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집나가면 고생길

[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19화, 집나가면 고생길

G 0 4,044 2006.12.04 09:55
매년 하계 휴가철이 가까워 오면 여름고기와의 파이팅을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는 원도(遠島)로 자주 나가지 못하는 월급쟁이 낚시인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필자 역시 원도로 나아가 돌돔과 참돔 등 대물 여름 어종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여름휴가가 될 수밖에 없어 휴가철이 가까워오면 장비를 가다듬고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하면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쾌쾌묵은 파일들을 열어 준비사항을 세밀히 점검하면서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 여름낚시에 맞이하였다.

'95년 8월, 무척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필자는 이번 여름이 지나고 나면 회사 사정으로 당분간 낚시대를 만지작거릴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간 낚시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조우 K씨와 후배 S씨는 이런 필자의 아쉬움 마음을 달래고자 여름 원도권 출조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조우 K씨는 사업상 자주 출조치 못하다가 모처럼 원도로 출조하게 되어 무척 들떠 있었고 직장 후배 S씨 역시 화끈한 돌돔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며칠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하였다.

"자! 출발", 월급쟁이들의 원도 출조..., 대형 쿨러와 취사, 야영장비는 물론이고 차양막, 식수통, 그리고 중무장한 대물 낚시장대 등으로 3명은 짐은 소형트럭 한 대 분은 더 되었다. 벌써 수일째, 열대야(熱帶夜)가 이어졌지만 심야의 남해 고속도로는 무척 시원하여 하계휴가를 떠나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되게 만들었다. 오랜 만에 돌돔과의 화끈한 한판 승부를 거문도(巨文島) 갯바위에서 벌리기 위하여 여수(麗水)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새벽 해 뜰 무렵, 여수항 여객선 터미널 앞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4~5년전 여름, 거문도 출조를 위해 여수까지 밤새 올라왔지만 여객선 표를 구할 수 없어 되돌아 갔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러한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K씨가 도착 즉시 터미날 매표소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렸다. 필자와 후배 S씨 두 사람은 인근 낚시점과 시장에 들러 얼음을 짜 넣고 미끼와 소품, 부식 등을 구입하는 잔머리를 굴렸다.

여객선 표가 또 매진

새벽, 도착하자 말자 연안여객선 터미널로 달려가 오랫동안 줄을 서 기다리던 조우 K씨가 힘없이 돌아 왔다. 장시간 기다렸지만 "올해도 역시 여객선 모두 매진되었다"고 표를 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 왔다. 얼음과 미끼, 식량등을 모두 구입하였는데 거문도행 표를 구하지 못하면 또 다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힘이 빠져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필자는 터미날로 달려가 재확인하였지만 역시 모든 표가 매진되었다고 매표소 위에 크다랗게 붙어져 있었다. 힘없이 여객선터미날을 빠져 나오다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낚시인을 만났다. "미끼와 부식등을 모두 준비했는데 표를 구할 수 없어 되돌아 가야겠다."고 투털거리며 말하자 쉬운 방법을 일러 주었다. "XX에 가서 웃돈을 더 주면 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는 것이었다.

표 구하는 방법을 알았다

무더운 여름, 그렇게 고생해 가면서 꼭두새벽부터 매표소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낚시를 가기 위해서는 웃돈을 더 주더라도 할 수 없지 않는가?...," "여름 피서철이라 많은 피서객이 몰려 그렇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표가 유출되는지...?" 우리의 현실이었다. 어쨌던 동료 낚시인들의 조언으로 쉽게 표는 구할 수 있었다.

