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여름 휴가때였다.
휴가장소를 물색하던 중 전남 태도에서 "밤낚시에 민장대 찌낚 채비로 40-50센치급 돌돔이 갯바위 가 쪽에서 물고 늘어졌고 조금 멀리 릴 찌낚 채비를 던져 넣었다 하면 1메타급 농어가 물고 늘어졌다"는 H낚시 점주의 최근 조황을 듣고 급기야 여름휴가를 이곳으로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전남 태도는 필자에게 미지의 섬이었고 초행길이었다. 낚시 점주의 확실한 최신 조황 보고에다 초행이라는 부푼 기대감이 가슴 밖까지 미어져 나와 며칠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번 여룸휴가의 대상어종은 돌돔, 참돔, 농어 3가지 어종이다."로 결정하고 있는 장비는 모두 총동원 시켰다. 가는 길도 너무나 험난하였다. 부산에서 "목포"까지 버스로 여섯시간 반..., 그리고 "목포"에서 화물선 짐 칸에 몸을 눕히고 무려 9시간 반..., 하지만, 태도보다도 더 아래쪽에 있는 가거도(소흑산도)까지 화물선을 타고 여러번 다녀왔고 파도 밭에서 제시간에 철수하지 못하고 밤새 컷 떠다닌 적도 여러번 있고 하니 이 정도는 배타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여름 사나이들의 화끈한 한판 승부, 파괴적인 손 맛을 제공하는 무시무시한 돌돔, 농어가 있으니 이 정도는 능히 감수할 수 있었다.
여름휴가는 현지 3박 일정이었다. 여름 낚시 때 장비가 많으면 이들을 옮긴다고 진을 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미리 조우 3명이 장비를 간소화시키기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개인별 준비사항을 분담하였고 장비 간소화를 위하여 논의하였지만 출조 당일, 낚시점 앞에는 이삿짐보다 많은 장비들이 쌓이고 말았다. 그런데다 스치로폼 박-스는 목포에서 별도로 2개나 구입하여 얼음까지 짜넣기로 하였으니 짐이 너무나 많았다.
부산에서 밤새 달려온 낚시버스는 새벽녁에 목포항에 도착하였다. 새벽 6시경, 목포항을 출발한 화물선은 굼벵이 걸음같이 어슬렁거리면서 내만의 섬사이를 지나 태도를 향하였다. 화물선의 화물칸 바닥에 누워 주리를 틀기를 9시간...,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지겹도록 항해하였다. 그러나 처음 본 태도의 아름다운 모습에 장시간 배를 타고 왔던 피로가 싹 가시고 말았다. 태도와의 첫 대면이 무척 환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태도 서쪽에서 외도를 거쳐 올라온 뱃길에는 올망졸망한 여와 푸른 잔디가 뒤덮인 섬허리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평온하게 보였다. 바다는 온돌방보다 더 평탄하게 잠잠하였다. 해수면 위에는 멸치 떼가 와글거린다 싶더니 이내 굵은 농어 떼들이 멸치 떼를 가로지르며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있었다. 지친 몸에는 갑자기 생기가 돋아났다. 빨리 저 놈 농어들에게 맛있는 멸치 미끼를 던져 주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 잡히기 시작하였다. 이때만 해도, 처음 가본 태도는 정말 원시의 섬 그 자체였다.
우리 일행 3명은 외도쪽에 하선하였다. 배 위에서 항해할 때와는 달리 섬에 내려보니 바람한 점 없었고 갯바위는 불볕에 익을 데로 익어 한증막 찜통보다 더 뜨거웠다. 대형 쿨러가 3개, 낚시 가방이 3개, 낚시대 케이스가 3개, 얼음만 가득 채운 스치로폴 박-스가 2개, 대형 차양막 1개, 텐트, 여름용 침낭, 부식을 담은 보조가방, 기타 의류 등 소모품을 담은 보조가방 3개, 1말들이 물통이 3개... 헤아리기도 힘든 많은 장비들을 배에서 받아 내려 갯바위로 옮겨 놓는 과정에서 벌써 지쳐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우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시절에는 낚시배(현지 어선) 사정이 좋지 않았고 포인트에 내리면 3일 동안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힘들게 포인트를 이동하지 않아도 한 자리에서 물때에 따라 얼마던지 손 맛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장비와 식량을 갯바위에 내려 놓은 후 3일간 야영낚시를 하였다. 장비를 모두 내린 후 본부에 큰 차양막을 설치하였다. 쿨러, 장대, 미끼만 낚시하는 곳에 두고 스치로폼 박스와 각종 식량, 야영용품, 식수 등은 높은 곳으로 옮겨둔 후 불같은 땡볕도 마다 않고 채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4칸 민장대로 맥낚시를 시도한 조우 K씨는 마치 돌맹이로 장대를 두들겨 맞는 듯한 강렬한 입질을 받았고 즉시 챔질을 하였으나 초릿대가 아예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장대를 제대로 세워보지도 못하고 강한 당김에 목줄은 달아나 버렸다. "야, 요놈들이 첫 인사를 확실하게 한데이~..." 돌돔인지, 혹돔인지 장대를 담그자 말자 좌우지간 무지막지한 입질이 들어 오기 시작하였다.
