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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배부른 날의 목기시대 보고서

8 2,681 2006.01.22 17:03

오늘의 사회문화현상을 풍자적 시선으로 알아보는 이생원(경주월드)의 어느 배부른 날의 초상(肖像)으로 목기 시대(木器時代 Wood Age)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빈작의 대변인인 필자는 역시 빈작의 낚시꾼만을 독자로 초대한다. 그들 조황은 늘 한 편의 궁상(窮狀)을 떨기위해 입질을 놓치니까.

돌로 만든 도구를 사용한 시대의 문화가 구석기, 신석기 문화이듯, 철로 만든 도구를 사용한 시대의 문화가 철기 문화이듯, 나무로 만든 도구를 사용한 시대의 문화가 바로 목기 문화다. 이 목기 문화는, 한반도에서는 단군이래 고조선부터 한반도에서 자생하면서 선사시대를 포괄적으로 공유했다. 그렇다면, 빗살무늬 토기가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고, 비파형 동검이 청동기 시대를 대표했듯, 이 목기 시대를 대표하는 선사적 유물로는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세 가지 유물로는 죽창과 활과 낚싯대를 꼽을 수 있다.
석기시대 이래 농경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인류는 식생활에 사냥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였는데, 창과 활은 무기이기 전에 먹이 사냥의 생존 도구였다. 그 중에 가장 평화적이고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적용한 것이 낚싯대이다. 뒤늦게 사냥에 적용된 초기 통대낚시의 연대기는 청동기 말에서 철기 이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그 연대는 대략 BC1200년이다.
필자가 목기시대의 3죽시기 중 굳이 낚싯대 기(期)를 기술하고자 함은 그것이 3죽 중 유일하게 실용을 거쳐 예술로 승화된 까닭이다.
빈작꾼들이 경의를 표하는 명작(名作)의 스템 셀의 원조격인 이 3죽 시기는,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목기 문화를 본의 아니게 꽃피워낸, 우리시대 최고의 본의 아닌 문화적 자산인 것이다. 이 대나무 낚싯대를 통해, 한국문화의 긍정적 힘을 들여다본다.
이 시대를 선사에서 누락시킨 사학자들에게 유감을 표해봤자지만 아마도 연대기 작성중 가당찮은 입질을 받은 걸로 사려된다. 이 중대한 wood age를 통째로 생략할려면 도대체 어떤 어종의 씨알이었을까.

자, 그렇게 생태학적 진화와 더불어 철기시대에 진입하자 드디어 바늘도 발명하게 된다. 허기를 면할 인류 최고의 발명의 해는 역시 선사의목기시대였다. 金家가 형산강변에 지천의 황어를 잡으러 갔지만 뼈바늘이 부러져 종일 잡은 게 세 마리였다면 철바늘을 사용한 건너편 이가가 시종 잡아 올리는 걸 목격하고 쇠금의 가문(金家)이 목기 중흥기에 미늘을 발명한다.
조상님들은 배부를 때 아이만을 만들지 않았다. 미늘을 만드는데 수백 년이 걸렸지만 형산강 지천의 대나무를 눈여겨 본 후리(後李)들이 참나무 가쟁이를 활대로 대체 시킴은 미늘을 만들기 전이었다. 목기는 이처럼 철기와 공존하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인류의 생존에 직간접으로 관여하였다.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를 망라하는 목기시대는 그야말로 동물적 생존의 시대를 마감하고 방망이와 목창의 전성기를 거쳐 대나무 시대로 갔을 것이다.

