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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생각나는 사람

19 2,257 2005.12.21 14:58

눈보라가 골목길을 휑하니 쓸고 지나가는데 불현듯 그립고 전화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형을 만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다. 전공과목도 아닌 경제원론을 수강할 적에 담당 조교였던 그는 내가 하숙하던 집 근처에서 역시 하숙을 하고 있었다.

형은 당시 박사과정 입학시험을 봐야한다면서 시험과목 중 제2외국어가 문제라고 했다. 그 때 내가 불어를 5년정도 배웠던 터라 저녁에 한 시간씩 우리 하숙집으로 오라고 하여 불어를 가르쳤고 그는 결국 모 국립대 경제학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경제학 박사가 되었다. 그는 시골에서 논 팔고 소 팔아 어렵게 공부를 한 사람으로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모르고 마음만 어린애처럼 순박한 사람이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결혼을 하고 어렵게 국립대 교수 자리를 따낸 형이 너무 기뻐서 가장 먼저 전화한 상대가 내가 아니었던가 기억한다. 둘이서 한 잔 거하게 했다. 우주를 뒤집을 것같은 객기도 부리곤 했던 우리는 친구라고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사이다. 대학교수로 발령나던 날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교수가 되고나서 겨우 1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에 내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급한 전화가 하나 왔다. "여기 000경찰서인데, 000씨를 혹시 아시나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형이 무슨 사고라도 친 것일까?' 백주 대낮에 한길에서 피를 흘리며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형을 경찰서로 데리고 와서 아는 사람을 대라고 하니 내 이름을 들먹인다는 것이다. 급히 경찰서로 달려가서 인우보증을 서고 형을 데리고 나왔다. 일단 허름한 국밥집으로 가서 앉혀 놓고 시장통에서 산 옷을 갈아 입히고 상처에 약도 바르고 대충 수습을 한 후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물었다.

마음이 여리고 비단결 같았던 형이 바보같은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꿈에 그리던 학문의 전당이요 지성의 산실인 대학이라는 사회가 형이 생각한 그런 이상향은 아니었던가 보다. 일 주일 만에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농사나 지으러 간다면서 술이 떡이 되어 거리를 헤매다가 행려병자로 오인받아 경찰서까지 간 것이다. 도대체 뭐가 형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평소 철학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을 그토록 중시했던 형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때 나는 형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 세월은 10년도 더 흘렀다. 어느 날 또 나를 놀라게 하는 전화가 왔다. "나 지금 어느 산중의 토굴에서 혼자 사는데. 겨울이 오니 추워서 버티기 어려워서 그러는데 침낭이나 하나 사게 돈을 조금 부칠 수 있겠느냐..." 기가 막힐 일이다. 계좌번호를 불러 주고는 전화를 끊어버린 형이 야속하기만 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대충 어느 산에 있다는 감은 잡았지만 도대체 무슨 연유로 세상을 등지고 토굴에서 면벽을 하고 있단 말인가...

찬 바람이 전신주를 울리며 골목마다 질주하는 오늘 그 형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형과 연락이 닿는 사람 한 명을 가까스로 알아냈다. 산 아래 폐가로 내려와 홀로 살고 있다고 한다. 만나면 내게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내 가슴은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길지 않은 인생에 득도하는 길이라면 형의 길이 맞을 수도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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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댓글
煥鶴 05-12-21 16:03
마음이 아픔니다.
차라리 나같이 불량서러운 마음이 였드라면...

안녕하시지요?
kgb 05-12-21 16:15
또 환학님 이리로 오셨네. 저 쪽에 차려논 술상은 어쩌고....
나도 이맘때면 섬원 아우 생각나는데..... 요새 우째지내시나?....
아직도 순신이 할배 발자취 찿아댕기시능가... 보고싶네.
섬원주민 05-12-21 16:32
아이고 형님들, 요새 저는 일에 치여 비몽사몽입니다.
내년에는 좀 한가한 일을 하려나....
이순신 할배도 좀 업데이트하고 싶고요.
여가람 05-12-21 18:26
너무 깨끗하면 이 나라에 살기어려워요.
청물 끼여보세요.
잡어 새끼도 안보여...
그저 조류에 밀려다니는 구멍찌 같이 살고봅시다...
구름도사 05-12-21 19:07
섬원주민님 오랜만에 뵙네요..
반갑습니다..
형님이란 분이 많은길중 어려운길을
택하신것 같기도하고.....
무엇을 구하시는진 몰르겠지만 원하는걸
얻게 되시길 ...........
야초 05-12-22 00:35
눈처럼 깨끗한 마음에...
세상의 더러운 찌꺼기를 다보고 사람 잘못이 아니라 우리사는 세상의 바보들의 행진에 진저리가 났으니 무슨 이유로 세상과 한께 하겠읍니까.
깨끗한 영혼들이 다치지 않는 정의의 진실과 사랑이 함께 했으면 ...
이 추운 겨울에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간절합니다.
김일석 05-12-22 01:42
명치 끝이 찌르르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놈의 세상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소리 지르기도 하다가
또 한번쯤은 스스로를 갈아엎어야 한다며
깊은 속앓이와 함께 청년기를 다 보내고 맙니다.
부디 그 선배님의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미에 쓰신 글처럼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煥鶴 05-12-22 07:11
술상 대령이요~
한잔 하입시더 마.
이꼬라지 저꼬라지 안보고 살기는 틀렸고..

