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도전! 남녀군도(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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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5화, 도전! 남녀군도(제2편)

G 0 5,535 2006.12.04 09:48
'95년 5월27일(토, 음력 4월28일, 5물때, 맑고 바람 적당)

보름 전부터 그렇게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남녀군도(男女群島) 탐사출조(探査出釣)가 시작되는 날 이었다. 직장 후배 P씨가 필자의 원정출조를 도와주기 위하여 집으로 달려 왔고 차량으로 각종 장비들을 김해공항으로 옮겨 주었다. 오후 2시, 김해공항 대합실에 이번 탐사 팀 3명이 집결하여 출국 수속을 밟기 시작하였다. 대한항공(주)낚시회 일원인 B씨등이 나와 우리 팀의 탐사 출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기원하였다.

3명으로 구성된 탐사 팀은 출국 수속을 마치고 JAL 978편에 몸을 던졌다. 오후 3시45분, 김해공항을 이륙한지 얼마 안돼 좌측 편으로 쓰시마(對馬島)가 보이더니 이내 현해탄을 뛰어 넘어 일본 땅 후쿠오카(福剛)에 도착하였다. 불과 40여분만에 대한해협(大韓海峽)을 건너 일본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후쿠오카는 일본 땅이라 의식적인 거리가 멀었었지 지도상 직선거리가 대략 220Km 정도되어 보였고 부산에서 전남 벌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