필자 이생원의 아득한 조상이 돌칼로 깍은 크고작은 나무창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찔렀다고 치자. 비슷한 김생원의 고참 씨족이 어느날 화살로 변형시킨 획기적 무기로 임상실험을 거치던 날, 날고기를 뜯던 형산강변의 조상들은 아마도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 앉았으리라. 당연히 키보다 깊은 강물의 우글거리는 잉어를 어떻게 잡아먹을까하는 궁리를 했을 것이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막대기에 매고 노루뼈를 갈아 바늘을 만들어 지렁이를 끼우는 것쯤은 지능이 李家 줄기정도면 가능했을 것이다. 포퓰리즘의 원조가 한반도의 尹家였다면 손잡이에 잉어 대가리를 그린 대는 분명 '윤작'의 초기 유전자 줄기였으리라.
그렇게 통대낚시 시대가 열릴 즈음, 朴家네는 타성과의 부지런한 생존의 진화에 애를 쓰다보니 호구지책은 자연히 '한작'의 韓家 씨족이나, 그 문하의 '승작' 방가(方家)로 옮겨 갔을 것이다. 그렇다 치고 한번 맡겨보기로 하자.
통계청 인구 자료에 꽤 서열이 괜찮은 崔家門과 기타 막강한 조선의 줄기 가문들은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 그러나 끊임없는 진화를 관찰하며 걸출한 후사들의 생산에 탁월한 노력을 하시지 않았는가.
뭐, 불만있으면 카본대로 Carbon Age를 집필하시든지, 아니면 모닥불이나 지피고 굿거리 장단에 노루뼈나 갈아보시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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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왜 목기 중 대나무를 원조로 치는가에 대하여 잠시 영양가있는 고찰을 해보자.
한반도에는 이대, 조릿대, 신의대(고려조릿대:경상도 방언으로 시누리대), 제주조릿대 등은 산죽으로 일컬어 저절로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건축재로 쓰는 왕대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잘 자란다.모든 대나무의 종류는 독성이 없고 식용과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성질과 맛도 서로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대나무 군락지는 예전에는 양산, 거제도, 밀양, 담양, 전주, 청송, 예천, 김천 등을 들 수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대줄기는 담청색이 보통이나 반문이 있는 것도 있고 검은색의 오죽이 있으며 심지어 거북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죽림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농가소득 증대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창선도 일대의 어촌에는 죽방렴으로 지금도 원조격 어업을 잇고있다.
죽세가공품으로 어구, 비닐하우스용 자재, 펄프 원료, 죽순, 사다리, 해태생산용 발 등을 만드는데 쓰이며 고대 사회의 전쟁 무기로 활, 화살, 죽창으로 쓰였는데, 그 죽창은 AD 1950년 경, 동족상잔의 빨치산 무기로 변해 지리산 일대의 공포의 병기로 천추의 한을 만들기도 했다.
문화 예술로는 붓글씨를 쓰는 붓대가 대나무이며 퉁소, 피리, 대금 등의 악기도 대나무로 만들었다.갓대나 조릿대로는 쌀을 물에 일 때 쓰는 조리를 만들고 이대로는 화살, 담뱃대, 낚싯대, 부채 등을 만들며 왕대나 솜대로는 건축자재뿐 아니라 가구, 어구, 장대, 의자, 바구니, 발, 빗자루 등 우리 생활에 필요한 수많은 일용품을 제조하는데 쓰였다.
땅속 줄기로는 단장이나 우산대를 만들며 대의 잎이나 대껍질은 식료품의 포장용으로 쓰이는 등 대나무의 이용가치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대나무 있는 곳에 물고기 있고 물고기 있는곳에 사람 살기 마련이다. 대나무 밭을 금전(金田)이라고 부르는데 농가에서 수입이 좋다는 뜻을 담고 있다.대나무로 만든 갖가지 죽제품을 파는 전남 담양의 죽물시장은 불초 이생원이 떠들면 인삼 앞에서 도라지 냄새피우기요, 전봇대 앞의 젓가락이요, 도사 앞에서 요령 흔들기다.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나오는 죽순은 향기가 좋아 밥, 단자, 죽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댓잎으로 술을 빗기도 한다.왕대속에 소금을 짓찧어 넣고 불에 태워 죽염을 생산하기도 한다. 약용으로 왕대나 솜대의 줄기 내부에 있는 막상피를 죽여(竹茹)라 하여 해열제와 토혈에 사용하며 왕대나 솜대에서 뽑아낸 대기름은 죽력이라 하여, 필자처럼 별 해괴한 보고서를 꾸미느라 두 접 가까이 올라간 고혈압에 쓰일 뿐 아니라 이파리는 전국의 성질 급한 낚시꾼의 해열, 홧병에도 특효이다.

