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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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G 2 403 2006.09.05 11:00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주1)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주2)에 북덕불주3)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
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
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
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주)
1) 삿 : 삿자리의 준말.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2) 딜옹배기 : 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아주 작은 자배기
3) 북덕불 : 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4)나줏손:저녁 무렵
5)바우섶:바위옆
6)갈매나무:키가 2m쯤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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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G 겟방구 06-09-07 21:13
우리 민족에 이런 시인이 계셨다는게, 자랑스럽습니다,
가히, 두보, 이백을 능가하기에, 저에게는 전율로 다가 오네요,,
G 경주월드 06-09-07 22:45
겟방구님도 좋아하실 줄 알았지요.
겟방구님,
세상을 움직이는 건 말없는 침묵의 다수라는 걸, 깨닫는데 쉰 살이 넘었습니다.^^
백석을 느끼게 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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