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생(生)과 사(死)

신상품 소개


회원 랭킹


공지사항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23화, 생(生)과 사(死)

G 0 6,771 2006.12.04 09:56
갯바위낚시는 많은 장비가 동원되는 동적(動的)인 취미생활이며 특히 심야(深夜)에 인적이 끊긴 먼바다의 외딴 섬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다. 각종 낚시장비와 쿨러, 그리고 식량과 의류등을 넣어야 하는 가방, 야영낚시를 할 때에는 텐트며 침낭, 매트레스 등... 3명이 현지 2박정도 낚시를 떠날라치면 장비가 이삿짐을 방불케 한다.
어떨 때에는 "저 많은 짐들을 가지고 어떻게 낚시를 갈까?"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바다낚시인이면 누구나가 다 같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짊어지고 떠나고야 만다. 그 많은 짐들을 갯바위까지 옮겨 놓으면 바로 지쳐버릴 때가 많으며 지친 몸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부터 낚시는 시작된다. 그러므로 갯바위 바다낚시에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따르기도 한다.
칠흑같은 야밤에 난바다에 떨어진 섬에서 염소들처럼 갯바위를 타고 다니는 바다낚시인들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설 때가 많다. 한편, 가혹한 갯바위의 시련들은 낚시인들에게 교훈으로 남기도 한다.



가덕도의 한겨울 감성돔

'85년, 겨울이었다.
가덕도(加德島)는 한겨울에 대물 감성돔을 많이 배출하였다. 몇주전 아동섬과 등대사이에 있는 돌 무너진 곳에서 40~50센치급 감성돔들이 민장대에 낚여 나왔다. 민장대로 걸어내는 대물 감성돔이 전해주는 전율은 낚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한겨울에는 씨알이 엄청 굵어져 환상적인 손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다 엄동설한(嚴冬雪寒), 많은 낚시인들이 설쳐대지 않을 때가 더욱 호기(好期)였다.

당시 가덕도 밤낚시는 토요일 오후 부산(釜山) 충무동(忠武洞) D낚시점을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무거운 손맛에 이끌려 한겨울에도 포근한 날씨를 보이던 부산지방의 기온이 확장하는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바람이 강하고 기온도 영하 7-8도를 기록한다"고 기상대가 혹한으로 예보을 무시하고 출조를 감행하였다. 워낙 추워서 인지 출조를 나가는 낚시인도 몇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영하(零下)의 날씨는 모든 것을 얼리고...

다대포(多臺浦)를 지나 낙동강(洛東江) 하구로 접어들자 북서풍을 강하게 맞받으면서 가덕도로 향하였다. 이물(배의 머리, 선두(船頭), 또는 선수(船首)라고도 함)에서 치받쳐 오르는 파도가 선실 유리장을 때렸고 영하의 날씨는 바닷물을 곧바로 얼어 붙게 만들었다. 선실 앞에 놓아둔 쿨러며 장비에도 바닷물이 튀자 곧 얼어 버렸다. 오후 4시경, 가덕도 돌 무너진 곳에 도착하였다. 바닷물이 튀어 얼어붙은 장비들을 갯바위에 내려놓은 후 조우와 함께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였다. "감성돔 낚시는 고사하고 영하의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이 밤을 어떻게 넘겨야 할까..?"

갯바위에 내려보니 마치 시베리아 벌판에 던져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영하의 기온에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갯바위는 물론이고 강한 북서풍까지 갯바위를 타고 좌우 사방에서 감아 돌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이하로 느껴졌다. 발이 시려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손도 얼어붙어 물건을 잡아도 감각이 둔하게 느껴질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준비를 소흘히 해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토요일 오후 떠나는 1박 낚시에 텐트라고는 들고 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갯바위에 통비닐을 깔고 그 속에 침낭만 펴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이곳 등대 주변은 군 작전 지역이라 야간에 후라쉬 불빛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었고 불은 절대 피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텐트를 설치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야영 장비를 준비할 수 가 없었다.