원초적 사냥의 기초가 낚시이듯 시누대와 다듬은 산죽대는 가히 수천 년의 죽맥을 이어 1945년을 전후해 죽조세공 예술의 꽃을 피운다. 견지대 방식의 낚시도 있었으나 자칫 이 요상한 보고서의 근간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대나무 낚싯대만의 개념을 고집하기로 한다.
그 예술의 극치인 명작은 역시 선인들의 화려한 족보가 있다. 죽조선인(竹釣先人)들의 계대배양으로 살아남은 스템 셀의 주인공은 '주작'의 주정기님, '영작'의 김영배님, '윤작'의 윤준배님, '한작'의 한승진님, '승작'의 방기섭님이다. 간혹 왜인들이 사용했던 '東作'과 비교하는 우를 범하는데 그들만의 전유물이라 우기는 대 꼽기식은 AD 660년 백강구 전쟁이후 황폐한 왜국의 백제 도래인들이 왜인들에게 가르쳐 준 생존의 한 방식이었다. 당시 미개한 왜국은 의식주의 문화를 선진국인 백제로부터 전수받고 흉내정도나 내는 실로 하찮은 민족의 무리였다. 왜인들은 왜인인 동조(東條)가 꼽기식 '東作'을 1900년대 초에 조선에 유입시켜 배고픈 조선인들에게 먹거리를 해결케 했다고 하나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다. 찬란한 문화인들인 백제 도래인들이 꼽기식 낚싯대를 못 만들어 미개인들에게 맡겼단 말인가! 백강구 시대를 목격한 이 땅의 토종 어종의 후손들이 웃는다.
각설하고,
AD 2006년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대낚싯대 중에 유일하게 맥을 잇고 있는 승작은 순천땅 강청마을이다. ‘승작간’이 이곳에 있다.

