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참돔사냥

[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10화, 참돔사냥

G 0 4,655 2006.12.04 09:50
월급쟁이의 원도 출조

월급쟁이가 원도(遠島)로 출조하여 대물 돌돔이나 참돔을 걸어낸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시간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경제적인 측면으로 보아도 그렇다. 더욱이 여름낚시 주 대상 어종들인 대물 참돔이나 돌돔들이 한두 물때를 기다린다고 해서 손쉽게 낚이는 것도 아니다. 매년 장마가 끝나면 7월 하순부터 8월하순까지 폭염이 쏟아지며 이때는 낚시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신도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경험하였기에 대물 돌돔과 참돔을 노리려면 언제나 장마 기간 중 여름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장마전선이 제주도(濟州道) 남쪽으로 잠시 남하할 때를 맞추어야 하는 등 궂은 날씨를 교묘히 피하여야 하고 이 시기에 맞는 물때와 포인트 등을 선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한정된 휴가기간 중 최상의 날씨에다 물때에 맞는 최적의 포인트를 결정하는 것이 정말 힘들기만 하였다. 포인트를 선정하였다 하더라도 출조하는 낚시회가 없을 경우 부득이 개인출조를 감행하여야 하며 이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욱 부담이 따를 경우가 많았다.

감성돔 낚시의 경우는 "기교(技巧)낚시"이나 돌돔, 참돔, 농어 부시리등 여름 어종은 "힘의 낚시"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필자의 경우 정도(正道) 낚시는 아니지만 확실한 장비에다 강인한 채비를 사용하여 대상 어종과 힘 겨루기를 하는 야성적인 낚시를 하기 위하여 여름휴가가 다가오면 장롱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무지막지한 장비와 채비들을 재점검하곤 하였다. 올해 역시 대물 돌돔과 참돔에 초점을 맞추었다. 참돔의 경우 5호 장대를, 돌돔의 경우 돌돔 전용 장대를 사용하고 양념으로 낚을 농어와 부시리의 경우 3호대를 사용하며 낚시줄은 참돔과 돌돔 원투의 경우 16호, 농어, 부시리 루어나 찌낚의 경우 8호 원줄을 주로 준비하였다. 목줄은 참돔과 돌돔 원투나 직벽 맥낚시를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37번 와이야로 준비하였고 농어와 부시리의 경우는 목줄을 원줄보다 굵게 10호를 사용할 때가 많았다.

낚시하는 대상 어종에 따라 미끼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미끼를 어떻게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느냐?"에 따라 조과가 결정되기도 하였다. 참돔의 경우 낙지을 주로 사용하였다. 낙지는 여름철 쉽게 죽어 부패할 우려가 있으므로 원정 출조 첫날 집중적으로 노리며 돌돔의 경우 성게, 참갯지렁이, 꼬막 등을 사용하므로 하루정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출조 익일부터 주로 사용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게불도 여유있게 준비하였다. 농어와 부시리의 경우 아침.저녁 루어를 사용하고 밤낚시에는 청갯지렁이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대상 어종에 따라 장대도 다양하게 준비하였고 미끼도 여러 종류를 준비하여 잘 보관하면서 사용하였다.

기다리던 여름휴가 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 년에 한번밖에 없는 여름휴가라 예년과 다름없이 낚시장비와 장비에 맞는 채비 준비를 마치고 "어디로 떠날 것인가?"에 고심하게 되었다. 매년 여름휴가 때 소흑산도, 태도, 만재도 등지로 떠났기에 올해 역시 포인트를 잘 알고 있는 소흑산도 쪽으로 S낚시점을 통해 출조할 것으로 결정하고 필자와 조우 K씨, 직장 후배 J씨 3명으로 팀 구성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소흑산도에 전국에서 많은 낚시인들이 몰려 들어 자리 다툼이 심하다"고 현지 연락을 받은 S낚시 점주는 출조 예정일보다 하루 앞서 떠나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휴가 일정에 차질이 생겨 버렸지만 월급쟁이는 휴가를 곧바로 변경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국토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소흑산도까지 개인출조를 감행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팀원들이 모여 긴급 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포인트를 소흑산도(小黑山島)에서 백도(白島)로 변경하였지만 날씨 또한 고약하였다. 출조 하루 전, 전국이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장대같은 비가 내렸고 호남지역에는 호우주의보까지 내려 여름휴가를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던 여름휴가가 아니냐!, 비 맞을 각오하고 강행군을 결정"하게 되었다.


7월16일 밤 11시 사하구(沙下區)에 있는 K낚시점 앞에 낚시 보따리를 옮겨 놓았지만 하늘은 음산하게 빗방울은 계속 뿌려대고 있었다. 그래도 내일 새벽이면 백도에서 낚시대를 담글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각종 준비사항을 재점검하였다.