장비를 높은 곳으로 옮겨 놓는 등 정리를 마친 다음 밤낚시 걱정은 뒤에 하기로 하고 우선 낚시채비를 준비하였다. 얼어붙은 크릴을 바닷물에 담그 녹이고 준비해 간 담치 쩍을 갯바위에 두들겨 부셔 밑밥으로 던져 넣은 후 야무지게 받침대를 박아 민장대 2대를 걸쳐 놓았다. 부지런히 움직이자 추위를 약간 이길 수 있었다. 저녁물때에 게루치 새끼 몇마리가 성가시게 채비를 건드릴 뿐 기대했던 대물 감성돔은 구경할 수 없었다.

얼마 후 해는 지고 어둠이 밀어 닥치면서 강한 추위도 함께 밀어 닥쳤다. 예상했던 대로 손끝, 발끝이 시려왔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버너를 피웠으나 가스마져 얼었는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따뜻한 라면 국물이라도 마시려고 하였으나 30분을 가열해도 물이 끓지 않았다. 들물때였지만 감성돔 입질은 커녕 잡고기 한마리도 없었다. 낮에 잡아놓은 게루치새끼 몇마리가 갯바위 귀퉁이에 얼어붙어 있었다. 편을 떠서 소주를 한잔씩 마셨지만 갈수록 추위는 더해만 갔다. 미지근한 물에 일단 라면을 넣고 또 10여분 기다렸으나 라면은 펴져 자빠졌다. 불빛이 세어 나가지 않게 등지고 앉아 종이에 불을 붙인 후 가스통 주변을 뜨겁게 데워 겨우 라면을 끓이는데 성공하였다. 라면이 펴져 죽이 되었지만 맛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밤 10시를 넘기고 나니 허기와 함께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허기를 이기기 위하여 생라면에 스프를 뿌려 먹으면서 소주를 몇 잔을 더 마셨다. 손끝, 발끝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더 이상 낚시를 할 수 없었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었다.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이길 뿐이었다. 조우와 함께 갯바위 구석진 곳을 찾아 통비닐을 펴고 그 속에 침낭을 깔았다. 노출된 얼굴마져 얼어 붙는 것 같았다. 둘은 체온을 조금이라고 보존하기 위하여 침낭을 맞대고 밀착하여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밤을 세워야만 하였다. 잠들면 영원히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같아 잠이 들지 않도록 둘은 계속 속삭였다.

불바다가 되는 꿈

새벽 3시경까지 추위에 떨면서도 용하게 참았다.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 와 등이 시려왔고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안되겠다, 돌아 다니면서 낚시를 계속 하자" 추위를 견디다 못해 민장대 하나 들고 갯바위를 타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앉아 추위에 당하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감성돔 낚시는 포기했고 볼락이라도 몇 마리 낚기 위해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수온이 차서 그런지 전혀 입질이 없었다. 남은 소주을 마져 마신 후 다시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지만 마찬가지였다. "우째 그 흔한 뽈라구 새끼 한 마리 없노..." 갯바위를 두루 헤매기도 하고 팔 운동, 다리 운동을 하면서 추위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그러나 입질이 없으니 강추위 속에서도 피로가 엄습하였다.

새벽 5시를 지나자 더욱 추위를 이길 수 없어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머리까지 푹 덮어쓰고 몸을 더욱 움추렸다. 침낭 속은 바닥에서 냉기가 파고들었지만 바깥 갯바위 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얼어 붙은 얼굴이 살며시 녹아들 때 잠시 잠에 빠져 버렸다. 소주 한잔 더 마신게 화근이었을까? 잠결에 꿈을 꾸었다. 몽롱하였다. 수평선 저 넘어서 여명(黎明)이 밝아오는데 바다 끝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며 온바다로 급속히 번지고 있었다. 침낭 속에 파묻혀 있는 갯바위 쪽으로 그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 가 없었다.

침낭 속에서 뛰쳐나오기 위하여 팔을 빼내려고 하였으나 온몸 얼어 움직여지지 않았고 다리는 아예 굳어있었다. 체온이 많이 떨어졌는지 손을 침낭 속에서 빼내 바라보니 마치 사자(死者)의 손같이 창백하였다.
그래도 부지런히 숨만은 쉬고 있었는지 입김에서 나온 습기가 통비닐 속을 온통 얼어붙게 만들어 버렸다. 몸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침낭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 보니 통비닐 속은 얼음통으로 변해 있었다. 조우를 깨웠다. 조우 역시 주검의 순간까지 같다 온 것 같이 뻣뻣하였다.

