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봄, 충무권(현 통영권)의 밤볼락 배낚시를 여러번 치르고 나서 얻은 경험이었다. 선상(船上) 밤볼락 낚시는 갯바위에서 행하는 밤볼락 낚시와는 또다른 재미를 안겨 주곤 하였다. 선상 밤볼락 낚시는 물때에 따라 포인트를 옮겨 다닐 수 있고 바람이나 파도를 등지는 곳으로 수시 이동하여 낚시를 할 수 있으므로 갯바위 낚시보다 조과면에서 월등하였다. 또한 배위에 밝은 전등을 켜 뱃전을 밝혀두므로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밤낚시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선상 밤볼락 낚시를 몇 번 시도하던 중, K선장이 5월이 넘어서면 산양면 일대에서 농어 배낚시를 해 보자고 권유하였다. 사량도가 마주 바라다 모이는 산양면 지역은 5월이 넘어서면 먼 바다의 농어들이 산란을 위하여 모여들고 이때 선상에서 물 골을 따라 배낚시를 하면 갯바위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엄청 큰 놈들이 낚인다는 것이었다. 미끼는 밤낚시 때 현지산 새우로, 해가 뜬 후부터 낮에는 산 멸치를 미끼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갯바위 농어낚시 채비인 릴 찌낚 또는 루어 낚시와는 달리 선상에서 릴맥낚으로 바닥에서 채비를 1메타 정도 띄워 낚는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띄워서 낚는 농어낚시와는 다른 배낚시 기법을 소개하였다.
하기사, 전라도 뻘밭에서 감성돔 배낚시를 할 때 바닥에 가라앉혀 놓은 참갯지렁이 채비에서도 농어가 물었으니 바닥층 띄울 낚시에서도 농어가 물어줄 것 같았다. K선장은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낚이는 씨알이 1메타 이상되는 놈들이 간혹 있으며 농어 떼를 만났다 하면 화끈한 손맛과 마릿수를 보장한다"것이었다. "어디 모두들 어부가 한번 되어볼까?" 말로만 들었던 "농어 배치기 낚시"는 또 다른 낚시 세계로 접어들고 싶어하는 필자의 무궁한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좋다, 농어 배낚시도 한번해 보자" 조우들도 필자의 마음과 같았다. "걸었다 하면 와당~탕탕! 있는 힘을 다해 당겨야 하는 힘 겨루기 속칭 "노가다 낚시다"고 모두들 농어 배낚시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누구던지 한마리 걸었다 하면 신속히 옆에서는 장비를 걷어 올려 줘야 서로의 채비가 엉키지 않고 온전하게 낚시를 할 수 있다"고 농어 배낚시때 유의사항을 주지시키기도 하였다.
어느 듯 5월 하순이 다가왔다. 충무시 K선장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토요일 오후 농어낚시를 위하여 부산에서 내려가니 딴 손님 태우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일행들이 내려 갈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고 미끼도 밤낚시에 사용할 현지산 새우와 낮 낚시에 사용할 멸치를 준비시켰다. 모두들 장비도 중무장하였다. 갯바위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다소 짧은 릴장대를 구입하였고 거기다 굵직한 스피닝 릴을 갖다 붙인 후 10호 원줄에다 목줄 역시 가장 야무진 8호 줄을 사용하기로 통일하였다.
봉돌은 현지에서 8호 도래봉돌을 사용한다 하였기에 이 역시 통일시켰다. 또한 도래봉돌을 위장하고 농어의 시각을 자극시키기 위하여 도로봉돌을 감싸는 붉은 색 고무 루어까지 구입하는 등 준비에 완벽을 기하였다.
토요일 일과를 마치고 2대의 승용차에 6명의 직장동료와 조우들이 충무시(현 통영시)를 향해 내달렸다. 토요일이라 남해고속도로 물론이고 마산(馬山)에서 충무(忠武)로 이어지는 국도의 확장공사 등으로 곳곳에서 교통체증이 심하였다. 좀 늦게 여객선 터미날 앞에 도착하였지만 K선장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러나 밤낚시에 사용할 현지산 새우를 구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대신 청갯지렁이를 준비하여 밤에는 볼락 배치기를 하다가 해뜬 후에는 현지산 멸치가 구해지면 농어낚시를 나가자고 제의하였다. 모두들 대물 농어 밤배낚시를 기대하고 달려왔지만 미끼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다 밤볼락 낚시를 할 장대를 준비하지 않고 투박한 릴대만 한대씩만 가져 왔기에 모두들 값싼 그라스롯드 민장대까지 인근 낚시점에서 구입하였다.