아침 9시 여수항에서 제주항으로 향하는 P여객선에 장비를 옮기는 순간부터 힘겨운 고행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탑승객을 편의를 위한 리어카가 준비되지 않고 있었다. 장비를 둘러메고 가기에는 다소 멀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연안여객선 터미날 입구에서 여객선 선착장까지 화물 운반은 리어카 인부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비싼 운임을 줘가며 장비를 옮겨 여객선에서 받아 올린 후 정리정돈을 끝내자 온몸은 땀에 젖어 버렸다. 아침부터 폭염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거문도를 찾았을 땐 시원한 자연풍이 불어오는 선상에서 나로도(羅老島)로를 돌아 초도(草島)를 경유, 그리고 장도(長島)며, 역만도(亦萬島)며 남해 중부에 흩어진 각 섬들을 두루두루 볼 수 있었고 뱃전에서 소주 잔을 돌리는 여유까지 부려가며 지나간 낚시 얘기를 나누는 등 얘기 꽃을 피워가면서 낚시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갑갑한 선실에 갇혀 지루한 항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잠시 후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불과 두시간도 채 안되어 우리는 거문도 선착장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많은 장비들을 거문도 여객선 선착장에 내려놓은 다음 오랜 만에 찾은 거문도의 정경에 잠시 젖어들었다.

낚싯배도 없고 장비가 너무 많아 웃음거리 제공

기온이 섭씨 30도을 휠씬 넘는 불볕같은 날씨였다. 쾌속선으로 도착한 낚시인들은 도착 즉시 삼삼오오로 미리 예약된 낚시선을 타고 벼락같이 바다로 나가 버렸다. 필자는 완전히 구 시대 낚시인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먼저 우리 팀의 장비는 너무 복잡하고 많았다. 쿨러와 낚시대 케이스 그리고 가방은 각자가 한 벌씩 가져와 다른 낚시인들과 같았지만 한 말들이 물통까지 두개나 들고 와 주위의 낚시인들에게 우둔한 모습을 보이면서 웃음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예전에는 거문도 낚시배에 물통을 비치하지 않았다는 생각만 하고 무겁게 한 말들이 말 통을 두개나 들고 다녔으니 신세대 낚시인들이 보았으면 미련하기 짝이 없게 보였을 것이 뻔하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거문도에 가서 J선장에게 연락하면 배가 올 것이다는 막연한 옛 생각만 가지고 왔으나 이제는 모두들 출발지에서 예약해 놓고 도착하면 곧바로 낚시유람선을 타고 나가버려 우리 일행은 타고 나갈 배를 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낚시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최대한으로 장비를 줄였다. 쿨러 3개, 장대케이스 3개, 낚시가방 3개, 부식 담는 보조가방 2개, 한 말들이 물통 1개로 모두 12개의 봇짐을 꾸려 두었다. 모두들 떠나버린 후 폭염이 쏟아지는 선착장에 우리 팀의 장비만 달랑 남아 있었다. 그때 마침 부산의 충무동 낚시인이던 P씨를 만나게 되었다. 거문도에서 낚시점을 개업하였다고 하였고 조금 후면 낚시배가 올 것이라는 말에 구태여 J선장에게 전화할 필요가 없었다.

천국같은 낚시점

P씨의 낚시점은 천국 같았다. 폭염 속 선착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다가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로 차가운 에어콘 바람 아래로 들어서니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린다. 찜통같은 바다로 낚시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창밖의 강한 여름 불볕이 징그러울 정도로 잔인해 보였다. 부산에서 장기출장 낚시 중인 몇몇 낚시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이들이 노리는 어종과 다소 차이가 났다. 우리 팀은 주된 어종으로 돌돔을 노리고 왔지만 이들은 농어와 참돔을 노리고 있었다. 최근에 돌돔이 잘 되는 포인트를 문의해 보았지만 확실한 포인트를 알려주지 않았고 선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였다.

