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하늘 낚은 손 맛

[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7화, 하늘 낚은 손 맛

G 0 3,495 2006.12.04 09:49
거제도(巨濟島) 아래쪽에 있는 수많은 섬들 중 홍도(鴻島)는 부산 앞바다의 나무섬, 형제섬, 외섬, 안경섬과 이어지는 곳으로 부산 낚시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섬이다.(행정구역상 홍도는 통영시에 속함) 부산에서 남남서쪽으로 68Km 떨어져 있는 이곳 홍도에는 대한해협(大韓海峽)을 밝히는 유인등대가 있고 앵이갈매기들의 산란장을 제공해 주는 곳으로 예전부터 부산권 낚시인들에게 원도(遠島)권 낚시터이기도 하였다. 필자가 80년대초 이곳으로 처음 들어 갔을 때 놀란 것이 세가지 있었다. 첫번째는 높은 파도의 험한 바다였고 두번째는 수없이 많은 앵이 갈매기 떼들의 군무(群舞)였으며 세번째는 굶주린 고기 떼들이 너무 많았던 바다라는데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항에서 6시간 소요

배수량 4~5톤 정도의 조그만 낚시배로 부산 남항(南港)을 출발하여 물경 5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것도 해상조건이 좋을 때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근교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어종들이 낚시인들을 반겨 주었으니 높은 파도와의 기나 긴 싸움도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특히 장마 때 떼거리로 붙은 벤자리의 손맛과 농어떼들의 신들림, 그리고 양념으로 낚여 나오는 참돔, 돌돔, 대형 벵에돔들..., 가히 여름고기들의 수족관(水族館)을 방불케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므로 그 정도 뱃길은 아예 감수(甘受)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한해 여름, 높은 파도 밭에서 낚시배의 전복 위기까지 치달은 사고가 있은 후 몇 년 이곳을 잊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장마 때만 되면 불쑥 생각나는 홍도(鴻島)는 부산.경남권 최고의 여름 낚시터임이 틀림 없었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 오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80대 초반의 일이다, 그러니까 장마가 오락가락하다가 제주 남쪽으로 잠시 내려가 소강상태를 보인다는 예보를 듣고 부산 남항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부산 남항의 남부민방파제를 벗어나자 말자 강한 남서풍과 높은 파도가 앞을 가로 막았다. 선장에게 홍도는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하나고 물어보니 "오늘 파도가 다소 높으니 앞으로 6시간 이상 걸리겠다"고 하였다. 눈 앞이 깜깜하지만 "설마 사람 잡겠나...?"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선실에 누워 선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너머로 보이는 것은 하늘과 노여운 파도뿐이었다.

한시간 쯤 지났을까?, 조그만 낚시배는 높은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롤링과 핏칭이 계속하였다. 선실에는 부산 낚시인이 12~3명 타고 있었지만 모두들 아무 말없이 바다만 바라다 보고 있었다. 좀처럼 배멀미를 하지 필자지만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바닷물이 튀어 얼룩진 선창 너머로 나무섬이 저만치 보이고 있었다. 앞으로 5시간 정도 더 소요된다고 하니 눈앞이 깜깜할 뿐이었다. 그래도 배는 높은 파도 밭을 요리조리 잘도 헤치면서 지루한 항해를 계속하기를 4시간, 눈앞에는 조그만 돌 섬이 나타났다. 거제 앞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안경섬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홍도까지 뱃길이 험하여 앞으로 2시간 정도 더 걸릴 것 같다고 하였다. 처음 찾았던 홍도, 정말 기나 긴 항해 끝에 오후 6시를 넘기고 도착할 수 있었다.

남해안 갈매기 총 집합

그러나 홍도의 첫인상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남해안의 갈매기 떼들이 다 모였는지 하늘 까맣게 뒤덮은 갈매기들의 운무에 6시간의 긴 항해로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달아나 버렸다. 섬 정상에서 허리까지 휘감은 짙은 안개, 요란스럽게 외쳐 되는 갈매기의 울음소리에서 새로운 신세계가 눈 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았다. 맑디 맑은 바닷물과 깊은 수심, 홍도의 첫인상은 "뭔가 화끈한 손 맛을 보여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남서풍이 강하였다. 서편은 바람과 파도의 직접 영향을 받아 높은 파도가 들끓고 있었다. 선장은 북쪽과 동쪽편으로만 낚시인들을 하선(下船)시켰다. 필자와 함께 두 명의 낚시인이 본 섬과 약 10여메타 떨어져 삐죽하게 솟은 바위에 하선하였다. 선장에게 이 자리의 이름이나 알자고 물으니 "병풍(屛風)바위"라고 하였다.