조금만 더 깊이 잠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면(永眠)의 직전에서 누군가가 타오르는 불을 보내 도와 주었던 것일까? 지금도 그 꿈이 아련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원정 낚시를 떠날 때는 야영장비들을 챙겨가지만 가까운 곳에 낚시를 떠날 때에는 소흘하기 쉽다. 그러나 원정이던 근거리 낚시던 장비는 완벽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직벽에 걸어 놓은 밧줄

용초도(龍草島)의 영등감성돔은 그 씨알과 마릿수가 어떤 곳보다 월등하였다. 대체로 음력 2월 보름을 전후하여 용초도를 반짝 스쳐 지나가는 영등감성돔(음력 2월 영등월에 잡히는 감성돔)들로 매년 이곳에서 화끈한 손 맛을 보았기에 음력 2월을 기다리곤 하였다. 특히, 주변의 미역 양식장이 철거된 후 한물때 정도 지난 후 들어가면 언제나 무지막지한 어신을 받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포인트는 용초도 남쪽 중앙에 위치한 논골 쪽 움푹하게 들어 앉은 곳이었다.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도 이곳은 오붓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87년 초봄, 조우와 함께 남들보다 발 빠르게 이곳으로 영등감성돔 낚시를 시도하기로 결정하였다. 충무항(현 統營港)에서 여객선을 타고 용초도 호두마을까지 가서 이곳에서 현지배를 이용하였다. 통영 현지꾼들이 없어 한적하였지만 꽃샘 추위가 몰아 닥쳐 추웠고 영등바람도 강하였다. 아직 철이 이른지 미역양식장의 밧줄이 갯바위 이곳 저곳 묶여 있어 영등 감성돔이 잘 낚이는 안쪽 골창으로는 배를 델 수가 없었다. 호두마을쪽 갯바위에 내려 장비만 들고 이곳으로 들어가야만 하였다. 논골의 영등감성돔은 철저한 밤낚시 포인트로 수심은 4칸반 장대가 다 들어갔다. 우선 텐트를 설치하고 밤낚시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 포인트로 나섯다. 포인트로 진입하려면 약 4메타정도되는 직벽을 타고 올라가 다시 6메타 정도되는 직벽을 타고 내려가야만 하였다. 직벽에는 언제, 누구 설치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가느다란 밧줄이 걸려 있었다.

도착 후 해질 녁 물때를 보기 위하여 장대와 크릴 그리고 밤낚시에 필요한 물건만 들고 이 밧줄을 타고 올라가 감성돔 포인트로 진입하였다. 영등바람이 강한 음력 2월, 밤낚시 때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많은 옷을 입었기에 행동하기가 둔하였다. 그러나 자주 오르락 내리락하였던 직벽이었으므로 조우가 먼져 올라가 장비를 받아주면 필자가 뒤따라 오르며 언제나 서로 호흡을 잘 맞추어 가면서 갯바위를 타고 다녔다. 직벽을 올라가면 다시 직벽을 타고 내려가야 제 포인트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이곳에도 언제 설치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가느다란 밧줄이 두겹으로 꼬여 걸여 있었다. 역시 조우가 밧줄을 타고 먼저 내려간 다음 필자는 위에서 장비들을 밧줄에 묶어 내려주었다. 둘이서 호흡이 잘 맞아 무리없이 포인트로 진입하여 초저녁 물때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철이 이른지 35센치급 씨알 잔(이곳은 평균 40~50센치급이 많이 낚임) 감성돔만 1마리 잡고 밤 10시경 텐트로 돌아와 간단하게 야식을 먹은 후 피곤한 몸을 눕혔다. 얼마나 기다리던 용초도 영등 감성돔이었는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잠시 눈을 붙였다. 선잠에서 일어나 보니 벌써 새벽 4시가 지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거제, 통영권에서는 아침 물때는 놓치면 안된다. 조우를 깨웠다. 그러자 감기와 몸살 증세가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조금 더 누워 있겠다고 하였다. "혼자 먼저 넘어가 있겠다"고 한 후 텐트를 빠져 나왔다. 어젯밤 야영지로 철수할 때 장대와 미끼 등은 모두 두고 왔기 때문에 빈 몸이었다. 혼자서 직벽을 타고 올랐다. 새벽, 피로가 채가시지도 않은 상태였고 몸마져 굳어 있는데다 옷까지 많이 입어 움직임 또한 둔하였다. 그래도 여러번 오르락 거리던 직벽이라 쉽게 올라 갈 수 있었다. 이제 직벽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코스였다. 손전등으로 발 아래쪽을 비춰보니 어젯밤 두고 온 장비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가느다란 밧줄은 터지고...

