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오토바이

신상품 소개


회원 랭킹


공지사항


NaverBand
점주/선장 > 실시간 조황
b_hot_activegloat_200x80.gif b_hot_nios_200x80.gif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9 1,450 2005.08.26 21:46

punggyung52.jpg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두어달 전쯤 되는 일요일이었습니다.
일흔이 넘어보이는 이웃집 할아버지께선
작고 낡은 오토바이를 대문밖에 가지고 나와 고치고 계셨습니다.
그라인더로 의자 뒷쪽의 스테인리스 스탠드와
보조의자의 발받침부분을 갈고 계셨는데
조용한 동네에 그 소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워낙에 열심히 그 일을 하고 계신, 작고 여윈 체구의 할아버지.
뭘 하시는 지는 모르지만 내가 늙으면 저리 부지런할 수 있을까?
그 옆을 지나며 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로 난 여러번에 걸쳐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개조작업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할아버지의 작고 낡은 오토바이엔
운전자의자 뒤로 높고 튼튼한 등받이와 도복띠로 만든 벨트 장치를 보았고,
발받침부분엔 공사판에서 흔히 쓰는 철근 조각을 땜질로 붙여
위로 불쑥 올라오게 개조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할아버지께선 땜질장비까지 동원하여
오토바이의 구석구석의 장치개조에 매일같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고
난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출근길, 문을 나서다
형편없이 왜소해지신 할머니를 부축해
힘들게 오토바이에 태우고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시는 병든 할머니를 오토바이에 힘겹게 태우며
할아버지께선 할머니께 연신 뭐라고 속삭이셨습니다.
모르긴 해도 뇌졸증이나
아니면 더욱 심각한 병마가 할머니께 찾아온 것이 분명해보였고
할머니께서 입원해계시는 동안 아마도 퇴원을 준비하며
할아버지께선 오토바이 개조작업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음식배달용 정도의 작고 낡은 오토바이에 기울이는
할아버지의 정성스런 자가용 개조작업도 그랬지만 그 작은 오토바이에 의지하여
힘겹게 병원을 오가시는 과정을 문득문득 지켜보며
두분을 향한 알 수 없는 경외심이 내게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거의 한 달 여
통원치료로 보이는 어르신 내외의 힘겨운 오토바이외출을 보게 되었고,
낡은 오토바이 등받이에 벨트로 몸을 묶으시고는
할아버지를 꼭 붙들고 파란 연기를 내뿜으며 동네를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문득 차갑고 거대한, 해일같은 어떤 것이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내 머리를 퍽퍽 내리찍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삶, 어머니의 삶도 서로에게 마지막까지 성실하셨을까.
끝까지 서로를 지켜주는 진실한 사랑을 우린 과연 할 수 있을까.
세상의 넘치는 사랑들 속에 과연 일생을 책임지는 순수한 사랑이란 있는가,
뭐 이런 생각에 빠져들면서부터
두 분의 외출을 맞닥뜨릴 때마다 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전보다 좋아지신 것 같아요, 할머니"하고 말을 건네면
할머니께선 "영감이 고생이지"하며 가녀린 웃음을 보여주기도 하셨고,
그 허접한 오토바이 뒷좌석에 가벼운 할머니의 몸을 들어올리며
난 자식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 입이 들썩거렸지만
한번도 두분께 묻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두분의 오토바이외출은 볼 수 없었고
대신, 잠을 설치는 밤이나 일찍 잠에서 깨어난 새벽에
담배 한 대 피울 요량으로 밖에 나왔다가 불쑥불쑥 두분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걷기연습을 하시는 듯,
할아버지의 부축으로 무슨 얘긴지 모를 대화를 알콩달콩 나누며
두분은 천천히 동네를 돌고 계셨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비친 두분의 휘청거리는 모습.
여남은 삶에 대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두분과
그 등 뒤를 따라다니는 저 지독한 쓸쓸함.
그리고 눈물겨운 사랑의 그림자.
지켜보기에도 숨이 벅찬 두분의 의지와 사랑...
아, 난 과연 오래토록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을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어두움 속, 잔뜩 휘어진 두분의 그림자를 보며
난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두분의 어깨 위를 따라다니던 저 쓸쓸함만큼이나,
꼭두새벽의 어두움만큼이나
난 부끄러웠습니다.




Peter Paul & Mary...Gone The Rainbow

punggyung70.jpg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9 댓글
겟방구 05-08-27 05:00
내 사랑도 습관 되길 빌 뿐입니다.
쓸쓸해도 안전한, 그런 사랑이 되길...
매번 운치 있는 글 고맙읍니다.
원래 바다낚시 애독잡니다. 늘......
섬원주민 05-08-27 08:48
김일석님은 복도 많으신 분입니다.
이런 분들과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책으로 선생님으로 부터 배우는 것보다 이렇게 느낌으로
배우는 것이 더욱 값진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어디 낚시 안갑니까?
김일석 05-08-27 09:55
갯방구님, 반갑습니다.
'사랑, 누가 그리 쉽다 했던가요?
풀섶을 스치는 그리움이나
밤을 밝히는 애절함이나
부르르 떨리는 고독도 사랑보다 덜한 걸...'
사랑의 치열함을 노래한 가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원주민님, 건강히 잘 지내시죠?
바쁘다보니 요즘은 낚시가 좀 시들해진 것 같습니다....^^
자잘한 욕구들을 치곡차곡 모아두었다가
화끈한 겨루기 한 판...
다음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늘근감시 05-08-27 13:17
오랫만입니다...^^"
동안도 안녕 하시지요.
조만간에 연락함 드릴께요.
김일석 05-08-27 13:53
늘근감시님...
반갑습니다.
건강하신지요?
그간 독일 다녀오셨나요?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어서 뵙고 싶습니다.
빈가방 05-08-31 21:54
참 아름다운 모습인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모습이 잠시 몇해전의
우리집 모습으로 다가 온것을 착각했나봅니다
아름다운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거제우연낚시 05-09-01 00:10
나이듬에 쓸쓸하실 지라도 두 분은 행복하실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을 해봅니다.
깊어가는밤...
부부란..사랑이란..? 쉽사리 풀지 못하는 의문점을 꼭꼭 짚어 보면서
자신을 둘러 봅니다.
그리고...
두 분의 모습뒤로 저만치 제 모습 또한 비춰봅니다.

지켜 보시는 님의 모습...
저 역시 닮으며....
tlsthwkd 05-09-01 00:16
어쩜 이리도 글을 잘 쓰시는지.....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표현해나가는 님의 글솜씨또한 감동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김일석 05-09-01 04:56
새벽 다섯시가 다 되었군요~
후배놈이 술집을 개업했다고 연락이 와
세상살이 얘기하며 어울려 소주 몇 잔 마셨습니다.

빈가방님, 늘 지켜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살다보면 어느 날 술 한 잔 나눌 수 있겠지요~
반가웠습니다.

우연낚시님, 시간이 참 잘 가지요?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도 늘 획획 지나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엔 더욱 반가울테지요~
따뜻한 마음으로 만납시다~!

tlsthwkd 님, 반갑고요~
격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