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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8 1,627 2005.11.10 13:48
suchaewha.jpg



우린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후배의 부친상을 알리는 메시지를 받고는 부산의료원으로 부리나케 달려 갔다.
밤늦은 시각, 향내음이 진동하는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숨이 컥~하고 막히는 듯했다.
한참 소란스런 장례식장을 헤집어 빈소에 도착하니
굴관을 한 후배는 상주가 되어 혼자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조문객이 좀 천천히 머물기엔 너무 비좁은
영안실구조가 답답해보였고 이미 동지들은 모두 다녀간 뒤였다.


오랜만에 몇몇 선후배와 인사를 나누며
한 그릇 얻어먹고 일어서려는데 빈소 입구에 늘어선 화환에 눈이 갔다.
대통령이 보낸 화환에서부터 소속 정당과 그 주변부 정치조직, 사회단체에서 보내온 화환들...
그건 후배의 정치적인 삶을 반증하는 것이겠지만
변혁운동가에서 어느 날 현실정치로 뛰어든 그가
앞으로 역사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 지는 오래토록 두고 볼 일이다.


비슷한 궤적을 그으며 살아왔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서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흘러간 시간의 깊이만큼 잊혀지기도 한다.
허나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건 아니어서 이렇듯 문상 중엔
간혹 뜻밖의 얼굴을 만나 잠시 가슴 뜨거운 삶을 나누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술 한 잔 들이키다보니 반가운 얼굴 하나가 날 툭 친다.
조명기구사업을 하다 크게 부도가 나 여기저기 쫒겨다녔던 후배다.
수 차례의 압류와 경매, 택시운전, 식당일 등
온갖 힘든 일을 다 겪은 그는 여전히 희멀건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참 살가운 얼굴이다.


얼마 전 조방앞에 작은 횟집을 열었다 해서 가보았더니
후배는 앞치마를 두른 채 횟감 장만하느라 바쁘고,
대형 병원의 능력있는 간호사였던 제수씨는 씩씩한 아줌마가 되어 서빙하느라 정신 없었다.
가족이란 소명이 갈수록 가벼워지는 시대 탓일테지만
좀 힘든 상황이면 갈라서버리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요즈음,
그 큰 시련을 잘 이겨낸 후배 부부의 의지와 사랑은 참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담배 한 대 피려고 바깥으로 나오니
장례식장 입구엔 "노무현정권 타도"란 프랭카드가 여기저기 붙어있고
분신한 화물노동자의 대형걸개사진이 장례식장 벽면에 펄럭이고 있다.
한 눈으로 보아 참 성실했던 노동자였으며 맑고 선한 사람이었음에 분명한 사진의 주인공은
뭘 그리 뜨겁게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을까?


주체할 수 없는 변화의 에너지,
전 사회적 몰입과 광범위한 연대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나약해질대로 나약해진 파편화한 인간시장 앞에
그것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그것도 국민이 주인이란, 민주주의의 근본을 기치로 내건
이른 바 참여정부 아래에서 그랬을까 말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최근 살인적으로 치솟은 기름값으로 인해
비정규직 운수노동자들의 삶은 급격하게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석유자본의 여유로운 담합과 통제에 적당히 손발을 맞춰주기만 하는 국가 앞에
삶은 한 번도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지 않고,
줄기차게 딱지만 끊어대는 이 기운 빠지는 삶에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름을 때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물며 고속도로를 오갔을 40대 후반의 한 성실한 운수노동자가
웰빙이 일상의 화두가 되어버린 이 나라에서 안전벨트 매는 게 유일한 웰빙이었다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곤 신선대부두를 내달릴 수 밖에 없었던 이 시대의 슬픈 궤적을 본다.


며칠 전 난 갑작스레 거실에서 꼬꾸라졌다.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스스로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119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갔다.
한쪽으로 빙글빙글 도는 세상, 극심한 구토와 함께 찾아온 난데없는 쇼크
단단히 결속한 몸뚱아리, 단층촬영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가다
오래 전, 반신불수가 되어 나왔던 신혼 초의 아내를 떠올리며 난 잠시 눈물을 흘렸다.