여기서 남이 낚은 고기를 얻어먹는 생원 경주월드의 염치없는 면모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케리어 우먼 박미경 님의 격월지 '심'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들고 덤빈다. 독자들께서는 부디 여성의 밥상에 '눈치밥의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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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마을에 한둘 있을 법한 손재주 좋은 청년이던 방기섭씨가 본격적으로 대낚싯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9년 무렵. 낚시가게를 운영하던 선배로부터 낚싯대 만드는 기술을 배워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곧 마음을 굳힌 그는 곧바로 고향을 떠나 경기도 용인 버드실로 향했다. 버드실은 한작의 산지로, 채 서른 가구가 되지 않는 마을 사람들 전체가 낚싯대 만드는 것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한작의 대를 이어 용림작으로 이름을 떨치던 임근수 씨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일흔이 넘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도 서른 가까이 된데다 타지방 사람이라며 받아주질 않는 거야. 며칠을 통사정 한 끝에 무보수로 그저 밥만 먹고 있기로 허락을 받았지.”
좌절 끝에 정한 진로였기에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문하생들의 연필을 깎아주는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하면서 기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잠잘 때도 낚싯대를 품고 잤다. 거기에 남다른 손재주까지 더해져 그는 기술을 금방 배울 수 있었고, 나중에는 더 나은 제작방법까지 스스로 창안해낼 정도가 되었다.
“2년 정도 지나 버드실을 떠나려는데, 스승이신 임근수 선생이 고생한 값으로 쌀 두 가마니를 주시더군. 그것이 전 재산이자 밑천이었지. 그걸 가지고 고향에 내려와 승작을 만들기 시작한 거야.”
한작에서 용림작으로 이어진 명맥이 다시금 방기섭 씨의 승작(昇作)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름에 담은 기원대로 기존 대낚싯대들을 제치고 강태공들이 줄을 서서 찾을 만큼 승승장구하던 승작의 오름 기운은,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낚시가게들로부터 주문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단골 고객들마저 끊기는 거야. 그때는 이미 대낚싯대를 만들던 이들 대부분이 일을 그만두거나 전업을 한 뒤인데, 나도 고민을 많이 했지. 더구나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있었으니, 당장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인거라.”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믿음이 있었다. 그이 자신이 낚시를 좋아하는지라, 진짜 낚싯대가 어떤 낚싯대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합성수지 낚싯대는 가볍고 부식 등의 염려가 없다는 점 등 여러 편리성이 있었지만, 촉감이나 유연성 면에서는 천연재료인 대낚싯대를 따라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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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참맛은 또 손맛 아냐. 그 참다운 손맛은 대낚싯대라야만 가능하다고.”
그의 그러한 믿음은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고 비웃는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돼주었다. 그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낚싯대의 전통을 여러 대에 걸쳐서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장인들도 만나고 그들의 기술도 견학하는 등 오히려 더 연구에 몰두했다. 좀더 가볍고, 좀더 유연하고, 좀더 강한 제품이라면 언젠가는 그 진가가 발휘되리라 생각하며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 오직 그이가 만드는 승작 하나만이 살아남았다.
현재 승작은 유일무이한 우리 전통의 대낚싯대이자 훌륭한 공예품으로서 국내는 물론 일본과 서양인들에게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낚시를 아는 ‘꾼들’사이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진짜’ 낚싯대로 여김받는 것이다.
20여 평 남짓한 작업장인 ‘승작간’ 안에는 대나무들이 밭에 있을 때 모양으로 키를 가지런히 한 채 빼곡이 들어차 있다. 모두, 곧으면서도 농창농창한 것으로 유명한 순천의 대나무다. 승작의 제작은 원자재인 대나무를 베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상강에서 동지에 이르는 두 달간에 걸쳐서 베어낸다.
“이 무렵은 대나무가 잘 여문 시기로, 이때 베어내야 나중에 좀벌레도 생기지 않아. 이것을 ‘벌죽’ 작업이라고 부르지.”
이렇게 베어낸 대나무는 ‘훈증’의 과정을 거쳐서 한 달 정도 햇볕에 말린다. 바싹 잘 마른 대나무를 이번에는 그늘에서 4~10년간 음지에서 건조한다. 이렇듯 오랜 세월을 거쳤다고 해서 모두 승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대나무를 가리는 ‘선죽’ 과정에서 약 60% 정도는 버려진다. 승작이 될 만한 것인지 아닌지의 선별에서부터 부드러운 낚싯대가 될 재목인지, 남성적이고 강한 낚싯대가 될 재목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승작 하나가 완성되는 데는 무려 180여 번 정도의 크고 작은 손질이 가해진다. ‘선죽’이 끝나면 교정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불을 이용해서 굽은 곳을 펴고 동시에 대나무를 더욱 단단하게 여물게 하는 과정이다. 이후, 마디 부분의 껍질을 얇게 벗겨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명주실로 칭칭 감는다. 이걸 ‘권사’라고 부르는데, ‘권사’는 칠 입히기와 병행해서 이루어진다. 이때 칠은 일곱 번 정도 올리며 옻칠을 사용한다.
그 기간은 대략 두 달 정도가 소요되는데, ‘벌죽’에서부터 계산하면 꼬박 6, 7년에서 더러는 10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대나무를 자르고 말리고, 깎고, 다듬고…. 낚싯대 몇 개 만들다보니, 세월이 그렇게 간 거야.”
그가 허허롭게 웃는다. 위수 가에서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다가 주 문왕을 만난 강태공처럼, 그이도 대낚싯대 하나로 40년 세월을 낚은 것이다.
이제 방기섭 님의 승작은 그의 맏아들인 성철 씨에게로 기술이 전수되었다. 자칫 그 맥이 끊길 뻔한 우리의 전통 대낚싯대가, 한 장인에서 다시 그 아들에게 전승되어 앞으로도 계속 우리 생활 속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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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이생원 사랑채로 본제입납(本第入納)하고,
AD 1970년대, 글라스대로 불리는 합성수지시대가 도래하자 목기시대의 비극이 닥쳤다. 돌연변이 비목기가 족보도 없이 튀어 나오자 기나긴 낚싯대 연대기에서 목기가 종말을 고할 위기가 닥친 것이었다.
편리하고 부식도 되지 않아 오래가는 새 낚싯대를 너도나도 선호하게 되면서 대낚싯대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플라스틱 바가지와 스테인리스 그릇이 등장하면서 박이나 죽세공 용기가 밀려나고 비철기시대의 상징인 양은 냄비와 양은 도시락이 사라졌듯이 합성수지 낚싯대가 새로 등장하면서 대낚싯대의 거개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채반냉수(菜飯冷水)로 배 채우고 사랑채에 팔베개하니, 마른 죽향(竹香)의 심심한 냄새가 그립다. 그러나 죽마을에 명인이 남았다. 더불어 죽세공의 명작도 예술이 되어 살아 남았다.
간혹 도심의 한켠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명작앞에 서노라면 내 가슴에 살아 꿈틀거리는 강변의 향수에 잠긴다. 낭창한 산죽대에 걸은 피라미랑 갈겨니에 환한 웃음을 날리던 죽마들, 종일 붕어 낚느라 책보가 강물에 떠내려 가던 날 아버지의 회초리로 변한 시누대, 따가운 종아리에 볼때기 눈물도 달았던 강촌의 어동(漁童), 이제사 생각하니 그 모두가 강변의 대나무 탓이었다.
오늘 천착(穿鑿)의 목기시대로 외출한 해학으로 이생원이 빈작의 낚시꾼들과 둘러 앉았다.
헛간에 걸린 시누대를 내려 가슴에 품는다.
벗겨진 죽피에 알싸한 죽향(竹香)이 인다. 눈을 감으니 죽향(竹鄕)의 전설이 '파죽의 세'로 다가온다.
이렇게 속삭인다.
'목기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경주월드/2006.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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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조경지대 06-01-23 11:57
아스라히 떠오르는 기억(1963년~64년) 저편에
낚시를 시작하게된 동기역시 목기를 접하고서였습니다.

