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7등분하는 평도 돌돔

나는 목이 말랐다.
농어루어를 들고 신나게 캐스팅을 한 지 어느새 두어달. 몇 번의 바늘털이만을 겪었을 뿐 실제 농어 손맛은 아직 보고 있지 못한 까닭에 내 손은 타는 손맛 갈증으로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쉬엄쉬엄 하랑께”라는 주변 낚시꾼의 말도 듣지 않고 하루가 멀다하고 찾은 청사포와 공수마을 일대는 내게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뭐라도 낚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에는 락피쉬 채비를 꺼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볼락, 우럭, 노래미는 서툰 내 액션에도 잘 속아 주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내 손맛 가뭄의 해갈은 턱도 없었다. 오직 대물, 한 번의 큰 입질 만이 시원한 청량감을 줄 터였다.
그래서 나는 돌돔낚시를 선택했다. ‘농어를 노리다가 안되니 돌돔으로 돌아?’라고 비난해도 좋다. 어차피 내게는 ‘취재’라는 좋은 핑계가 있으니까. 때문에 나는 돌돔낚시를 간 것이 아니라 돌돔낚시 취재를 간 것이다. 요즘 평도에는 ‘뺀찌’ 씨알이긴 해도 돌돔 마릿수가 참 좋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취재 계획서를 올리고 나는 물을 한잔 마셨다.
산란기를 전후해 돌돔 입맛은 변해
함께 평도에 가기로 한 낚시인은 해초조우회 회장인 이하종 씨. 몇 달 전 사직동 칼라피싱에서 우연히 만나 돌돔낚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언제 한번 같이 갑니다’라는 빈말을 꼬투리 잡아 억지로 일정을 잡았다.
▲돌돔낚시는 기다림의 낚시, 깡다구 낚시의 진수를 맛보여 준다.
▲평도 갈퀴섬 앞에 있는 양가린여
부산 온천장에 위치한 베스트 피싱에서 만나 다른 꾼들 몇과 동승하여 평도로 출발, 3시간 정도 걸리는 평도 행 차 안에서는 돌돔낚시에 관한 궁금증이 이어졌다.
며칠 전 평도에서 스무마리 이상의 돌돔을 낚았다는 이하종 씨는 현재 돌돔의 상황을 설명했다. “돌돔은 산란을 마친 다음에 본격적으로 성게를 깹니다. 가장 활성도가 높아져 있을 때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산란 전이었습니다. 참갯지렁이를 써서 마릿수를 낚았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산란 직후에는 돌돔이 한번 빠졌다가 들어오는데 지금 산란 직후라면 조과가 좋지 않을거라 생각됩니다. 일단 성게와 참갯지렁이 둘 다 준비를 했는데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평도에는 큰 씨알이 없었어요. 대개 35cm급이었는데 입질이 좀 약은 게 흠이었습니다. 평도는 원투 보다는 민장대에서 입질이 자주 오는 편입니다.”
이하종씨의 말 대로라면 평도에 돌돔이 성게를 깬다면 낚시는 쉬워진다. 잡어도 꼬이지 않을뿐더러 활성도가 높아져 있으니 활발하게 입질을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산란 직후라면 돌돔이 빠져 있으니 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 사실 이 시기에는 돌돔낚시가 애매하다는 말을 하더니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돌돔낚시 장비가 전혀 없었던 나는 이하종씨에의 장비를 빌리기로 했다. “그럴 줄 알고 다 준비해 왔습니다. 마니아가 아니면 돌돔 전용 장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거든요”
▲그냥 들기에도 무거운 돌돔용 민장대를 움켜쥐고 입질을 기다려야 하는 돌돔 민장대 맥낚시. 초릿대를 응시하는 꾼의 심장은 폭발직전이다.
▲참갯지렁이는 손으로 문질러 가며 달래줘야 바늘에 쉽게 꿸 수 있다.
십수년이 넘도록 돌돔낚시를 해 왔다는 이하종씨 그는 돌돔낚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흔히 돌돔낚시를 노가다 낚시라고 하지요. 그런데 실제로 돌돔낚시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힘들어 합니다. 한여름 땡볕에서 무거운 장비 들고 휘두르니까 좀 힘들겠나 싶지요? 그런데 안 그래요. 돌돔낚시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낚시 편하게 합니다. 물론 장비야 무거우니까 다루기 힘들기는 하지요. 그것도 숙달되면 괜찮아요. 돌돔낚시 하는 사람들은 받침대를 잘 활용하면서 힘을 비축하지요. 또 파라솔이나 아이스박스를 이용해 시원한 낚시를 할 수 있습니다. 한여름 땡볕에서 돌돔장비를 계속 휘두르는 짓은 전문꾼도 못합니다. 진짜 돌돔꾼은 입질 타임에 바짝 쪼으고 나머지 시간에는 파라솔 밑에서 맥주나 마시면서 시원하게 보냅니다. 밑밥도 안 뿌려도 되고, 성게를 쓰면 미끼 자주 끼우는 번거로움도 없으니까 오히려 다른 찌낚시보다 할랑한 낚시입니다. 그게 진짜 돌돔낚시죠.”