창세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셋째 날, 프랑스나 독일등 구라파 쪽은 공들여 평평하게 잘 다듬어 평지가 많게 만들었고 아시아 쪽에는 지구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을 우람하게 쌓아 올리면서 중국대륙과 우리나라 땅까지는 볼륨있고 굴곡있도록 멋지게 창조하였지만 일본 땅을 만들 때 조금 짜증이 났는지?, 아니면 제치기라도 하였는지 ...?, 흙과 돌들을 확~ 뿌려 섬천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지도상에서 호상열도(弧狀列島)의 아래쪽에 수많은 섬들을 보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대마도와 주변 해역의 첫인상은 무수하다 못해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너무 많았던 섬나라 그것이었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마치고 로-비로 나섯다. 초청인 미야게 니유기찌(三宅 隆吉)씨와 일행의 안내를 받으며 후쿠오카 시내로 향하게 되었다. 우선 K씨와 P씨가 준비하지 못한 소모품 등 낚시장비를 구입하기 위함 이었다. 후쿠오카 국제센타 옆에 위치한 P낚시점에서 각종 소품을 구입하고 시내 관광을 겸해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히라도구찌(平戶口)에 있는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あじか磯釣センタ)에 "한국인 3명이 남녀군도에 도전코자 후쿠오카에 도착하였으며 밤늦게 그곳에 도착한다"고 알린 후 오후 8시경 히라도구찌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히라도구찌(平戶口)는 후쿠오카로 부터 지도상 약 150Km정도 더 되게 보였으며 이는 부산에서 섬진강 휴게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고속국도로, 국도로 달려가 밤 11시30분경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あじか磯釣センタ)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초청자 측에서는 모든 것을 사전 예약해 두었고 6월1일(목) 다시 이곳에서 우리 일행과 만나기로 하고는 후쿠오카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부터는 초청자의 배려없이 이제부터 남녀군도 출조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기상악화시 또다른 출조지의 선정 등은 우리 팀 스스로 결정하여야만 하였다.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의 사장 시바야마씨는 5월26일(금) 남녀군도 출조 차 떠났으며 밤늦은 시각인데도 시바야마 부인이 문 밖까지 나와 간이라도 빼 내 줄 것 같은 일본인 특유의 친절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우리 일행을 환영하였다.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あじか磯釣センタ)에 들어서니 우리의 낚시점과 너무나 달랐다. 먼저 낚시용품과 미끼등 낚시소품등은 전혀 팔지 않았고 오로지 출조 가이드 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었다. 낚시점은 약 50여평 정도되었고 점포 안 우측 편 약 20여평에는 다다미방으로 침실이 마련되어 있어 시간이 맞지 많아 출조가 지연되는 지방 낚시인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소파와 여러 개의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위에는 낚시를 마치고 돌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주류와 안주, 과자류, 과일류가 비치하여 낚시인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낚시인에게 보다 친절하게 봉사코자 하는 노력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고 사면 벽면에 온통 대형 돌돔, 참돔 어탁과 남녀군도의 사진, 지도, 그리고 아지카쯔리센타에서 보유하고 있는 선박이 쾌속으로 높은 파도를 헤치며 질주하는 사진들이 붙어 있어 처음 찾는 낚시인들에게 생동감을 자아 낼 정도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P씨가 우리 일행의 방문 목적을 설명하면서 남녀군도에 대하여 조황등을 문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서 K씨가 해외 원정출조를 상품화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일본의 남녀군도를 처음 탐사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K씨는 무언가 의미(意味)가 있음을 처음으로 암시하였다. 대답에 앞서 시바야마 부인은 정종을 권하고 과자와 과일등을 먼저 내 놓았다. 그러나 시바야마 부인의 첫 말이 우리 일행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남녀군도의 돌돔은 5월, 그리고 10~11월이 최적기이나 최근 남녀군도의 돌돔 조황이 극히 부진하였고 더욱이 내일, 5월 28일(일) 오전 비 올 확률 40%, 오후 비 올 확률 90%로 기상대에서 예보하고 있으므로 다음 출조는 날씨를 보아 계획할 것이다"고 말하였다. 또한 지금 남녀군도에 출조 중인 남편 시바야마씨로 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남녀군도 쪽은 파고가 3~5메타로 매우 높고 바람도 강하며 날궂이를 하려고 그런지 조황까지 부진하며 한국 손님들이 날짜를 잘못 잡아 기상이 회복되지 않으면 남녀군도로 출조하기 어렵겠다"고 말하였다. 구체적인 출조계획은 "5월28일(일) 오후 시바야마 사장이 철수하여야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이곳 일본 땅에 왔는데 궂은 날씨로 또 꼬여 들기 시작하였다. 우리 일행은 재빨리 의견을 결정하였다. "5월28일(일) 남녀군도 출조가 어려우면 오도열도 쪽은 어떻겠느냐 ?"고 문의하였다. 그러나 대답은 역시 "날씨가 나쁘면 오도열도 쪽도 출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가 오던지 날씨가 나쁘면 낚시인의 안전을 위하여 출조치 않는다"는 말에 더이상 출조를 강행하자고 할 수 없었다. 부인은 "남녀군도의 출조가 불분명하며 한국에서 왔는데 그냥 눌러 앉아서 있을 수 없으므로 인근에 있는 밉밥 전문 업체인 마루쇼(丸正)점에 류(龍)시노부씨를 소개 드릴 것이니 내일 근해(近海)의 출조는 어떻겠느냐"고를 권하였다. 할 수 없이 우리 일행이 "그렇게 해보자"고 말하자 즉시 전화를 하였고 새벽 1시가 가까워진 시각인데도 류씨가 이곳으로 달려 왔다.

류씨는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あじか磯釣センタ)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서 돌돔 밑밥과 미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녀군도에만 25년간 수백회 출조한 경험이 있다는 말하였다. 날씨가 나빠 남녀군도로 출조계획에 차질이 우려되지만 일단 수백회 경험이 있다는 류씨를 만남으로서 날씨가 회복되면 류씨의 도움으로 남녀군도의 돌돔을 쉽게 만날 수 있겠다는 한가닥의 희망이 옅보이기도 하였다. 류씨와 대화 도중 K씨는 이번 출조의 핵심인 남녀군도 출조를 상품화하고 싶다고 다시한번 말하였다. 류씨는 K씨의 해외 원정출조의 상품화를 위한 첫시도라는 말에 반신반의 하였지만 "일단 밑밥과 미끼점을 25년이상 하였지만 한국 손님이 오신 것은 처음이라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도와둘 수 있는데 까지 도우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K씨는 뭔가 해외 원정출조의 결과를 생각하고 있지만 필자는 부산낚시인으로서 낚시를 하러 왔고 일본 낚시계의 여러가지 정보와 자료들을 수집하러 왔다"고 말한 후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제공해 줄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하였다. 그리고 "날씨가 나빠 원해(遠海)로의 출조가 어려울 경우 근교의 벵에돔 낚시가 가능한 곳이라도 소개해 달라"고 하였다. 날씨가 나쁘므로 숙소로 돌아가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6시 벵에돔 낚시를 함께 떠나기로 약속하였다. 류씨와 대화를 나눈 후 새벽 2시경 초청자가 예약해 두고 간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게 되었다.