하긴,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리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잠시 후,
늘어진 나의 몸 여기저기에 바늘이 파고 들어 깜짝깜짝 놀라고
밤 새 들려오는 응급실의 위급함과 소란스러움이 현미경처럼 각인되던 밤.
응급실을 휘감는 신출내기 의사의 어지러운 말들과
뜬금없이 명랑한 간호사의 목소리는 사람을 더욱 발작케하고...


전혀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양방과 한방을 오가며
현기증 나는 세상의 기둥을 붙들고 지금 숨을 가다듬고 있다.
복약 후 느끼는 이물감, 뻑뻑한 머릿속
허공에 뜬 듯한 내 정신과 몸뚱아리를 어서 잡아매달아야지!
어서 이 싸움을 끝내야지!




Solveig's Song...Gri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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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경주월드 05-11-10 17:48
오랜만입니다, 김일석님.
생명의 자락을 잡듯, 글도 혼신의 필치입니다.
최선을 다하며 쓰는 글,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은 아껴가며 읽습니다.

싸움이 곧 끝나길 기원하면서...
nonanda 05-11-10 18:49
*아~
김일석님!
그런일이 있어 투병중이 시군요!
경건한마음으로 하루빨리 쾌차하심을
기원드려 봅니다!
거제우연낚시 05-11-10 21:47
아!!그러셨군요.
그래서 한동안 뵈올수 없었군요.

행여나 지나치시나 담넘어 목을 빼고 기다렸나이다.
사모님의 안부 묻기도 조심스러 웠는데
님께서도...

먼지털듯...
털어 내시길 기원해 봅니다...
김일석 05-11-10 23:44
이젠 거의 다 나았습니다.
과로하지 않으면 곧 좋아질 것이라 하니
요 며칠 경건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월드님, 노난다님, 우연님...
참 오래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조만간에 바람처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차 한 잔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염려 감사합니다.
잡어야놀자 05-11-11 22:08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또다시 읽어봐도 정말 정겨운것 같습니다.

약 두달전쯤,
신감만부두 내에 위치한 시민공원에 바람쐘겸 방파제에서
잠깐 낚시를 하고 집으로 오는데 용당 버스종점 못가서
그분의 영정 사진을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들 보다는 안타까움..
그분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또 글을 통하여...사건 내용을 통하여
혹 저역시도 가시나무방석보다는 단단하고 뾰족한 쇠가시에 앉아
있을수밖에 없는 그 이상처럼 험하고,거칠게 살아야함을 생각 해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언제나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요근래 저와 약속하신것도 계시고,(아시죠?^^)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리며,잘읽겠습니다.그리고 잘 읽었습니다.

잡어를 사랑하는 "잡어야놀자" 올림
칼있어 마 05-11-11 22:22
님의 열정, 뚝배기 같은 삶의 흔적들 앞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쓰러질 정도였다면 상당히 심각한 정도였나봅니다.
요즈음은 뵙기가 힘들군요.
부디 건강 잘 챙기시고 옥체관리 잘 하소서!

어복충만 맨날행복하소서!
비싼장비 욕심많큼 맑은바다 생각하여
철수길에 갯바위는 안방처럼 청소하자!
-국사모홍보대사 칼있어마의 11월 인낚캠페인-
섬원주민 05-11-11 22:43
건강에 유의하시고
해가 가기 전에 오곡도에 한번 놀러 오세요.
김일석 05-11-12 00:57
잡어야 놀자님, 반가워요~
그 약속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 사진을 보셨군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요?
아무쪼록 놀자님, 건강하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길 바랍니다.

칼님, 오랜만입니다.
거제도엘 언제나 가보게 될 지....
아무튼 거제도 가게 되면 우리 한 잔 하자구요~
참, 환경운동하는 친구가 그쪽에다 대안학교 만든다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데 혹시 여쭤볼 일 있으면 전화하겠습니다.

원주민님, 반갑습니다.
오곡도 꼭대기의 토담집이 눈에 삼삼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만났으면 합니다.
늘 가까이 계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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