두 겹으로 된 가느다란 밧줄을 잡고 갯바위의 턱진 곳까지 내려 섯다. 이곳에서부터는 직벽 아래쪽으로 갯바위의 조그만 턱에 엄지 발가락으로 의지하면서 밧줄에 몸을 싣고 내려가야만 하였다. 밧줄을 힘차게 당기면서 오른쪽 엄지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왼발을 내려 갯바위 홈진 곳을 찾고 있는데 가느다란 밧줄의 헤어진 자리에서 "뚜~둑!"하는 소리를 나면서 풀어지는 것이었다.

왼발이 갯바위 홈진 곳에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밧줄에 이상함을 느꼈고 밧줄을 당기면서 몸을 원위치로 들어 올리는데 그만 "뚝!"하는 탁한 소리가 나면서 밧줄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밧줄을 잡고 있던 손이 허전해졌고 곧바로 몸이 직벽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손끝에 있는 힘을 다 모아 갯바위의 조그만 턱이라도 찾았지만 손에 닿는 것이라곤 없었다. 그대로 4메타 정도되는 직벽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너무나 순간적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운 좋게 떨어진 곳의 차가운 바다 속이 아닌 갯바위 바닥, 그것도 그런데로 평탄한 곳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직벽에서 떨어지면서 갯바위 틈을 찾던 손톱이 헤어졌고 손끝은 깊이 패여 피가 흘렀다. 손 끝의 통증이 뼈 속까지 파고 들어 왔고 이어 발목과 엉둥이까지 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속내의와 방한복 등 옷을 많이 입고 있었기에 그렇게 큰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응급을 요하는 상황이라 소리를 쳤지만 직벽 너머 텐트 속에 누워 있는 조우에게 까지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떨어질 때 머리 쪽부터 떨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면서 스스로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밧줄이 쳐진 직벽의 경우 아무리 튼튼한 밧줄이라고 안전한 이동도구가 될 수 없다.



직벽 위에서 돌이 떨어진다

'85년 봄이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꽃이 만발할 때쯤부터 밤볼락 낚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당시 P낚시점을 따라 충무(現 統營) 앞 바다 여러 섬으로 밤볼락 낚시를 자주 갔었다. 당시 충무 낚시인들은 볼락을 잡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볼락 어자원이 풍부하였는지 날씨만 좋으면 하룻밤 낚시에 중,대형 쿨러 채우는 것은 식은 죽먹기였다.

칸델라(카바이트를 사용하는 등(燈))불 피워놓고 갯바위 홈통에 파묻혀 2칸 이나 2.5칸 야들야들한 민장대로 밤볼락 낚시를 하다보면 어느 듯 여명이 밝아 올 때가 많았다. 맥낚시때 초리대 끝에 달린 케미컬라이트를 드르럭~~드럭 끌고 들어가는 재미는 밤볼락 낚시인들의 혼을 빼놓고도 남음이 있었으며 찌를 달아도 좋고 끌어주고, 들어주고, 채비를 움직일 때마다 신바람나게 손맛을 안겨주었다. 이때만 해도 밤볼락은 오곡도 서편 갯바위 고랑고랑 홈진 곳 주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씨알도 중치급이 많았고 물때도 가리지 않았으며 바람없고 달없는 밤이면 최고였다. 직장 후배 M씨와 함께 이곳으로 들어 가기로 하였다. 이곳 뒤쪽으로는 약50~60여메타 더 되는 직벽지역이 있었다. 앞 쪽으로는 높은 여가 길게 뻗어 있고 안쪽으로는 깊은 홈통을 이루고 있어 볼락의 서식처로서는 최고였다.

