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세상이 그만큼 변한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방학이면 시골로 몇일씩 다녀오곤했는데 솔머리님 덕분에
그때 시골친구들과 두근두근 서리질을 했던 기억이....ㅋ
사과서리를 했었는데 같은 사과밭이라도 사과맛이 다 다르던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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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2005년 )
“아빠!”
“왜?”
“라면 끊여 줘!”
“야! 라면은 무슨 라면?! 아침도 안 먹고?”
“그래도 먹고 싶은데.... 밥하고 같이 먹을 게 끊여 줘!”
“그래, 알았다. 끓여줄게 기다려”
일요일 오후 딸과의 대화이다. 며칠 후면 대학생이 되는 딸이, 그것도 바로 옆에 제 엄마가 있는데도 아빠한테 라면을 끊여 달라고 한다. 뭐 아빠가 끊여주는 라면이 더 맛이 있다고 한다. 하기야 라면 끊이는 솜씨는 내가 집사람 보다 낫다.
내가 라면을 잘 끊이는 이유는 아마 라면을 좋아하고 또 자주 즐겨먹기 때문일 것이다. 라면을 자주 먹다보니까 나만의 노하우랄까 라면을 맛있게 끊이는 비법은 물을 약간 적게 넣고 강한 불에다 빨리 끊이는 것이다. 이래야 국물이 얼큰하고 면발도 꼬들꼬들하고 쫄깃쫄깃하니 맛있는 라면이 된다.
아무튼 부전자전인지 부전여전인지 애들도 내 식성을 닮아서 라면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일요일은 짜파케티!”가 아니라 “일요일은 내가 라면 요리사~!”가 된다. 사실 라면은 칼로리와 영양분이 낮은 음식이다. 그럼에도 내가 라면을 자주 즐겨먹는 이유는 얼큰한 국물 맛도 있지만 무엇보다 쉽게 요리할 수 있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라면이 칼로리가 낮고 영양가도 부족한 음식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다면 그게 바로 보약이고 영양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왕에 음식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요즘에는 먹을거리가 너무 많아서 탈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 부모님들은 쌀 한 톨이라도 그냥 버리면 벌을 받는다며 모든 음식을 소중히 여기셨다. 그런데 요즘에는 도무지 음식 귀한 줄을 모른다. 어딜 가나 넘쳐 나는 게 음식이고 마구 버리는 게 요즘 음식이다. 과유불급이라고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에는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식 너무 흔해서 그런지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도무지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60년대,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늘 배가 고팠던 시절, 그래서 여기저기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어릴 적 그 시절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 초에는 토마토 등 과일이 무척 귀했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로 옆에 제법 큰 토마토 밭이 하나 있었다. 한 여름철이면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 보기에도 매우 먹음직스러웠다. 도시락이 없었던 때라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한창 시장기가 돌았었다. 어린 시절 철도 없었고 또 한창 배가 고팠던 시절이라 이곳을 지나칠 때면 토마토를 훔쳐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일었다. “어떻게 하면 주인 몰래 토마토를 서리해 먹을 수 있을까” 생각을 했지만 날마다 주인이 원두막에서 지키고 있어서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토마토는 그야말로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5~6학년 무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혼자 비를 맞으면서 터벅터벅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토마토 밭이 있는 곳에 와서 원두막 쪽을 보자 마침 문이 닫혀 있고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순간 “기회는 바로 이때다”생각되었다. 얼른 책보를 어깨에다 질끈 동여 맨 다음 검정 고무신을 벗어 손에 들고는 단숨에 도랑을 뛰어 넘어 토마토 밭으로 숨어 들어갔다. 꼭 누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더럭 겁이 났다. 갑자기 쿵쿵하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급한 김에 눈앞에 보이는 큰 놈으로 몇 개를 따서 얼른 옷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도랑을 넘어 누가 뒤 쫒아 올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동네 앞까지 뛰어왔다. 얼마 후 아무도 없는 곳에 와서 서리한 토마토를 먹으려고 품속에서 꺼내 보니 제대로 익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채 익지도 않은 시퍼런 토마토였지만 그래도 맛이 있었다. 그날 토마토를 훔쳐 먹고 난 이후 이곳을 지나칠 때면 나도 모르게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조려서 한동안 원두막이 있는 토마토 밭을 쳐다보지 못하였다.
60년대 어린 시절, 먹을거리에 대한 추억이 어디 토마토뿐이었던가, 이른 봄이면 산이며 들에서 갓 돋나난 삐비와 칡뿌리도 캐먹고 진달래꽃이며 송화도 따먹고 도라지와 잔다구, 붉은 물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이 빨갛게 익은 산딸기와 쳐다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던 빨간 뽀루시, 톡 쏘는 듯 매운 맛이 도는 매운 게 풀도 뜯어먹고 향기가 그윽했던 아카시아 꽃잎도 따 먹었다. 늦은 봄에는 노르스름하게 익은 보리모개를 한 웅쿰 따다가 동무들과 함께 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길 옆 마늘밭에 들어가서 어린 마늘 꽁도 뽑아 먹기도 했다. 여름에는 참외를 서리도 하고 길가에 새까맣게 익은 감주수와 사탕수수와 오이 가지도 먹었다.
가을에는 산과 들에 먹을거리가 널려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배가 고프면 길가에 있는 밭에 들어가 고구마와 무를 뽑아 먹고 또 산에 올라가서 밤과 도토리와 상수리를 주워 먹었고 보기만 해도 신물이 절로 나는 노란 탱자도 따 먹고 콩밭에서 콩을 뽑아다가 친구들과 구워 먹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한 겨울에는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도 따 먹었고 새로 만든 짚단 위에 수북이 쌓인 하얀 눈도 먹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지 다 먹었다.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늘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 하지만 그 시절이 그립다. 나른한 어느 가을날 오후, 한적한 시골 길을 느릿느릿하니 걸어가 보고 싶다. 길가 고구마 밭에 들어가 주인 몰래 슬쩍 캐어 고구마도 먹고 싶고 무 밭에 들어가 기다랗게 자란 무을 서리해 먹고 싶다. 황토 흙이 묻은 빨간 고구마를 풀 섶에 쓱쓱 문질러 껍질을 벗겨낸 다음 와작와작 먹어보고 싶다. 길쭉한 무 이파리를 잘라내고 손톱으로 죽죽 돌려가며 껍질을 벗겨낸 다음 서걱서걱 먹어도 보고 싶다. “커~억~!하고 트림을 하면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 어린 시절 추억과 그 맛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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