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돔 좀 된다는 곳은 어딜가나 왁작지껄하게 낚시인들이 붐빈다. 부산 근교는 이제 가기가 두렵고 거제는 물론이고 통영이나 여수, 녹동과 완도는 물론 진도(珍島)로... 어딜가나 낚시인들 들끓는다.
추자군도는 더하고 머나먼 가거도나 태도 역시 포인트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낚시꾼 좀 덜 붐비는 곳이 없을까?" 그리고 "어디 좀 조용하게 낚시할 곳이 없을까?" 요리조리 머리 굴리던 끝에 모낚시 잡지사의 사장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곳, 자신도 일년에 한번정도 이곳으로 출조를 하지만 언제나 화려한 손맛을 보여주는 곳, 해남(海南)을 지나 진도로... 운영자에게 미지의 땅이며 낚시인 덜 붐빈다는 가학이란 곳을 국내 최초 바다낚시 전문지의 보도를 위해 출조를 결정하였다.
'96년 11월이었다.
진도 가학?, 정말 생소한 곳이었다. 그곳은 운영자가 자주 다녔던 진도(珍島) 남서쪽 독거군도(獨巨群島)나 관매도(觀梅島)쪽이 아니고 운영자 뿐만 아니라 부산낚시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진도의 서북쪽 포인트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의문이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철은 맞는지?, 포인트 될만한 곳이 있는지?" 지도를 펴 보아도 섬 이름도 제대로 없었다. 해도(海圖)를 구해 펼쳐보니 이름도 처음 들어 본 섬들이 꽉 차 있었다. 수로국 발표 물때표를 보아도 어떤 물때를 적용하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 좋다. 일단 가보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함께 출조하려고 계획하였던 L씨와 일행 2명이 갑자기 개인 사정으로 출조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은 후 필자와 후배 B씨, 그리고 모 낚시잡지사의 P기자 3사람이 승용차 한 대에 장비를 가득 싣고 난생 처음 가보는 진도 가학이란 곳을 찾아 야밤에 출발을 감행하였다. 자정이 가까워 올 때 쯤 섬진강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역시 많은 낚시인들이 붐비고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며 내려가야 할 코스를 다시 점검하였다. 평소 진도권 출조는 관광버스를 이용하였으나 승용차로 직접 진도(珍島)를 향하는 것은 무척 오랫만이었다. 진도 가학의 P선장댁에 도착할 예정시간을 새벽 4시경으로 잡고 천천히 내려가기로 하였다.
순천에서 벌교, 보성까지 국도의 확장 공사가 일부 완공되어 쾌속 운행이 가능하였다. 새벽 2시를 넘기고 난 후, 운전을 하는 B씨의 졸음을 쫓기 위하여 갖가지 낚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남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해남과 산이 분기점에서 이정표를 보고 진도쪽으로 진입하였다. 뒷자석에 누워 있던 P기자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캄캄한 국도를 두 사람이 소근거리며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부터 둘은 완전히 뭔가에 홀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졸음이 오지 않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길을 잘못 접어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심야시간, 해남을 지나자 이상하게 인가(人家)는 없고 허허벌판에 던져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달렸지만 왕래 차량도 전혀 없었고 도로 역시 생소한데다 끝없이 그 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이 느껴졌다. 길을 물어볼 집도 사람도 없었고 국도에는 이정표도 없었다.
생전 처음 온 길로 자꾸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로 진도권을 출조할 때 이 시간대는 모두들 잠들었을 시간대였다. 진도권으로 여러차례 출조하였지만 승용차로는 모처럼 출조라 후배 B씨는 운영자가 안내하는 길로만 차를 몰았다. 주변의 지형지물이나 특색있는 건물이 보일 듯도 하였지만 오늘 밤은 아무것도 눈에 익는 것이 없었고 모두 생소하였다. 한참 내려가다가 갑자기 꼭 뭔가에 홀려 들어가는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 생각하고 온 길로 되돌아 가서 이름모를 마을 입구에 있는 지서(支署)를 찾았다. 의자에 기대어 책을 보고있던 지서의 순경에게 "진도대교로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그러나 순경은 "아저씨가 가던 길로 계속 올라가면 방조제가 나오고 방조제에서 우회전하여 곧장 내려가다가 다시 좌회전하여 내려가면 진도대교가 나온다"고 말하였다. 방조제??... 진도가는 길에 방조제가 있었나?