앞 쪽으로는 탁 터인 대한해협이 전개되었고 남쪽으로는 홍도 본섬과 10여메타 정도 떨어져 있으며 풀 한 포기 없고 갈매기 배설물들만 쌓여있는 조그만 여였다. 그러나 높은 여라 큰 파도가 있어도 안전하게 보였다. 기나 긴 항해 끝에 병풍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 갈매기들의 배설물이 뽀얗게 흩어져 있는데다 배솔물 냄새가 갯바위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런데다 겁없이 주변까지 내려와 앉아 고성을 지르며 자기 영역을 침범한 이방인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갯바위 경사도 밋밋하였으며 발판이 사나웠다. 함께 내린 두 명은 본 섬이 바라다 보이는 남쪽 골창으로 넘어 가 버렸다. "얼마나 어렵게 왔는데" 하면서 혼자서 재빠르게 장비를 펼쳤다. 우선 밤낚시 때 사용할 릴 찌낚채비를 한 벌 만들어 두고선 그라스롯드 3칸반 민장대에 청갯지렁이 한마리 달아 민장대 맥낚을 시도하였다.

조류는 다소 세찼지만 봉돌이 내려가자 마자 곧바로 입질이 와 닿았다. 초릿대를 투툭~툭 치던 놈을 강하게 챔질하여 낚아내 보니 25센치정도 되는 벵에돔이었다.또 다시 장대를 담그니 곧바로 입질이 왔다. 낚아내 보니 또 벵에돔이었다. 수면 위에는 수많은 자리돔 떼가 피어 올라 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청갯지렁이 미끼에 돌돔과 벵에돔 새끼가 미친듯이 물고 늘어졌다. 마치 며칠간 굶주리다 먹을 것을 찾은 고기 떼들이란 표현이 적당한 것 같았다.

짜증이 날 정도로 시끄러운 갈매기 떼들의 울음소리, 하늘을 까맣게 뒤덮으면 요란하게 비산하는 운무, 우박 같이 솟아지는 갈매기들의 배설물... 온통 갈매기와 물고기들의 천국이었다. 장대를 담그면 물고 늘어지는 어신에 파묻혀 있는데 어느 듯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민장대를 접고 야구공만큼 크다란 전기찌에 건전지를 넣은 후 밝게 불을 밝혔다. 릴 찌낚 채비에 수심을 한발 정도로 조정하였다. 농어를 노리기 위함 이었다. 해진 후, 농어채비를 힘차게 앞 쪽 작은 여 쪽으로 던져 넣었다.

어둠이 내리자 입질 끝...

동쪽으로 흐르는 조류를 태워 채비를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미끼가 움직이도록 감아 들이고 또 다시 흘리고 ..., 반복하여 채비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던져 다양한 포인트 노리기 시작하였다. 농어 채비를 던져 넣은지 한시간이 지나도 어신을 받지 못하였다. "이곳에서 그렇게도 흔한 것이 농어라고 하였는데..." 물때가 맞지 않는지?, 전혀 농어의 어신을 받지 못하였다. 커다란 농어찌는 조류에 실려 두둥실 떠내려 가기만 하였다.

필자는 혼자였지만 함께 내린 일행 두 명은 본 섬과 마주한 골창으로 넘어가 낚시를 하였다. 릴 찌낚 채비를 던져 놓은 후 두 시간이 지나도 어신을 받지 못하자 장대를 걸쳐두고 골창 쪽으로 넘어가 보았다. 골창에서는 두 사람이 민장대로 벤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이들 역시 벤자리의 어신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벤자리 떼들이 이곳 병풍바위 쪽으로 모여 들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언젠가 계속 골창으로 벤자리 떼가 들어올 것이라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매년 벤자리를 수도 없이 잡았다 하였고 하룻밤 낚시 도중에 벤자리 떼가 모여드는 시간이 있으며 이 시간대에는 혼이 빠질 정도로 많은 벤자리들이 피어 오르기 때문에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한,두 시간 부지런하게 낚시를 하면 쿨러 채우는 것은 시간문제라 말하였다.