K씨는 충무대교를 지나 서편으로 배를 몰아 나갔다. 사량도가 마주 바라다 보이는 곳, 올망졸망한 이름 모를 섬 주변에 배를 묶었다. 주변 내만 쪽에는 무수한 양식장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갯바위에서 10여메타 떨어진 곳에 닻을 내리고는 밤볼락 배치기가 시작되었다. 선상에서 민장대로 낚아내는 씨알은 역시 갯바위 밤낚시보다 훨씬 굵었지만 오늘은 마릿수는 적었다. 그래도 닻을 내린 후 1시간 가량 낚시를 하였지만 여섯명이 중치급 볼락을 50여수 건져 올렸다. 전등으로 훤하게 밝힌 선상에서 즉석회를 장만하였고 모두 둘러 앉아 싱싱한 볼락회와 충무김밥으로 소주잔을 나누었다. 소주잔이 여러번 돌아 다닌 후 모두들 피곤하였는지 아니면 내일 새벽 대형 농어낚시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지 뱃전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밤볼락 낚시보다는 대형 농어낚시에 승부를 걸어 보자는 뜻이었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이슬까지 내려 한기(寒氣)를 느끼자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해뜨기 전 농어 포인트로 나아가기 위하여 새벽 4시경 선장을 깨웠다. 선장은 아직 시간이 일러 산멸치를 구할 수 없으니 해뜬 후 멸치를 구한 다음 농어낚시를 나가자고 하였다. 부산 사투리로 "노니, 염불한다"고 모두들 해 뜰 때까지 청갯지렁이를 달아 볼락낚시를 시도하였다. 여러마리의 볼락을 낚았지만 뱃전에 던져 놓았고 쿨러에 집어 넣는 사람이 없었다.
여명(黎明)이 밝아오자 닻을 올린 선장은 양식장이 많은 내만 쪽으로 다시 배를 몰았다. 양식장 주변에는 어제 밤 놓았던 그물을 건져 올리는 배들이 몇 척 있었다. K선장은 어장에 배를 붙인 후 산멸치를 구입하도록 하였다. 산멸치를 배 물칸(고기를 잡아 살려두는 곳) 두 곳에 분산하여 넣어 두었다. 우측 물 칸에는 갯바위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큰 바다 게가 몇 마리 웅크리고 있었고 좌측 물 칸에는 엿가락만한 작은 바다장어가 서너마리 점잖게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들이 산멸치를 잡아 먹어치울 것 같아 물 칸을 열어두고 가끔씩 확인기도 하였다.
모두들 배가 바다로 나아가는 동안 농어 채비를 하느라고 분주하였다. 얼마 후 K선장은 배를 사량도와 통영시 산양면 사이 내만에 닻을 내렸다. 필자도 농어 배낚시는 처음이었지만 조우들 역시 어부들이나 하는 낚시를 시작하는 순간이라 다소 흥분하는 기색을 보였었다. 장단지 보다 굵은 농어가 와락 덤벼 들 것 같은 기대감에 충만되었고 나름대로 중무장한 쌍바늘 농어채비를 가다듬고 있었다. 갯바위 농어채비와는 달리 짧은 장대를 사용하므로 다루기가 용이하였다.
선장의 가르침에 따라 산 멸치의 뇌를 다치지 않게 양쪽 눈 사이로 바늘을 살짝 뀌어 멸치가 수중에서 자연스럽게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새벽, 최고의 시간대에 최고의 산 멸치 미끼로 승부를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하나,둘씩 채비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조류는 다소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채비를 내리자 원줄이 약간 비스듬히 흐르다가 조류를 따라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았다. 긴장된 순간이 계속되었다. 누구던지 한 마리 걸면 모두다 채비를 감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조용히 서로의 장대까지 주시하면서 새벽을 열고 있었다. 선장은 "바닥에서 조금 띄워야 한다"고 다시 알려주었다. 뒤쪽에 낚시를 하던 조우 K씨가 먼저 "한 마리를 걸었다!"하고서는 릴링을 시작하였다. 모두들 재빨리 릴을 감아 들이고 뒤쪽 K씨의 장대만 주시하고 있었다. 흐르는 조류의 영향과 수중에서 잡아당기는 고기의 엄청난 힘에 장대는 휘어질대로 휘어져 버렸다.