'95년 5월 28일(일, 음력 4월 29일, 6물때, 흐린후 오후부터 비)

새벽 2시반경, 숙소에 도착하였으나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도 도전하고 싶었던 남녀군도의 첫 시도를 앞두고 날씨가 기울어진다하니 더욱 난감하기만 하였다. 그런데다 남녀군도에 나가 있는 낚시인들의 돌돔 조황 역시 극히 부진하다는 아지카 사장 시바야마 씨의 현지 조황 보고가 계속 귓전을 맴돌아서 였다.

새벽 6시, 정확한 시각에 류씨가 숙소로 도착하였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가벼운 아침식사를 마친 후 벵에돔 장대와 릴, 구멍찌 등 소품류만 챙겨 일본에서 시도하는 첫 낚시를 떠나게 되었다.
6시40분경 히라도대교(平戶大橋)를 지나 오오꾸보 마찌 시보노우라(大久保町多の浦)라는 한적한 어촌마을로 들어 갔다. 마을에는 후루타니(ふるたに)라는 일반 가정집같은 조그만 낚시점이 있었다. 그러나 깨끗한 점포 안에는 역시 여러 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따끈한 차와 과자, 과일등을 차려 놓고 낚시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먼저 승선명부 작성을 요구하였고 철수시간을 알려 주었다. 선장은 토요일 밤낚시를 떠난 낚시인들이 많이 있으며 지금 물때 적당한 포인트는 나카에노시마(中江の島) 라고 하였다. 부둣가에 정박 중인 낚시배를 보니 선수(船首)쪽은 낚시인들이 오르내리기 쉽게 길게 발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낚시인들인 갯바위 승.하선시 추락되는 일이 없도록 안전을 위한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다.(사진) 선체 역시 날렵하게 건조되어 쾌나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이런 시골 마을에도 저렇게 깨끗하고 빠른 기동력을 가진 낚시전용선을 확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미끼와 장비를 낚시배에 옮겨 싣고 일행 4명은 나카에노 시마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선상에서 필자의 의문 사항들을 문의하였다. "선박의 허가관계"를 문의하자 선장은 "일본의 경우 낚시선박의 허가는 "근해(近海)"와 "원해(遠海)"로 허가가 구분되고 있으며 이 배는 나카사키현에서 "근해(近海)"허가를 받아 운행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낚시배 허가를 득하면 갯바위에 낚시인들을 하선 시킬 수 있다"하였고 "정원은 12명으로 절대 정원 초과를 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근해를 운항하지만 최대 속력은 25노트 가량되었고 레이드와 통신장비, 낚시인의 조난시 구조장비들을 항상 선박에 비치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출조하는 해역은 감성돔의 산란장으로 최근 감성돔의 산란이 끝나는 시기라 많은 낚시인들이 감성돔낚시를 시도하고 있으며 덤으로 벵에돔과 농어등도 함께 노리고 있다고 하였다.

낚시선은 생각했던 것과 같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르면서 나아갔다. 곳곳에 많은 낚시인들이 방파제낚시, 갯바위낚시, 해상의 좌대낚시, 선상 배낚시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용원 앞바다 또는 녹동, 완도 앞바다와 같은 내만에 위치하였다. 나카에노시마에 10여분 만에 도착하게 되었다. 일본인 류씨는 도착 즉시 이곳저곳 밑밥을 부지런히 뿌려주고 있었지만 성질 급한 필자는 재빨리 사진 촬영을 마치고 W사의 "다이야마스타 원도 2호대"에 D사에서 특별 제작한 "동화 GREX 구멍찌"로 벵에돔 낚시채비를 만들어 제일먼저 채비를 날렸다.