P씨가 얘기하던 낚시배가 도착하였다. 선착장 땡볕에 팽개쳐 두었던 장비를 다시 옮겨 싣고 서도(西島)로 향하도록 하였지만 출장낚시를 하는 팀이 동승하였는데다 여러 낚시인들이 동도와 대삼부도 쪽을 찾으므로 이 배는 서도로 갈 수 없어 부득이 대삼부도으로 향한다고 말하였다. 서도 쪽은 배치바위와 삼백량 굴 그리고 의자바위, 조금 돌아서 있는 개빠진 통을 비롯해서 용댕이까지 여러 곳의 포인트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장이 대삼부도 쪽으로 여러 낚시인들이 출조를 나가기를 희망하고 최근 조황도 동도(東島)쪽 좋았으므로 우리 일행 3명을 위해 서도로는 향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포인트를 선장에게 맡겨둘 수 밖이 없었다.

동도의 이름모를 포인트에 내리다

내일 아침 10시에 철수를 부탁하고는 선장이 권하였던 동도의 이름 모를 포인트에 하선하게 되었다. 우선 불볕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차양막부터 설치하였다. 갯바위는 불같이 데워져 맨발로 잠시 동안이라도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돌돔 채비를 만든 후 던져 넣어보았지만 발 밑 수심이 너무 얕았다. 원투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필자는 더운 여름 체력소모가 적은 직벽 돌돔낚시을 원하였지만 이곳 포인트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꼬막을 밑밥으로 뿌려주고 받침대를 설치하여 릴 원투채비를 던져 넣은 후 야무지게 걸쳐 놓았다.

그렇지만 이글이글 거리는 태양아래서 오래동안 앉아 기다릴 수가 없어 차양막 속에 둘러 앉아 초리대가 내리 박히기만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어신을 받지 못하였다. 해진 후 모기떼가 극성스럽게 설쳤고 한증막 더위는 식을 줄을 몰랐다. 농어란 놈을 한 마리 걸어 내기 위하여 얕은 수심에 깊은 수심까지 앞 바다에서 먼 바다까지 두루 채비를 던져 탐색하였지만 별 볼일이 없었다. 눈먼 참돔이이라도 한 마리 낚기 위하여 릴 찌낚으로 수심층을 달리하면서 온 바다를 노려보았지만 이 역시 허사였다. 릴 처넣기 채비를 만들어 이곳 저곳 던져 넣으며 "혹시나" 하였지만 역시 어신이 없었다. 필자의 특기인 "안되면 낚시 장비를 걷어두고 "취침" 조법으로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다.

밤새도록 입질한번 받지 못하고...

그러나 열대야의 밤이 지속되어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없었다. 새벽녁 모기들의 밥 달라는 성화에 더이상 엉둥이를 깔고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다 지난밤 입질이라고는 한번 받아보지 못해 새벽 물때에 반드시 한 놈과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채비를 재무장하고 낚시에 돌입하였다. 황금시간대인 해 뜰 무렵, 꾸준하게 밑밥을 던져주면서 노렸지만 어신을 받지 못하였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더욱 무덥기 시작하였다. 동도의 경우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기 때문에 해 뜬 이후부터 곧바로 한증막 같은 무더위가 덮쳐 왔다. 불같은 볕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차양막의 위치를 여러번 바꾸어가면서 부단히 움직였다.

아침 10시경 철수를 부탁하였으므로 9시경부터 장비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차양막과 텐트를 걷고 장비는 모두 정리하여 배타는 쪽으로 정리해 놓고 쓰레기를 깨끗하게 정리한 다음 갯바위 한쪽 구석에서 무더위를 피해가며 소각시켰다. 아침 식사는 철수하여 P씨 낚시점 옆 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오전 10시가 지나도 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철수 예정시간이 1시간을 경과한 11시가 지났는데도 배가 오질 않았다. "피서철이라 한 대목 보다 보니 늦을 수도 있겠지"하고 생각하였다. 정오가 넘어가는데 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겠지만 당시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배가 나타나지 않는다.

