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문도 출조에 따라 나선 것은 모두가 그해 추수한 나락 때문이었다. 나는 내심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신작로와 논길을 돌아 그의 감밭으로 갔다. 감성돔 낚시 경험이 전혀 없는 붕달씨의 기를 꺾어, 여름 내내 붕어낚시로 구박받았던 설움을 풀어보자는 오기의 심사가 작용했고 한편으론 흘림낚시의 기본을 가르쳐 줘야 공평할 것이라는 게임의 법칙도 함께 했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요즘 풀이 죽어 있었고 그 이유는 나만 안다. “뽀얀 붕어탕 묵을래?” 그는 붕어낚시에는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붕어의 습성을 잘 알고 날씨에 따른 못물의 변화도 읽고 못의 지형을 손금을 보듯 파악을 하니 달인이 따로 없었다. 물안개 자욱한 새벽 보문지 뻘물에서 붕어 냄새를 맡을 줄 알았고, 장마 때의 소리못 아홉 치 붕어는 출원 안 낸 특허였다. 붕어에 관한 한 씨알과 마릿수에서 우리 누구도 아직 그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 못둑에 그가 나타났다 하면 퍼뜩 빈 망태기를 물속에 눌러 놓고는 딴전을 피우곤 했다. 나락 사건이 있던 다음 날도 그랬다. “등신아, 감밭 홍시가 순이 젖통같이 탱탱하면 두 발 수심을 줘야지 가물치 터에서 육갑을 잡고 앉았네!”
등신이 육갑을 잡아도 가물치 자리는 붕어 포인트가 아니라는 소리다. 홍시가 단물이 오르면 얕은 물이 차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니 부들초 아래에 가물치 두어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가뜩이나 주눅이 든 무딘 손끝엔 지렁이가 바늘을 타고 철봉을 하고 있었다. 어젯일이 생각났다.
“누구처럼 만져봐야 탱탱한 지를 알제.”
나의 이 대꾸는 근래 보기 드문 절호의 반격이었지만 그대로 물러설 붕달씨의 입심이 아니다.
“그라이 제수씨가 기가 살제. 사흘에 핏죽 한 그릇만 묵더라도 밤일에는 기집이 자물새야 바가지가 없능기라.” 붕어낚시에 남의 밤일까지 들먹일 쯤엔 무조건 졌다고 봐야 한다. 그의 꽤나 외설스러운 표현대로 기집이 자물새는 비결을 그는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낙은 붕어로 고아 낸 붕어탕의 비방 때문이다. 그의 붕어탕은 맹물에 소금만 쳐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고아서 재핏가루 한 술 친 게 전부인데 신기하게도 그걸 얻어먹으면 양기가 발동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숱하게 끓여 먹은 붕어탕은 별 효험이 없는 건 고사하고 그 느끼한 맛에도 질려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원도 낚시에 익숙해진 것도 순전히 그의 달인 실력의 붕어 낚시에 기가 죽어서였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이나 위다. 본명이 김봉달인데 자타가 공인하는 붕어의 달인이라 언제부터인가 붕달이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갯바위 낚시는 바닥을 소리못처럼 쉬 알 수 없을 뿐더러 들물과 날물의 성질도 묘한 데다 못물처럼 뻘도 없으니 붕어 냄새를 훑던 그의 개코도 별 효험이 없으리라는 짐작을 했다. 더군다나 그는 가을 나락 사건으로 순이 오빠와의 담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 일에 나의 지원이 절실했으니 되도록 내 비위를 맞춰야 할 처지였다. 아끼는 뽀얀 붕어탕을 두 그릇째 받았다.
2
붕달씨의 감밭 홍시는 탱탱하다 못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두 발 수심이 좋은 자리에서 세칸 대를 걸치고 앉은 붕달씨 옆에서 나도 같은 채비를 했다. 반대편엔 겉멋만 들은 차군이 마카로니 웨스턴처럼 각을 잘 잡은 밀짚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앉아 있었다.