밤이 깊어가자 계속 4칸 민장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떼거리 벤자리 떼가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필자의 자리로 넘어와 곰곰이 생각하였다. "수심 층을 더 주어서 농어가 아니면 벤자리라도 입질을 받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심 층을 4칸 민장대 정도되도록 찌 밑 수심을 5발 이상되도록 찌 매듭을 조정하였다. 미끼로 싱싱한 청갯지렁이를 여러마리 달았고 채비를 먼 바다 쪽으로 날렸다. 그러나 30여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어신을 받지 못하였다. 더 깊은 수심 층에서 벤자리라도 물어줄 것 같아 찌 매듭을 다시 올려 수심을 8발(약12메타) 정도되게 다시 조정하였다. 이번에는 본 섬을 바라보며 직벽 쪽으로 채비를 던져 넣었다. 조류를 따라 흘려가던 찌가 가물가물거리며 잠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강하게 챔질을 하였다. 장대가 뿌지~직 거리는 것 같았다.

릴을 강하게 감아 들이자 장대가 내려 박히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당기는 맛이 없었다. 순간 채비가 수중 암초에 채비가 걸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원줄을 강하게 잡아 당겨 채비를 회수하자 목줄이 바위에 설켜 끊어져 버렸다. 맥이 빠져버렸다. "밤낚시에 뭔가 될 것 같았는데...?" 목줄을 다시 묶은 다음 이번에는 바다 쪽으로 채비를 던져 넣었다. 찌 밑 수심 8발을 고수하였는데 바깥 바다 쪽은 여 걸림이 없었다. 다시 30여분이 흘렀는데도 역시 어신을 받지 못하였다.

혼자서 "되면 되고 않되면 할 수 없고, 수심이나 한번 제어 보자"고 마음 먹었다. 다시 채비를 올려 수심을 12발로 고정하였다. 필자의 한발은 1.5메타 정도이니 찌 밑 수심이 18메타가 넘는 수심이었다. 미끼도 굵고 싱싱한 청갯지렁이 다섯마리를 주렁주렁 엮어 꿰웠다. 농어나 벤자리가 보면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후 먼 바다 쪽으로 멀리 날려 보냈다. 조류는 계속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찌 밑 수심이 깊어 한참 후에 찌가 오뚝하게 서서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찌가 조류를 따라 얼마간 흘러가다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는 정말 왔다!"고 생각하면서 강하게 챔질을 하였다. 묵직하게 걸리는 무게감이 손에 전달되면서 차고 내려가는 감을 감지하였다. 장대를 있는 힘을 다해 받쳐 세우고 릴을 감아 들이기 시작하였다. 원줄이 8호였고 목줄은 5호였으므로 릴 드랙을 조우지 않고 그대로 감아 들일 수 있었다. 초반, 놈의 저항은 거세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원줄이 느슨해지고 장대가 탄력을 잃고 원위치하면서 릴을 회전시키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구~ 목줄이 나간 모양이구나"하면서 힘없이 감아 들이고 있었다.

18메타 수심에 대물농어가 놀고 있었다.

확실하게 어신을 확인하여 챔질하였고 챔질후 강하게 저항하는 당김까지 받았는데 또 목줄이 터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갯바위 발 밑에서 장대가 다시 세차고 내리 박히기 시작하였다. 놀란 나머지 응급 결에 두 손으로 장대를 힘컷 잡고 세우면서 릴링을 계속하였다. 차고 나가는 놈을 갯바위 가 쪽까지 몰고 왔으나 그냥 들어 올리자니 고기가 너무 무거웠다. 뜰채도 없었고 남쪽 본 섬 쪽의 낚시인들 불러도 소식이 없었다. "목줄이 터져도 할 수 없다"고 마음 먹고는 두 손으로 장대를 들어 올렸다. 그라스롯드 릴대의 허리 힘은 대단하였다. 무식하게 들어 올려 갯바위에 눕히는데 성공하였다. 올려보니 경사진 갯바위에 이리튀고 저리튀며 바늘털이를 하는 놈은 장단지보다 굵은 대물 농어였다. 얼마나 기다렸던 놈인가!, 굵은 놈을 한 마리 걸자 마음이 너무 급해 원줄을 너무 많이 감아 들였던 것 같았다. 릴 베일을 제켜 여유 줄을 확보한 후 원줄을 잡고 당겨 굵은 농어를 갯바위 쪽으로 조금 더 당겨 놓았다.