칸데라 불빛을 앞 쪽 높은 여를 향해 훤히 밝혀두고 밤볼락낚시를 시작하였다. 해진 후 초저녁부터 2칸 장대를 끝없이 물고 늘어졌다. 밤이 깊어 갈수록 더욱 굵은 씨알도 섞여 나왔고 바늘 2개를 달아 끌어주면 계속 두마리씩 물고 늘어졌다. 그만큼 마릿수도 흡족하였다. 대형 쿨러를 가져 갔으나 새벽 1시경 쿨러를 넘겨 버렸다. 너무 많이 잡았다고 생각하고 절벽 밑에 텐트를 설치한 후 야식을 지어 먹었다.

밤볼락 낚시 경험이 적었던 후배는 손이 빠르지 못해서 인지 아직 반쿨러를 조금 넘긴 상태였다. 후배 혼자서 계속 볼락을 낚는 동안 잠시 눈을 붙이려고 텐트 속으로 들어 갔다. 침낭 속에 조용히 몸을 눕히고 눈을 감자 갑자기 "뚝!"소리가 난다. 제법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절벽에서 돌이 떨어지고 있는 소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갑자기 긴장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돌이 떨어졌다?..." "이 야밤에 염소 떼가 돌아다니나?... 아니면 해빙기라 암벽이 갈라져 떨어졌을까?..." 직벽 위에 인가(人家)는 없는 곳이었다. 와락 소름이 끼쳐오기 시작하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조금 넘겼다. 또다시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염소 떼일 경우 이놈들이 어느 쪽으로 이동하고 있을까?"

돌맹이 세례

"해빙기 때 현상이라면 더욱 큰 암석이 떨어질 수도 있다", 재빨리 텐트 밖으로 나와 위를 쳐다보니 까마득한 직벽 만이 고요에 잠겨 있었다. 후배는 정신없이 볼락낚시를 열중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낙석(落石)을 피할 자리가 없었다. 앞은 바다요 뒤는 깎아지른 직벽 그것뿐이었다. 담배 한대 꺼내 불을 붙이는 순간 또다시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곳에 떨어졌다.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직벽에 받쳤다가 튕겨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큰 돌이 아니고 작은 돌맹이였다. 또 다시 머리 속에서는 "염소 떼들이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해빙기, 암반이 갈라져 떨어지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반복하였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다. 더이상 피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깊히 담배를 빨아 들이킨 후 힘껏 밷아내면서 "한번 더 돌이 떨어지면 최대한 직벽 쪽으로 가까이 몸을 피하고 머리를 보호하여야 한다"고만 생각하였다. 후배는 여전히 밤볼락 낚시에 여념이 없었다.후라쉬를 들고 피할 곳을 찾았다. 뒤편에 물이 고인 곳이 있었고 주변에는 수십년동안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해빙기 갈라진 암반이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분명 염소 떼들의 소행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놈들이 무리 지어 돌아다니면 또 돌들이 떨어질 것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하게 되었다. 피할 곳도 직벽밑 조금 틈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후배에게 낙석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린 후 낚시를 멈추고 직벽 밑으로 피하게 하였다. 직벽 밑에 몸을 숨기고 돌이 떨어지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두어시간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그동안 작은 돌이 또 떨어졌다.

해가 뜬 후 계속 위를 바라다 보았으나 직벽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빨리 철수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장비를 챙기기 시작하였다. 가끔씩 위를 쳐다보며 장대를 접고 있는데 갑자기 필자의 왼쪽 어깨 옆으로 "휘-잉~"하는 소리와 함께 계란만한 돌맹이가 떨어졌고 갯바위에 "뻐벅!" 소리를 내며 받친 후 튕겨서 바다 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었다. 입가에서 가벼운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고 머리카락은 쭈빗하게 서면서 순간적으로 온몸은 닭살이 되어 버렸다. 조금만 옆으로 떨어졌던지 아니면 조금만 옆쪽에서 장비를 챙겼으면..., 생사(生死)는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 같았다.

그 후 충무동 낚시방을 뒤졌다. R낚시점에 낚시용 헬맷이 하나 있었다. 붉은색 낚시 전용 수입품 헬맷이었고 안쪽으로 스치로폼으로 감사 져 열기를 차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언제, 누가, 어떻게 수입해 왔는지 먼지는 뽀얗게 쌓였고 내부에는 바퀴벌레가 와글와글 거렸다. 그래도 즉석에서 구입하였다. 이후 낙석의 위험이 있는 포인트에 들어갈 때, 특히 홍도(鴻島) 출조시 갈매기 배설물 세례를 피하기 위하여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직벽 밑 포인트에서 낚시를 할 때에는 반드시 낙석의 위험이 없는지를 미리 판단하고 있다.



