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多大浦) 모자(帽子)섬은 오래 전부터 필자의 감성돔낚시 전진기지와 같았다. 매년 늦여름부터 이곳에서 감성돔 낚시를 시작하여 나무섬으로 가덕도로 거제도로 점점 더 멀리 전남권 구석구석으로 발길을 옮겨 놓으므로 한해의 감성돔 낚시 시발점이 되는 곳이었다. 낙동강 물이 갈고 닦은 이곳 다대포 지역의 감성돔은 대부분 2~3년생으로 25~30센치급이 대부분이지만 마릿수로 낚일 때가 많았고 어떤 때에는 굵은 씨알들도 가끔씩 낚여 나와 추자군도나 소흑산도 등 원도권 이상으로 화려한 손맛을 제공하곤 하였다.
그만큼 많은 감성돔이 와글거렸던 곳...,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부산권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감성돔 포인트가 바로 이곳, 다대포 지역이었다. 특히 초여름부터 꾸준히 감성돔이 낚여 나오는 모자섬은 발판이 편하고 가족단위로 나들이 하기에 알맞을 뿐만 아니라 교통도 편하여 이제는 감성돔 낚시터라기 보다는 가족들 잡고기 낚시터, 아예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20여년전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그렇게도 깨끗하였는데 수년 전부터 이곳을 찾아보고는 큰 실망이 앞섰다. 놀이터가 되어 버린 후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 쓰레기장화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드리 바위 밑은 물론이고 섬 전체는 온통 쓰레기가 뒹굴었고 군데군데 섞은 물이 고여 있었다. 고인 물에는 모기 애벌레가 와글와글 거리는 데다 악취까지 진동하는 곳..., 이제 병든 섬으로 변해 있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쓰레기 장이 따로 없었으며 섬 전체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그 이후 이곳을 찾지 않았지만 감성돔의 명성만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곳임에 틀림없는 곳이다.
갯바위는 갈수록 오염되지만...
모자섬은 작은 규모라 다대포가 바라다 보이는 북서편 선착장에 하선하여 동편까지 장대 한대 들고 두루 돌아 다니는데도 불과 몇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섬이 작다보니 감성돔 포인트도 한정되어 있다. 필자는 서편 가덕도와 쥐섬이 바라다 보이는 작은 홈통을 가장 즐겨 찾았다. 발 밑으로 크릴 밑밥을 뿌려 주면서 파도의 소용돌이가 한없이 피어오르는 포말 속에 찌를 동동 띄워 흘리면 어김없이 감성돔이 물고 늘어졌다. 이곳 홈 진 포인트 한 곳만을 무려 20여년 전부터 계속 노려왔고 오직 한 구멍만 노렸으니 찌의 미약한 움직임만 보아도 물 속 사정을 훤히 들여다 볼 수가 있는 자리가 되었다. 더욱이 이 한 구멍에서만 수없이 많은 감성돔을 뽑아 내었다. 외해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이곳 홈통에서 부서지면서 부글부글 끓어 올라 낚시하기가 불편한 곳이지만 이곳 홈통만 차지하면 끊임없이 감성돔을 낚아 내었기에 조우들도 이곳을 아예 필자의 자리라고 말하고 있으며 필자 역시 이곳에만 오면 신바람나게 감성돔을 낚아 내곤 하였다.
7~8년전 초가을 일요일 아침, 예나 다름없이 감성돔의 화려한 어신이 그리워 새벽부터 이곳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 갔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파도가 소용돌이치면서 힌 거품을 토해내는 이곳 홈통은 파도와 조류에 찌가 이리저리 밀리고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빠른 조류에 밖으로 떠밀려 나가기도 하는 등 낚시 하기가 불편하여 처음 찾는 낚시인들에게는 낚시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곳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만은 좀 늦게 들어가도 항상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첫 배를 타고 들어온 낚시인들이 몇몇 자리 잡고 있었지만 필자의 자리는 역시 비어 있었다. 도착 즉시 크릴새우 밑밥을 약간 뿌려주고 3칸 민장대를 펴 들었다. 수심이 한발 조금 더 되게 찌를 쭈욱 빼 올린 후 다시 밑밥을 조금 던져 넣은 다음 잘 생긴 크릴새우 한마리를 바늘에 뀌어 파도 거품 속으로 내려 보냈다. 이어 담배를 한대 피워 문 후 파도 속에 신바람나게 춤을 추는 찌를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우측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낚시를 하는 광경을 바라 보았다.
새벽에 만난 젊은 부부
그곳에는 꼭두새벽부터 젊은 남녀 두 사람이 주변 낚시인들 틈에 다정하게 앉아 장대를 펼쳐 들고 청갯지렁이를 만지작거리며 낚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젊은 부부 같이 보였다. 남자가 3칸반(6.3메타) 정도되는 민장대에 맥낚 채비를 만든 후 바늘에 청갯지렁이를 한 마리 끼워 여자에게 넘겨 주었다. 젊은 여인은 어설픈 폼으로 장대를 휙 감아 돌리면서 바다로 채비를 날려보냈다. 여차하였으면 그 옆에서 낚시를 하는 여러 낚시인들의 채비를 한꺼번에 둘둘 감아 붙여 바다로 던져 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지만 다행히 옆에 있는 여러 낚시인들의 채비와 엉키지는 않았다.
