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깡’ 등으로 사채를 얻어 쓰다 빚에 몰린 20~30대 채무자 의 명의로 개설되는 이른바 ‘대포 통장’과 ‘대포 폰’ 등이 사채업자에 의해 조직적으로 만들어져 무차별로 거래되고 있다. 대포 통장과 대포 폰 이란 타인명의의 통장과 휴대전화로, 이를 이용해 인터넷 사이트 등에 물건을 판다는 글을 올려놓고 물건은 주지않고 구매자의 돈을 송금받아 가로채는 사기범죄에 악용되 고 있다.
문화일보 취재결과 대포 통장과 대포 폰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을 통해 대포 통 장과 대포 폰을 구입하고 이를 이용해 있지도 않은 고가의 품목 을 인터넷을 통해 팔려고 시도해 사기 거래가 성사되기 직전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시간 남짓.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PC방.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한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판매업자와 곧바로 연결이 됐다. 판매업자 는 “통장과 현금카드, 휴대전화 세트로 26만원에 가능하고 폰에 텔레뱅킹과 인터넷뱅킹이 추가되면 2만원씩 추가된다”고 제안 해왔다. 판매업자가 제시한 접선장소는 지하철 7호선 중곡역 3번 출구. 30분뒤 중곡역앞에서 1m75 정도의 키에 안경을 쓴 20대 후반 으로 보이는 업자와 마주쳤다. 양손에 통장과 휴대전화가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현금인출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어느 은행카드 원하세요?” 쇼핑 백안의 통장을 뒤적거리며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상관없다” 고 대답하자 그는 “설연휴 이후 주문량이 폭주해 물건이 부족하다 ”면서 우리은행 통장을 건넸다.
현금카드를 꺼내 인출기에 넣으며 비밀번호와 카드사용 여부까지 친절하게 확인시켜줬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선수같이 그의 행 동은 순차적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우리한테 돈 빌 려 갚지 못하고 포기각서를 쓴 20~30대 채무자들 명의로 만든 ‘ A급 물건’”이라며 “애프터 서비스를 확실히 해주겠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대포 통장 매매업자들이 사채업과 연관돼 있고, 통장의 명의가 카드 깡 등으로 빚에 몰린 채무자의 것이란 얘기였다. 그는 이어 휴대전화도 꺼내 배터리, 충전기, 휴대전화케이스를 보였다. 확 인절차가 끝나자 그는 돈을 건네받고 황급히 지하철출구쪽으로 사라졌다. 인터넷접속부터 구매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0여분 남 짓.
근처 PC방으로 이동해 사기극의 직전단계까지 체험해 보기로 했 다. 존재하지도 않는 개인휴대단말기(PDA)와 노트 북을 거래 전 문 사이트에서 팔겠다고 글을 띄우자 구매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포 폰으로 이들과 통화를 하자 “(돈을 송금할테니) 계좌번호부터 알려달라”는 구매자들의 응답이 왔다. 곧바로 PD A를 사겠다고 나선 사람을 포함해 불과 10분만에 400만~500만원의 흥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포 통장 계좌를 알려줘 돈을 입금받는다면 ‘사기 범죄’가 성립되기 때문에 취재는 여기서 중단됐다.
[일간스포츠 맹준호 기자] "일단 ○○은행 ×××-××-××××로 37만 원 보내시고요, ×××-×××-××××으로 전화주세요."라디오 컨트롤 미니카(R/C카) 동호인 L 씨(30.회사원)는 최근 인터넷 동호회에서 중고 R/C카를 직거래로 판다는 게시물을 보고 인터넷 뱅킹으로 덜컥 돈부터 송금했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 이어지는 통화내용.
"신용 확실한 사람입니다. 입금 확인되는 대로 택배로 부쳐 드리겠습니다."그러나 L 씨는 요즘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기다리는 상품이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 판매자에게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되는 것은 물론이요, 은행에 확인한 결과 통장도 이미 정지된 상태다.
속칭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이용한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포통장'은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만든 통장. 피해자에게 돈을 송금받은 뒤 잠적해도 추적이 불가능한 범죄 수단이다. '대포폰' 역시 타인 명의의 선불전화로 실사용자 추적이 불가능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인터넷 상에서 15만 원 정도만 주면 쉽게 살 수 있다는 점. 제작업자가 노숙자 등에게 5만~6만 원을 주고 은행과 휴대폰 대리점 등에 데려가 통장과 휴대폰을 개통하게 한 뒤 이를 되파는 수법이다. 분실된 주민등록증을 위조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과 해외 체류자의 명의까지 도용한다.
현재 대포통장은 15만 원, 대포폰은 12만 원 선에 거래되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면 팔겠다는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요즘은 타인명의를 도용한 KT(한국통신) 시내전화까지 '유선대포'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으며 통장, 휴대폰, 유선전화 등을 한 묶음에 파는 '대포세트상품'까지 등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통장의 경우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라면서 "인터넷 사기로 단기간에 돈을 챙긴 뒤 잠적하려는 10~20대가 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들은 IP 추적을 피하기 위해 PC방을 옮겨 다니며 인터넷에 접속하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
서울 중부경찰서 백기종 형사는 "인터넷 직거래에 이용되는 통장 중 80~90%가 대포통장으로 파악된다"면서 "유난히 신용을 강조하는 이들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맹준호 기자 next@ilgan.co.kr- Copyrights ⓒ 일간스포츠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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