안내받은데로 계속 길을 따라 달렸다. 오른쪽으로 생전 처음보는 휘영찬란한 거대한 도시가 바라보였다. 평소 버스로 진도를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길이라 순간, 또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였지만 곧장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하염없이 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렇지만 동서남북을 가름할 수 없었다. 지서에서 안내받은데로 오른쪽으로 방조제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곳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계속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느듯 새벽 3시를 넘겼다. 1시간동안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였던것 같았다. 십여분간 내려가다 보니 또 지서가 보였으나 왠지 내려 길을 물어보기가 싫었다. 제대로 길을 찾아 온 것 같은 느낌이라 그냥 달려 갔다. 이정표가 없어 계속 길을 따라 멍하니 내려 가다보니 삼거리가 나타났다. 그러나 삼거리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길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지도를 펼쳐보니 화봉이란 곳에서 진도대교로 내려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었기에 이정표에 표시된 화봉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바로 찾아온 것 같았다는 안도감으로 쾌속 운행하였다. 화봉을 향하는 국도로 접어들자 역시 이정표가 거의 없었고 칠흑같은 어둠 속을 무작정 달려나가는 것같이 느껴졌다. 곧장 달리다 갑자기 도로가 좌측으로 90도로 꺽이는 곳이 나타났으나 좌회전 안내 표시판이 없었다. 이곳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승용차는 약 20여메타 이상 미끄러지면서 농수로(農水路)로 쪽으로 내리박히고 말았다. 순간적이었지만 차체 밑에서 요란한 소음이 나면서 차는 정지하였다. 갑자기 뒷통수를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까만 하늘에서는 파란 형광빛을 발하는 케미컬라이트가 무수히 흔들이고 있었고 계속 뭔가에 홀린것 같은 몽롱한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내려보니 차체 밑 중앙 부분의 반정도가 흙바닥과 붙어 버렸고 조수석쪽 타이어는 허공에 약간뜬 상태였다. 앞바퀴는 도로에서 이탈되면서 차체는 절반이 내려앉은 사고였지만 밭두렁에 완전히 처박히지 않아 대형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 이정표 없는 급커브 도로상에는 공사 차량들이 흘린 잔자갈과 모래들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승용차는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후진 기어를 넣어 차를 후진하려고 해도 차체 하부 절반 정도가 흙바닥에 붙어버려서 인지, 아니면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동력이 앞바퀴에 전달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흙바닥에 붙은 차체 하부를 띄우기 위하여 손으로 흙을 파낸 후 시동을 걸고 두사람은 앞에서 밀면서 후진을 계속 해보았지만 전륜구동 차량인 승용차의 앞바퀴에 전혀 동력이 전달되지 않았다. 큰 돌맹이를 주어와 앞바퀴 밑에 끼우고 또 차체 밑에 박혀있던 큰 돌맹이를 손으로 파내 차체와 떨어지게 만들어 놓은 다음 다시 후진을 시도하였지만 역시 동력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제 특별히 생각나는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B씨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휴대폰을 켜보니 써비스 지역이었다. 먼저 119구급대에 전화를 하였다. 지역번호를 잘 몰라 0632-119로 전화를 걸었더니 진도 소방파출소로 연결되었다. 우리 일행의 사고 지점을 개략적으로 설명하자 "설명을 들어니 목포쪽 같으니 0631-119로 전화하라"고 하였다. 목포소방서로 전화를 해 우리 사정을 얘기하자 새벽녘 불청객으로 취급,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다친 사람이 없으면 빠진 차량은 정비공장의 견인(레카)차를 불러 견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맞는 말이었다.
