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낚싯대

신상품 소개


회원 랭킹


공지사항


NaverBand
[휴게실] 세상사는 이야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게시판입니다.
▶특정인 비방/폭언/모욕/시비성 글은 예고없이 수정/삭제될 수 있으며, 일정기간 이용 제한 조치됩니다.
▶게시판 성격과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 또는 이동될 수 있습니다.

아들의 낚싯대

1 경주월드 35 3,370 2014.01.06 22:31
                   아들의 낚싯대  
 
아들의 결혼식 날, 내가 아들 보다 더 싱글벙글 했으니 하객들이 신기해서 물었다.
   "제가 유복자고 저눔이 외아들이니 자손 귀한 집이라 오늘을 손꼽았으니 기쁘다 마답니까요. 손자 볼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네요!"
   그러나 그 즐거움은 채 석 달을 넘지 못했다.
   아들 내외가 분가를 하겠다니 그날로 웃음이 사라졌다.
   시부모 모시는 게 즐거울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빼먹지 않고 조석으로 밥상을 차리는 며느리의 늘 말없는 모습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내가 점심까지 챙겨 먹자는 유혹을 용케도 뿌리쳤는데 분가 선언이라니... 그것도 석 달만에.
   암만해도 며느리가 몸이 허약한지라 달포 전에 이 도시의 권위 있는 한의원에서 보약도 지었는데, 잉어즙도 반 단지나 남았는데, 분가라니! 아들에겐 그 좋고 비싸다는 공진단도 사 먹였는데, 더군다나 한의원 친구에게 부탁해 빨리 수태하도록, 그것도 아들이었으면 하는 애절한 마음으로 기십만 원을 더 얹어 줬는데... 이튿날부터 힐끔힐끔 며느리 배 훔쳐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며느리보다 일찍 일어나 빨래와 청소를 해버리니 사실 며느리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딱 한 가지, 주방일만 며느리에게 시켰다. 시장보기도 아내가 다녀오니 음식 만드는 게 가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전례의 시집살이가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파격적 시부모였다. 그런데 분가라니... 그 모두가 우리만의 생각이었나.
   "이층이 불편하다면 우리가 올라가마. 우리 식사는 우리가 챙길게. 혹시 내가 실언한 게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가야,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없겠는냐."
   며느리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퇴근해 돌아온 아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게 다였다.
   "아파트 값이 수월찮을 텐데..."
   "처가에서 마련해 줬습니다."
   사흘 후, 아들 내외는 거짓말처럼 가버렸다. 휑한 집안에 못다 챙긴 아들의 두 칸반대 민물대가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뺨에다 부벼봤다. 알싸한 물냄새가 풍겼다. 이십 년 전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선물로 사 준 건데... 그해 여름방학이 생각났다. 아들의 월척을 뜰채로 담던 부자간의 여름낚시의 추억은 작은 사건이었다. 아들이 걸은 월척은 서로 버팅기나 했더니 별안간 잉어가 저 멀리 남양군도의 청새치처럼 점핑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그 모습이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다. 잉어는 공중에서 한 바퀴 환상적 회전을 하더니 원심력으로 낚싯줄을 터뜨리고 자유낙하를 하는 것이었다. 신기하다고나 할까, 순간 내가 펴 든 뜰채 속으로 잉어가 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날 부자간의 그 환상적 합작낚시 이야기는 아내도 술술 외울 정도였다.
그날 아들의 낚싯대를 나는 '월작'이라 이름 지었었다. 그걸 버리고 가다니... 
   '아마도 잊어버렸을 거야. 그럼, 그럴 거야. 추억을 버릴 순 없지. 다음에 갖다 줘야지.'
   하지만 그렇게 쉽게 대문을 나설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러나 정작 아연실색한 건 싱크대 구석 수납장이었다. 너무 뜨겁지 않을까, 너무 식은 게 아닐까 하며 노심초사로 시간을 맞춰 며느리에게 건네줬던 비닐 팩 한약이 모듬이로 쌓여 있었다. 하나씩 가위로 잘라 꽃밭에다 뿌리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다. 따라간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서둘렀다.
   '아마 다음에 먹을려고 모아 두었을 거야...'
   그래도 한 시간 안쪽이니 다행이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아들을 찾아갔다. 아들의 낚싯대도 수납장에 넣어 주었다. 주말마다 즐겨하던 민물낚시도 당분간 접고 아들 집을 나들었다. 김치도 만들어 가고 빨래도 배달했다. 꼬박 일 년을 그렇게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태기가 있었고 작년 가을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손자를 봤다. 손자를 보던 날, 아내와 나는 조상묘를 찾아 성묘를 올렸다. 절을 올리며 대대로 가문을 잇게 된 고마움을 조상님에게 감사하며 유복자의 북받치는 서러움을 얼굴도 모르는 부친 영전에 토로했다. 나의 착한 아내와 함께.
   그러나 우리 부부에겐 더 큰 계획이 있었다.
   별거의 원인이 예전 나의 월급쟁이 기질의 검소함에서 비롯된 걸 아내가 깨우쳐 주었다. 우린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며 작정을 했다. 바로 퇴직금으로 든 정기예금의 일부를 아들 내외의 결혼기념일에 주자는 데 의견일치를 본 것이었다. 그리고 손자를 키워주겠다는 제안을 은근이 꺼내는 것이었다.
   거절하면?
   사돈집이 부자라서, 우리 제의를 거절하면?
   덜컥 겁이 났다.
   드디어 아들의 결혼기념일이 다가왔다. 아니 며느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아들 집에는 이미 안사돈이 와 계셨다. 아들 내외는 뮤지컬을 보러 초저녁에 나갔다며 손자를 안고 계셨는데 아이는 감기가 들어 있었다. 아내는 억울해 했다. 시부모는 눈치를 보며 래왕하는데 친정 엄마는 허물없이 들러 외손자를 얼르다니... 사돈 앞에서 예의를 갖추자니 내색할 수는 더우기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러면 어때....'
   그렇게 위안을 보태는 동안 자정이 훌쩍 넘었고 아들은 소식이 없었다. 아내는 안사돈을 안방으로 드시게 하고 잠자리를 꾸려 주었다. 사돈댁이 집을 마련해 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엄연한 우리집 손님이기에 편히 쉬시라고 했다. 밤새 보채는 아이를 교대로 보며 뜬 눈으로 지샜다. 아들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었지만 결혼기념일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온 아들과 며느리에겐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좋은 날인데 우리가 참아야지."
   나는 아내를 진정시켰지만 아들의 다음 말에 일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방이 두 칸인데 우린 어디서 자요?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거실도 있잖니..."
   내가 아내의 손을 끌고 아파트를 나왔다. 아들이 따라 나왔지만 들어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병원에 데려 가거라, 아이 감기가 심하더구나."
   아파트 앞을 흐르는 강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막 주차장을 돌아 나오는데 등 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저, 이거... 이제 필요가 없어서... 주말마다 골프 약속이 있어서..."
   아들의 손엔 '월작'이 들려 있었다.
   '못된 녀석...'
   교각 아래 껑껑 얼은 강바닥을 내려다 보며 아내가 중얼거렸다.
   천천히 차를 몰았다.
   "집을 팔자."
   착한 아내가 애닯게 끄덕이자 기분이 편해져 휘파람을 불었지만 자꾸 바람만 샜다.

