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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일본의 만행을 ~~~(자료1)

G 0 2,032 2004.01.14 13:58
일산제품 쓰지 말자는 용기 있는 점주님의 말을 들으며우리가 너무 잊고 있는 것이 있었내요

우리는 일본에게 많은 문화와 글을 가르쳐 준 은혜의 나라 였는데 일본은 아직도 잘못을 인정 안하는 참으로 파렴치한 행동을

그치지 않내요한 가지만 이야기 할께요 일본의 광동 대 지진때전쟁 참패의 분위기을 엉뚱한 우리 재일교포에게 화풀이 한

사건 광동 대 지진 학살사건 거이 일본인 70%~80% 참여 우리의 재일교포을무참하게 수십만을 죽였죠일 가족을 길거리로

끌고 나와 임산부는 배을 갈라 죽이고 어린애는 뭉둥이로 때려 죽이고나무에 벌거 벗겨서 매달아 돌아 가며 매질하여 죽이고

목을 잘라 머리을 들고 단니며 자랑하며 좋아하고 많이죽이기 대회인양 젋은 여자는 수 십명이 간강하여 음부에 대창을 찔러죽

이고 한명 한명 일렬로 묵어서 끌고 단니며 심심풀이로 죽이는 차마 인간으로써 할수 없는 행동을 하며 우리 재일교포을 무참

학살해도 일본 정부는 모른체 묵인해주는 오히려 부축였다는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의 소릴 책에서 보았습니다혹 관동 대지진

학살사건 자료나 사진을 갖고 있는 네티즌께서는 자료 좀 올려 주십시오 그런 일본인이 만든 제품을 많이 갖고 있으면 알아

주는 낚시꾼인 모양하고 있으니 과연 나 부터 간이나 쓸개가있는 인간인지 모르고 지나온 세월이 부끄럽기 짝이 없내요 언제

부터인가 우린 그런 사실을 잊고일산제품에 놀이게가 되었내요구천 떠도는 우리선조의 억울한 영혼이 우릴보고 뭐하라고

원망하실까 생각하니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내요 비록 지나간 세월이지만 잊어서는 안될 일은 분명 기억해야합니다저도

이제부터라도 일산제품보다 우리 것을 찾고우리 것을 소중하게 하겠습니다주체성을 잊고 살아온 나날들이이 땅에 살게

태어나게 해준 선조님들께 참으로 머리 숙여 참회하며



자료
(1)1923년 9월 1일 관동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집이 파괴되고, 점심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피워 놓은 불은 대화재가 되며, 도쿄, 요코하마 등 대도시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하늘을 태울 듯한 큰 불길은 20여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망자는 10만을 넘고 부상자는 그 몇 배가 되었다. 경제적 손실은 당시의 돈으로 50억 또는 100억엔(지금의 돈으로 수조원)이라고 하는데, 실로 역사상 드문 대화재였다.
재난을 만난 사람은 100만에 가깝고, 부모처자·형제자매는 뿔뿔이 헤어지게 되어 서로 필사적으로 찾고,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었으며 잘 곳도 없어 황궁 앞 광장, 히비야 공원, 우에노 공원 등으로 피난하는 등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대혼란이었다. 이러한 군중의 대혼란을 목격하고 치안담당자인 내무대신 미즈노 랜타로, 내무성 경보국장 고도 후미오, 경시총감 아카이케 아츠시세 등 세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대책을 수립한 것일까?

이들 세 사람은 대군중의 불만이 정부권력으로 향할 것을 가장 두려워하여, 민중의 불만이 폭발하면 경찰력만으로 진압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결국 군대를 출동시켜 진압하기로 했다. 그러나 군대 출동에는 계엄령 발포가 필요하다. 문제는 계엄령을 시행할 이유이다. 계엄령 제 1 조는 좧계엄령은 전시 또는 사변에 임하여 병비로서 전국 또는 일부지방을 경계하는 것을 법으로 한다좩이다. 즉 전쟁이나 내란(사변)이라는 조건이 없으면, 계엄령은 발포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대혼란은 지진과 화재에 의한 것으로 전쟁도 내란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좧조선인 폭동좩이란 유언비어이다. 치안 최고 책임자 내무대신 미즈노 랜타로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좧다음 날 아침(9월 2일)이 되자……조선인 소동이 일어났다.……계엄령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계엄령은 조선인 폭동에 대처하기 위해서 시행했다고 미즈노 자신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폭동 사실은 전혀 무근인데도 말이다. 좧조선인 폭동좩을 이유로 하는 계엄령 발포에 의한 군대 출동에는 2개의 큰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일본 민중의 불만을 군을 출동시켜 진압하는 것, 또 하나는 일본 민중의 불만과 분노를 조선인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이 목적은 조선인 폭동과 방화,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유언비어를 정부는 세 가지의 방법으로 퍼뜨렸다. ① 치바 후나바시의 해군무선 송신으로 전국의 지사에게 조선인 방화를 전하고, ② 관동 각현에 통달을 내며, ③ 관하의 경시청 경관을 시켜 각 구·군·시·읍의 자치회, 재향군인회 등에 전달했다.
이리하여 각지에서 자경단이 출현하였고, 군대·경찰·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일본 민중은 길에 검문소를 설치하여, 손에 흉기를 들고 조선인을 뒤쫓았다. 그리고 각지에서 지옥 그림이 출현했다. 이때 관동 각지에서 학살된 조선인 수는 6천4백여 명에 달한다. 수없이 많아 전부 소개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한 예만을 소개한다.
당시 사이타마 혼죠 경찰서의 경관이었던 아라이 겐지로 의 증언이 있다. "어린이들은 일렬로 늘어서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이 잘리고, 그 후 부모들은 책형에 처해졌다. 살아 있는 조선인의 팔을 톱으로 자르는 일도 있었다. 할머니와 딸이 와서 '내 아들은 도쿄에서 이 놈들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하며 시체의 눈알을 칼로 파내는 것을 봤다" (숨겨져 있던 역사








* 글이 블랙러시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1-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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