야밤에 별다른 할 말이 없었다. 처음 가보는 미지의 새로운 포인트 답사를 앞두고 뭔가 야무지게 꼬이기 시작하였다. 동행취재를 먼저 계획한 일행이 부도낸 것까지는 좋았다. B과장과 P기자 3명이 강행군을 결정하고는 야밤에 머나먼 길을 달려왔는데 진도대교를 조금앞둔 곳에서 뭔가에 홀렸는지 길을 잃고 밤새 다람쥐처럼 맴돌다가 설상가상으로 승용차가 밭두렁에 빠져 퍼져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진도 갯바위를 눈 앞에 두고 쉽게 포기할 운영자가 아니다. 사람 안다친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휴대폰을 계속 돌려대기 시작하였다. 0661-114로 목포쪽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 전화번호를 문의하였는데 전화 교환양이 잠에서 막 깨어난 탁한 목소리에다 짜증스런 목소리를 섞어 큰소리로 쏘아 붙인다. "여기는 순천이예요, 순천!, 정비공장을 찾을려면 위치를 잘 알고 전화하세요"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갑자기 목포의 지역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기가 치밀었다. 다시 0661-114로 전화를 걸었다. 교환양이 전화를 받자 말자 "아니 여보세요 말이 다 끝나지 않았는 왜 전화를 끊었습니까?"하면서 따져 물었다. 그리나 교환양이 또 짜증스런 목소리로 쏘아 붙인다.
"아니! 내가 언제 전화를 끊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교환양의 목소리가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을 바꾸어 "미안합니다,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밤새 고생이 많습니다. 목포 지역번호가 몇번입니까?" "0631 이예요" "예, 0631요, 고맙습니다." 아침 물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런 상황에서도 마음만은 바빴다. 목포 교환양에게 정비공장의 전화번호를 알아 내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알려주는 모 레카에 전화를 하여 긴급 구조를 요청하였다. 정비공장에서는 정확한 위치를 묻는데 우리 승용차가 빠져 있는 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기억을 드듬어 "우리가 내려 올 때 왼쪽으로 불빛이 휘영찬란한 도시가 보였고 계속 내려오자 방조제가 나타 났으며 이 방조제를 돌아... 우로, 좌로 내려오다가 화봉삼거리에서..." 계속 드듬거리면서 우리가 왔던 곳을 알려주었다.
벌써 새벽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세사람은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차안에 웅크리고 앉아 정비공장의 레-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1분이 꼭 1시간이 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30여분간 칠흙같은 밤, 적막속에서 기다려도 레-카차는 오지 않았다. 더욱이 올 것인지 오지 안을 것인지를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P기자도 운영자만큼 답답하였는지 "다시 한번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다시한번 시도해보자"고 말할 참이었는데 텔레파시가 통한것 같았다. 다시 시동을 걸고 핸들을 우측으로 최대한 감아 후진을 시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앞바퀴가 약간 공회전을 하였다.
순간, 세사람은 "희망있다."고 판단하고 오른쪽 앞바퀴의 움직임을 예의 관찰해 보니 차체 밑의 크다란 바위덩이를 제거해야 할 것만 같았다. 큰 바위 위에 차체하부가 얹혀져 있고 오른쪽 앞바퀴가 허공에 떠있어 공회전을 하는것 같아 주변에 있는 쇠조각을 주어 차체밑의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팟을까, 커다란 바윗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P기자가 있는 힘을 다하여 바위돌을 계속 흔들어대니까 큰 돌맹이가 흔들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 바위 아래쪽 흙을 두 손으로 미친듯이 파내자 차체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얼마나 기쁜지 민장대로 대물감성돔을 걸어낸 기분이라고 모두들 중얼거렸다.
