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마니아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요즘의 내가 꼭 그렇다. 늦게 배운 낚시에 빠져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고나 할까 쉬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낚시여행을 다니고 있다. 낚시 마니아가 된 것이다.
지난 2003년 추석 다음날이었다. 고향 솔머리에 갔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오자 옛날 생각이 나서 장불 바닷가로 나갔었다. 바다에 나오자 갑자기 옛날 낚시 하던 생각이 들었다. 솔머리 집에 돌아와서 작은 형에게 낚시 애기를 하자 옆에 있던 형수가 옆집 재진이 아버지가 며칠 전 숭어를 잡았다고 삼촌도 한번 잡아보라고 하였다. 숭어 낚시는 어떻게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쌍도 어느 곳에서 숭어 낚시를 하는지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다음날 망둑어를 잡던 낚싯대 하나 달랑 들고 쌍도에 들어갔다. 마침 동네 재진이네 아버지가 와 있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첫날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서 바다 구경만하고 그냥 돌아왔다.
다시 보름 후, 이번에는 낚시점에 들러서 미끼 한통을 사가지고 쌍도에 갔었다. 지도소에 다니는 동네 형이 와 있었다. 난생처음 숭어낚시를 하였다. 하지만 채비는 어떻게 하고 또 수심은 얼마를 주며, 미끼는 어떻게 끼우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낚시 바늘에 미끼만 달아서 낚시를 했다. 한동안 낚시를 하다 보니 물속에서 무슨 고기인지 여러 마리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였다. 고기는 있는데 물지 않는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지루하고 답답하여 뒤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동네 형에게 갔다. 커다란 숭어를 여러 마리 잡았었다. 어떻게 잡았느냐고 묻자 대답 대신에 내 낚시 바늘을 보더니 가지고 있던 작은 낚시 바늘을 하나 주면서 이걸로 해보라고 하였다.
낚시 바늘을 바꾸고 난 후 얼떨결에 숭어 한 마리를 잡았다. 제법 컸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동안 쩔쩔맸다. 겨우 낚시 바늘을 빼고 얼마 후 또 한 마리를 잡았는데 두 번째 숭어도 어떻게 잡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숭어가 물었을 때 묵직하고 말할 수 없는 강열한 느낌이 있었다.
2주 후 두 번째 숭어낚시를 갔는데 이때도 숭어 두 마리를 잡았다. 이날 이후 바늘부터 찌와 봉돌, 낚싯줄과 목줄 등 하나 하나 배우고 익혔다. 동네 재진이 아버지한테 배우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숭어 낚시하는 방법을 배웠다. 12월 초까지 약 20회 정도 숭어낚시를 다녔는데 대여섯 번 정도 잡고 나머지 열대여섯 번은 헛걸음을 했었다. 두 달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우연히 미끼 끼우는 방법을 배웠고 이후 한두 마리씩 잡았고 또 낚시 마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는 자나 깨나 온통 낚시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 당시 나는 바다낚시는 숭어낚시만 있는 줄 알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옆에서 낚시를 하던 재진이 아버지가 나보고 자네는 차가 있으니까 보다 큰 마량리 쪽으로 다녀보라고 하였다.
그 해 겨울이었다.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하여 숭어낚시를 검색하다가 농어 루어낚시를 접하게 되었다. 루어낚시를 하면 운동도 되고 좋을 것 같았다. 인터넷을 통해서 루어 낚싯대를 사고 릴과 조끼와 가방도 샀다. 이런 저런 장비를 준비한 다음 띠섬도 가보고 마량리 방파제와 동백정 등 가까운 낚시터도 사전에 답사를 하였다.
이듬해 4월 어느 날, 드디어 집사람과 함께 동백정으로 첫 출조를 나갔다. 몇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막상 낚시는 나왔지만 낚싯대 다루는 법도 모르고 릴 조작법도 몰랐다. 겨우 채비를 하고 낚시를 했는데 얼마 후 손가락만한 우럭이 잡혔다. 그동안 숭어만 잡다가 다른 고기를 잡으니 얼마나 흐뭇하던지...
그런데 얼마 후 다시 개스팅을 하다가 조작미숙으로 릴에 줄이 꼬이고 말았다. 낚시를 계속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릴 조작법도 배우고 그리고 릴낚싯대도 새로 사고 민장대도 몇 개 샀다.
새로 준비한 낚싯대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낚시를 다녔다. 주말과 일요일 등 시간이 나는 대로 까치여와 동백정으로 다녔다. 처음에는 주로 동백정 배수구 쪽에서 숭어낚시를 했는데 5월 어느 날 운 좋게 큰 광어 한 마리를 잡기도 했었다. 가을철에는 전어도 잡고 우럭도 잡고 학공치도 잡았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5년 초여름 일요일이었다. 이 날은 이상하게 새벽부터 9시까지 우럭새끼 입질 한번 없었다. 두 시간 이상 입질이 없어서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찌가 보이지 않았다. 무심코 낚싯대를 당겼다. 뭔가 걸렸는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닥에 걸린 줄 알았는데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다. 잠시 후 묵직한 느낌이 왔다. 갑자기 심장이 뛰고 가슴이 터질 듯 흥분이 되었다. 낚싯대를 세우고 줄을 감자 얼마 후 넙적하고 시커먼 고기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믿기지 않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첫 감성돔, 그것도 6짜였다. 집에 와서 기념사진도 찍고 인터넷에 조황을 올리면서 낚시에 빠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바다낚시 마니아가 된 것이다.
바다낚시의 매력은 세 가지가 있다. 한번 빠지면 빠져 나오기 힘든 마약보다 더 강한 매력이다.
바다낚시의 첫 번째 매력은 바로 눈 맛이다. 눈 맛은 찌 맛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오랜 기다림 끝에 가늘고 기다란 막대찌가 바다 속으로 쑤~욱하고 빨려 들어갈 때의 기분이다. 그야말로 자신까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온다. 특히 밤에 낚시를 할 때 빨간 케미가 물속으로 빨려들어 가면 순간 바닷물이 온통 새빨갛게 물드는데 황홀감이랄까 자신도 모르게 “헉”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두 번째 매력은 손맛이다. 챔질을 했을 때 손에 전해오는 느낌이다. 입질이 온 다음 곧바로 챔질을 하면 처음에는 두둑하고 둔탁한 느낌이 온다. 이어서 낚싯대를 통해서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오는데 이 맛은 그야말로 며느리도 모른다.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심장이 뛰고 가슴이 터질듯 한 짜릿한 그 맛은 오르가즘보다 더 짜릿하다.
세 번째 매력은 입맛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그렇게 회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바다에 가서 갓 잡은 고기의 회 맛은 그 맛이 다르다. 바다 분위기와 회 맛이 함께 어울리면 횟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맛이 있다.
바다낚시를 배운지 이제 5년 정도 되었다. 그 동안 바다낚시를 하면서 장비를 사고 들어간 비용도 많았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반면에 얻은 것도 많다. 먼저 삶이 즐거워졌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어느 시인이 기다림은 행복의 다른 말이라고 했듯이 기다림의 낚시는 그 자체가 나에겐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낚시를 다니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기다림의 행복을 위해서
퇴직 후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이 되면 낚시를 다니고, 바닷물이 많이 나가는 날은 소라와 골뱅이 등 해루질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