있는 힘을 다하여 릴을 감아 들였는데..., 물위에 떠오른 순간 모두들 한바탕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많은 굴껍질이 붙은 나일론 로-프가 목줄을 칭칭 감고 무겁게 달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차례 헤프닝이 있은 후 다시 산 멸치로 미끼를 바꾸어 뀐 다음 채비를 내렸다. 그렇지만 30여분을 기다려도 어신이 없었고 침묵만 계속되었다. 조류는 더욱 세차게 흘러 뭔가 될 것 같은 기분만은 이어졌다.
아침 8시가 지났다. 해는 중천으로 떠올랐고 모두들 허기를 느꼈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 아무리 굵은 농어가 낚여 나온다 해도 허기가 져서는 안될 일이었다. 횟거리가 볼락 몇 마리밖에 안되 물 칸에 꼬물거리던 산멸치를 뜰채로 퍼 올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하고 즉석 멸치회를 장만하였다. 뱃전에 음식들을 펼쳐놓고 모두들 둘러 앉았다. 멸치회를 곁들여 맛있게 아침식사를 나누면서 모두들 "혹시 잘못 짚은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더해 갔다.
더욱이 선장은 "며칠 전 농어가 여러마리 잡혔는데 오늘은 이상하다"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식사 후 선장은 조금 남쪽으로 포인트를 이동하였다. 바람 한점없는 전형적인 봄날이었다. 그러나 10시를 넘기자 초여름 날씨마냥 무덥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밤낚시 때 추울까 봐 내의까지 입고 왔기 때문에 더욱 더울 수밖에 없었다.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은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였다. 대형농어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모두들 열심히 노렸지만 더위만은 이길 수 없어 하나,둘씩 벗어 던지기 시작하였다.
오전 11시경 포인트를 또 다시 옮긴 후 12시가 가까웠지만 누구에게도 어신이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것"은 언제나 같았다. K선장 역시 농어가 낚이지 않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였다. 그래도 오후 2시경에 철수키로 하였기에 부지런히 미끼를 바꾸어 주면서 열심히 노렸다. "몰황!"이라고 판단한 필자는 정오경까지 노려 보았지만 어신이 없자 장비를 걷고 잠시 눈을 붙였다. 30여분 지났을까 얼마나 더운지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물 바케스로 바닷물을 퍼 올려 샤워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바케스로 바닷물을 퍼 올려 샤워를 하면 조우들의 낚시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순간, 멸치가 담겨져 있는 물 칸 속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 있으면 조우들 낚시 방해도 되지 않고 땀을 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우들에게 "더워서 물 칸 속에 들어가 앉아 있을테니 미끼가 필요하면 말만 해라."고 해놓고는 물 칸 뚜껑을 열었다. 옷을 모두 벗어 던진 후 팬티만 입고 조용히 소형 풀장으로 입수..., 얼마나 시원한지 시베리아 눈밭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사타구니 사이로는 멸치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겨드랑 아래까지 멸치들이 다가와 손살같이 돌아다녔다. 그 순간, 사타구니 사이 중요한 부분에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오기 시작하였다.
"우~아악!" 소리를 지르며 물 칸에서 엉금엉금 뱃전으로 기어 나와 뒹굴기 시작하였다. 조우들이 모두 놀라 달려 들었고 선실에 있던 선장도 와락 튀어나왔다. 원인은?..., 소형 풀장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굵은 게가 팬티 속에 보관 중이 두 가마니 감자 포대를 집게발로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더워 물 칸을 확인하지 않고 들어 앉아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고!, 고놈의 대형 농어때문에... 공포의 집게발에 물려 대형사고 날 뻔 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