일석님 안녕하세요?
그분 아직도 그곳에 계십니까?
섬원주민 05-12-22 09:31
가람님, 도사님, 야초님, 일석님, 그리고 환학님...
날씨는 춥지만 모두들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분들이라
반갑기만 합니다. 온정이 넘치는 12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생크릴 05-12-22 11:37
추우신데 어떻게 지내십니까?

안녕하세요?

함 뵈옵고 볼락이나 같이 잡는날이 언제쯤일지...

얼마 남잖은 해를 잘 보내시고

새해엔 이순신장군님과 더불어 더욱 강건하시길 빕니다.

박거사 05-12-22 12:37
좀전에 저쪽에 환학님이 차려놓으신 술상,
경주월드님 의 헷갈리는 술상 잘받고 여기로...
kgb님은 빠지지 않고 찾아 드셨더구만...?
모두 안녕들 하시지요?

섬원주민님 안녕 하시지요?
그 친구분,
어쩜 우리네 인생을 초월하여
지금쯤 득도를 하셨는지도 모르겠고...
부와 명예를 뒤쫒다 가는 우리네 인생과
별 다를건 없겠지요,

우리 모두 그러하듯
그의 건강이 잘 유지 되고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건강 하세요~^*^

김일석 05-12-22 12:48
환학님, 아직도 그곳에 계신답니다.
곧 대관령으로 짐싸들고 가실 계획을 갖고 계시더군요...^^
추운 날, 감기 조심하세요~!!
煥鶴 05-12-22 13:59
마,이참에 이방을 5~6 학년 교실로 만들어뿌까요?
생크릴 아우는 방자로 들이고...ㅋㅋㅋ

박거사 행님 올만 입니더.
건강하시지요?
설엔 무지 춥다카던데 우예지넵니까...?

일석님 대단하십니다.그분.
그런 정열? 뚝심이 어디서 나오는지...
사모님이 더 대단하신것도 같고..
대관령으로 가시기전에 한번 가봐야 겠네요..
님도 감기/귀..조심하세요^^
kgb 05-12-22 15:50
환학님, 오늘 5학년하구 6학년하구 합반하나유?
월드님불러 반장시켜서 자율학습 합시다.

인생 재수하지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부터 재밌게 살아봄세.

글구,박거사 ,칩거만 하지마시고 막걸리단지 들구 나오시구랴.....
nonanda 05-12-22 17:22
*섬원주민님!
일이 바쁘시다니 듣기좋습니다
그선배님의 마음을 지금도 이해을 못허시나 보군요
오히러 그분은 작금의 세태에 대한 엄청난 항변을
쏟고 퍼붓고 계시는것은 아닐련지요....

지금 서쪽지방에는 엄청난 눈이와서 국민들이 어쩔줄몰라하며
이 맹추위속에 죽는것 보다 더한 고통속에 있는데...
그책임을 져야할 위정자들이 하는 꼬락서니는...
꼭... 이 겨울에 눈이 택도아니게 많이와서는...
모조리 직무유기 하신님들
겨울이나 여름이나 눈이 오려면 오고 비가 오려면 오는
언제던지 엄청나게도 올수있는게 하늘에 이치인것을...
뉴스로 쳐다만 보고있으려니 속에 천불이나서 넑두리 해봤습니다
미안합니다!
거제우연낚시 05-12-23 22:34
눈 같으신 그분 심성을 읽는듯 합니다.
안타까우 시겠어요.
눈이 많이 와서 기거 하시는데 고초가 심하시겠습니다.
따스한 마음 한 광주리 담아 보내 시길~~
煥鶴 05-12-24 03:30
우연아짐 올만에 뵙습니다.
잘계시지요?
참볼락 05-12-24 10:53
세상이 나를 얼매나 알겠어요.내가 세상이 아닌데,

인생이 영원 하다면 오기로 내가 세상을 버릴수 있건만,길어야 백년

빛처럼 반짝이다,사라질 짧은 청춘에,배움을 알았다면,

영원한 진리도 현실에서는 한줌의 재로 바람에 흩날리는 슬픔 이라는

사실을,내아닌 나를 세상에 던지고,바람처럼 회오리 치고,구름이 되어

떠돌아 다닌들,한낱 티끌 같은 욕망 죽기전에 없어지리오.
칼있어 마 05-12-30 12:02
공감이 갑니다. 저의 친구도 교사생활 3년만에 직원회의석상에서 재떨이 집어 던지고 나중에 정신병 소문이 나 돌더니 급기야 사표 던지고 지금은 행방불명, 가끔씩 나타났다가 사라지는데 서예와 한학쪽에 조회가 있던 녀석이었는데 역시나 역술인으로 둔갑을...,

어복충만 맨날행복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소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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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거는 습관되면 마약보다 중병되고
순화된 온라인용어 통신윤리 확립한다!
-국사모홍보대사 칼있어마의 12월 인낚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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