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을 몸살 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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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계절을 앓았었다. 하지만 이번 가을은 그 몸살이 유독 심하다.
피끊는 청춘도 아니고 갖 40을 맞이한 나이도 아닌 4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인데도 유혹처럼 찾아온 몸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평소의 신념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그 무었들 때문에 방황을 하다가 급기야는 입술에 바이러스 수포까지 생기고 말았다.
염병할~
10월 6일 모두가 떠나버린 휑한 백사장에 남겨진 모래성 같은 윤기 잃은 아침을 맞았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 커튼을 끌어당겨 혼자만의 익숙한 어둠에 잠겨 보지만 그것도 잠시 내안에서 살아있는 나를 가둘순 없었다.
등산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배낭엔 간단한 물병과 과일 그리고 자유시간, 소세지, 복분자를 쑤셔넣고는 김밥 두줄을 사서 나섰다.
처음엔 삼천포 와룡산이나 가볼까 하다가 그것도 잠시 차량은 어느듯 시외를 벗어나고 있었다.
사천 IC를 올라탄 차량은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달려 88올림픽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쯤에서야 아 내가 해인사로 향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었다.
해인사 IC에서 내려서서 조금을 달리자 길가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코스모스밭이 약간은 늦은 가을을 원망이라도 하듯 흐린 하늘아래 흐늘거리고 있었고. 이번에 새로 닦은 듯한 길은 왕복 4차선으로 말끔히 포장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천년의 지혜”로 열리는 행사장엔 1000여년을 이어온 고려대장경을 보려는 불심(佛心)들과 맹목적으로 끌려온듯한 학생들로 그야 말로 발디딜 틈도 없었고, 차후 100년이 지나야 볼 수 있다는 대장경 원판도 복잡한 것은 싫어라 하는 나의 구미(口味)를 당길 순 없었다.
해인사 가는 길은 굽이굽이 휘돌아 드라이브 하기엔 안성 맞춤인 것 같다. 왼쪽편으로 계속해서 골짜기를 끼고 돌아 이 깊고 깊은 산중에 어떻게 길을 뚫었으며 또 어떻게 절을 세웠는지 신기하기만 할뿐이다.
해인사 입구 도로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섰는 매표소는 어김없이 주차료 4,000원과 입장료 3,000원을 징수한다.
주차후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는 혼자 오르는 해인사는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일행들과 일곱여덟번 이상은 왔었지만 시야 가득히 들어온 적송(赤松)이며 나들이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전혀 낮선 느낌이었다.
해인사 앞 마당엔 육중한 덤프트럭이 골재를 실어 나르며 폴폴 먼지를 일으키고, 관광차는 무수한 사람들은 무던히도 뱉어 내고 있었다. 그 순간 보이는 공중전화 부스. 가슴떨리던 추억을 전달해주던 빨간 전화기는 아니지만 누군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호주머니를 뒤져 보니 100원 동전이 있다. 낮설지 않는 전화 번호를 눌렀더니 친절하게도 바로 70원을 삼키면서 경고음을 뱉어낸다. 우짜란 말이고~, 내가 그를 생각할 수 있는 70원어치의 말들......,
산행이 시작되는 첫머리인 용답선원도 한창 불사(佛舍)가 한창이라 고요한 멋스러움이라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정표는 친절하게도 상왕봉(가야산 정상) 4.0km를 가르쳐주고 나는 이내 2시간쯤이면 올라 갈 수 있으리라 계산을 해본다. 내가 총각 시절에 와 봤으니 근 20여년쯤 되었으리라 그땐 몇시간만에 올랐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등산로 초입(初入)에 있는 목재 난간에는 하트 모양의 덩굴이 이쁘게 하늘로 오르고, 앞서서 오르는 5명의 아주머니 웃음 소리들이 잠들었던 산속의 시간들을 깨워내는 느낌이다.
느림의 미학처럼 최대한 천천히 오르르 해보았지만 아주머니들 역시 같은 느낌들이었는지 몇팀들이 내 뒤로 물러선다.
40여분쯤 올라서 시원한 바람과 적당한 땀을 냇가에서 세수를 하고 과일 한조각 깍아 먹으니 이내 한기(寒氣)가 몰려온다.
등산을 시작한지 1시간 10여분쯤 지났을까 철제 계단이 나타나는데 옆에 단풍에 제법 붉은 기운이 돌아 한컷을 찍고는 한 10여분 더 오르자 오른쪽 편으로 목과 다리 부분이 잘려나가 새로 붙인 “해인사 석조 여래입상”이 나타난다. 그 앞엔 누가 불공을 드렸는지 꽃향유가 꺾여져 있고 하얀색 눈깔사탕이 많이도 놓여져 있다. 그중에 눈깔 사탕 두 개를 집어 들며 “내가 먹어도 되지요”하면서 챙겨두었다.
5분쯤 더 오르자 계곡에서 숨어있었던 듯한 바람이 일제히 불어와 바위산을 에워싸듯 몸으로 지탱하기가 힘들다.