해질 녁 역시 4칸 민장대로 맥낚시를 시도하던 조우 L씨는 40~50센치급 참돔을 무뽑 듯 그냥 뽑아 내었다. 바로 발 밑에 돌돔과 참돔이 와글거렸다. 필자의 릴찌낚 채비에는 농어가 물고 늘어졌다. 난생 처음 신기한 광경도 목격하였다. 농어 밥이 되기 싫었던 멸치 떼들이 갯바위로 튀어 올라와 퍼덕거렸고 갯바위 틈새에서 이때를 기다리면서 웅크리고 있던 게들이 "이때다!" 싶어 모두들 기어 나와 양쪽 집게발에 멸치를 낚아채 갯바위 홈통에서 온통 포식하고 있었다. 게가 집고 있던 산멸치를 뺏아 농어바늘에 미끼로 끼워 릴 찌낚을 시도한 필자는 계속되는 농어들의 입질에 비지땀을 흘려 데었다. 미끼로 준비한 참갯지렁이나 청갯지렁이가 따로 필요없었다.
여름낚시 때 쿨러를 자주 열고 닫는 것이 좋지 않으므로 조우 L씨의 쿨러에만 첫날 낚은 고기들을 보관하기로 하였다. 첫날 초저녁 물때까지 낚은 돌돔, 참돔, 농어가 벌써 L씨의 대형쿨러를 꽉 채워 넘겼다. 해가 떨어진 후에도 한증막 같은 무더위는 계속되었다. 밤 10시경, 높은 곳으로 올라가 텐트를 설치한 후 모두들 범벅이 되어 버렸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시원한 캔 맥주을 한잔 걸친게 화근이 되었는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하였고 모두들 탈진 상태가 되어 텐트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다가 너무 잠잠하여 이상한 예감까지 들었다. 잠시 눈을 붙였을까, 찌는 듯한 열대야와 모기떼의 무분별한 헌혈 요구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없었다. 피곤하였던지 조우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진 듯 하였다. 혼자 살며시 텐트 밖으로 나가 담배 한대 피워 물고 아래쪽으로 휘라쉬를 비춰보니 낚시하던 장소에 쿨러와 낚시장비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다. 무더워 잠도 오지 않아 혼자 내려가 흩어진 장비들을 정리하였다. 쿨러 2개와 낚시장비들을 더 높은 곳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고기가 가득 담긴 L씨 쿨러는 너무 무거워 혼자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바닥에 끌다시피 당겨 갯바위 안쪽으로 약간 옮겨 놓았다. 해수면에서 약 3메타 정도되는 곳이니 밤새 높은 파도가 덮친다 해도 이상이 없을 것 같았다. 흐르는 땀을 식히고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가 누웠으나 깊은 잠에 빠져들지 않았다.
잠시 단잠에 빠진 듯 하였다. 잠결에 "우루루~쿠궁"하면서 저음을 내는 이상한 파도 소리가 들였고 깜작 놀라 일어나게 되었다. 꼭 꿈을 꾸는 것 같았지만 갯바위를 진동시키는 분명한 파도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경이었다. 잠시 후 또 다시 크고 우람함 파도소리가 들렸다. 조우들도 잠결에 파도소리를 들었는지 모두 일어났다. 음산한 기분이 들어 텐트 밖으로 나가 낚시장소에 손전등을 비춰보니 낚시하던 주변이 너무 깨끗하였다. 분명히 L씨 쿨러를 갯바위 안쪽으로 이동시켜 놓았는데 쿨러도 없고 피보다 귀한 물통 2개와 각종 낚시장비들도 사라져 버렸다. 바다를 향해 비추어 보니 30여메타 밖에 쿨러와 물통과 각종 낚시장비들이 둥둥 떠있었다. 순식간에 갯바위를 덮친 큰 너울파도였다.