장대는 비스듬히 갯바위에 걸쳐 두고 허리춤에 있는 수건을 뽑아 황급히 내려가 경사진 갯바위 턱에서 용트림을 하는 농어의 머리통을 인정사정없이 감싸 안았다. 굵은 대물농어의 바늘털이는 무지막지하였다. 수건으로 머리통을 잡는 순간 있는 그 놈은 있는 힘을 다하여 흔들어대는 통에 주둥이에 박혀 있던 바늘이 빠져버렸다. 잠시라도 타이밍이 늦추었으면 먹을 수 없는 놈이었다. 심장이 쿵쿵거렸고 두 손은 떨려왔지만 수건으로 감싸 안은 농어를 두 손으로 꽉 잡고 품에 안았을 때 승리의 미소가 절로 나왔다. 혼자서 허뭇한 미소를 띄우면서 장단지보다 굵은 농어를 부둥켜 안고 비스듬한 갯바위를 타고 올라 오는 순간, 갯바위에 어슬프게 걸쳐 둔 릴장대가 경사진 갯바위 아래쪽에서 고기를 안고 올라 오던 발에 살짝 부딪혀 버렸다.

장대 잃고, 고기는 도망가고...

그러자 갯바위에 걸쳐 둔 장대가 미끄러지면서 바다 쪽으로 비스듬히 넘어가고 있었다. 두 손에는 난생 처음 낚아 본 대물농어가 안겨져 있고 장대는 바다를 향해 서서히 내려 박히고 있었다. 얼마나 급했던지 두 손으로 잡고 있던 고기를 위쪽 갯바위에 던져놓고 바다로 빠지는 장대를 잡으려고젭사게 오른쪽 팔을 뻗치는데 위쪽으로 던져놓았던 농어가 다시 "우당탕탕" 또 다시 용트림을 하였다. 반사적으로 왼팔이 농어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장대는 바다로 소리없이 사라져버렸고 굵은 농어도 있는 힘을 다하여 직벽으로 시원하게 다이빙하여 용왕님의 바다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갯바위에 퍼질고 앉아 "우째! 이런 일이..."하고 큰소리를 치면서 후라쉬로 검은 바다 속을 이리 비추고 지러 비추어 보았지만 릴 장대고, 대물 농어고,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고 칠흙같은 밤바다만 아무 말없이 조용히 필자를 쳐다보고 있는 듯 하였다. 그렇게도 아끼던 장대와 릴를 수장(收藏)시켜 버리고는 못내 아쉬워 하였지만 오기가 치밀었다.

담배를 질근질근 싶어 물고 여분으로 가져온 감성돔용 2호 릴대를 낚시가방에서 꺼집어 내었다. 릴도 감성돔용 조그만 리어드랙 릴이었지만 다시 농어 채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수심을 12발 정도로 고정하였고 먼바다를 향해 또 다시 던져 넣었다. 그러나 야구공만한 큰 전기찌의 여분이 없어 감성돔용 2호 막대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채비에 무게가 실리지 않아 아무리 던져도 20여메타 이상 원투(遠投)가 되지 않았다. 먼 바다 쪽 수심이 12발 정도가 적당하였으나 멀리 원투가 되지 않아 앞 쪽에 떨어진 채비는 얕은 바닥수심 때문에 자주 걸렸고 몇 번 목줄만 끊어 먹었다. 채비를 제대로 보낼 수 없는데다 밤새 울어대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짜증스럽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혼자 분주하게 채비만 바꾸다가 여명을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해 뜰 무렵을 놓치는 필자가 아니다. 남들에게 차마 얘기할 수 없는 뼈아픈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새벽 물때를 다시 야무지게 노려보는 일 뿐이었다. 여명이 밝아오자 홍도의 모든 갈매기 떼들이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비산(飛散)하기 시작하였다. 동녁 하늘은 검붉은 색을 띄웠고 휴식을 취하던 갈매기들은 온 하늘을 검게 물들이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잠시 황홀경에 빠져 있다가, "이 물때를 놓치면 안된다, 요놈 농어들아 혼 좀 나봐라"

갈매기를 낚다.