“니도 봤제, 그날 콤바인이 돌면서 튀는 나락이 저고리 속으로 들어가기에 나는 털어 준 죄밖에 없능기라. 맞제?” 그는 구멍 난 밀짚모자를 벙거지처럼 눌러 쓰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터는 것도 어느 정도지 성님은 이 잡듯이 저고리 속을 거들내고는 무슨 할 말이 있능교?” 발단은 이랬다. 소리못 상답 추수 품앗이 때였다. 차군이 새참 때에 맞춰 신작로 치킨 집에 술과 안주를 시켰는데 주인이 바빴는지 옆집 길다방 마담이 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그녀는 우리 촌부들의 메마른 가슴에다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단비를 적셔 준 연민의 메신저였다. “길다방에 새로 왔어요. 마담이라 부르지 말고 순이라고 불러 주세요. 다방에 들르시면 산수유차는 그냥 드립니다.” 순이는 매화수 놓은 연보라 치마에 어깨살이 환히 비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항라 저고리를 입고 왔었다. 매끈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단정하게 망사로 마감시켰고 분만 바른 하얀 얼굴은 모시베를 보듯 산뜻했다. 풀숲에 앉아 산수유차를 따르는 그녀는 저문 가을 햇살이 소리못의 물비늘을 빚어낼 때처럼, 솜사탕 가을 구름을 보듯 그 화사함에 나는 소년처럼 설레고 있었다. “붕달이 성님! 빨리 오이소, 새참 왔심더!” 그때였다. 산수유의 향긋한 차맛을 볼 겨를도 없이 별안간 붕달씨의 콤바인에 볏단이 엉켰다. 제동이 걸리면서 나락이 빗발치듯 순이 쪽으로 튀었다. 붕달씨는 핸들을 잡은 채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 저고리 동전 속으로 나락이 한 움큼이나 날아들었다. “성님! 시동 끄소!” 나와 차군이 동시에 소리치니 그제야 엔진이 꺼졌다. 그 다음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 순간 붕달씨는 정신이 나갔는지 미안함의 표현인지 나락을 떼어낸답시고 순이 가슴을 더듬기 시작했다. 저고리 속을 헤집자 까칠한 나락은 말기를 비집고 가슴골까지 들어가버렸다. “허, 참 낭패네. 낭팬기라. 나락 미끼에 두 마리 붕어가 손에 꽉 차는데...” 두 마리 붕어라니! 손에 꽉 차다니! 그 기막힌 손맛을 굿거리장단처럼 풀어내는 그의 주저 없는 입심에 할 말을 잃었다. 한편으론 그 두 마리 손맛 같은 같잖은 시샘으로 은근히 달아올랐다.
멈칫하던 붕달씨가 다시 뭐라 중얼거리며 저고리를 헤집자 ‘딱’하는 매운 소리가 못둑을 메아리치며 감밭으로 날았다. “세상에, 말기 속을...!” 순이의 눈엔 금세 눈물이 돌았다. 나는 마치 내가 죄진 것처럼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데 차군이 황급히 소리쳤다. “붕달이 성님, 아지매가 올라와요!” 둑 너머 감밭에 홍시를 따 오일장을 볼 셈으로 붕달씨 부인이 부지런히 논둑길을 올라오는 중이었다. 현행범이라 예삿일이 아니었다. 공범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딴전을 피울 수밖에 없어 멀쩡한 콤바인을 발로 툭툭 차는데 순이가 짚단 뒤로 나를 끌었다. “저기, 저... 여기 등 쪽에 좀...” 덜컥 겁이 났다. 붕달씨처럼 따귀 맞을 일보다 짚단 뒤에서 남의 저고리 속을 뒤지자니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락이 속살을 빨갛게 비벼놓았는데, 그보다 풀어 놓은 말기 속으로 완연하게 드러난 젖살에 그만 현기증이 일 지경이었다. 먼산을 보며 대충대충 털어 주는데 기어코 들리는 소리에 마음은 더 쫄아버렸다. “시상에 별 일이데이. 남의 기집 젖통을 귀때기 맞아가며 주물리나 이 인간아! 아이고 내가 몬 산데이. 그쪽에 아제는 짚단 뒤에서 뭐 하능교? 남사시럽구로.” “아니라요. 그게 아니고 소변이 마려워서...”
