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1월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전남 황제도(皇帝島)가 해금되었고 많은 낚시인들이 이곳을 집중공략하기에 시작하였다. 겨울 바다는 가을에 비하여 낚시인들이 덜 붐벼 한적한 곳들이 많았으나 이곳 황제도는 감성돔 소문을 듣고 달려 온 전국의 많은 낚시인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황제도의 겨울 감성돔은 마릿수 좋고 씨알이 굵기로 정평이 나 있으며 걸었다 하면 묵직한 당김과 화끈한 손 맛을 한 컷 느낄 수 있어 전국의 많은 낚시인들을 불러 모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이곳으로 출조하였다. 너무나 많은 낚시인들이 몰려 포인트에 제대로 들어갈 수 가 없었다. 포인트를 잡을 수 없었던 낚시인들은 동편 마을 앞 여객선 선착장 주변에 몰렸다.
어림짐작으로 30~40여명 더 되어 보였고 이들 낚시인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장관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낚시인들 틈에 함께 낚시를 하였던 필자는 운이 좋아 굵은 씨알의 감성돔을 9마리 잡을 수 있었다. 직장 후배 S씨가 동행하였기에 이 소문이 직장 내 펴졌고 급기야 후배 직원들이 황제도 출조를 종용하는 성화가 끊이지 않았다.
겨울바다는 날씨가 조과를 좌우
겨울바다는 악조건의 연속이다. 강한 북서풍이 몰아치는 계절인데다 수시로 폭풍주의보가 발효되고 강추위까지 휘몰아친다. 해서, 언제나 일기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황제도에 감성돔이 붙어 있는 것은 확인하였기에 동료 직원들의 성화를 못이기고 다음 주말 밤 이곳으로 다시 출조 스케쥴을 잡게 되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같지 않은 장마 이후, 비같은 비 한번 내리지 않는 장기간의 한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금요일 밤, 기상대는 토요일 밤부터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하였다. 언론에서는 "90여년만에 처음"이라는 기나 긴 가뭄 중 내린다는 비라 그지없이 반갑기만 하였다. 한 직장에서 머리 맞대고 함께 일하는 후배 J씨는 바다낚시를 무척 좋아하였고 필자와 함께 소흑산도, 만재도 등지를 두루 다녔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랫동안 출조치 못하다 황제도의 감성돔 소식을 듣고 2년만의 화려한 외출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역시 동행하는 후배 P씨도 감성돔 소문을 듣고 오랜 만에 겨울바다로 나선다고 하였다. 둘은 주중(週中)부터 계속 황제도 감성돔 열기에 파묻혀 일손을 잡지 못하였다. 브레이크 릴까지 준비하였고 연질 장대와 구멍찌 등을 갖추고 오직 한마리 대형감성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가뭄 중 내리는 단비
후배들 모두 어렵게 날을 잡았는데 비가 내린다고 하니 하늘을 몹시 원망하였다. "젠장, 90년만에 가뭄이 계속되다가 모처럼 황제도 감성돔을 보기 위해 출조하기로 날을 잡아 놓았는데 토요일 밤부터 비가 온다니, 돌아 버리겠다..., 그것도 밤부터 내려 다음날까지 내린다니..." 투들투들 하소연만 계속하였다.그래도 혹시나 기상대의 예보가 빗나가길 기대도 하였지만 오랜 만에 내리는 비라서 그런지 기상대는 확실하게 쪽집게 같이 예보하였다. 토요일 아침, 뉴스시간에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비.바람에다 날궂이로 고생할 것이 뻔하였다. 그렇지만 모처럼 출조하는 후배들과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어 비.바람이 불어도 낚시 보따리 둘러메고 나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갑지 않게 장비들을 승용차에 주섬주섬 담으면서도 "가본들 고생만 실컷 할 것인데..." 하는 생각에 손길이 왠지 무겁기만 하였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하늘을 몇 번이나 더 쳐다 보았다. 이런 저런 미심적은 생각까지 들었다. 내키지 않는 출조라 꾸물거리다가 구멍복을 걸친 상태로 그냥 출발해 버렸다.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으니...
구멍복을 입을 상태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기 거북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달리고 있었다. 충무동 로타리를 지나칠 때 교통단속 의경이 점잔케 차를 세운다."교통위반한 적이 없는데"하면서 의아하게 의경을 쳐다 보니 "손님은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면허증 제시를 요구한다. "재수 없으려고 하니..." 의경은 아무 말없이 스티카를 쭈~욱 찢어 주었다. 스티카를 받은 후 "애~라, 갈 때까지 가보자..."라고 중얼거리며 엑세레다를 강하게 밟았다. 그러나 얼마나 기다리던 단비인가. '90년만에 극심한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아닌가?
