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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24화, TV리모컨

G 0 3,997 2006.12.04 09:57
'95년 가을, 필자에게는 무척 곤욕스러웠던 가을이었다. 승진시험(昇進試驗)이 11월로 예정되어 있었고 이 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매일매일을 밤늦게까지 책과 씨름하면서 보냈었다. 때를 놓치면 갈수록 좁아지는 승진 기회와 나이를 들어갈수록 무디어지는 두뇌로는 바짝 다가오는 후발 젊은 주자(走者)들의 추격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책을 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해서, 지난 여름 하계휴가때 낚시를 다녀 온 이후 장대를 고이 접어둘 수밖에 없었으며 직장에 연가를 내고 중앙도서관에 파묻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곧바로 도서관으로 달려 갔고 밤 10시 도서관이 끝나는 시간을 넘겨서야 집으로 돌아온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는 또다시 새벽까지 책을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생활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심신(心身)이 계속 지쳐있는 상태였으며 고독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지 않으면 안되었던 곤욕스러웠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으로 가끔씩 조우(釣友)들이 찾아와 위로하였다. 그때마다 빨갛게 감이 익어가는 어촌 마을의 가을 풍경과 시원스럽게 탁 튄 가을 바닷가의 정경, 그리고 파르스럼한 남해 바다의 물빛이 눈에 아른거리곤 하였다."가을이 한참 무르익어 가는 지금쯤 어느 곳에는 감성돔이 한참 붙을 것이고 어느 곳에서는 화끈하게 손맛을 보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끔씩 들려오는 조우들의 조황에 귀낚시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요놈의 감생이들, 어디 시험이 끝나면 보자!"면서 스스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였다.

도서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하였다. 따라서 월요일은 사설독서실을 찾아다니며 책을 보아야 했다. 10월의 어느 월요일, 자영업을 하는 J씨가 거주한 아파트 근처의 사설독서실을 자리 잡았다. 이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J씨에게 최근 조황도 들어보고 감성돔 낚시 근황을 입낚시와 귀낚시를 즐겨 보려는 필자의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 있었다. 예상했던 데로 점심 시간대쯤 J씨가 또 찾아와 점심식사를 같이하면서 필자를 격려하였고 둘은 한동안 남해안 섬을 골고루 돌아다닐 정도로 감성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잠깐의 만남이라도 그동안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틀어 박혀 비워져 있었던 한쪽 머리 속에 신선한 바닷바람을 가득 채우는 기회도 만들 수가 있었다. J씨는 원도(遠島)로 주로 다녔고 한번 낚시를 갔다하면 보통 사나흘 정도는 갯바위에 엉둥이를 부벼데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필자와는 시간을 좀처럼 맞출 수 없어 함께 자주 출조를 못하는 조우였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J씨가 필자의 눈치를 보며 가벼운 제의를 하였다. J씨의 눈에는 핼쑥한 필자가 무척 측은하게 보였는지 다음 월요일은 도서관 휴관 때 잠시 시간을 내어 동해안으로 바다 구경이나 가자는 것이었다. 전마선(뎃마) 한 척 빌려 타고 가을 백사장의 보리멸 낚시를 잠시 즐겨보자는 것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였는데 머리를 식히면서 몸을 재충전을 하고 난 후 며칠 남지 않은 시험일을 대비하여 다시 책을 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되어 동의하였다.