차체를 걸치고 있던 큰 바위돌을 빼내고 나서 다시 시동을 걸어 후진을 시도해 보았지만 계속 공회전만을 거듭하였고 앞바퀴에 동력이 전달되지 않았다. 후라쉬를 들고 주변을 밭을 뒤지니 마대자루가 있었다. 머리를 굴려보니 "최후의 방법으로 쟈-키로 앞 타이어를 들어 놓고 마대자루에 흙을 채워 앞바퀴 밑에 밀어 넣은 다음 다시 후진을 시도해보자"는데 의견을 일치하였다. 트렁크에 있는 낚시 장비를 모두 끄집어내 놓고 쟈-키로 앞타이어 쪽을 들어 올렸다. 마대자루에 흙을 손으로 퍼담고 굵은 돌맹이들로 채워 넣은 다음 앞타이어 밑에 눌러 놓고 쟈-키를 풀었다. 최후의 방법으로 모든 아이디어를 죄다 동원하였다.
후진 기어를 넣고 악세레타를 천천히 밟자 우측 앞바퀴가 마대자루를 박차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와! 드디어 성공했다!" 그러나 탄성을 지르며 다시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괜시리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였다. "만약 정비공장의 레-카차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심야에 할증료까지 줘서 보내야 하니까...", 그렇지만 농수로에 빠진 승용차를 어렵게 움직이게 해놓고 무작정 정비공장의 레카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더욱이 잠시 후면 해가 떠올라 아침 물때를 놓치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아침 물때가 기다림으로 36계다." 재빨리 짐을 드렁크에 밀어 넣고 진도대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빽밀러를 계속 바라보았지만 레-카 차는 따라오지 않았다. "도둑이 제발에 질린다고..." 그래도 레-카차가 나타날까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그렇지만 초행길 국도(國道)에서 또 다시 미끄러질 것 같은 우려 때문에 제속도를 낼 수 없었다. 한참동안 달렸을까? "와이고, 또 길을 잘못 들었데이"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비포장 소로인 막다른 도로가 나타나면서 도로가 없다는 표시판이 붙어 있었다.
온길로 되돌아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빨리 되돌아가 화봉삼거리 못미쳐 있었던 지서로 가서 길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다시 온길을 되돌아 화봉 삼거리를 경유, 파출소로 찾아갔다. 그런데 "우째 이런 일이..." 지서 앞에 정비공장의 레-카차가 비상등을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서 있었고 운전기사는 내려 지서에서 길을 묻고 있는것 같이 보였다. "죄짓고는 못산다"는 말이 맞다. 이 상황에서 왔으니 "안되겠다, 길을 몰라도 파출소에 물어볼 수 없었다. 계속 고(Go)!", 간단하게 결정짓고 처음 왔던 길로 차를 몰아 나갔다.
그러나 계속 올라가면 또 방조제 쪽으로 가는 길이므로 어디서던지 길을 물어야하는데 꼭두새벽이라 어디 길을 물어볼 집도, 사람도 없었다. 하염없이 방조제쪽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같은 방향으로 오트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을 발견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오트바이는 갑자기 속력을 내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아마 우리 승용차가 가까이 다가가니 공포에 질린 듯하였다. 클락션을 울리고 가까이가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진도대교 가는 길을 물어보니 오트바이는 속력을 낮추었다. 진도대교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길을 잘못 들었으니 다시 되돌아 계속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화봉쪽으로 가지말고 계속 직진해 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돌아 왔던 길과 또 일치하는 것이었다.