원도 낚시에서 순간적으로 갯바위를 향해 밀고 올라오는 너울파도로 낚시인들이 실종되는 사고를 익히 많이 듣고 있었다. 그렇게도 잠잠하였던 바다에 갑자기 밀려든 너울파도는 첫날 잡은 고기들과 각종 낚시 소품, 여름낚시 때 무엇보다 귀한 물통등을 모조리 휩쓸고 내려가 버렸다. 만약 그곳에서 밤낚시를 계속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울파도 한방에 3명의 낚시인이..., 피할 시간도 없고 높은 너울파도를 이길 힘도 없는 갸날픈 낚시인, 아니, 피로에 지친 나약한 낚시인으로서 대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서는 불가항력적 일 수밖에 없는 순간적인 사고였다. 이후 여름 갯바위를 찾을 때 만조 선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장비를 옮겨 놓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94년 여름휴가 때 다시 태도를 찾게 되었다.
필자와 여러해 전 태도로 출조하여 너울파도에 쿨러와 낚시장비들을 잃어버린 조우 L씨, 그리고 원도의 대물낚시를 처음 찾아 나서는 직장 후배 S씨로 역시 3명이 조를 편성하였다. 조우 L씨, 안경점을 경영하는 오랜 친구이다. 그러나 여름 대물낚시를 여러번 떠났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옳은 장비를 구입하지 않고 감성돔용 카본 민장대와 원투용 릴장대만 가지고 대물에 도전하는 "전용장비 구입거부" 스타일 이었다. 반면, 직장 후배 S씨는 돌돔과 농어 등 여러 종류의 전용장비를 확보하여 기회만 있으면 언제나 대물들과 격돌한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제대로 원도의 여름낚시를 떠나본 경험이 부족하였다 .
그 해 휴가 때 도전하는 곳은 태도의 부속여 간여로 결정하였다. 말로만 들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태도 간여는 오지 중의 오지로 하태도까지 낚시유람선으로 가서 이곳에서 다시 현지 배를 이용하여 서쪽인 중국 쪽을 향해 또 1시간 정도 나아 가야하는 곳이었다. 가거도, 만재도, 태도등지를 두루 다녔지만 이곳은 또 처음 접하는 곳이라 대상 어종을 결정하고 장비를 다시 가다듬지 않으면 안되었다.
진도(珍島)의 서망에서 하태도로 향하였다. 하태도까지는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아 이제는 그렇게 원도(遠島)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주 대상 어종은 돌돔이었고 농어와 부시리 등은 양념으로 잡을 계획이었다. 이해 여름,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평소 그렇게도 흐린 남해서부 앞바다가 맑게 보이더니 남해서부 먼바다에 속하는 이곳에 도착해보니 물이 맑다 못해 투명할 정도라 10m정도의 깊은 바다 속에 훤히 들여다 보였다. 하태도 방파제에서 현지배를 갈아 타기 위하여 방파제에 장비를 내린 일행들은 모두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맑은 물로 인하여 조황에 미칠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지배에 장비들을 옮겨 싣고 하태도 마을을 돌아 서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자 안개와 다소 높은 너울파도가 밀려 들고 있었다. 30여분 달려 나가자 안개속에 쌓인 조그만 돌 섬이 눈앞에 다가왔다. 가까이 접근하니 간여는 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함께 가는 일행은 9명이었고 우리 일행은 중간에 가장 낮은 넙덕이에 내리게 되었다. 내려서 보니 예상했던 데로 10m 물밑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였다. 돌돔낚시를 시도해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일단 장비를 높은 곳으로 옮겨 놓고 차양막부터 설치하였다. 필자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조우 L씨가 먼저 루어채비를 하여 바다를 향해 던져 넣었다. 그렇게도 전용 장대를 구입하라고 하였는데 크다란 프라스틱 가이드가 여러개 부착된 원투용 릴장대를 사용하였다. 후배 S씨는 돌돔 전용대에 원투채비를 준비하여 함께 낚시를 시작하였다.