이어서 남자는 4칸대(7.2메타) 정도되어 보이는 긴 장대를 펴 바늘을 묶고 있었다. 역시 맥낚시 채비를 만들었고 청갯지렁이를 한 마리 바늘에 끼워 채비를 여자가 낚시하는 옆 쪽으로 던져 넣었다. 그곳은 3칸반대 민장대로 맥낚을 할 경우 날카로운 바닥에 자주 걸려 채비가 망가지기 십상인 곳으로 수심이 겨우 3~4메타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약간 경사진 곳이었다. 옆에서 눈짐작으로 보았지만 원줄이 10호정도는 되어 보였고 목줄도 7~8호는 더 되게 보였다. 봉돌은 도래봉돌이었으며 멀리서 대충 보아도 5호는 더 되어 보이는 크다란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 한 봉지 밑밥으로 가져온 홍합(담치)을 발로 꾸욱 꾸욱 밟아 부순 후 포인트 앞으로 전부 던져 넣어 주었다.
요란스럽게 낚시 시작
젊은 여인은 잠시 후 팔이 아픈지 쿨러 밑에 3칸반 장대를 끼운 다음 지긋하게 눌러 갯바위에 걸쳐 놓고 시끄럽게 베낭에서 코펠을 꺼집어 내 라면을 끓이며 계속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옆에서 낚시를 하던 중년 낚시인이 나무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떠들면 감성돔이 가까이 오질 않으니 좀 조용히 하시요." "낚시를 할 줄 모르면 베테랑 낚시인들이 낚시하는 광경을 보기나 하지 아침부터 그렇게 소란을 피워 되겠어요..."하면서 나무라기까지 하였다. 필자는 이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서 주변 낚시인들과 젊은 부부의 행동을 재미있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강한 파도가 바다 쪽에서 계속 밀려 들어와 앞 쪽 갯바위를 휘젓고 다시 넘쳐 올라 이곳에서 부서져 하얀 물거품이 높은 파도와 함께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를 감싸고 돌아 나갈 때 홈통 안쪽으로 크릴새우를 몇마리 더 던져 넣었다. 파도와 물보라가 계속 들끓었지만 꾸준히 크릴을 뿌려가면서 어신을 기다렸다. 그러나 옆쪽에는 갯바위에 퍼질고 앉아 라면을 끓이는 젊은 부부의 소란 때문에 낚시터의 분위기가 산만하였고 주변 낚시인들 역시 이들의 소란한 행동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감성돔 어신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나무랄 수도 없었다.
라면을 끓여 먹은 후 사고 연발
30여분이 흘렀을까?, 라면 국물까지 말끔히 비운 이들은 코펠과 장비를 뒤쪽으로 요란스럽게 물려 놓았다. 잠시 후 여인이 쿨러로 눌러 놓은 3칸반 민장대를 잡아 들고 당겨내기 시작하였다. 장대를 당겨 올리던 여인은 큰소리로 뭔가 당기고 있다고 남자를 향해 고함을 치는 것이 아닌가. 남자가 와락 달려와 장대를 인계받은 후 힘컷 당겨 올려보니 30센치 정도되어 보이는 은빛 찬란한 감성돔이 갯바위로 낚여 나왔다. 주변의 낚시인들이 모두 어이가 없는 듯 쳐다보며 웃기만 하였다. 그러면서도 "감성돔이 붙기 시작한다"고 판단하고 부지런히 밑밥을 던져 가면서 각자의 채비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필자 역시 어이가 없었다. 이곳 포인트를 하루,이틀 다닌 것도 아닌데, 그곳은 분명히 수심이 낮고 여가 많아 맥낚으로는 감성돔을 구경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라면 국물까지 홀랑 비우고 장대를 들어 올리니 중치급 감성돔이 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부부는 낚아 낸 감성돔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다. 계속 감성돔을 쳐다 보다가 옆에 낚시하는 낚시인에게 "이 고기가 감성돔 맞아요?"하고 묻기도 하면서 신기한 듯 조물락거리며 신바람이 나 어쩔 줄 몰랐다.목소리도 더욱 높아져 갯바위가 온통 시끌벅적하였다.
다시 청갯지렁이를 뀐 후 젊은 남자는 장대를 "휙~" 던져 넣은 후 쿨러 밑에 눌려 놓았다. 모두들 감성돔이 낚여 나오는 것을 보았으므로 밑밥을 뿌려주면서 부지런히 낚시하기 시작하였다. 필자 역시 크릴새우를 밑밥을 여러마리씩 홈통 안쪽으로 던져 주면서 파도에 흔들리는 찌를 노려 보았다. 어신이 없어 장대를 살며시 들어 보았지만 크릴새우는 그대로 달려 있었다. 모두들 어신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젊은 부부가 또 다시 큰 소리로 외쳐대기 시작하였다.