붕달씨 부인이 그쯤에서 멈춘 건 고소하게 풍기는 치킨 냄새 때문이었다. 순이의 매화꽃 치마는 이미 논길을 돌고 있었고, 남정네들의 난장을 진압한 붕달씨 부인은 태연히 치킨을 들고 감밭으로 사라져버렸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비딱한 차군의 밀짚모자에 한갓지게 날아 앉았다. 다저녁때 붕달씨의 망태기엔 댓 마리의 아홉 치 붕어가 출렁거렸는데 뽀얀 붕어탕을 마신 그날 밤, 아지매는 아마도 꽤 오래 자물샜으리라.
짧은 가을이 그렇게 갈 즈음, 감성돔 내림 철을 맞아 채비가 한창인데 붕달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큰일이데이, 포항에 산다는 순이 서방이 날 찾아 왔는데 성 추행범으로 고소한다 카는데 우짜면 좋노. 그 자석은 포항에서 알아주는 건달이라는데... 아이고, 나락 미끼가 사람 잡는데이. 말 좀 하거라, 이 사람아.”
가련한 붕달씨, 입심의 대가, 붕어의 달인, 우리들의 소영웅이 침몰 직전에 몰려 있었다. 그의 입심은 그저 촌부일 뿐인 우리들에게만 통했지 막말로 통하지 않는 경찰에겐 오히려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확실히 주눅이 들었다는 건 전가의 보도처럼 간직했던 그 붕어탕의 비방을 참말로 전수하겠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분명히 다른 게 있었어. 그 밑천을 턴다고 손해볼 것도 없는데 괘씸하게 혼자만 보신을 즐기며 낄낄거렸을 테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면서...’ 3 길다방으로 갔다. 시골 다방이라 몇 안 되는 손님은 아홉 시 뉴스가 끝나자 모두 나가버렸다. 카운터 왼쪽엔 억새와 상수리 가지를 품은 장식용 단지가 있었다. 그 옆의 50호 가량의 그림틀엔 낯익은 여인과 귀여운 소녀가 작은 물고기를 담은 바가지를 보며 함박 웃고 있었다. 오른쪽 모서리엔 「바다와 모녀」라는 제목이 푸른 글씨로 씌어져 있었다.
그동안 몇 번 들렀으나 서로 머뭇거리다 할 말을 놓치곤 했는데 그날 순이는 박꽃 같은 미소로 맞아 주었다.