차를 되돌려 온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조금전 파출소 앞에서 길을 묻고 있던 정비공장의 레-카차가 이미 떠나고 없었다. P기자가 내려 진도대교 가는 길을 다시 물어보니 "이 길을 따라 10여분 내려가면 진도대교가 나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20여분을 계속 내려가도 진도대교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마을로 들어가 사람을 찾아 길을 물어 진도대교를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진대대교를 넘을 수 있었다. 진도 가학 도착예정 시간을 새벽 4시경으로 예상하고 왔는데 이미 6시가 지났다. 진도읍을 경유하여 계속 남쪽 서망을 향해 순조롭게 운행하였다. 지도상에 서망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석교"란 곳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기에 이정표를 한 곳도 빠짐없이 쳐다보고 재점검하면서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가도 석교란 이정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계속 내려가다 보니 어느듯 팽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훤해지고 마음은 화급을 다투고 있는데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으니...
팽목 입구에서 또 길을 잘못들었다고 판단하고 차를 급히 되돌려 다시 진도읍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내려올 땐 분명히 보지 못하였던 경찰 순찰차가 도로변에서 비상등을 번쩍번쩍 빙빙 돌려가면서 서 있었고 도로옆에서 경찰관 2명이 내려 오른쪽 언덕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런 차에서 내려 "과녁으로 갈려면 어디에서 들어가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경찰은 잠시 생각하더니 길을 잘못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과녁으로 갈려면 잘못 왔어요, 벌교에서 고흥 반도로 내려가야 하는데..." 하면서 "이곳에서 두세시간 가야한다"고 하였다. "아니, 이럴 수가..." 밤새 뭔가에 홀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왔단 말인가?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 불을 붙이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말을 잘못하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과녁이 아니고 가학을 찾아가야 하는데 밤새 잠을 못자고 올라오다 보니 착각을 하였읍니다. 가학으로 갈려면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그때서야 교통 순경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 길로 계속 따라 올라가면 면소재지가 나오며 말로써 설명하기 어려우니 그곳에서 다시 길을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저 언덕아래 차가 한대 굴러 떨어져 있는데..." 하면서 순찰차 위에 있는 서치라이트를 언덕 아래로 비추었다.
언덕 아래에는 차종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소형 승용차가 마치 벽에 던져 찌그러진 삶은 계란처럼 네바퀴를 하늘로 향하고 밭에 팽개쳐져 있었다. 운전석 의자가 뒤로 제껴져 있었고 운전자는 앞좌석에 누운듯 차체에 끼여 있었다. 앞 유리창은 모두 깨어졌고 운전자의 왼손은 깨어진 차창밖으로 나와 축 쳐져 있었다. 조금전 농로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우리의 모습이 불현듯 떠 올랐다. 잠시후, 젊은 경찰관이 "내려 가보니 아직 운전자는 살아 있는것 같은데 앰브란스가 도착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들것을 들고 내려가 구조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교통사고를 여러번 목격한 운영자는 "사람이 차에 끼여 있을때 비전문가가 피해자(사고자)를 잘못 건드릴 경우 혈관이 터진다던지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더 큰 문제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앰브란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충고하였다. 그들도 잠시 생각하다가 "아저씨 말씀이 맞습니다, 앰브란스가 오기를 기다리도록 하겠다" 고 말하였다.
어느새 아침 7시, 날이 밝아 왔기에 물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양해를 구한 다음 이들을 뒤로 하고 면소재지를 향해 달렸다. 그동안 보아 왔던 엉터리 "전국 도로안내도"를 던져버리고 왔던 길로 되돌아 달려오다 보니 앰블란스가 요란한 경적소리를 내며 이들을 구조하러 달려가고 있었다.
면 소재지(所在地)에 도착하자 몇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어 가학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 받을 수 있었다. 어렵게 가학이란 곳에 도착하였다. 부산에서 진도 가학까지의 거리는 380Km, 뭔가에 홀려 밤새 헤매였던 소요시간은 무려 9시간30분...
그러나 낚시인들에게 생소하고 조용한 미답 포인트로 알고 찾아왔던 이곳 가학은 미지의 낚시터가 아니었고 전남, 광주지역의 낚시인들이 간편하게 장비를 챙겨 주말 나들이를 다니는 동네 낚시터라 기대는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미답 포인트는 정말 없는 것일까...?(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