우리 낚시계를 둘러보면

엉퉁한 얘기지만 잠시 우리 낚시계를 돌아 보자. 우리 낚시계는 의외로 많은 낚시인들이 오직 하나 "감성돔"낚시를 위주로 하고 있다. 일부 낚시인들은 감성돔낚시 외에는 아예 낚시를 하지 않을 정도이며 어떤 낚시인들은 감성돔 낚시만이 바다낚시라고 말하는 편견을 가진 이들도 많다. 필자의 조우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여러명 있었다. 언제부터 감성돔 낚시만을 하였는지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보리멸이나 도다리낚시 등은 잡고기 낚시로 몰아 붙여버리고 초보자나 동네 낚시인들이나 하는 수준 낮은 낚시로 간주해 버린다. 그리고 자나깨나 감성돔 장대만 조물락거리는 그런 조우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런 조우들의 빈정거림에 아랑곳 없이 감성돔 시즌 외에는 철 따라 여러 어종을 대상으로 낚시를 즐기며 보리멸 뿐만 아니라 돌돔과 농어, 볼락과 망상어 그리고 참돔과 벵에돔 낚시 등 무척 다양한 낚시를 행하며 동해안에서 남해안 곳곳을 두루 찾아 다닌다. 월급쟁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다 다양한 낚시를 할 수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러 포인트로 여러 어종을 대상으로 낚시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항상, "감성돔 낚시만이 낚시가 아니다"는 생각으로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름철 동해안 보리멸 낚시도 시간만 있으면 가끔씩 떠나곤 하였다. 여름철 동해안 맑은 물에서 낚여 나오는 보리멸는 유별나게 재미를 더해주는 낚시이다.야들야들한 민물 릴장대를 흔들어대는 강한 어신과 함께 해수욕장의 미녀다운 해맑은 자태하며 깔끔한 회맛은 과히 일품이다.
동해안의 보리멸 낚시는 주로 해수욕장에서 릴 원투로 행하였다. 백사장 원투 낚시에서 낚이는 보리멸을 잔잔한 씨알이 많다. 그러나 오래 전 조우가 개발하였다는 동백마을 앞 바다의 전마선 배낚시에서는 30센치를 넘는 굵은 보리멸들이 낚여 나와 또다른 재미를 안겨 주었다.

휴무일 보리멸 낚시 결정

J씨의 제안대로 둘이서 이곳으로 출조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침에 도서관을 향하고 밤늦게 돌아오는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한주일 금방 지나갔다. 월요일 새벽 5시에 J시의 아파트에서 출발하기로 약속하였다. 승진시험 공부를 하는 필자도 그렇지만 자영업을 하는 J씨 역시도 하루종일 시간을 빼앗길 수 없어 오전 동안만 낚시를 하고 일찍 철수하기로 하였다. 일요일 새벽, 모처럼 바다로 향하는 마음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꼭두새벽이었지만 가볍게 릴대 한대만 드렁크에 던져 넣고 책 봇다리는 앞 자석에 싣고 잔손풀이도 즐기고 바다 내음도 실컷 마시기 위하여 경쾌한 마음으로 J씨의 아파트를 향하였다. 새벽 5시 반을 조금 넘겼을 때 J씨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아파트 입구에 기다리기로 했던 J씨는 없었다. 아파트관리실에서 인터폰으로 연락을 취하자 아직 한밤중이었다.

기상, 출조준비!

"어제, 일요일 밤 집안 모임이 있어 술을 과하게 마셨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밤늦게 귀가(歸家)하여 보리멸 낚시장비들을 제대로 챙겨두지 못했다"고 하면서 "낚시장비를 챙길 동안 방으로 올라와서 커피나 한잔하면서 정신을 차린 후 출발하자"고 하였다. 아파트로 들어서니 뒤늦게 일어난 J씨는 정신이 없었다. 감성돔만 쫓아 다니다가 모처럼 보리멸 낚시를 시도하려고 하니 릴이고 장대며 모두 베란다 한 모퉁이에서 하나씩 하나씩 다시 챙겨야만 하였다. "소형 쿨러는 여기 있는데 그물 살림망이 어디 갔는지 없다"고 허둥대며 찾고 있었고 릴이며 장대, 봉돌이며 각종 소품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정신없이 챙기고 있었다.

베란다에서 챙긴 낚시소품들을 모두 거실의 TV 위에 소복히 모아 두었다. 보리멸 역시 아침 물때에 활발한 어신을 보이는 것을 J씨 역시 잘 알고 있었는데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 아침 출근시간대와 맞닿아 교통체증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날씨가 나빠지던지 또는 필자의 사무실에서 급한 연락사항이 있을지 모르므로 J씨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챙기도록 하였다. J씨의 휴대폰은 수입품으로 전남 여러 섬과 전국 각 지역에서 통화이 원활하였고 작은 부피와 가벼운 무게로 휴대하기가 좋은 최신형이라고 필자에게 자랑하였던 소형이었다.