“고맙습니다. 들러주셔서.” “일기예보가 내일 춥다는데요.” 공연한 날씨 이야기에 분위기만 썰렁했다. 종업원에게 문을 닫게 한 순이는 얼음 채운 산수유차와 위스키 한 병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나는 주머니 속의 만 원짜리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모자란 회계를 고민하는데 아마도 그게 나락 한 가마니 턱은 될 성싶었다. 아니면 붕달씨 감밭의 홍시 댓 접은 팔아야 될 회계인지라 괜스레 헛기침을 해댔다. “이거 제가 내겠어요. 대신 제 이야길 들어만 주세요. 전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산수유 칵테일로 내 잔을 채우고는 그녀는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리고는 남편이 죽은 후 그 간의 사연을 마치 물레를 돌리듯 타래를 풀어냈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만추의 끝자락을 잡는 것 같아 나는 꽤나 고적한 기분에 젖어 술잔을 들었다. 신작로 전깃줄이 윙하니 신음 소리를 냈다. 장식용 단지의 상수리 나뭇잎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목소리도 이야기도 떨렸다. “남편은 거문도에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황금빛의 노을 속으로...” “예?” “어제가 남편의 기일이었어요.” “그럼, 포항은...?” “오빠였어요.” “아, 그렇군요.” “남편과 저는 해운대 겨울바다에서 만났습니다. 바다를 향한 이젤에 그는 노을의 역광을 받아 놀랍게도 황금색을 뿜어내고 있었어요. 그에게 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는 낚시를 하다가 스케치를 했었는데, 캔버스엔 놀랍게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제 모습과 바가지에 작은 고기를 담아 놀고 있는 소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바다와 모녀」, 바로 저 그림이었어요. 그는 씨익 웃으며 그림을 제게 주었어요. 저는 그림을 받아 보곤 ‘세상에, 모녀? 아, 이 아이는? 이 남자는?’ 하며 차츰 그의 무례함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아니 신비하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그의 눈빛은 아주 편안하여 되레 제가 그 어떤 진실의 신뢰라 할까요, 그의 유연한 시선에 끌려버렸어요. 우린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 다음부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시시각각의 현실이 구체화되며 다가왔어요. 그해 늦겨울 가덕도에서 밤낚시를 할 때 그가 청혼을 했고, 다음해 함박눈이 내리던 날 성당에서 혼례미사를 올렸습니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미술학원을 차릴 때까지 우린 열심히 일했어요. 휴일엔 화구와 낚싯대를 챙겨 바다로 나갔습니다. 해금강 배낚시 때 우린 처음으로 감성돔을 다섯 마리나 낚았지요. 울릉도 동쪽을 돌면서 방어 트롤 낚시를 할 땐 남편의 허리를 잡아 당기기도 했어요. 남편이 친 생선회로 노을을 보며 건배하던 갯바위 만찬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건 「남과 여」란 작품으로 남아 있는데 그림 속의 남자는 뒷모습만 보여요.”
낚시 얘기가 나오자 난 덩달아 입맛을 다시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녀는 다시 스트레이트로 잔을 채우더니 긴 한숨을 쉬었다.
“그만 가을이 되자 입덧이 왔습니다. 사랑의 결실이었어요.「바다와 모녀」대로라면 태어날 아인 딸일 테지요. 그해 결혼기념일에 우린 거문도로 낚시와 그림 여행을 계획했어요. 그러나 그때 전 심한 입덧으로 여객선을 탈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남편만 다녀오기로 하고 전 여수 선착장까지만 나갔습니다. 여객선 부두에서 남편은 언제 준비했는지 배낭에서 연 날릴 때 쓰는 얼레를 꺼내 제게 쥐어 주더군요. 어느 영화에선가 선상 이별을 연출할 때 두루마리 화장지를 풀어 돌리는데 그게 축제처럼 신나기도 하고, 마치 당수나무 금줄처럼 신비스럽기도 하더라구요. 이번엔 아마도 풀다가 끊어질 것을 염려하여 얼레와 연줄로 바꾼 것 같았어요. 배가 천천히 움직였어요. 때마침 부두의 확성기엔 무슨 신파극처럼「가슴 아프게」란 유행가가 흘러나오더군요. 전 불과 며칠의 이별이 가사처럼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그냥 웃으며 남편을 바라봤는데, 남편의 눈은 마치 이별을 예견하는 듯 슬퍼보였어요. 전 남편에게 손을 흔들며 두루마리 얼레를 풀었습니다. 영화처럼 손 키스도 날렸지요. 연줄을 잡은 남편도 키스를 보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레가 돌수록 콧날이 맵더니 그만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그건 아마도 남편의 그 슬픈 눈빛 때문이었을 거예요. 배가 점점 멀어지며 방향을 잡을 즈음 연줄이 축 처지더니 그만 얼레가 멈춰버렸어요. 남편과의 사랑의 끈이 저만치 바다 위에서 끊어지는 것 같아 부두의 난간에 앉아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텅 빈 집으로 오니 가슴이 답답하고 점점 두근거리며 진땀이 나더군요. 사흘 밤을 꿈으로 지새웠는데 그동안 그린 남편의 수많은 그림만 보였어요. 남편의 조난 소식은 휴가 마지막 날에 날아들었습니다.”