첫 입질을 받았으나 올려보니 손바닥만한 쏨벵이 새끼였다. 크릴미끼에 굵은 볼락과 여름고기인 용치놀래기(술벵이) 등 잡고기들만 계속 물고 늘어졌다. 4명이 분산하여 낚시를 시도하였으나 남녀군도 출조를 위한 워밍업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낚시에 임하였다. 오전 11시경,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필자의 궁금증을 다시 류씨에게 문의하게 되었다. 일본 큐우슈우 지방의 감성돔 산란철은 4월~5월경이었고 산란철 감성돔 낚시를 금지하는 법은 우리나라와 같이 없었다. 많은 낚시인들이 스스로 자제하고는 있지만 어자원 보호를 위하여 치어 방류사업을 많이 하고 있고 일본열도의 감성돔 산란철이 지역에 따라 다르므로 굳이 감성돔 산란철에만 낚시를 금지하는 일은 없다고 하였다.

"우리 부산의 경우 지난 4월 하순, 갯바위 낚시인들의 안전을 위하여 중간 기착시설이 없는 갯바위의 하선을 전면 금지 시켰는데 일본의 경우 안전 또는 기타 유사한 사유로 갯바위 낚시를 금지시킨 적이 있었느냐"고 묻자 "전혀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오히려 "수천만년 해수에 갈고 딱인 갯바위만큼 탄탄한 곳이 있느냐", "높은 방파제나 테트라포트의 낚시는 더욱 위험하다"고 반문하였다. 또한 천혜의 자원인 갯바위에 인위적인 기착 시설을 한다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하였다.

낚시인의 안전에 대하여는 "허가받은 선주와 선장 그리고 낚시인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기상이 나쁘면 낚시인을 하선시키지 않고 갯바위에 낚시 중인 낚시인들도 즉시 철수시킨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금전 타고 온 배의 선장이 근해와 원해로 허가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만약 나카사키현에서 원해의 허가를 받아 후쿠오카현으로 낚시인들을 태워가 하선시킬 경우 가능한지"를 묻자 "원해 허가를 받은 선박에 한하여 가능하다"고 하였다. 정원초과 문제에 대하여는 "일본의 경우 대체로 승선 정원이 12명이며 이는 근해와 원해가 같다"고 하였다. "선주나 선장은 정원을 초과하는 일이 없고 정원을 초과하였을 때에는 과중한 벌금을 문다"고 하였다.

"운항(運航) 허가는 현(縣)에서 단속은 해상보안부에서 실시하고 있다"하며 "남녀군도 출조시 해상보안부 에서 정원 초과여부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심지어는 갯바위에 하선하여 낚시 중인 낚시인에게 타고 온 배에 몇 명이 함께 왔는지를 점검하고 갯바위에 하선한 낚시인들의 총수(總數)와 선박의 수를 나누어 정원초과 여부를 정확하고 철저하게 체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낚시인의 철수가 어려울 경우 해상보안부에 연락하면 즉시 헬리곱터가 출동하여 낚시인들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고 하였다. 낚시인들의 안전장구 중 구명복과 갯바위 신발의 착용은 의무화되어 있으며 모든 낚시인들 역시 갯바위 낚시의 필수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빗방울이 가끔씩 떨어졌다. 일행은 계속 밑밥을 뿌려가면서 주변 갯바위를 노렸지만 벵에돔의 어신은 없었고 잡고기들만 입질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팔뚝만한 농어들이 와글와글 거렸으나 크릴새우를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후 잔뜩 흐렸던 하늘은 일기예보와 같이 비를 뿌리기 시작하였다.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자 이내 낚시배가 손살같이 달려와 낚시인들을 철수시켰다. 철수하는 선상에서 일본 낚시인들을 보니 우리나라 낚시인들과 같이 굵은 감성돔과 농어를 쿨러에서 꺼집어내 무게를 달아보고 길이도 제어보고 무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농담을 하며 마냥 즐거워하였다.

