할 뿐 입니다
아! 이 안타까운 현실을 어떻게.........

하루 빨리 석중이 아빠께서 건강을 되찾아
아들의 버팀목이 되셧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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