“예? 아, 그랬었군요...”
잠시 그림 속의 암시 같은 걸 꿰매다가 엉겁결에 한 말이었는데 영 아니었다. 무슨 미스터리 소설처럼 그림의 예지에 푹 빠져버렸다. “사흘 후 해경에서 수습했습니다.”
“예... ” 병은 벌써 바닥이 나 있었다. 슬슬 취기가 올라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순이가 산수유차를 따라 주었다. “다음해 딸을 낳았어요. 칠 년간을 바쁘게 살며 알뜰살뜰 키웠습니다.”
「바다와 모녀」에선 소녀가 까르르 웃고 뒤에 선 여인은 순이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복자로 태어난 딸은 아빠 얼굴을 알 턱이 없어 사진으로만 느끼게 하자니 무척 힘들었죠. 물고기 가져온다는 아빤 칠 년 동안 무소식인데 재탕 삼탕으로 써먹은 핑계를 이젠 아이가 줄줄 외우죠.”
내겐 주저앉은 줄로만 알았던 슬픔이란 것이 가물었던 가슴을 비집고 올라왔다. 아이가 줄줄 외운 엄마의 어설픈 이유를 짐작을 하자니.
순이는 지친 듯 천천히 이어갔다.
“어제 음복 후에 잠시 눈을 붙였는데 남편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해운대 해변이었는데 남편은 그 그림을 가진 채로 뒤돌아보지도 않고 바다 쪽으로 걸어가더니 홀연히 황금빛 파도 속으로 사라지더군요. 인연의 마지막 자락을 잡으려 몸부림치다 그만 모습을 놓치고 잠을 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선명하던 남편의 얼굴이 희미해지고 뒷모습만 보이더군요.” 순이는 마치 무녀처럼 넋두리하듯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남편을 향한 애절함과 그 순애보에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 순이씨를 놓아준 것 같군요.”
순이는 다방 한 쪽의 설합장을 열더니 쪽지 한 장을 꺼냈다. 남편이 쓴 건데 날짜가 없어 언제 썼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짧지만 여운이 긴 글이었다.
‘화가의 빛은 눈을 뜨든 감든 보이며, 낮이든 밤이든 보입니다. 그 바다에서도 그 빛은 명암과 색도를 가장 순수하게 만들어 냅니다. 그 빛의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전부를 걸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빛깔은 어떤 걸까요. 낮에 온 당신의 빛과 밤으로 가는 나의 빛은 다른가요. 노을의 갈참나무는 시시각각 색깔이 다르지만 그 옷을 입고 벗는 시간은 사람이 정합니다. 살아 지난 빛은 죽어 새 빛을 만드나요. 그 시간 속을 당신은 뚜렷이 걸어 왔습니다. 내 앞으로요. 나의 색깔이 나의 여자이기 전에, 나는 당신의 색깔이자 당신의 남자입니다. 문득 나의 빛에 들어온 당신은 운명의 색이지만 나는 긴 터널의 일단에 서 있습니다. 나는 찾고 기다리고 다시 찾고 기다리기를 반복합니다.’
“남편은 저보다 빛과 색깔을 찾아 떠났습니다. 이제 이해합니다.”
“아, 찾은 게 맞나요? 그렇군요...” 그게 무슨 이유인가. 무책임한 그만의 도피처를 아니 그만의 사심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빛과 색깔 속으로 부나방처럼 뛰어든 그를 이해하고자 했다. 가족의 이별을 합리화하며 깨우치고자 했던 그녀, 그 죽음 속 숙주로 자란 불행은 어쩌라고. 아이와 아직도 남은 세월은 어쩌라고.