B낚시점에 집결하여 각종 준비물을 챙기는데 그렇게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빗방울이 계속 떨어져 장비를 적시고 있었다. 낮궂이를 우려한 낚시인들 대부분이 출조를 포기하는 바람에 모 낚시점과 함께 두 낚시점에서 손님을 모아 출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19명의 낚시인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우중(雨中)의 남해 고속도로를 줄기차게 내리 달려나갔다. 버스 내에서 잠을 청하려 하였지만 좀체로 잠에 빠질 수 없었다. 관광버스의 원도 브러쉬가 제법 바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많은 비가 내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갈라진 종이컵에서 커피 세례
섬진강 휴게소에 도착하자 비는 그치고 바람만 제법 강하게 불어고 있었다. 커피 한잔하기 위해 자동판매기 앞에 모였다. 후배가 뽑아주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있는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종이컵의 이음새가 제대로 접합되지 않았는지 커피가 옷과 신발 위로 뚝뚝 떨어졌다. "아이구 종이컵이 와이라노..., 재수없을라 카니 스티카 받았는데 커피 잔까지 말썽이고..." "오늘은 뭐하나 똑바로 되는 일이 없노..." 계속 불평이 터져 나왔다.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에 그대로 던져 넣고는 재빨리 버스에 올라 버렸다.
샛바람과 높은 파도를 헤치고 황제도로...
새벽 2시를 넘기고 난 후, 녹동(鹿洞)항에 도착하였다. 바람이 다소 강하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녹동항을 벗어나 얼마 내려가자 강한 샛바람으로 바다는 용트림을 하기 시작하였다. 출조 회원이 적어 경비가 부족해서인지..., 선비를 아끼려고 그런지..., 초도의 작은 배를 빌려 왔고 부도와 섭도를 벗어나자 배는 좌우상하로 심한 롤링과 핏칭을 거듭하였다. 심야의 밤바다를 허우적거리면서 달려 내려와 어렵게 "황제도" 마을 서편에 배는 정박하였다. 선장은 바다가 거칠므로 해뜬 후 갯바위 하선을 권하였다. 그러나 일행 중 배멀미를 하는 낚시인이 있어 해뜨기 전 갯바위 하선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한 겨울 낚시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많은 옷을 입고 있으므로 행동이 둔한데다 갯바위에 돌김이 붙어 미끄럽기는 그지없었다. 더욱이 간밤에 비까지 내려 온 갯바위가 빙판과 같았다. 샛바람이 워낙 강하므로 지난주 여러마리의 감성돔을 잡았던 동편 여객선 선착장 주변에는 파도가 높아 내릴 수 없을 것이 뻔하였다. 우리 일행 3명은 샛바람을 피해 낚시하기가 용이한 서편 본섬과 덜섬이 마주한 홈통 옆으로 제일 먼저 내리기로 하였다.
동료의 실족사고
필자가 먼저 내리고 후배 J씨가 뒤를 따라 내린 후 마지막으로 P씨가 내려 배위에서 전달해 주는 장비들을 릴레이식으로 받아 올리기로 하였다. 배를 갯바위에 밀어 붙이자 필자가 제일 먼저 내려 갯바위 위쪽으로 올라 섯다. 다음 J씨가 내렸고 이어 P씨가 뒤따라 내렸다. 그러나 P씨가 갯바위에 발을 내려놓은 후 몇 발자국 위쪽으로 올라오다가 발을 멈추고 돌아서는 순간, 갯바위에 무성하게 자란 김발에 그만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외마디 비명을 토해내며 갯바위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료를 바라보니 등골이 오싹하였고 머리카락이 쭈삣하게 서면서 마음 속에서는 "큰일 났다, 실족이다"라고 외쳐 데었지만 어둠 속에서 굳어버린 발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갯바위는 45도 정도의 경사면을 이루었고 온통 돌김이 붙어 빙판과 같이 미끄러웠다. P씨는 갯바위에 서 4~5메타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하늘이 도와 배 이물에 발이 걸렸다. 그런데다 더욱 운 좋게 사타구니가 이물에 꽉 끼어 들어 바다로 실족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갯바위에서 지켜보던 필자와 J씨는 안도의 숨을 들이키며 천만다행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선상에서는 P씨가 있는 배의 이물에 걸여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이 배 밑에 걸려 있으니 배를 움직이지 말라"고 고함을 쳐 선장에게 실족을 알렸다. "뒷 파도를 받아 배가 움직이면 큰일 난다, 빨리 뒤로 물러나 배 위로 올라서라"라고 다시 큰 소리로 말 하였지만 잘 들리지 않는 듯 하였다.