바다에 나가 채비를 던져놓고 물 속 고기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신을 받은 후 실랑이를 하면서 원시의 참 맛을 즐기며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또한 우리 낚시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대물에의 기대와 잡은 고기의 기록갱신 등 즐거워 하는 모습..., 역시 우리 낚시인들과 똑 같았다. 후라타니 낚시점으로 철수하여 낚시점 내에서 따끈한 차와 다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 낚시인들 역시 한국의 바다낚시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고기가 잡히고 어떤 계절에 어떤 포인트가 좋느냐?는 등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인에게 널리 알려진 추자군도, 제주도 그리고 남해안 곳곳에서 감성돔, 돌돔, 참돔 등 낚이는 계절과 숱한 포인트 등이 즐비하다"고 말하였지만 "한국에는 정부의 각별한 배려로 위험한 갯바위에 노출되는 낚시인들의 보호를 위하여 갯바위낚시를 금지하고 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기회가 있으면 한국으로 낚시오라",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면서 대상 낚시 어종과 시즌 그리고 채비 등이 대체로 같은 것 같으므로 한국에 와서 같이 어울려 보자"라고 말하고 오오꾸보 마찌 시보노우라를 떠나 히라도구찌(平戶口)에 있는 류씨의 점포로 돌아 왔다.

저녁 6시경, 류씨와 친한 친구이자 남녀군도의 돌돔낚시에 관한 한 일가견(一家見)이 있다는 신요시야(新吉屋)씨가 한국에서 남녀군도에 도전하기 위하여 손님이 왔다는 말을 듣고 우중에도 불구하고 류씨 점포로 달려와 우리를 맞이하였다.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렸고 바람도 제법 강하였다. 오늘 밤 한국 손님이 머물 숙소를 다비라 국민숙사(國民宿舍)로 예약해 놓았다 하였고 내일 오후부터 이곳 큐우슈우 지역의 기상이 호전될 것이라는 오후 5시 발표 기상예보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날씨가 호전된다는 말에 남녀군도의 출조가 가능할 것 같은 기대감, 우리 장비로 일본 바다의 돌돔을 혼내주고 싶은 필자의 야망,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남녀군도로 먼저 날아가 있었다.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あじか磯釣センタ)에서 시바야마 부인을 만나 내일 남녀군도 출조여부를 타진하였다. 우리 일행 3명으로는 배를 띄울 수 없었으나 다행히 오오사카(大阪)에서 6명의 낚시인이 남녀군도 출조를 예약하였고 우리 일행 4명(류씨 포함)과 히라도의 낚시인 2명이 합류하여 정원 12명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내일 날씨까지 호전된다는 예보가 있어 출조 일정이 잡아두었다고 말하였다. 신요시야씨가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남녀군도에 대한 정보와 경험담 등을 들은 후 밤 11시가 넘어 다비라 국민숙사(國民宿舍)에 둘째 날 밤, 무거운 몸을 눕히게 되었다.

'95년 5월29일(월, 음력 5월1일, 7물때, 비온 후 오후부터 갬)

잠자리가 바뀌어서 인지 밤새 여러번 잠에서 깨어나 깊은 잠에 빠지지 못했다. 몇 번이고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 보았지만 청성스럽게 밤새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 5시경, 일찍 일어나 짙은 안개에 쌓인 히라도 대교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너무 짙은 안개와 계속되는 비로 출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TV 뉴스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일기예보로는 오후부터 비는 멈추지만 오도열도쪽은 파랑이 예상된다고 하였다. 파랑주의보가 발효될 경우 배를 출항 시킬 것인지?" 궁금하였다. 가볍게 아침을 먹은 후 짐을 챙겨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로 향하였다.

아침 8시경이었으나 문이 굳게 잠겨져 있었다. 인근에 있는 류씨 가게로 짐을 옮겨 놓고 전화로 남녀군도 출조를 마치고 돌아 온 시바야마 사장에게 재확인하였다. "날씨가 회복되어 오늘 출조한다"라고 말하였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날아 갈 것 같았다. 분주하게 음료수와 비상식량 등을 준비한 후 장비를 옮기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남녀군도에 발을 내려놓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제3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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