이쯤에서 일어서야 했다. 그때였다. 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예쁜 소녀가 뒷문을 밀고 들어왔다.
“어? 아빠가 아니네. 물고기는?”
그림 속의 아이였다.
“아빠는 이제 안 오실 거야. 저 그림 속의 물고기만 주신 거야.”
나도 이 아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빠는 네가 일곱 살 될 때까지 엄마를 지키다 가셨어.’
끝내 한마디도 못했다.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순이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그 분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분이에요. 여기 보증해 줄 사람과 같이 있어요.” 나는 짐작했다. 붕달씨 사건이 쉬 해결되었음을. 그런데 무슨 말인가를 해야 했다. 나는 순이의 두 손을 꼭 쥐어주고 아까부터 외워둔 말을 제법 진지하게 했다. “순이씨, 이제 앞을 보세요. 허망한 기억을 거두면 또 다른 세상이 순이씨 앞에 있을 테니까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의 대사처럼, 나는 진심으로 순이가 일어서길 바랐다. 늦은 밤, 신작로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4 삭풍에 문풍지가 몸살을 앓는 붕달씨의 감밭 초당에서, 흘림낚시 기법과 밑밥의 사용법을 진지하게 설명하면서도 순이를 만난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당장 말하면 내가 바보지. 초당방 화투로 치자면 근래에 최고의 패를 쥐지 않았나 말이야.’
솔직히 나도 처음으로 그를 압도할 수 있다는 데에 꽤 기분이 괜찮았다. 그러나 내가 그와 다른 건 내 패는 멀지 않아 탄로날 것이며 지금도 그럴 기미가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게 나의 비방일 수 없는 것은 내공이 없는 탓이며 다만 일과성일 뿐이라는 거다. 아무려면 어때, 내 얼굴만 쳐다보던 붕달씨가 개 짖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미닫이 창호지 구멍을 후벼 파다가 다시 쭈그리고 앉았다. “거문도 연안은 평균수심이 동해보다 꽤 깊으니까 파도가 약간 치면 1호 정도의 찌를 쓰소. 밑밥으로 감성돔을 띄워서 낚는다는 생각을 가지소. 알겠능교?” “갔다 오면 니가 도와줄 거제?”
붕달씨가 놓치고 있는 것은 그의 손맛은 확실히 붕어였는데 그걸 가슴을 만진 것으로 대치함에 있었다. 애초에 추행의 의도가 배제되었음에도 그 팩트를 고백하며 스스로를 포박함에 있었다. 유죄가 비록 행위의 객관성일지라도 그의 속내는 정말 붕어였다는 진솔함을 우리는 두둔할 것이다. 동지를 며칠 앞두고 우린 거문도로 출발했고 그 3박4일의 조행은 참담했다. 도착 다음날부터 폭풍주의보가 이틀간 발효되었다. 마지막 날엔 여객선 시간에 쫓겨 우리는 마당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는데 갑자기 붕달씨가 소리쳤다. “유세차, 동짓달 초이레 가련한 김봉달이가 천지신명의 용왕님께 아룁니다. 여기 초헌을 받으시고 고달픈 바다를 달래시어 부디 한 수 주시옵소서. 후여, 후여, 아헌입니다. 먼저 가신 한 많은 선인들께 아룁니다. 남아있는 중생들 어여삐 여기시어 부디 살피소서. 후여, 후여-” 언제 가져 왔는지 종이컵에 따른 막걸리로 재배하고 갯바위와 바다에다 흩뿌렸다. 나는 아헌의 잔이 순이 남편에게 가길 간절히 바랐다. 칠 년 전 그의 넋에 기도하며 편안히 가기를 기원했다. “처음 온 바다에는 이런 절차가 있능기라.” 붕달씨가 주절대자말자 그의 장대가 거짓말처럼 휘어지더니 한 자도 훨씬 넘는 벵에돔이 물고 늘어졌다. 그는 마치 소리못 붕어 뽑듯이 그 화려한 동작으로 휨새를 조절했다. 참으로 환상적이었다. 그는 제압한 뱅에돔 아가미에 손가락을 끼우고 우리를 향해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세를 낮추어 다른 손으로 살림망을 열었다. 낚은 고기를 막 집어넣나 했더니, 순간 마지막 힘을 모은 벵에돔이 그만 그의 손을 털고 빠져버렸다. “어라, 어라, 햐! 확실히 붕어보다 힘이 세데이.” 차군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보문호에서 두 자짜리 잉어를 낚아내는 그의 특유의 손놀림에서 뱅에돔이 빠지는 사연을. 우리 속마음을 읽으며 처음부터 지려했던 여린 마음을. 그 아름다운 서툰 연기를. 두 마리 붕어 손맛이 외설이 아니었음을. 상품으로 건 뜰채를 붕달씨는 한사코 마다했다. 감밭에 홍시 딸 때에 아주 요긴하겠다는 차군의 말에 못 이긴 체 받아 쥐었다.