특히 동해안은 아침 시간대에는 잔잔하다가 오후부터 갑자기 샛바람이 터질 경우가 많았고 이때 조그만 전마선으로 방파제 안쪽까지 빠른 철수가 어렵고 위험하므로 선장을 급하게 불러내기 위하여는 휴대폰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J씨는 조그만 손가방에 TV 위에 놓아두었던 각종장비와 소품들을 챙겨 넣으며 옆에 있던 휴대폰도 함께 밀어 넣었다. 얼마나 급하게 챙기는지 옆에 보고 있던 필자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감미로운 커피 향이 온몸으로 파고 들 때쯤 벌써 해운대(海雲臺) 달맞이 고개를 넘었고 맑은 새벽공기를 가르며 동해안으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었다. 약간 흐린 날이었고 바람도 제법 불었지만 송정으로 접어들면서 내려다 본 동해바다는 대체로 평온한 듯 하였다. 올여름부터 남해안과 동해안까지 뒤흔들어 놓은 적조(赤潮)도 어느 정도 사라져 가는 것 같이 보였다.
월요일 아침이라 동백마을에 도착하니 너무나 한적하였다. 전마선을 한 척 빌렸고 선장은 마을 앞 양식장 주변까지 끌어다 주었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으므로 바람이 강하고 파도가 높으면 곧바로 철수를 부탁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오후 1시경 철수할 것이라고 시간을 알려 주었다. 양식장 밧줄에 배를 묶어놓고 채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예년의 경험으로 늦가을 깊은 수심에서 나오는 보리멸은 유별나게 큰 놈들이 많았고 마릿수 역시 월등하였으며 여름 내내 포식하였는지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회 맛 또한 가을이 일품이었다.

보리멸 낱마리 입질

호리낭창한 민물 릴장대에 바늘이 3개 달린 보리멸 전용채비를 만든 후 청갯지렁이를 적당한 길이로 달아 뱃전에서 시원스럽게 채비를 날렸다. 매일 책과 씨름하다가 모처럼 바다에 나와 채비를 던져 넣으니 그 동안 쌓였던 모든 체증이 시원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바람은 약간 강하였지만 무척 상쾌한 아침이었다. 물색이 흐려 마릿수 어신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그래도 끌(당김)낚시에 가끔씩 물고 늘어지는 놈들은 제법 굵은 씨알이었다.

둘이서 1시간동안 열댓마리를 낚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바람이 강하여지고 파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이라 선장은 더이상 낚시인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는지 바다로 나오질 않았다. 오전 10시를 넘기자 물색이 몹시 흐려졌고 어신도 뚝 끊겨 버렸다.

바람과 파도는 높아지고

바람은 더욱 강하게 불었고 파도 마져 높아지기 시작하자 조그만 전마선은 롤링과 핏핑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선장은 아직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는지 아니면 철수 예정시간이 멀어서 인지 바다로 나오질 않았다. 바람이 강하고 파도가 높아 더이상 어신을 기다릴 수 없어 일찍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J씨는 작은 손가방 속에 넣어 둔 휴대폰을 찾고 있었다. 선장에게 바람이 강하고 파도가 높아 낚시를 할 수 없으므로 곧바로 철수시켜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작은 손가방 속에서 휴대폰을 꺼집어 낸 J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필자를 바라다 보는 것이었다. 새벽에 급하게 장비들을 챙기다 보니 TV위에 있던 휴대폰을 가방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TV 리모콘"을 가방에 수셔 넣었기 때문이었다. 바람과 파도는 점점 더 세어지는데 둘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돌진 앞으로

몇시간 동안 바다의 노여움은 더욱 거세어지고 있었으나 둘은 문명의 이기(利器)만을 너무 믿고 있었다. 소리를 쳐도, 수건을 흔들어대도 방파제 안쪽에서는 들리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방법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샛바람을 등지고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방파제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돌진 앞으로 !, 열한시 방향의 방파제를 향하여..." 온 몸은 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파도와 구슬같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속내의까지 젖어버린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던 하루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쌓인 스트레스를 한 컷 풀 수 있는 희망의 바다가 저곳에 있고 가끔씩은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을 한 바다가 저 곳에 있어 생에 활력을 더해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 바다 낚시인들 만의 즐거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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