작열하는 여름 탱볕은 용광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뜨거웠고 바람 한점없이 무더운 날씨였다. 높은 곳에 설치한 차양막 속에서 점심을 지으며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조우 L씨가 뭔가를 한마리 걸었다. 장대가 허리까지 휘어지는 것으로 보아 잔챙이는 아니었다. 릴링을 하면서 가까이 고기를 감아 들이자 곧바로 60~70센치급의 부시리 임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끌려오는 고기 주변에 역시 같은 크기의 부시리 떼가 미사일처럼 몰려 들었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장대를 힘차게 내리 박으며 차고 달아나는 모습이 멋있다고 외쳐 데었지만 비지땀을 흘리며 혼줄이 나고 있는 조우의 모습을 보고 그냥보고 있을 수 없었다. 밥하다 말고 코펠 뚜껑을 망치로 눌러놓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조우의 장대가 "빠~박!"하는 괴성을 지르며 세동강이 나 버렸다. 첫고기인 부시리에게 참패하는 순간이었다. 이내 원줄이 팽팽해지더니 더 이상 장대의 탄력으로 버틸 수 없게 되자 목줄이 터져 버렸다. 당황한 조우 L씨는 뭐라 할말을 잃고 필자를 쳐다보며 허탈해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튼튼한 장비를 구입하라 했는데..., 망둥어 잡는 릴장대가지고 무얼 잡겠다고..., 쯪쯪쯪..." 핀잔을 주었지만 막무가내였다. 무언가 신들린 표정으로 달려 올라 와 "보았제, 밑에 와글와글 한다, 아니 와글와글이 아니라 우글우글 한다..."고 말하면서 개구장이 같이 즐거워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야 이 사람아, 장대하나 빌려도, 아주 야무진 것으로, 빨리빨리..."
필자의 5호 장대를 꺼내 채비를 만들어 주었다. 장대가 부셔져 버렸지만 신바람이 났다. 후배 S씨 역시 부시리 떼를 보았는지 루어 채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 해 봄 허리 부상으로 당분간 허리에 무리가 가는 루어낚시를 자제하였고 계속 차양막 속에 누워 두사람의 루어 낚시광경을 구경만하고 있었다. 위에서 바라보니 부시리가 정말 많았다. 아니 넙덕이 주변에는 온통 부시리떼였고 저 멀리 잔잔한 바다에 잔물결이 일고 있는 곳도 모두 부시리떼였다. "물 반 부시리 반"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 같았다.
두사람은 부지런히 루어를 이곳 저곳으로 던지고 감아 들이기를 반복하였지만 고기 떼는 좀처럼 인조미끼에 현혹되지 않았다. 부지런히 채비를 던지고 감아 들이던 중 조우 L씨가 다시 굵은 놈을 한 마리 걸었다. 투박한 5호 장대가 허리체 내리 박히자 L씨는 있는 힘을 다해 감아 들이고 있었다. 위에서 바라보니70~80센치급으로 제법 화끈한 손 맛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후배 S씨는 장대를 걷고 고기가 물 위에 떠오르기만 기다리며 바다를 향해 뜰채를 들이대고 있었다. 처음 원도를 나섯던 후배와 조우 L씨 두 사람은 마치 환상의 콤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렵게 감아 들인 부시리를 후배 S씨가 뜰채로 떠 담아 들어 올리는데 보니 어른 장단지 보다 더 되게 보이는 크기였다. 조우 L씨는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수건으로 고기를 감아 들고 루어를 뽑아낸 후 갯바위에 머리통을 누르고 있는 사이에 후배 S씨는 살림꿰미를 준비하고 있었다.
살을 익혀 버릴 것 같은 폭염 속에서 낚은 고기를 조금이라도 신선하게 보관하려면 살림꿰미에 꿰어 바다에 던져 놓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후배 S는 살림꿰미의 스프링을 열고는 부시리의 아가미 밑으로 꿰미를 뀌었다. 둘은 정말 팀웍이 잘 맞는 것 같이 보였다. 꿰미에 고기를 꿰고 난 후 둘은 성공적으로 포획 작업을 마쳤다는 듯 갯바위 위쪽에 있는 필자에게 환한 미소를 띄워 보내면서 손가락으로 V자를 몇 번이나 신호를 보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업을 마친 후배 S씨가 살림꿰미와 부시리를 안고 바다에 풍덩 던져 넣었다. 순간, 살림꿰미에 걸린 장단지보다 큰 부시리는 바다 속으로 서서히 헤엄을 치며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 고기?..., 고기?...," 둘은 고기를 걸어 올린 후 뜰채에 담고 꿰미를 꿰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던지 살림꿰미 끝을 갯바위에 고정시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살림꿰미와 부시리를 함께 바다 속으로 수장시켜 버리는 순간이었다. 둘은 더위 먹은 사람마냥 얼이 빠져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차양막 속에서 배를 잡고 웃고 있는 필자에게 야유을 들을 것이 뻔하므로 뙤약볕에서 올라 오질 못하고 계속 부시리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조우 L씨는 뒤늦게 야무진 장비를 구입하여 호시탐탐 칼을 갈고 있다. "야, 이 친구야!, 태도 가~자~, 내 쿨러 찾으러 가자..., 내 꿰미 찾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