"천천히, 천천히, 당황하지 말고 몸을 움직여라!"라고 또 소리쳤지만 필자의 굳어버린 다리는 그 자리에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선상의 낚시인들은 미끄러져 바다로 빠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물에 사람이 끼여 있다!"고 다시 고함치자 그때사 배 위에서 여러사람이 이물 밑에 끼여 있는 P씨를 발견하였다. 여러 낚시인들이 힘을 모아 배위 위로 당겨 올리려 하지만 배 밑이 어두워 쉽게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P씨 역시 이물에 박히는 순간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뒤로 움직이려 하였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였다. 양손에 있는 힘을 다 주면서 몸을 세운 후 엉둥방아를 찍어가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곧 이어 선상에서 여러 낚시인들이 P씨의 팔을 잡고 어렵게 배 위로 끌어 올린 후 잠시 진정시킨 다음 안전하게 하선하게 되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오랜 만에 줄조한 P씨의 갯바위신발 바닥 침이 모두 닳아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장비를 옮기면서 투들거렸다. "시작부터 뭔가 불유쾌하더니..."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갯바위 실족사고까지 겪었지만 그래도 이 먼 황제도까지 왔는데 낚시는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래, 낚시 해야지...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해뜨기 전에는 분주하게 설쳐대었다. P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J씨에게 라면을 끓이도록 하고 필자는 뒤둥 걸음으로 바닷물을 떠서 크릴과 분말을 혼합, 반죽하여 밑밥을 만들었다. 바나를 피워 라면도 끓이고 장비와 짐도 높은 곳으로 옮기고... 분주하게 움직이면 추위도 조금 잊을 수 있다. 미끼용 크릴도 녹여 낚시 준비를 마쳤다. 여명이 밝아 올 무렵 다행히도 비는 멎었다. 따끈따끈한 라면 국물로 빈속을 채운 후 구멍찌를 처음 사용하는 후배 J씨에게 자세하게 채비 만드는 방법을 또다시 설명하였다.
이곳은 황제도 본섬과 덜섬 사이로 조류가 강한데다 오늘은 샛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채비 밀림이 심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따라서 구멍찌는 조류의 영향을 적게 받는 작은 크기, 부력은 5B 정도, 특히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찌 톱 부분 절단된 형태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빠른 조류의 영향을 줄이도록 수중찌는 사용하지 말고 목줄에 여러 개의 봉돌을 분산하고 잔존 부력을 최소화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후배들에게 채비 방법을 일러준 다음, 해 뜰 때부터 각자 위치로 가서 낚시를 시작하도록 한 후 필자도 채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간간히 빗방울이 또 떨어졌고 샛바람도 계속 되었지만 가끔씩 순간적으로 강하게 불어 왔다. 그러나 낚시하는데는 큰 불편함이 없는 듯 하였다. 본섬과 덜섬 사이 골창으로 필자 혼자 이동하여 장비를 준비하기 사작하였다. 장대에 릴을 채우고 원줄을 걸어 빼낸 후 구멍찌와 수중찌를 끼우고 목줄을 2발 정도로 하여 도래에 잘 묶어 채비를 완성시켰다.
짜증스러운 골바람
장대를 펴고 미끼를 끼운 후 첫 채비를 던지려고 원줄을 감다보니 초릿대 끝에 원줄이 감겨져 있었다. 여러번 장대를 좌로 우로 돌려 가면서 감긴 줄을 풀려고 하였지만 더욱 심하게 초릿대에 감겨 버렸다. 할 수 없이 장대를 갯바위에 걸쳐 두고 갯바위를 타고 올라가 초릿대 끝에 감긴 원줄을 풀어 헤치고 내려오니 이번에는 목줄이 갯바위에 이리저리 감겨 있었다. 장대를 다시 눕혀두고 갯바위에 감긴 목줄이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풀어 장대를 들어올린 다음 채비를 던지려고 하자 이번에는 원줄이 위쪽 갯바위에 걸여 있었다. 짜증스럽지만 올라가 풀 수 밖에 없었다. 갯바위를 타고 다시 올라가 감긴 원줄을 풀고 내려와 보니 "아니!" 이번에는 바늘이 갯바위 틈새에 끼여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어려울 것 같은데 작은 틈새에 바늘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목줄을 끊어 버릴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칼끝으로 바늘을 살살 건드려 바늘을 뽑아 내었지만 목줄이 쓸켜 있었다. "애라, 다시 묶자", 채비를 한번 담구어 보지도 못하고 목줄을 끊어내고는 다시 채비를 묶은 후 릴을 감아보니 또 원줄이 초릿대 끝에 감겨있었다. 혼자서 욕지걸이를 펴 붓고 다시 갯바위로 올라가 원줄을 풀어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가끔씩 불어오는 강한 샛바람이 이곳 골창으로 빠져 나와 갯바위를 감아 돌면서 회오리를 일어켜는 바람에 채비가 좌우상하로 날려 엉켜 버리는 것 같았다.