   봉투에 아들의 주소를 쓰고 한 번 더 읽어봤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월작'을 한의원에 맡겨 놓았다.
너에겐 하찮은 물건일지 모르지만 아버지에겐 그게 대단한 추억이었다. 너와 함께 한 유일한 여름낚시였으니까. 아마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진 않을 게다.
   아들아,
   너에게는 월작이 고루한 기억일지 모르지만, 그건 아버지 가슴에 아직도 벅찬 설레임을 일게 해 주는 들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단다. 낚싯길의 들꽃과 산새와 저수지에 잠긴 별들도 너의 의미로 아름다웠고, 낚시도 너와의 소망을 낚기에 네편에서 소중했다. 월작도 너로 인해 존재했다. 아버지는 너로 인해 행복했다. 너 앞에서는 늘 고루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내 방식인 걸 어떻하겠니... 아버지는 유복자이지 않느냐. 아버지는 말이다. 네가 별을 가스 덩어리로 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단다. 마음의 물감을 풀면 넉넉한 심성의 여백에다 밤하늘을 깔 수 있고 눈을 감으면 거기에도 별이 뜬단다. 별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너에게 많기를 바란다.
   아마도 너가 그 낚싯대를 찾는 날, 별을 보게 될것이다. 내가 네게 가르쳤 듯, 네 아들에게도 보여 주어라.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도 그날 알려 주어라.
   지금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긴 여행을 떠난단다. 너를 꼭 안아보고 싶었는데...
   아들아,
   너를한없이 사랑한다.>


