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수지는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해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어서 낚시꾼들에게는 철저히 외면당해온 곳이다.
하지만, 육동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이 소리소문 없이 재미를 보곤 했던 터이다.
그리고 물이 너무 맑아 주간에는 아예 붕어들이 입을 닫아 낚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소문이 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그러나 과거 5-6년 동안 저수지를 털지를 않았고, 바닥에서 물이 솟아올라 여간해서는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알짜배기 붕어터였다.
나는 육동 토박이를 통해서 소개를 받고, 몇 일 전 탐사 차 와서 밑밥작업만 해 놓고 호시탐탐 노리다 오늘에서야 대를 펼쳤던 것이다.
수초대가 탐스럽게 형성되어있는 산아래 포인트. 밤을 세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미리 이른 저녁을 먹어 두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정숙을 유지하기 위해 여벌옷도 미리 끼어 입고 정적과의 싸움을 준비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량들이 오르막을 차고 오르기 위한 굉음을 내뿜었지만, 그리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자 그마저도 거의 끊겨버려 사위는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되어버렸다.
금방이라도 캐미를 밀어 올릴 듯이 찌들이 꿈틀거렸지만 입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어 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영 소식이 없다. 처음의 기대감이 조금씩 허물어질 무렵, 도로가에서 인기척 이 느껴졌다. 등골이 오싹했다.
지금 시간이 도시에서는 아직 초저녁시간이었지만, 이런 산중 골짝에서는 한밤중이나 다름없는 시간대인데 누굴 까? 낚시꾼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나가 보았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린 꼬마가 흔들리는 나의 손전등이 눈 부시는지 한쪽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제 일곱 살쯤 되었을까?
이 밤중에 아이 혼자서 이런 저수지에 웬일일까?
"꼬마야! 너 누구고?"
"정재..."
"여긴 뭐 하러 왔노? 안무섭나?"
"우리 엄마 찾으러 왔다. 엄마가 없어졌다.."
아이를 앞장세워 그 애의 집으로 향했다. 저수지에서 5분 정도의 거리에 형성된 조그마한 마을인데, 대략 5-6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듯 했다.
정말 그 애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를 재워놓고 용성읍에 마실을 나갔는데, 그새 이 애가 깬 것일까?
그러나 아이는 용케 울지는 않았다. 혼자 있는 것이 조금은 몸에 배여 있는 듯 했다. 아이는 자기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에 다소 안도를 했는지 장난감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며 방 한 모퉁이에서 놀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은 머슥한 기분으로 그 애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앉은뱅이 경대 위에 놓인 사진 속에는 그 애의 엄마인 듯한 사람과 아이가 들어가 있었다.
아직 30대 초반인 듯한 그녀의 모습은 전혀 생각 밖 이었다. 호리호리한 듯한 몸매와 세련된 옷맵시, 짙게 바른 화장은 바로 도회지여자의 모습이었다.
이런 산골에서 사는 여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꼬마야! 너그 아빠는 어데갔노?"
아이는 놀란 토끼눈을 하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너무 갑작스런 질문이었을까?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떼었다.
"우리 아빠 돈벌러 갔다. 엄마가 좀 있으모 온다꼬 했다."
"언제 갔는데?"
"몰라, 나두..하지만 장난감 많이 사가지꼬 온다꼬 했다. 근데 아찌는 누구야?"
"으응...난...낚시꾼..."
아이의 질문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여기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 "아찌, 그 못에 고기 많타. 전에 우리 할배가 거기서 많이 잡았다.
근데 노란 고기는 맛이 없다. 난 쵸꼬레뜨가 제일 맛있다. 우리 엄마가 열 밤
자고나먼 사준다꼬 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뭔가 먹고 싶은 표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야간에 먹을려고 사왔던 쵸코파이와 우유가 보조가방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이를 방에 두고 서둘러 쵸코파이와 우유를 가지
고 와서 아이에게 주자, 빼앗듯 채어서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는가 보다.
아이가 숨도 돌리지 않고 세 개째 먹고 있을 때,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만 있는 집에 낯선 사람이 방에 있다는 사실이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큰 파문이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자, 마당에서 얼어붙은 듯 서있는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방문에서 나온 불빛에 비쳐지자 그녀가 바로 사진 속의 주인공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엄마였다.
짙은 화장과 화려하지만 단정치 못한 옷매무시, 몸에서 풍겨오는 술 냄새......하지만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이목구비가 바르게 자리잡고 있는
얼굴과 균형있는 몸매는 그대로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 화들짝 놀랬지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나오는 비명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켜버린 아이처럼 몸을 떨며 서있기만 했다.
내가 강도로 오인을 받은 것일까?
나는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놀래켰다면 죄송합니다. 사실 전 ..."
내가 말문을 열기 무섭게 그녀는 방으로 뛰어들어가 아이를 끌어안고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안에서 고리를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죄스런 마음에 그녀에게 뭔가 말을 꺼내려했지만,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등을 돌려 대문을 나왔다.
이 작은 마을에 여자와 아이만 있는 집에서 외간남자의 목소리가 집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 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