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솜씨와는 담을 쌓은 편이지만, 낚시이야기마당의 어느 낚시꾼 아내의 하소연을 읽고 나니 그 남편되시는 분이 꼭 그 동안의 내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서 잠도 안오고 해서 몇 자 적어봅니다.
내가 물고기와 악연을 맺게 된 것은 세살 때부터입니다.
시골의 외갓집에 가면 마당에 얕은 새미(우물)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다가 잉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놈들이 신기해서 내려다 보다가 하루는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서 까불다가 그만 우물 속으로 거꾸로 쳐박혀 버린 겁니다.
다행히 외사촌 큰 누나가 우물에 두다리만 바둥거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건져내었다고 합니다.
그 때 크게 혼이 났던 어머니께서 어느날 점을 보러 갔는데 그 용한 점쟁이가 하는 말이 “이 아이는 물을 멀리해야한다.”고 했답니다.
그 덕분에 바닷가가 고향임에도 저는 아직도 헤엄을 잘 못 칩니다.
대학교때 한번 배워 볼끼라고 체육을 수영으로 선택했다가 풀장에서 빠져죽을 뻔하고 코치의 구조를 받았고 여학생들 앞에서 쪽만 팔았던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학점도 D를 받아서 까닥했으면 학사경고 받을 뻔 했었고.
몇 년전에도 넉달정도 수영강습을 받아 봤는데 코치왈 구제불능이랍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아직도 물을 보면 신비감과 경외심을 느낍니다.
아니 물과 물고기하고는 전생부터 악연이지 싶습니다.
이제부터 저의 낚시이력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쯤 일겁니다.
바닷가가 고향이다 보니 동네 또래들은 툭하면 떼거리로 고길 잡으로 가곤 했었습니다.
갔다오면 며칠은 그 무용담으로 씨끄럽게 떠들어대는 겁니다.
참다 못한 나는 드디어 부모님 몰래 몇 달간 비자금(그 당시 몇 십원?)을 모아서 드디어 낚시대를 하나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접이식이 아닌 3칸정도길이의 대나무통대였습니다.
포인트는 집에서 십리정도 떨어진 속천부두의 자살대라는 바다위에 설치된 교각 같은 곳이었습니다.(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 많던 물고기들은 지금은 없습니다.)
산고개도 하나 넘어야 했는데 그 긴대를 나뭇가지에 안 걸리고 가야하다 보니 한참이나 걸렸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포인트에 도착해보니 과연 이미 와 있던 어른들은 정말 고기(도다리)를 한 망태기 가득씩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눈이 뒤집어진 나는 바리 크고 멋진 동작으로 오바헤드캐스팅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그만 첫 캐스팅에서 낚시줄은 교각위에 늘어진 전기줄을 칭칭 감아 버리는 겁니다.
데롱 데롱 매달린 낚시대는 아무리 잡아 댕겨도 줄이 끊어지지가 않았더랬습니다.
살 때부터 묶여 나오는 통줄이었는데 아마 10호정도의 굵기는 되었지 싶습니다.
끊어졌다해도 여유줄이나 바늘도 없었으니….
하는 수없이 남들 낚시하는 것 구경만 하다가, 돌아오는 산길에서 뒤쳐져 혼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