원도 출조에서 돌아온 다음날에 붕달씨는 소리못 하류의 살얼음을 걷어냈다.
“이따 초당방으로 오거래이, 차군도 데리고.”
잘 다듬은 붕어에다 물을 적당히 잡고 푹 끓이는 건 똑같았다. 냄비 뚜껑이 들썩거릴 때 붕달씨가 초당 벽장에서 장지로 싼 걸 꺼내 풀었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이었지만 노총각인 차군은 같잖은 듯 빨리 먹자고 재촉했다.
“저게 아직 총각이라 그렇지, 장가 들고 새끼 낳거든 보거래이. 이게 산수유다. 잘 말려서 가루로 만들었능기라.”
그것이 비방이었다.
“절대로 씨를 빼야 된데이, 씨를 갈면 독성이 생기능기라.”
5
그해 신작로가 하얗게 눈 덮이던 날, 순이는 떠났다. 해거름에 순이 오빠로부터 하얀 봉투를 건네받았다. ‘속초로 떠납니다. 바가지에 작은 물고기를 담아 줄 뒷모습의 남자, 어디쯤에 계실까요.
선생님을 좋아할 뻔했습니다.
그날 밤 손이 참 따뜻했습니다. 순이가-‘
순이가 떠난 지 삼 년이 되는 가을날, 무심코 본 어느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요절한 젊은 화가의 유작「바다와 모녀」, 올해의 경매 최고가 경신!’
그리고 기사는「남과 여」라는 다른 유작을 소개했는데 뒷모습의 남자와 갯바위에 앉은 순이의 그림이었다.
예지의 화가, 색과 빛을 찾아 부나방이 된 화가, 심연의 원색이 차츰 살아 움직인다. 순이처럼 그를 이해하고자 하니 모든 것이 쉬 풀린다. 눈을 감으면 들리는 소리가 있다.
‘어? 아빠가 아니네. 물고기는?’
소녀가 내가 아빠일 수 없다는 걸 엄마에게 암시했을 때, 난 그저 수많은 뒷모습의 남자 중의 하나였고, 손이 따뜻한 촌부일 뿐이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추수 때가 되면, 붕어 씨알이 손아귀에 넘칠 때면 하얀 들꽃의 순이가 지나간다. 오늘도 새참 술이 신작로에서 소리못 들길로 익어가는데, 돌아서서 삼키려니 아직 남아 있는 그리움이 목젖에 걸린다. 산수유와 물항라 저고리와 함께. *
(「가을을 남긴 낚시」, 『문학광장 』, 2015년 9-10월호)
이 대 일/소설가
단편 <두레장터 삽화>, <김상금 소전>, <금홍이 스케치>
수필 <징 짚고 하수도>, <볼락과 첫사랑과 어머니> 등 다수
연재<경성뽀이껄/지촌>(
http://blog.naver.com/fish2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