갈퀴섬에 내리다
안개가 자욱히 낀 데다가 너울까지 쳐 원래 목적으로 했던 갈퀴섬에 못 내릴 뻔 한 사태에 직면했다. 그러나 어떻게 온 취재인가. 휴가까지 일부 반납하면서 돌돔 한 마리 낚아보자고 온 게 아니었던가. “여기 댈 줄 테니 내려서 걸어가시오”라고 말하는 선장님을 부득부득 졸라 기어코 원래의 포인트에 내릴 수 있었다.
“저기에서 우리가 낚시를 해야 합니다”라며 이하종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너울이 살짝살짝 올라오고 있었다. ‘낚시 하려면 고생깨나 하겠는데...’
아직 날은 밝지 않았고 딱히 할 일도 없는 상황에 나는 볼락루어대를 꺼내 들었다. 1.5g 비크헤드에 보라색의 슈림프 웜을 달고 캐스팅. 그러나 너울로 인해 채비는 마치 종잇장처럼 수면위를 날라다녔다. 서너번 캐스팅을 해 보다가 포기하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입질이다. 성급하게 초릿대를 가져가는 돌돔의 입질을 받았다.
▲35cm급의 돌돔. 이미 산란을 마친 직후의 녀석이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이하종 씨가 돌돔 민장대를 펴 들었다. “잠시 들고 있어 줄랍니까?”하면서 내게 낚싯대를 건네 주는데 웬걸? 이건 철근 하나를 세워 들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바람까지 부니 내 몸까지 휘청거린다. 서둘러 받침대를 박고 낚싯대를 내려 놓으니 어깨가 다 뻐근할 정도다. “엄살이 심하십니다”라고 말하는 이하종 씨를 째려 보았다. ‘진짠데’
두 개의 민장대에 각각 버림봉돌 채비와 구멍봉돌 채비를 했다. 입질이 예민할 것을 예상하여 한 낚싯대에는 케블러 줄을 쓰지 않고 일반 목줄을 이용해 바늘을 달았다. 두 개의 바늘에 참갯지렁이를 5cm 정도로 잘라서 꿰었다. 참갯지렁이는 바늘에 닿자 몸을 단단하게 움츠리며 쉽사리 바늘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살살 주물러 주면서 넣어 보세요”라고 이하종 씨가 말한다. 그 말대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살살 주물러 주자 단단했던 참갯지렁이는 긴장을 풀고 쉽게 바늘로 들어갔다. 이제 준비 끝이다.
연이은 뺀찌 입질, 대물은 언제쯤?
“민장대 들고 쪼으고 있는 돌돔꾼의 전형적인 자세 한번 취해 주세요”라고 주문을 하자 이하종씨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민장대를 바짝 당겨 쥔다. 시선은 초릿대 끝으로 향하고 왼팔을 길게 뻗어 낚싯대를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손잡이대를 움켜쥐었다. 아래로 내려가 몇 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이하종씨의 이마에 어느새 땀방울이 맺혀 있다. 나는 슬그머니 약을 올려본다. “돌돔 낚시 좀 하셨다는 분이 그게 뭐 힘들다고...”
▲무거운 장비를 들고 한낮에 해야 하는 돌돔낚시는 피로회복과 수분섭취가 무척 중요하다. 이하종 씨가 준비한 냉국수는 천하일미였다.
▲무조건 받침대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입질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낚싯대의 각도까지 감안해야 한다.
▲원투낚시에서도 민장대와 같은 섬세한 바닥탐색으로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이하종씨. ‘화 났나?’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미약한 어신을 잡아낸 것. 낚싯대를 살짝 고쳐쥐는 순간 초릿대가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육중한 낚싯대가 하늘을 가르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30cm가 갓 넘는 돌돔이 수면으로 드러 누웠다.
“돌돔이 있네요!”
일단 사진을 찍는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취재를 핑계로 온 돌돔낚시가 아니었던가. 이 첫 물때를 놓치면 날씨로 보아 오늘 낚시는 힘들다고 판단, 카메라는 뒤로 하고 또 하나의 민장대를 집어 들었다.
“입질이 약아요. 볼락낚시 하듯이 살살 견제하다가 줄을 주면 갑자기 빨겁니다.”라고 코치 해 준다.
내 돌돔낚시 경험이라고 해 봤자 몇 년 전 황제도에서 원투낚시로 얼떨결에 낚은 50cm가 전부. 그러나 그때는 워낙 장비가 무거워 이게 고기 힘인지 낚싯대 무겐지 구분도 못하고 올려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민장대로 섬세하게 돌돔의 힘을 느껴볼 참이었다.