목적지는 바뀌었지만

이번 출조는 시작부터 무언가 조짐이 이상하였다. 출조 예정지가 졸지에 바뀌어 그동안 머리 속에 구상해 왔던 작전이 수포로 돌아갔고 장마전선까지 활황을 보이고 있어 날씨를 예측하기 마져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행 6명을 실은 승합차는 여수를 향하여 비 내리는 심야의 남해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나갔다.

다음날 새벽, 여수항에 도착하였으나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아침 6시, 어항단지를 떠난 FRP선인 H호는 개도(蓋島)를 벗어나면서부터 심한 롤링과 핏칭을 거듭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온 바다를 누르고 있어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보이는 것은 안개에 쌓인 바다뿐이었다. 높은 파도밭을 4시간이나 헤매면서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하였다. 백도 못미쳐 모기여 3명의 낚시인을 하선시키고 선두(船頭)를 백도로 향해 돌렸으나 모기여를 벗어나자 말자 4~5메타 되는 집채만큼 높은 파도 가 배를 통채로 삼킬 듯 덤벼 들기 시작하였다.

너울파도에 떠밀려 회황

선장은 더이상 항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광도(廣島)로 회황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광도로의 회황은 싫었다. 선상에서 재빨리 의견을 모아 출조지를 또 다시 변경하게 되었다. "백도로 가지 못할 바에는 이곳 모기여에 내리기로 하자" 일행 3명은 결정을 내렸다. K낚시점에서 동행한 3명 역시 우리 일행과 의견을 일치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혀 계획에도 없던 모기여에서 '92년 여름휴가를 맞게 되었다.

또다시 바뀐 목적지

오후 2시반경, 6명은 일자섬(첫섬, 긴섬) 북쪽에 많은 장비들을 내려놓으면서 현지 2박3일의 고행낚시를 시작되었다. 어렵게 출발한 원정 출조, 포인트가 3번이나 바뀌어 예정에도 없었던 모기여에 내렸지만 그래도 일행들은 분주하게 텐트를 설치하고 미끼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소분한 후 쿨러에 보관한 다음 채비를 준비하였다. 그렇게도 끊임없이 내리던 비가 멈추었다. 그러나 남서풍이 강하였고 온 바다가 안개에 쌓여 있었다. 돌돔자리인 서편은 아예 너울파도가 덤벼 들어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낚시가 가능한 곳은 북쪽과 남쪽 일부분뿐이었다. 필자는 텐트 속에서 몇 시간 휴식을 취한 후 오후 6시가 지나면서 본격적인 낚시를 개시하였다.

"원정낚시는 첫날밤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철칙을 되세기며 원줄 16호, 37번 와이어 목줄에 낙지를 달아 해질녁부터 참돔을 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남서풍이 더욱 강하여 몰아쳐 장대를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여러번 미끼를 바꾸어주면서 원투를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참돔의 입질을 받지 못하였다. 어둠이 내린 후에도 계속 참돔낚시를 시도하였으나 바람이 매우 강하여 낚시하기가 불편하였고 어신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하였다.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 물때를 기약하면서 피곤한 몸을 눕히고 말았다. 조우 K씨와 후배 J씨 그리고 함께 한 일행 3명을 바람 등지는 곳에서 안개비를 맞으면 밤낚시를 계속하였지만 역시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참돔 어신을 받지 못하고 볼락, 농어새끼 등 잡고기만 낱마리 낚은 후 밤늦게 텐트로 돌아 왔다.

첫 새벽, 첫 물때

7월18일 새벽 4시, 원정 첫날 첫 새벽 물때였다. 다행스럽게 어제 밤보다 바람이 잠잠해졌고 비도 내리지 않는 좋은 아침이었다. 일어나자 말자 오늘 낚시계획을 수립하였다. 우선 새벽녁에는 참돔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해 뜰 무렵부터 농어루어 낚시를 시도하며 해 뜬 후 즉시 돌돔채비로 전환하여 돌돔을 노리기로 결정하였다.

해뜨기 전, 야무지게 받침대를 박고 5호 릴대에 낙지를 통채로 끼워 첫 원투를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일단 걸렸다 하면 인정사정 볼 것없는 오로지 힘으로 승부하겠다는 마음 먹고서... 물안개가 자욱한 새벽녁..., 침묵 속에서 약 30여분 지났을까, 전혀 어신이 없었다. 그러나 초들물 시간대라 반드시 뭔가 걸려 들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해뜰 무렵이라 농어를 노리기 위하여 참돔 장대는 받침대에 단단히 묶어 둔 체 5~6메타 떨어진 곳에서 루어로 캐스팅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농어 캐스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낙지 미끼를 건드리는 놈이 나타나기를 힐큼힐큼 수시로 쳐다 보았다. 갯바위가 어스름하게 밝아 올 무렵이었다.