먼바다 쪽으로 낚시배가 가끔씩 운항하고 있어 호루라기를 불고 수건을 흔들어도 못본 척하며 지나가 버렸다. 정오를 넘기자 무더위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모두들 아침까지 먹지 않은 상태라 허기가 져 탈진 상태가 되기 시작하였다. 소금을 입에 넣어 먹으면서 "너무 일찍 차양막을 거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순진하게 "곧 배가 오겠지" 하고 미련할 정도로 불볕 더위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1시가 지나자 무시무시하게 달구어진 갯바위에서는 숨이 막혀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는 지옥같았다. 기다림보다는 부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기 시작하였다. 다시 차양막을 설치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라면을 끓였으나 뜨거운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나질 않았다. 지칠데로 지쳐 실신 상태까지 다달았지만 무정하게 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거문도의 낚시배들이 이렇게 변하였나...?, 하절기 휴가철, 손님들 좀 끓는다고 이렇게 소흘하게 낚시인들을 취급하는가..." 온갖 욕지꺼리가 튀어 나왔다. 철수 예정시간을 4시간이나 넘긴 오후 2시를 지나자 모두들 무더위에 지쳐 구조의 손길이라도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하였다. 더욱이 식수가 얼마 남지 않아 이곳에서 하룻밤을 더 지세우기가 불가능하으며 반드시 철수하여 식수를 재공급 받아야만 하였다.

구세주를 만나다

철수 예정시간을 5시간 넘긴 오후 3시경, 구세주가 나타났다. 조그만 어선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일낚시를 나오는 낚시인 2명이 우리 일행 포인트 옆쪽에 하선하고 있었다. 어제 타고 나온 배는 아니지만 선장에게 이런 저런 사정을 얘기하며 철수를 부탁하였다. 물이 없어 오늘 철수치 않으면 생사 문제가 따르는 등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여도 "바빠서 안된다"고 하였다.

순간, 조우 K씨는 참다 못해 "어찌 거문도 선장들은 자기 배 타고 나오지 않은 손님들은 죽어도 된다는 말입니까."라는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더 큰소리로 말할 수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어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저자세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폭염 속의 기다림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더 드리겠으며 선장님께서 바쁘시다면 동도 마을 근처 아무 곳에나 내려놓고 볼일을 보러 가셔도 좋습니다."라고 후배 S씨는 나오지 않는 미소까지 띄우고 경어(敬語)까지 총동원해 가며 꼬시고, 달래자..., 못이기는 척하며 웃돈을 더 달라고 요구한 다음, 장비를 싣도록 허락하였다. 선장의 작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던 객지, 폭염 속에 내던져져 생사가 걸린 만큼 배를 태워준 것만으로 감지덕지(感之德之),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동도 방파제 뒤쪽에 우리 일행들을 내려준 선장은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하였지만 들은 척도 않고 가 버렸다.

낚시를 배운 것이 원죄, 집 나오면 고생길

P씨가 운영하는 낚시점으로 달려가 "어찌 된 일이냐?"고 따지고 물었다. 그러자 P씨는 즉시 선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선장의 부인 왈, "어제 부산 손님을 태워주고 난 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여수로 나갔고 대신 다른 낚시배를 아침에 보냈는데 오질 않았습니까?" 라고 도리어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집 나오면 고생길...? 세 사람의 낚시인이 불볕 갯바위에 갇혀 철수를 하지 못하고 있어도 손님이 많이 끓어니까 단골 손님 외에는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좋은 말로 "더운 여름이라 건망증"이라도 도졌는지...? 해경에 불법 영업행위를 신고하여 다른 낚시인들이 이런 고생을 하지 안도록 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낚시를 배운게 원죄"라고 있다고 일행들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고행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올 때부터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이왕 고생길에 접어들었기에 악발이 갯바위 낚시인 세사람이 그냥 있을 수 있겠는가. 여름 휴가철에 거문도를 찾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판단하고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일찍 철수키로 하였다. 또 다시 웃돈을 얹어주고 다음날 여수로 돌아가는 여객선 표를 부탁하였다. 그런 다음 인근 가게의 리어카를 빌려 장비를 옮기기 시작하였다. 필자가 즐겨 찾았던 서도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다시 서도로 출조 감행