   ***경주월드/2004. 3. 23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35 댓글
1 블루탱 14-01-07 18:33 0  
서울로 시집간 조카 계집애가
하나 있는데,
시어머니가 김치통을 경비실에다
몰래 맡겨두고 간답니다.
뭔 말인지 형님 아시죠?
ㅎ,  10년 전에도 형님께선 간이
꾀 크셨습니다요.
갑오년, 형님께서도 여전히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형님과 더불어 여러 꼰대형님들은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 모두 궁금합니다요.
단편이라면 낚시소설인가요?
출간되면 이 쪽에다
맛뵈기로 제일 먼저 올려주세요.
제가 읽은 그 어느 책보다 더 구수한
형님의 작품들을
여기 인낚회원들과 어울려
정독해 보고 싶습니다.
1 삼천포볼락 14-01-07 19:47 0  
아들은 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들이니 잘 알지요
다행히 전 딸만 둘입니다 
아무튼 글 솜씨가 너무 좋으십니다
많이 써 주세요
53 즐거운하루 14-01-07 19:56 0  
경주월드님의 대명과 인품은
익히 들어 잘알고 있읍니다
마음 아프시겠지만 두분께서 더 행복하게 사시는 것입니다

인낚에서 더 좋으신 분들 더 만나시길 바랍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흐름이 많이변했읍니다
그저
즈그들 안아프고 건강히 알콩달콩 잘살기만
바래야죠 ~~~~~
나중에 즈그들 아버지 나이 되면 후회 할겁니다
늘 건강하세요 ^^
1 멈춤봉 14-01-07 23:38 0  
세걸음에 한번씩 스탭을 바꾸어야 한다는 조신의 빨간찌가 늘 곤혹 스럽게 만듭니다
후배녀석이 삼비(?)라 은사노릇을 하더군요

어떨땐..
초를 다투어 잠입하는 시크릿한 과학이 더욱 눈치를 보게 합니다

어이쿠~~이런..!!
내달리는 물의속도에 부합하지 않게 건네받은 찌가 간출여 해초에 덜컥 인사를 하니
식은땀이 납니다...
또,한소리 듣게 생겼네요^^;;

숨죽일줄 아는 고요를 가르치려다
품산지 후미진 곳에서 혼자 나발을 불었습니다
반딧불과 캐미가 동조된 어지럼증을 겪고 난이후
전화기 기억력의 숫자를 지워 버렸습니다

사발면 뒤엎고 일어서게 만든 그녀석이 행복 이었습니다

이젠..책방골목을 서성이지 않아도 되는 건지요
일곱치 유장구이 맛은 어떨지 더욱 궁금하고 기대 됩니다

형산강 은어와 아내의 생일선물은 절주의 의지를 꺾어 버렸으니
책임져 주십시요^^;;

동네 족발집에 중자 하나에 19도 한병 시켰습니다
두어시간만 경주월드님의 낚시 망태기를 구경하려 합니다

한가지는 아쉽습니다
여긴 파전 하나에 동동주 두병이 없습니다
금홍이 젖가슴 내음을 맡고 싶은데....^^;;
.
.
.
.
출간되면 이곳부터 들려 주신다니
"꼭 기다리겠습니다"

몇년만에 배달집 족발을 뜯게 만드셨으니
책임 지십시요(__)
1 바라쿠다 14-01-08 09:41 0  
드라마에선 부부가 모두 벌면서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양쪽 부모에게 5백 정도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더군요. 친부모 회사가 어려워져서 당분간 생활비지원을 끊어야 겠다고 하니 부부가 시댁에 쳐들어가서 난리법석을 벌여 다시 생활비 받는 걸로 이야기가 전개되던데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포토 제목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