우중충한 새벽바다
왠지 출조하기 싫은 날이어서 그런지 "스티카 받고, 커피 쏟고, 실족사고가 발생되고, 온통 줄까지 엉켜 새벽물때 다 놓치고... 시작부터 불유쾌하더니..."하면서 중얼거렸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채비를 아예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채비를 다시 만들고 나니 벌써 날이 밝았다. 그러나 물빛이 너무 흐려 감성돔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이 보였다. 계속 밑밥을 투여해 가며 들물 시간대를 집중적으로 노렸지만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혀 어신을 받을 수 없었다. 간간히 본섬과 덜섬 사이에서 강한 샛바람이 휘몰아쳐 채비를 더욱 바다 쪽으로 빠르게 떠밀어내어 버렸다. 조류가 워낙 빨라 채비를 던진 후 곧바로 떠내려간 채비를 회수하여 미끼를 다시 갈아주고 밑밥 뿌리는 작업을 지겹도록 반복하였다. 바다는 온통 뻘물같이 누른 빛을 띄고 있었다.
만조때 감성돔을 만나다
정오무렵, 만조가 가까워질 때쯤, 순식간에 찌를 빨고 들어가는 어신을 받았다. 수중여가 많은 지역이라 원줄을 많이 놓아줄 수 가 없는 상황이었다. 레브 브레이크를 여러번 풀어줄 수가 없어 장대를 힘컷 잡아당겨 갯바위 가쪽으로 고기를 힘으로 몰아 붙였다. 갯바위 가쪽까지 이끌려온 고기는 더욱 힘차게 내리 박았다. 그렇지만 놈을 장대의 탄력을 이용하여 기를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수중 여밭을 어렵게 피해 뜰채에 담는 순간, 날궂이 출조의 피로가 일순간에 풀리는 듯 하였다. 45센치급으로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굵은 감성돔이었다. 악조건 속에서 어렵게 감성돔을 갯바위에 눕혀놓자 직장 후배들이 뒤늦게 달려 왔다. 골창 안쪽 포인트를 직장 후배들에게 양보하였지만 이후 감성돔을 구경할 수 없었다. 당초 철수 예정시간이 오후 2시경으로 잡았으나 물이 흐리고 날궂이가 심해 오후 1시를 조금 넘기자 곧바로 철수를 시작하였다.
날궂이로 앞당겨진 철수
조류도 썰물로 돌아 섯고 물색도 너무 흐리면서 탁하고 어두운데다 가끔씩 비가 내렸고 샛바람까지 강하여 더 이상 감성돔을 기대할 수 없은 상황이라 재빨리 철수를 서두른 것 같았다. 한편, 우리 일행이 3명이 낚시한 곳에서 마을 쪽으로 불과 50여메타 떨어진 곳에 우리와 함께 B낚시점을 이용한 회원 6명이 하선하여 있었다. 이들은 새벽녁 동쪽 마을 앞 선착장 주변과 땅콩섬 등에 하선코자 넘어갔으나 샛바람과 높은 파도에 쫓겨 서편으로 되돌아 온 후 한자리에 6명이 함께 내려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일행 중 몇명은 장대와 미끼만 들고 동편으로 넘어 갔으나 강한 샛바람의 영향으로 어신을 받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고 하였다. 철수시 우리 일행 3명이 먼저 배에 올랐다.
곧 이어 함께 출조한 6명이 하선하였던 곳으로 배를 이동 시켰다. 이곳에 있던 6명의 낚시인이 승선하는 것을 보고는 선실에서 피곤한 몸을 눕혔다. 알매섬에서 낚시 중이던 일행들을 마직막으로 태운 다음 인원을 체크해 본 결과 19명 전원이 승선하였다. 알매섬을 끝으로 배는 높은 파도를 헤치며 출발지인 녹동을 향해 되돌아 가기 시작하였다.
해상의 날씨가 나빠 녹동까지는 두 시간이상 소요되었다. 오후 4시경, 녹동항에 도착하자 말자 모두들 장비를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싣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계속될 것 같이 음산하기만 하였다.