오후 5시경, J선장의 배를 타고 서도 쪽으로 향하였다. 서도의 삼백량 굴 주변에는 낚시인이 전혀 없었다. 더 멀리 갈 필요가 없었고 우리 일행은 이곳에 내렸다. 그 평평하고 넓은 자리에 텐트도 설치하고 차양막도 치고 바닷물을 길러 샤워도하고 미싯가루를 시원한 음료를 만들어 먹은 다음 밤낚시 채비를 준비하였다. 필자와 조우 K씨는 릴찌낚 채비로 후배 S씨는 민장대 채비로 낚시를 시작하였다.어둠이 내리자 릴 찌낚 채비에는 참돔새끼들이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씨알이 대체로 잘았고 제일 큰놈이 겨우 30센치 정도였다. 그러나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참돔 특유의 쿡~쿡 차고 달리는 손 맛을 마음 것 느낄 수 있었다.

후배 S씨의 4칸 민장대 채비에는 굵은 볼락과 농어새끼들이 끊임없이 물고 늘어졌다. 자정이 가까워 올 때쯤 쿨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낚시를 멈추고 오랜 만에 참돔회와 소주를 곁들이면서 어렵게 찾은 삼백량 굴에서의 여름 밤을 즐겼다. 조우 K씨와 후배 S씨는 새벽녁까지 낚시를 하였고 볼락과 농어새끼, 참돔으로 쿨러는 빼곡하였다.

다음날 아침, 직벽쪽에서 돌돔의 입질이 와 닿는데 배가 도착하여 철수를 종용하였다. 미련없이 삼백량 굴을 철수하여 낚시점으로 장비를 옮겨 놓았다. 가장 급한 것은 여객선 표를 구했는지 여부였다. 역시! 웃돈의 효과가 있었다. 어떻게 구입했는지 오후 여수로 되돌아가는 여객선 표을 확보해 두고 있었다. 표를 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더욱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동도와 서도을 잇는 다리를 넘어 서도의 해수욕장까지 산책을 하며 피서객이나 갖는 여유로움을 짧은 시간에 나눌 수 있었다.

전쟁터 같은 여객선 선착장

그러나 오후에 여수행 여객선이 도착하자 또다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배가 도착하여 선실 문을 열자 그 많은 승선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먼저 타려고 아우성이고 마치 자기를 태우지 않고 떠나 버릴 것 같은 우려감에서 인지 난장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거문도를 자주 찾는 단골 낚시인들이 더욱 심하게 밀어 붙이며 혼잡을 가중시켰다. 배를 타고 보니 혼란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지정 좌석제가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단골 낚시인들이 그 무거운 장비를 둘러매고서도 먼저 타 좌석을 차지하려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밀고 밀어 붙인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연안여객선사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는 S사의 고객관리가 이 모양밖에 되지 않는지...," 그렇게 많은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D호에 왜 지정 좌석제를 운영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고 외국의 관광객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창피한 나라 망신이었겠는지 도무지 부끄러울 뿐이었다. 수년 전 거문도 출조때는 여객선표를 구하지 못해 고배를 마시고 돌아왔었지만 오히려 이런 현실을 보지 않고 돌아 갔어야만 했던 그때가 더욱 나았다고 생각을 하며 거문도를 등 뒤로 돌아서야만 했다. 화끈한 돌돔 손맛을 보지 못하고 씨알 잔 참돔들만 성가시게하였던 기나긴 거문도의 2박.., 뒷맛은 아직까지 깨운치 못하고 씁쓸하게 머리 한구석에 남아만 있다.

집 나가면 고생길, 모처럼 찾았던 거문도에서 필자는 완전히 구시대 낚시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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