군용 텐트기지(갑바라 불렀음)로 만든 아버님의 둘둘말이 낚시가방엔
항상 승작이니 주작이니 한문으로 명기된 무명천의
낚싯대집이 서너개씩 들어있었고 철사를 구부려 만들어지고
검은색 페인트를 입힌 앞받침대와 뒤꽂이, 역시 땅에 박기위한
아랫쪽은 놋쇠이거나 황동(좋은 경우)으로 뾰족히 만들어져있고.......
대바구니에 잡다한 소품들이 나를 항상 궁굼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관심을 갖게 하던 병(病)의 근원이었지요.

어느날, 그 아끼시던 2칸짜리 여섯토막 대를 하나 주신것이
이, 황당하기 그지 없는 낚시에 빠져들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녀석이 대를 주면 뭔가 낚시를 할 수 있을놈 같으니 평소
하던 짓거리를 유심히 봐 오셨을 거라 짐작도 가고.......

지금도 대나무 낚싯대에 전해오는 황홀한 물고기의 감촉에 전율하며
빈작의 조졸(釣卒)이 몇자 올립니다.

煥鶴 06-01-23 13:20
호미님댁 앞동산 언덕베기에 (烏 竹 田)이 있던데..
껍질이 검은것이 예사롭지 않습디다.
혹시 멋진 작품이 되지 않으려는지 한번 시도해 보시지요?
언제 한가롭게 대밭에 머물면서 뜰째의 제목이 있으려나 ?
살펴볼 참입니다.
생크릴 06-01-23 15:51
배 부르시고 남는 시간에

적으신 글이 혼동과 감동으로 다가 오는군요..

조졸 저 역시도 어릴때(초딩때;70년대초반)

어른들 따라 가서 대나무 낚싯대(꼽기식)로

붕어낚시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금 언급 하지만 박학다식!..

처음엔 부담이 되어 글을 접하기가 다소간 힘이 듭니다만

읽을수록 적응이되며 그 속에 이해가 오며 아! 소리가 절로 납니다.

여기서 그칠렵니다 너무 길면 아부성이 될까봐...

