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단상
(200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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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던 겨울철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밖에 나가 놀다가 앞집 잿간에서 작은 종이 부스러기들을 주워서 호주머니에 가득 넣어 가지고 집에 왔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무턱대고 형들에게 연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형들이 연을 만들려면 종이가 필요한데 종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어린 내가 “종이 여기 있다”고 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부스러기들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형들이 웃으면서 이렇게 작은 종이로는 연을 만들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린 나는 형들에게 연을 만들어 달라고 한참동안 졸랐었다. 아마 내 나이 대여섯 살 무렵이 아니었나한다.
어린 시절 나는 겨울철만 되면 하루 종일 연을 가지고 놀았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연을 날리곤 하였다. 얼마나 연 날리기를 자주 했던지 추운 겨울철만 되면 손등이 거북등처럼 터지고 손가락 안쪽 마디가 연줄에 패여서 피가 나곤 하였다. 어린 시절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막내아들이던 내가 연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부모님과 형들은 연을 만들어 주시곤 하였다. 큰 방패연은 손재주가 좋은 동네 아저씨와 형들이 만들어 주었고 실(당시에는 노끈)은 외할아버지가 그리고 물레(자세라고도 했다)는 목수이셨던 작은 외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해 겨울에는 만국기 처럼 멋지게 색칠을 했던 방패연이 하나 있었다. 다른 연들보다 색깔도 특이한데다가 보기도 좋아서 무척 애지중지하였다. 방패연 뒤에는 아버지가 풍기상천이라는 한자를 써주시고는 “바람의 기운으로 하늘로 오른다.” 고 어린 나에게 설명을 해 주셨다. 당시 서당에 다니던 작은 형이 집에서 한문 공부를 할 때 옆에서 귀동냥으로 한자를 조금 얻어 배웠던 나는 어렴풋이 한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울철 하늘높이 올라간 방패연은 보기가 좋았다.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울긋불긋하니 멋지게 치장을 한 방패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높이 솟아오르면 어린 마음도 따라 올라갔었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방패연은 더 하늘높이 솟아올랐다. 또 바람이 세차게 불면 연줄에서 피아노를 치는 소리가 나고 그리고 세찬 바람에 연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 방패연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착각이 들기도 했었다.
겨울철 연날리기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방패연을 재주부리는 것이다. 바람이 적당하게 부는 날 방패연을 하늘높이 띄운 다음 양손으로 연줄을 잡아 당겨서 연줄을 발 앞에 놓은 다음 한 손으로 툭툭 옆으로 체면서 줄을 풀어주면 방패연이 마치 절을 하듯이 꾸벅꾸벅하면서 재주를 부린다. 그리고 연이 땅바닥 가까이 내려가면 홱 하고 잽싸게 연줄을 잡아채면 방패연이 바로 일어서는데 이때 다시 줄을 잡아당기면 연이 하늘 높이 오르게 되고 또다시 옆으로 툭툭 체면서 재주를 부린다.
초등학교 4~5학년 무렵부터는 종이와 대나무와 실을 구해서 직접 연을 만들었다. 방패연도 만들고 꼬리연과 가오리연도 만들었다. 방패연과 달리 꼬리연과 가오리연은 종이와 대나무가 얼마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재료 구하기도 쉬웠고 만들기도 쉬웠다. 하지만 방패연은 커다란 한지와 긴 대나무살 등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만들기도 어려웠다. 어렵게 재료를 구하서 연을 만들어도 균형이 잘 맞지 않으면 바람에 날리지도 않았고 또 올라간다 하더라도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한쪽으로 뱅뱅 돌곤 하였다.
어린 시절, 겨울철 추억은 연날리기뿐이 아니다. 눈이 오면 동무들과 함께 신나게 눈싸움을 하고 지치면 눈을 커다랗게 굴려서 눈사람도 만들었다. 또 마을 앞 논에 꽁꽁 얼음이 얼면 짧은 겨울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동무들과 신나게 썰매를 타면서 놀았다. 이밖에 자치기와 재기차기 놀이도 하고 팽이치기와 쥐불놀이를 하면서 잠시도 방안에 앉아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야말로 추운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동무들과 밖에서 뛰어 놀았다. 비록 지금처럼 컴퓨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지만 도무지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춥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 하지만 그때가 그립다. 지금도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철이 되면 햇살이 따스하던 앞집 담 모퉁이에서 방패연을 날리고 동구 밖에서 동무들과 신나게 꼬리연을 날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바람이 불면 문득 방패연을 날려보고 싶다. 멋지게 색칠을 한 방패연을 날리면서 어린 시절 꿈과 추억을 다시 한 번 하늘 높이 올려 보고 싶다.
퇴직 후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이 되면 낚시를 다니고, 바닷물이 많이 나가는 날은 소라와 골뱅이 등 해루질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