"왔다! 왔다! 그런데 당기는 힘이 왜 이렇게 세지?... " "자기야! 빨리 올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 젊은 부부에게 다시 쏠렸다. 역시 3칸반 장대에서 처음 낚였던 크기의 감성돔이 달랑 갯바위 위로 던져 올려졌다. 두번째 감성돔을 낚아낸 젊은 남녀는 갯바위가 떠나갈 것같이 요란스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하였다. 옆쪽에서 낚시하던 자칭 "베테랑 조사" 님은 아침부터 험악한 꼴(?)을 보아서 인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게 신바람이 난 젊은 팀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필자 역시 이곳 포인트에 십 수년간, 골백번 수셔 보았고 이곳의 물밑 사정을 어느 누구보다 손금 보듯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 신들린 이들 젊은 부부팀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그냥 옆에서 지켜고 있을 뿐이었다. "곧 어신이 오겠지..." 주변의 모든 낚시인들은 부지런히 크릴새우를 던져 넣어가면서 감성돔을 기다렸다.
모두들 부지런히 밑밥을 던져 넣었지만...
주변을 바라보니 여러 낚시인들 모두들 부지런히 밑밥을 던져 넣고 있었다. 그러나 청갯지렁이를 갈아 끼우고 채비를 내린 젊은 부부 팀은 또다시 함성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왔다, 왔어... !" 장대가 휘어지며 쿡쿡 내리 박는 폼이 분명 감성돔이었다. 남자가 장대를 받쳐 들자 젊은 여인은 얼마나 신바람이 났는지 남자가 당기는 장대에 엉겨 붙어 함께 들어 올리고 있었다. 10호 이상되는 원줄이므로 뜰채도 필요없었고 원줄을 잡고 당겨 올려 낼 필요도 없었다. 둘이서 장대를 번쩍 들어 감성돔을 갯바위에 달랑 눕혀 버렸다.
신바람난 청갯지렁이
얼마나 신이 났는지 젊은 여인은 큰소리로 옆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조사님들을 향해 떠들어대기 시작하였다. "베테랑 아저씨, 아침 일찍부터 낚시 와서 뭣하고 있어요?..., 물 속에 하얀고기(감성돔)가 와글거리는데 빨리 꼬물꼬물하는 지렁이를 달아서 넣어 보세요." "그렇게 허물허물하는 새우를 달아서 하얀 감성돔이 잡히겠어요...?" 주변 낚시인 모두들 고개를 꺼떡꺼떡하면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자칭, 베테랑이라고 말하던 낚시인은 넋 빠진 사람마냥 젊은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크릴 바구니를 뒤로 물리고 청갯지렁이를 달아 젊은 여인이 낚시하는 쪽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베테랑 아저씨, 우리가 먹이 준 곳에 던져 넣으면 어떡합니까?, 저쪽으로 던져요, 저쪽으로"하고 소리를 질렀다. 젊은 여인은 신바람이 나 더 크게 소리를 질렀고 이 소리를 들은 베테랑 낚시인은 창피하였는지 "미안합니다, 같이 낚시합시다." 하면서 장대를 들어 올려 이들과 약간 떨어진 곳으로 채비를 다시 던져 넣었다.
수심 몇 발 줍니까?
주변 낚시인들 중 젊은 낚시인 한 사람은 이들이 맥낚시를 하고 있는 것을 못보았는지 "지금 수심을 몇 발 주고 합니까?"하고 묻기도 하였다. 베테랑 아저씨도 기가 죽어 있고 또 다른 낚시인은 "낚시 채비를 어떻게 하였느냐?"고 묻기까지 하니 젊은 부부는 더욱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질문이 좀 어려웠는지 젊은 여인은 "수심요...?" 하면서 같이 온 남자를 쳐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잠시 후 젊은 여인은 되물었다. "아저씨, 수심요...?" "수심이 얼마인지 몰라도 고기 잡히는데 그까짓 수심은 알아서 무얼 합니까 ?" "우리가 낚시하는 것을 보면 모릅니까?, 척 보고 수심을 알아서 판단하셔야죠..."
감성돔은 립스틱 향기를 좋아 하였다.
물어 본 낚시인은 더욱 어이가 없었는지 청갯지렁이를 길게 단 장대를 "에잇"하면서 힘껏 바다로 던져 넣었다. 멀찌감치서 지켜보고 있던 필자는 오늘 아침 너무나 환상적인 감성돔 낚시를 구경할 수 있었다. 아니, 십수년 이곳을 다녔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 날 아침, 감성돔들은 평소에 채비만 끊어 먹던 낮은 여 밭에서 그것도 굵은 목줄에 청갯지렁이를 달아 낚시하는 젊은 부부에게 감성돔이 몰려들었다. 이 날 아침 감성돔들은 여인이 립스틱 냄새가 더욱 좋았는지 주변 낚시인들의 미끼는 거들 떠 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