다시 싱싱한 청갯지렁이를 여러마리 뀌어 있는 힘을 다하여 채비를 날렸다. 그런데 공교롭게 병풍바위에서 바다 쪽으로 수없이 많은 갈매기가 비산하던 중 재수없는 갈매기 한 마리의 날개 죽지가 채비가 걸려버리고 말았다. 비행하던 갈매기가 손살같이 날아 오르다가 갑자기 비행에 장애를 받자 바다로 떨어졌다. 필자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지만 갈매기 역시 처음 당하는 일이었던지 둘 다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우째 또 이런 일이..." 바다에 추락한 갈매기는 다시 퍼드덕 거리며 날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두 손으로 장대를 받쳐 들고 당기자 장대는 부러질 것 같았다. 갈매기는 날아 오르다가 힘이 겨운지 다시 바다에 떨어졌다. "새벽부터 우째 갈매기까지..." 그러나 하늘을 낚은 손 맛을 최고였다.
감성돔용 장대라 갈매기가 순간적으로 힘을 쏟으면 부셔져 버릴 것 같아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였다. "원줄을 잘라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갈매기 몸에 원줄이 칭칭 감겨있으면 날아다니지 못해 죽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애처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줄을 감아 올려 갈매기 몸을 감고 있는 원줄을 잘라내야만 하였다. 다시 릴을 감아 들이기 시작하였다. 갈매기는 필자를 가끔 씩 곁눈질을 하며 쳐다 보다가 다시 비산하였으나 이내 바다로 떨어졌다. 갈매기도 힘이 빠지고 지친 모양이었다. 릴을 부지런히 감았다. 갯바위에서 약 10여메타 앞까지 감아 들이자 갈매기는 순순히 이끌려 왔다. 잠시 갈매기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왼쪽 날개 죽지에 목줄이 감긴 것 같았으며 조용하게 바다에 떠 있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갈매기들이 쉴새 없이 날아 다녔다. 모두들 듣기 싫은 괴성을 "꽥꽥"지르며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검게 가리며 홍도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잠시 소강 상태을 유지하다가 다시 릴을 감아 들이기 시작하였다. 필자 앞으로 더욱 다가오게 된 갈매기와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갈매기는 그제사 놀랐는지 바닷물을 차고 다시 손살같이 날아 올랐다. 장대를 부둥켜 잡고 두 손에 힘을 주면서 장대를 놓치지 않으려고 또 당기기 시작하였다. 하늘에서 퍼드덕 거리던 놈은 본 섬 직벽 쪽으로 날아 오르다가 한쪽 날개에 저항을 받자 방향을 급선회하면서 반대편 필자 쪽으로 날아 들었다.

갈매기가 갯바위 쪽으로 떨어지도록 장대를 재빨리 눕히면서 릴을 급하게 감아 들이자 생각했던 대로 갈매기가 갯바위 중앙부분 발판이 더욱 사나운 쪽으로 떨어지면서 최후의 저항을 계속하였다. 그 순간 너무 급하게 장대를 눕히면서 감아 들이다 보니 초릿대가 갯바위에 받쳐 박살 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부셔진 초릿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갈매기를 빨리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장대를 갯바위 위쪽에서 중앙부분 밋밋한 쪽으로 걸쳐 놓고 수건을 뽑아 들고 살금살금 접근하였다. 위기감을 느낀 갈매기는 강하게 보이는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대기 시작하였다.낚시줄을 잡고 갈매기 쪽으로 다가가 수건으로 머리통을 덮어 씌우자 갑자기 깜깜해져서 인지 갈매기는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갈매기 몸에 걸쳐진 낚시줄을 잘라내고 수건을 벗기고는 뒷걸음질로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낚은 손 맛 이후..., 무수한 농어들과의 만남.

평온을 찾은 갈매기는 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동료들의 운무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렵게 찾았던 홍도의 첫 출조는 처참하게 두 대의 장대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늘을 낚은 손 맛"을 처음으로 느껴 보았지만 이후 새로운 세계에 재도전하기 위해 야무진 새 장비들을 준비하였고 이후 이곳에서 무수한 농어들과의 만남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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