몇일 남잔은 명절 잘 보내시고 건강하시길 다시금 기원드립니다.


조경님의 그런 과거가 있으셨군요...
역시 서울분들의 낚시사랑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니깐요...^^

햄! 건강하시고 올핸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꾸벅.

nonanda 06-01-24 11:28
*.......

다시금 고개가 수그려집니다

님의 그 마음에서

장인의 넑이 전해옴을...
더불어정 06-01-24 20:51
경주월드 형님!
언제 또 목기시대
<죽제품에 대한 고찰>까지
섭렵하시고...

"이생원의 아득한 조상이 돌칼로 깍은
크고 작은 나무창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찌르고
김생원의 고참 씨족이 어느날 화살로 변형시킨
획기적 무기로 임상실험을 거치던 날,
날고기를 뜯던 형산강변의 조상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 있을 때..."

경남 남해하고도
부속 섬마을에 살았던
정생원은 뭘했을까?

아마도 죽창을 만들어
바다속에 수많은 어족들을
난도질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거제우연낚시 06-01-25 20:57
책보가 물에 떠내려 가는줄도 모르고 낚시 삼매경에 빠지셨군요 ㅎㅎㅎ
쓰신 정성에 감명 받자 옵다가 그 대목에선 절로 웃음보가 터집니다^^
얼마나 아팠을까 보다는 ㅎㅎㅎㅎ
그런걸 보면 이 아짐씨도 심술보가 놀부 닮았나 봅니다 ^^*
경주월드 06-01-28 11:33
'貧作의 釣卒' 조경지대님,
'謙'의 미덕은 역시 '知天命'에서 우러난다더니,
님의 글에서 묻어납니다.
이대는 마디수가 짧아 토막수가 많습디다. 한 마디 줄일 수도 늘일 수도 있는 것이 '플렉시빌리티<후레시블'라 할까요.^^ 아니면 유연성, 전략적이 아닌 조략적 유연성,^^ 우리도 신조어 한번 만들어 봅시다.

오죽은 훈증 작업 후 건조과정이 어렵다더군요.
아마도 햇볕 흡수율이 높아 손이 많이 가는 모양입니다.
환학님께서 벌죽부터 고민하실 것같은 데...
選竹에 실패하면 버리지 말고, 발바닥 지압용으로 사용하시면 좋습니다.^^

10년 경력(프로필)이 넘어가는 생크릴 아우님도 꼽기식을!
유년기 경력을 인정할테니 30년으로 정정하시길...^^
(그런데 왼쪽은 비늘이 죽어 망상어 같던데...^^)
아무튼, '대나무 낚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낚시를 논할지라도 낚시인생은 논하지 마라' 했습니다.
그처럼 대낚시는 마치 누룩처럼 덜 삭은 이야기를 곰삭은 사연으로 바꿔 주지요.

노난다님,
봄날, 잘 골라 택일한 날에,
민물에서 뵙고싶네요.
경상도 말로 '팔짜는 질들이기 나름'이라고 거개가 카본대인데 뭐 어떻습니까, 민물지 붕어와 釣友가 있는데...

정님아,
사실은 KBS의 '문화지대'의 비철기 시대의 유물을 시청하고, 즉각 이 '목기시대'를 구상했다네.
해학적 가미가 부족한 게 흠일세.
어차피 억지논리의 선사 삽입인데, 좀 더 심각하게 웃겨야 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더라고...
竹釣過大妄想症候群이 탁월해야 되는데...

젊은 아지매가 책보를 아시다니...!
허리에 질끈 동여메고 강변을 뛰어다니다보니,
어디서 없어졌는지 알 턱이 없지요.^^

님들,
이제사 생각하니 그 모두가 강변의 대나무 탓이었습니다.


경주월드 06-01-28 11:57
내일이 설입니다.
모두가 반편성하는 날입니다.
선생님(사부님) 말씀 잘 듣고 선배(6학년) 알기를 하늘처럼...^^
특히 6학년 1반에 아슬아슬하게^^ 진급하신 정3품 접장들의 연전연패를 모범삼아,
새해에는, 연전연패(淵前連覇)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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