10m에 달하는 민장대를 그저 의욕만으로 양손을 뻗어 꼬나보았다. 1분이 지나자 다리가 져려왔고, 2분이 지나져 팔꿈치가 아팠다. 3분이 지나면서 어깨에서 경련이 일었고, 5분이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나는 낚싯대를 놓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무식하게 버틴다고 돌돔을 낚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하종 씨는 또 한번 염장을 지른다.
▲작은 성게를 꿰어 돌돔의 입질을 기다렸으나 아직 평도 돌돔은 성게를 탐하지 않았다.
▲육중한 캐스팅은 돌돔낚시의 전율을 느끼게 해 준다.
▲원투낚시를 할 때에는 성게꽂이에 참갯지렁이를 꿰어 바늘에 달아 준다.
“받침대를 잘 활용하세요. 채비를 던지면 봉돌이 떼구르르 구르다가 쑤욱하고 들어가는 곳이 있을겁니다. 그 곳이 돌돔 포인트에요. 일단 채비가 포인트에 들어가면 낚싯대를 받침대에 올려두세요. 그 다음에 초릿대를 보고 있다가 미약한 어신이 오면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쥔 다음 본신이 오면 챔질하면 됩니다.”
아, 그런 것이었나. “받침대=머구리”라는 일반 찌낚시의 선입견에 얽매인 나머지 돌돔낚시는 받침대 활용이 필수라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낚싯대를 들었고 새로 미끼를 단 다음 바다에 던졌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그냥 들고 있어도 감당못할 낚싯대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흔들거렸고, 봉돌은 유난히 내 주위를 맴돌아 다시 풀어야 했다. 휘청거리며 힘들게 채비를 던지는 동안 이하종 씨는 두 마리의 돌돔을 더 추가했다.
▲돌돔낚시 최대의 적 ‘밑걸림’, 육중한 장비로 하는 만큼 밑걸림이 발생하면 끊고 나오기도 어렵다.
돌돔낚시는 쉽다?
“돌돔낚시는 기본만 익히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바닥 탐색해서 구멍만 찾아내면 됩니다. 포인트 찾고 채비 던지고 입질 보고 챔질. 그게 돌돔 낚시 끝이에요. 어렵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지만 최소한 돌돔낚시는 이런 기본만 알고 있어도 고기 구경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테크닉이나 채비법, 조류를 못 보면 낚지 못하는 감성돔 낚시와는 다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죠. 돌돔이 환상의 물고기라 된 건 장비 탓이지 결코 낚아내기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긴 참갯지렁이를 쓸 때는 매듭을 묶어서 달기도 한다.
▲쌍받침대에 원투대 2대, 여기에 파라솔까지 달면 돌돔낚시 기본세트가 완성된다.
이하종 씨 말대로 나 역시 평도에서 두 마리의 돌돔을 낚았다. 민장대가 휘청할 정도로 강력한 입질을 받고 나름대로 정신무장을 한 후 챔질, 어깨가 빠질 정도로 버티다가 올라온 놈은 고작 30cm가 넘는 뺀찌였다. 그것이 장비의 무게 탓이었지, 정말 놈의 힘이 대단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올 여름 욱씬한 손맛에 목말라 있던 나에겐 오랜만에 청량감이 느껴지는 후끈한 손맛이었다.
▲철수 직전 갈무리 도중 이하종 씨가 그나마 쓸만한 씨알의 돌돔을 들어 보였다.
▲필자의 오랜 손맛 갈증을 풀어준 평도 돌돔
▲철수 직전 원투 채비에 돌돔이 낚였다.
▲큰 씨알은 아니지만 30cm급 돌돔은 평도 어디에서든 낚이고 있었다.
▲민장대 채비로 35cm급 돌돔을 낚아낸 낚시인.
▲30~40cm정도가 현재 평도 돌돔의 씨알이다. 마릿수가 좋은 편이었지만 취재 당일에는 너울이 심해 오랫동안 낚시가 힘들었다.
“돌돔의 손맛은 장비를 이겨내고 난 다음에 비로소 작은 부분까지 음미할 수 있습니다”라는 이하종 씨의 말처럼 돌돔낚시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돌돔 장비를 이겨낼 수 있는 힘부터 갖춰야 한다. 무작정 강하기만 해서는 더 강한 힘에 굴복하지만 부드러움을 갖춘 강함은 더 강한 것도 이겨낼 수 있다. 따라서 돌돔낚시는 강한 장비 외에도 돌돔의 입질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꾼의 노하우도 요구되는 것이다.
여름하늘을 가르는 시원한 돌돔 꾼의 폭발적인 캐스팅, 그 아래 일곱 줄로 바다를 가르는 돌돔의 우악스런 입질이 솟아난다. 여름은 그렇게 타 오른다.
취재협조
부산 베스트피싱 051 - 558 - 0122 011 - 835 - 00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