태풍 트리오가 지나갔지만...

확실한 년도가 기억나지 않는..., 아니 기억하기가 싫은 9월 초순이었다.
언제나 늦여름부터 다대포(多大浦) 몰운대(沒雲臺)지역(당시, 군 작전지역)으로 출조하였으나 그 해는 낚시인들의 통제가 심하였다. 내림 감성돔의 경우 초반에 항상 떼감성돔을 만날 기회가 많아 그 해 가을 첫 출조를 완도권을 결정하였다. 신문에 게재된 낚시 가이드를 들추다 토요일 밤 완도권으로 출조하는 G낚시점의 가이드를 보고 이곳으로 출조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항상 함께 다니는 조우 K씨에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혼자 떠나기로 하였다. 조우에게는 혼자 가서 화끈한 손 맛을 보고 오겠다고 약을 올려 놓았다.

그런데 주말, 일본 남쪽에서 3개의 태풍, "트리오 태풍"이 도도하게 동해안으로 빠져 나간 직후였다. 낚시 점주는 전남(全南) 완도(莞島) 해상에는 파고는 다소 높지만 배 띄우는데는 지장이 없다 하였으므로 혼자서 출조를 감행하였다. 혼자 출조하는 필자는 모든 낚시인들을 갯바위에 내려준 다음 낚시 점주와 함께 맨 마지막으로 모항도에 내릴 것을 미리 약속하였다.

일요일 새벽 완도 도착, 내만은 태풍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마치 아스팔트 도로와 같이 평탄하였다. 밤바다를 뚫고 나가 신지도를 돌아서니 다소 높은 너울파도가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선장은 스스럼없이 계속 배를 몰아 나아갔다. 너울파도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신지도, 장도, 갈마. 혈도쪽으로 회원들을 내려준 후 선장과 선주, 낚시점주와 필자를 태운 배는 모항도로 향하였다.

모항도가 가까워 오자 이곳은 위쪽 신지도와 갈마, 혈도 쪽의 너울파도보다 휠씬 큰 너울이 남쪽에서 부터 밀려와 갯바위를 홡고 있었다. 남쪽을 돌아 본 선장은 접안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선 북서쪽을 뱃머리를 돌렸다. 북서쪽을 돌아서자 마을이 있는 주변에는 그래도 큰 너울파도의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선장은 배를 갯바위 쪽으로 몰아 필자가 내릴 곳을 찾고 있었다. 모항도 서편으로 포인트를 잡았다. 배를 갯바위에 붙이면 필자가 먼저 내려 낚시점주가 던져주는 장비를 받기로 하였다. 이후 점주가 뒤따라 내리기로 하였다. 갯바위 쪽으로 다가가니 물 밑에서 치켜 오르는 너울파도가 거세었고 옆에서 밀려드는 너울파도와 만나 삼각파도를 형성하다가 잠시 잠잠해지곤 하였다.

필자가 먼저 하선준비를 하였다. 선두(先頭)에서 이물이 솟구쳐 오를 때 재빨리 갯바위로 뛰어 내릴 계획이었다. 갯바위는 60도 정도의 경사에 다소 밋밋하였고 작은 따게비가 촘촘히 붙어 있었다. 첫 시도는 실패하였다. 갑자기 큰 너울파도가 갯바위를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선두에 앉아 배가 솟구쳐 오를 때 뛰어 내릴 폼을 잡고 있었다. 다시 배가 갯바위로 접안을 시도하는 순간, 갑자기 높은 삼각파도에 휘말린 선두가 파도 밑으로 내려 박히기 시작하였다. 삼각파도가 종횡무진으로 바다를 휩쓸고 있었다. 선두에서 갯바위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던 필자는 순간적으로 몸 균형을 잃어 버렸고 몸이 앞 쪽으로 쏠렸기 때문에 갯바위 쪽으로 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아니면 갯바위와 배의 이물 사이로 떨어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갯바위를 향해 뛰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이 머리 속에서 번개같이 스쳐 지나갔다. 갯바위를 오를 때 배의 선두가 높이 올라 와 잠시 정지하면서 수평을 이룰 때 뛰어내려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내려 박히는 순간 바다로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갯바위를 향해 힘컷 뛰었다. 아니 뛰어야만 했었다.