농어 루어를 던져 감아 들이던 중 받침대에 박아둔 5호대에 꺼뻑하는 예신과 함께 초릿대가 휘청거리며 내려 박히고 있었다. 순간, 달려갈 시간이 없었다. "입질이다!". 장대 곁에 있던 후배 J씨에게 어신이 왔다는 것을 먼저 알렸다. 후배 J씨가 곧바로 챔질을 하였으나 장대는 더욱 강하게 휘어지면서 내려 박혔고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던 장대가 너무 무거워 제대로 일으켜 세우질 못하고 있었다.

왔다!, 참돔이다.

농어 채비를 걷어 올리고 장대를 넘겨 받은 다음 힘 겨루기를 시도하려는 순간 스풀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역회전하기 시작하였다. 원줄이 순식간에 10여메타 이상 풀려 나가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제압하지 못하면 참돔은 걸어낼 수 가 없다. 그리고 장대를 세우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두 팔에 있는 힘을 다하여 더욱 강한 힘으로 장대를 세우자 장대 전체에 강한 당김이 전달되면서 둔탁하게 쿡! 쿡~쿡 내려 박혔다. 어신이 무겁게 전달되었고 곧장 먼 바다 쪽으로 차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참돔이다" 어신으로 보아 분명 참돔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드랙을 약간 조운 후 강하게 장대를 당겨 세운 다음 장대를 눕히며 감아 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감아 들이는 만큼 또 다시 차고 나가기를 몇 번..., 장대를 눕히면서 당기는 동작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놈과 힘 겨루기를 계속하였다. 얼마 후 더이상 차고 나가지 못하고 이끌려 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이놈의 머리를 돌려 놓았으니 천천히..., 천천히 띄워 올리는 일 뿐이다." 더욱이 강한 16호 원줄과 무식한 37번 와이어를 채비하였기에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또다시 내리 박는 힘이 예사가 아니었다. 릴을 몇 번 감아 들이면 또 다시 그만큼 풀고 나가 버렸다. 있는 힘을 다해 감아 들일 때마다 장대 허리에서 뿌직~뿌직~하는 소리가 세어 나왔고 원줄은 윙~윙~하면서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신속한 동작으로 장대를 숙여 감아 들이고..., 당김이 약할 때 장대를 세우고 다시 장대를 눕히면서 감아 들이고..., 수십회 깊은 물 속의 무거운 괴물과의 줄다리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갯바위 가 쪽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세찬 조류의 영향을 받으며 강한 당김으로 놈의 저항을 잠 재우자 어느 듯 왼쪽 팔에 경련이 일어났다. 두 팔로 릴대를 힘차게 잡고 몸을 뒤로 제치면서 받쳐 들고 엄청난 힘으로 내리 박는 놈을 제압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은 몇 번 더 계속되었다.

뜰채에 들어가지 않는 참돔

릴링을 계속하며 힘 겨루기를 하는 동안 후배 J씨는 언덕을 넘어가 뜰채를 들고 달려왔고 갯바위 가까이 끌려 나온 놈은 필사의 도주를 위해 최후의 힘까지 동원하면서 몸부림을 쳤다. 다시 힘 겨루기를 몇 분간 더하였지만 좀처럼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J씨는 뜰채를 들고 내려가 고기가 떠오르기만 기다렸다. 마지막까지 여유를 주지 않고 힘껏 감아 들이자 물 밑에서 허연 물체가 아련히 나타났다가 다시 깊은 물 속으로 사라지면서 바다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놈의 최후의 저항은 더욱 강렬하였다. 마지막 두 세번 용트림을 하고서야 수면 위로 검붉은 몸체를 드러내었다. 대물 참돔이었다. 공기를 몇 번 들여 마시게 한 후 갯바위 가 쪽으로 당기자 J씨가 다시한번 소리쳤다. "참돔이다." 그러나 큰 뜰채인데도 "고기가 들어가질 않는다"고 J씨가 외쳤다. 머리부터 넣으려고 여러번 시도하였지만 도무지 뜰채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측 완만한 갯바위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7~8회 시도하여 어렵게 뜰채에 담는데 성공하였다. 해 뜰 무렵 낙지 미끼를 통채로 삼킨 대물 참돔은 이렇게 필자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엉뚱한 포인트에서 걸어 낸 참돔 최대어

궂은 날씨, 그리고 여러번 출조 스케쥴을 바꾸어 가면서 계획에도 없었던 백도의 모기여..., 첫 아침 첫 물때에 온몸을 땀에 적시게 하였던 이 늙은 고기는 아가미와 머리통에 이끼가 낀 노성어였고 어탁 결과 85센치로 필자의 참돔 최대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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