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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도 삼덕항

0 2,296 2004.11.09 10:45
서산에 낙조가 걸린 통영시 산양읍 삼덕항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포구에서 1592년 7월 10일(양력)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날 날씨도 화창한 당포에는 왜군의 전함 대선 9척, 중선10척, 소선 2척 등 21척이 닻을 내리고 있었고 육상에는 당포성을 점거한 왜병 300여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선이라고 하면 조선의 주력함인 판옥선과 비슷한 아다케(安宅船)를 말하며, 중선이란 세키부네(關船)를 말하고 소선은 고바야(早船)를 말한다.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은 7월 9일에 적정을 수집하면서 사량도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적이 당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 거북선을 선두로 하여 당포로 진격해 왔다.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거북선은 적 함선 중 대장이 탄 누각이 있는 배를 향하여 돌격하고 그 뒤를 따라 전 함대가 함포사격을 하면서 돌진하였다.

마치 서해교전에서 우리 고속정이 북한 함정을 들이받아 밀어내듯이 거북선 돌격장 이기남은 거북선으로 누선 밑을 들이박아 깨트려버렸다. 순간 판옥선에서는 집중포화가 적선을 향하여 계속 불을 뿜었다. 이날 이순신 함대는 거북선을 이용한 충돌전술과, 판옥선을 이용한 포격전을 구사하여 단번에 승리를 쟁취했다. 여기서 임진왜란 당시의 세계적인 해전 양상은 어떠했는지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근대 이전에는 단병접전(Boarding Warfare)이 주요한 해전 전법이었다. 단병접전이란 원거리에선 활 같은 재래식 병기로 교전을 하다가 시간이 경과하면 서로 배를 접근시켜 근거리 보병전투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처음에는 활을 이리저리 쏘면서 분위기를 잡다가, 갈고리 같은 것으로 상대방의 배를 끌어당기거나 사다리나 그물 같은 것을 배 사이에 놓은 후 상대방 배로 건너가서 칼싸움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싸움을 말한다. 해적들의 해상 약탈방식과 비슷하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장기였다.

다음으로 충돌전술(Ramming Tactics)이 있다. 단병접전과 병행하여 사용된 고전적인 해전 전투양식이다. 이것은 배를 상대방 배에 충돌시켜 상대방 배를 침몰시키는 방법이다. 보통 배의 함수부 아래 부분에 단단하고 돌출된 장치를 충각이라 하며 이것으로 상대방 배의 아래 부분을 찌르듯이 파괴한다. 당포해전에서 거북선 돌격장 이기남이 이 전법을 사용하였다..

다음은 포격전을 들 수 있으며 말 그대로 함재포를 교환하는 해전 양상이다. 단병접전에 비해 새로운 전투양상이고 현대 해군에까지 어느 정도 계승되고 있다. 대략 15세기부터 어뢰, 비행기와 미사일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가장 기본적인 해전 방식이다. 해전에서 포격전이 시작된 것은 당연히 군함에 함포를 탑재한 시점부터이지만, 전반적인 해전양상이 단병접전에서 포격전으로 전환된 것은 17세기 초중반(1600년대 초중반) 부터이다.

당포해전에서 승리한 조선 수군의 주력 함정들은 각종 총통류를 탑재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시점인 1592년경에는 유럽 각국의 해군이 단병접전에서 포격전으로 막 전환하는 시기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함대는 원양항해 능력만 제외하고 보면 당시 유럽 열강 해군(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함대와 비교해서 손색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포격전 수행 수준을 놓고 본다해도 유럽 함대와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당포해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거북선에 들이박혀 서서히 침몰하는 적 대장선을 향하여 중위장 권준이 활로 적장 구루시마를 맞추자 휘하의 군관들이 배로 뛰어오라 적장의 목을 베어버렸다. 대장선인 누선이 파손되고 적장이 죽자 적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오합지졸이 되어 육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군은 적 함대를 모두 불태워버리고 여세를 몰아 육상의 적까지 추격하려 하였으나 마침 왜군의 대선 20여 척이 다수의 소선을 거느리고 거제도 방면으로부터 접근해 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어 육상의 적을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노을지는 당포의 방파제에 서서 그 당시를 상상해 보았다. 무전기와 같은 통신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 적선이 접근한다는 급보는 어떻게 전해졌을까? 순간 연대도 생각이 났다. 거제도 방면에서 추도 쪽으로 진출하려면 비진도나 용초도 근처를 지나 오곡도 근처로 나와야 하는데 이 경우 연대도 산 꼭대기에서 보면 환히 관측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연대도에서 봉화를 올려 이순신함대의 탐망선과 교신했던 것이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다.

어쨌거나 육상의 적을 포기한 대신 이순신 함대는 새로 나타난 왜적의 선단을 치려했다. 그러나 약 20㎞ 전방 해상에서 아군을 발견한 적 함대는 추도 방면으로 도주해 버리고 날이 저물자 이순신 함대는 다시 삼천포 앞의 창선도로 물러나 1박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저 유명한 당포해전이다.

이순신이 싸운 바다/새로운 사람들 펴냄/이봉수 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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