경사진 갯바위에는 바다물이 묻어 있었고 발이 갯바위에 닿았을 때 갯바위신발은 무용지물이었다. 오른쪽 발이 갯바위에 닿는 순간 미끄러져 내림을 감지하였고 미끄러지면 배 밑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오른쪽 발에 있는 힘을 다 주고 큰 숨을 들이 마시면서 갯바위를 박치고 왼쪽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그 순간 큰 삼각파도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 가 버렸다.
거대한 삼각파도 속으로 내던져진 몸둥아리는 너무나 가냘픈 미물에 불과하였다. 제일 먼저 필자가 끼고 있던 안경이 벗겨져 나갔다. 안경을 오른손으로 잡았지만 수영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놓아 버렸다. 곧 이어 몸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모자 속으로 물이 차 모자가 위로 떠오르면서 목을 조우기 시작하였다. 두 손으로 모자 끈을 양쪽에서 잡고 당겨 끊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배가 오른쪽에 있으니 왼쪽으로 헤엄쳐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갯바위 쪽은 너울파도가 후려치고 있으니 바다 쪽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수영은 어느 정도하는 편이었으나 갯바위 신발을 신고 있는 상태에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하여 몸을 물 위로 띄워 수면으로 올라 왔다.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면서 배가 어느 쪽에 있는지를 찾아보니 다행히도 배는 약 5~6메타 뒤쪽으로 물러가 있었다. 필자가 수면위로 머리를 들어 올리자 배 위에서 쿨러가 날아 왔다. 앞 쪽 2~3메타 앞에 떨어졌지만 삼각파도가 밀려와 다시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물을 마시면 안된다!" 그리고 "쿨러가 앞 쪽에 있었으니 이번 파도에 밀려 머리 쪽까지 떠밀려 왔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파도는 타고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바다 속에서 약 20초가량 흘렀을까?... 무척 긴 시간이었다. 갯바위 신발 때문에 수영하기가 불편하였지만 그렇다고 갯바위 신발을 벗을 시간도 없었다. 다시 있는 힘을 다하여 수면 위에 올라오니 순간적인 판단이 맞아 떨어졌다. 배는 약간 뒤로 물러나 있었고 배위에서 마구 던져진 물건 중 쿨러가 옆쪽으로 밀려와 있었다. 그렇지만 눈앞에는 엄청난 너울파도가 노여움에 가득찬 듯 필자를 향해 또 다시 덤벼 들었다.

너울파도를 타고 넘으면서 "줄!, 줄을 내려 달라!"고 말하였지만 다음 삼각파도를 타지 못하고 다시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계속 "물을 먹어서는 안된다" "배가 옆쪽으로 다가왔으니 조금 더 왼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돌발 상황에서도 정확한 판단은 필요하였다. 다시 물 위로 떠올라 보니 배는 뒤쪽으로 빠졌다가 다시 가까이 접근하면서 밧줄을 던져 주었다. 어렵게 줄을 잡은 후 "힘이 없다, 힘이 다 빠졌으니 살금살금 당기라"고 말하였다. 배 위에 있던 3사람이 모두 나와 손을 잡아 당겨 올리기 시작하였다. 생과 사는 불과 4~5분,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하고 빠른 판단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후 여러번 물에 빠진 낚시인을 건져 올린 적이 있었다. 재빨리 로프를 찾아 던져 줌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사(生死)의 갈림길을 넘어서고 난 후 구명복은 바다낚시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바다낚시를 다니던 중 생명에 위험을 느꼈던 상황이 너무 많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제나 겸허하게 바다를 맞이하고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바다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갯바위를 이동하다가 실족되는 경우, 물 묻은 갯바위에서 미끄러져 실족하는 경우, 너울파도에 순식간에 휩쓸리는 경우, 선박의 고장으로 해상에서 표류하는 경우, 여름철 갑자기 떨어지는 날벼락등 무수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생(生)과 사(死)의 이야기 외에도 숱한 일들이 많았으며 필자의 바다낚시 이야기 도중에 곳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낚시인 스스로의 정확한 판단이 필요한 것 같았으며 당황하지 말아야 위험한 순간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0 댓글
 
포토 제목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