끙끙거리며 20여분을 더 올라서자 가야산 정상인 우두봉(상황봉) 1,430m가 나타나고 스마트폰으로 셀카 놀이에 정신이 없는 나를 보던 아주머니 하나가 자연스럽게 셔터를 눌러준다. 덩그런히 정상 표지석만 두어판 찍고 옆으로 이동해서 시계를 보니 13:52분을 가르키고 온도는 10.4℃를 지시한다. 하지만 어찌나 바람이 매섭는지 윈드자켓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은 체감온도를 뚝뚝 떨어뜨린다.
바로 옆 하늘의 신령스런 물을 담았다는 우비정(牛鼻井)엔 비가 내려 물이 맑을땐 어쩌면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어 그런날 숨었다가 선녀 옷이라도 훔쳐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람 때문에 서있기 조차 힘들었다.
한 15분쯤을 더 걸어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七佛夆) 1,433m에 올라 섰을땐 바람의 세기가 극에 달했는지 카메라 셔터조차 누를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여 진다. 그때가 14:20분 서성재를 거쳐 만물상을 지나 하산을 하고 싶었으나 일행도 없고 더군다나 하산 끝날때쯤이면 어둑어둑해질 것 같아 렌턴을 준비하지 않은 나로선 무리일 것 같았다. 거기다가 아직 김밥도 먹지도 않은터라 허기도 졌고 매섭게 파고드는 바람에 자신도 없어 속으로 다음에 오면 꼭 저기를 가야지 하면서 나 스스로를 달래고 말았다.
하산길 적당히 바람을 피해 김밥을 먹으며 복분자 두어잔을 연거푸 마시자 추위에 움츠렸던 몸에 활기가 돌고 산에 올랐었다는 성취감도 아울러 퍼진다. 주섬주섬 과일을 깎아 먹고 자유시간 한개와 소세지를 후식으로 먹고는 “이제 하산 하여라”라는 계시를 받듯 시나브로 속세로 향하고 있었다.
16시40분쯤 유유자적하던 하산을 마치고 조형 미술품인 피라미드 앞에서 거울에 투영(投影)되는 나를 한참이다 바라보다 산행을 마치었다.
주차장 다와갈쯤 까지도 않은 잣을 통째로 팔고 있어서 3개를 샀더니 1개 덤으로 얹어준다.
17시쯤 집으로 출발이다. 왔던 것과 같이 해인사 IC로 올라섰고 어둑해지는 길을 조금쯤 달리자 고령 IC가 나온다. 친절한 김양이 최적의 길로 안내를 하는 것이다.
흔히 남자들은 살아서 세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 첫째가 어머니요, 둘째가 아내요, 셋째가 네비게이션 김양이라는데 어쩌랴 이미 올라섰으니~ 현풍을 지나 영산 휴게소에 들려 원두커피 한잔에 설탕을 넣어 피로를 달래고 함안쯤 들어서자 교통사고로 차량이 정체다. 에공 “김양아 이게 뭐꼬?” 꼬리에 꼬리를 문 정체~ 음악도 신나는 것으로 틀어 보고 창문도 열었다 닫았다 온 쇼를 다해 보지만 차량은 그야말로 거북이 걸음이다.
우찌우찌해서 집에 들어서자 이미 20시20분이 넘어서고 있었고 차는 지친 숨을 몰아쉰다. 주행거리 300km인 장거리 여행이었다.
바람이 차가워 나서기 싫다는 아내를 꼬드겨 삼천포 수산물축제 야시장에 갔더니 전야제라 그런지 많은 부스들이 비워져 있었고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웃기려고 한 옷차림인지 울려고 한 옷차림인지도 모를 각설이패 공연장에선 술에 절은 취객들이 라이브로 음정.박자 전부 무시한 노래들을 목청것 부르고 있었고. 아들들이 좋아라 하는 닭꼬지 몇 개와 어머니가 좋아라 하실 것 같은 박달도마 한 개 사들고 잠깐의 나들이를 마감하고 말았다.
샤워후 잠시 엎드려 있었다는게 졸았나 보다. 눈을 떠보니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작은 아들은 시험 마지막 날이라 아직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었다.
대문에 불을 밝히고 산행 사진이랑 일지를 정리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듯 1시가 되었다가 1시 50분쯤이 되어서야 작은 녀석이 지친 표정으로 들어선다.
서둘러 손이라도 씻으라 하고 아까 사온 닭꼬지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주자 냉장고에서 블루베리 액기스를 두 개를 꺼내 마신다. “이 녀석아 그건 음료수처럼 마시는게 아니란다” 해 보지만 이미 소용 없는 일. 흐미! 저게 한 개에 6,600원 하는건디~
대충 씻고 곤한 잠에 빠진 녀석과는 달리 난 쉬이 잠이 오지 않아 거의 4시가 다되어 잠이 들었다.
그래도 아침에 아들들 차로 등교시켜주고 오래된 팝송을 들으며 책상머리에서 궁상을 떠는 난 원더아저씨인지도 모르겠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의 수염의 1/3쯤은 하얀 수염이지만 두어번 쓰윽 쓰다듬어 보고는 전기 면도기로 1차 면도후 잔 수염들은 안전칼날 면도기를 이용해서 말끔히 제거하는 것으로 또다른 하루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젠 더 이상 아파하지 않으리란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