전체 인원은 맞으나 보이지 않는 한 사람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필자의 뒤쪽 중간쯤에 앉아 왔던, 그것도 필자가 이용한 B낚시점을 통해 혼자 출조한 낚시인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차를 세우고 인원을 체크해보니 19명 전원에 승차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순간 버스의 뒷좌석 쪽에서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한사람이 낚시복장을 하고 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를 본 낚시인들이 "어떤 낚시점을 통하여 출조하였는가?"를 물어보니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만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낚시인들이 모두 일어나 이 사람에게로 몰려 들었다. 몇몇 낚시인들이 고함소리도 들렸다. 잠시 후 뒷좌석이 웅성웅성 요란스럽게 변하더니 급기야 이 이상한 낚시인을 잡고 끌어내기 시작하였다. "날궂이 출조..., 온갖 일이 벌어지더니 철수 때까지 와이라노..."
낚시인들에게 이끌러 버스에서 내 쫓기던 이 사람은 이런 사연을 가진 낚시인이었다. 이 이상한 낚시인 복장을 한 사람은 부산에서 사업을 하며 바다낚시를 즐겼던 낚시인이었다. 그런데 수년 전 사업에 실패하고 부도(不渡)가 나면서 재산은 허공으로 다 날려버리고 도피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도이후 이곳 황제도에 은신(隱身)하여 가끔씩 낚시도 즐기며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한때, 사업이 번창할 때 이곳 현지민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였기에 수년동안 현지민들의 보호 (?)를 받으며 이곳에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이상한 낚시인도 사업에는 실패하여 은둔하였지만 인간이었기에 수년만에 부산을 나들이를 하고 싶었던 같았다. 외로운 고도에서 탈출을 시도하려는 빠삐용같은 사나이었다.
이 사람은 바다를 잘 알고 있는 낚시인이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출조한 우리 팀의 낚시배에 몰래 몸을 숨기고 녹동까지 올라 온 후 낚시버스를 타면 부산까지 검문을 피해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낚시인 복장을 하여 낚시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와 다시 관광버스에 몸을 숨기고 부산으로 내려가고자 면밀히 계획하였던 것 같았다. 이방인 한 사람이 배를 몰래 타 녹동까지 올라왔고 관광버스 좌석까지 차지하고 있었으니 전체 인원은 맞았다. 특히 두 낚시점에서 출조한 19명 모두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고 전체 낚시인 숫자만 계산하였기에 엉뚱한 결과가 발생하였다.
일행들은 동행한 낚시인 중 한 사람을 황제도에 남기고 돌아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초도에서 올라 왔던 낚시배는 우리 일행을 녹동항에 내려준 다음 이미 초도로 떠나 버렸다. 뒤늦게 황제도(皇帝島)로 연락을 취하였다. 황제도 이장(里長)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B낚시점을 통하여 출조한 낚시인 한사람이 현재 황제도 방파제에서 비,바람을 맞아 가면서 외롭게 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낚시인은 혼자서 아침부터 이곳저곳 포인트를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낚시를 하다가 당초 철수시간인 오후 2시를 맞추어 아침에 내렸던 갯바위에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었다고 하였다.
부랴부랴 부산으로 황제도로 전화를 하면서 수선을 떨었지만 한 사람의 낚시인을 그냥 두고 일행들만 부산으로 내려 갈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낚시점에서 출조한 낚시인들 모두 몇 시간이 흘렀지만 불평없이 이 한사람의 동료과 함께 무사히 철수하기를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듯 해는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바다는 더욱 거칠어졌고 바람은 계속 강하게 불어대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결국 이 한 사람의 낚시인을 철수시키기 위하여 녹동항에서 가장 큰 J호를 대절하여 황제도로 내려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낚시인은 황제도에서 철수시킨 후 승용차 편으로 부산까지 태워 오기로 결정한 후 일행들을 태운 버스는 부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날궂이하는 날은 쉬어야 한다
음산하게 구름 많이 끼고 샛바람 마져 강하게 불어대는 날은 웬지 낚시 가기 싫어진다. 비까지 내리고 날궂이가 뻔할 때는 더욱 낚시 가기가 싫어진다. 낚시 가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낚시를 떠나면 항상 날궂이 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겨울비가 촉촉히 오랜 가뭄의 대지(大地)를 적셔 주던 날, 그래도 버스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밤이 깊어 가는 고속도로를 힘차게 내 달리고 있었다. 고도(孤島)를 떠나 그리운 부산, 수년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빠삐용같은 사나이를 태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