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한 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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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한 이 여자

1 경주월드 7 1,898 2009.02.2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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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반한 이 여인, 그녀는 암울했던 시대를 두 남편과 살다 갔다.
   2004년 그녀는 뉴욕에서 죽었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두번째 남편 곁에 묻혔다. 미아리에 있던 첫 남편의 묘소는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무덤이 있었다면 그녀는 반반씩 누웠을까. 나는 충분히 그럴 여인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세 시간 정도면 동경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37년은 서울역에서 부산까지는 12시간이 걸렸고, 거주지에서 도항증명서를 받아 관부연락선 '덕수환'으로 시모노세끼(下關)까지 또 그만치 걸렸다. 다시 거기에서 동경까지 가서 동경제대 부속병원으로 갔다고 생각하니 상상이 잘 안된다.
   그러나 이 여인은 갔다.
   그해 4월 17일, 남편이 거기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사상이 의심스럽고 행적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감방에 구금되었다가, 지병이 겹쳐 3월에 석방되었지만 다음달에 지인들이 그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그는 멜론의 향기가 그립다는 말을 남기고 아내와 친구 김소운과 몇몇의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물일곱 살로 요절했다.
   마치 반딧불이처럼 반짝하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세기를 넘어 만인 앞에서 문학이라는 이름을 수식하며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그녀의 첫 남편, 일탈의 사나이, 그 이름만으로도 희대의 스캔들인 바로 이상(李箱)이다.
   그럼 그 당찬 여인은 누구인가! 남편의 유해를 수습하여 다시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와 미아리에 안장시킨 그녀, 바로 변동림었다.
   경기여고,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변동림은 스무 살 나던 1936년 6월, 이복오빠인 화가 구본웅과 절친했던 6년 연상의 李箱과 결혼한다. 그러나 천재시인과 문학소녀와의 결혼생활은 불과 4개월여에 막을 내린다. 그해 10월 17일 그녀는 동경으로 떠나는 이상과 눈물의 이별을 한다. 가을은 늘 이별을 동반하는 것인가.

   이상은 다시는 관부연락선을 탈 수 없었다. 그 무렵 변동림은 22세의 미망인으로서는 겪기 힘든 시기를 보낸다. 1940년대로 접어들어 차츰 신변의 안정을 찾은 변동림은 1944년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를 만나 김향안(金鄕岸)으로 개명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김환기에겐 이미 아이 셋이 달려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해 봄 목련이 한창일 때, 고희동을 주례로, 청첩인을 정지용으로 하고 길진섭의 사회로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성북동의 산방에서 신혼 살림을 차린다.
   훗날 그녀는 수필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에서 오래된 감나무가 있는 그 신혼시절의 노시산방(김용준의 노시산방이 이후에 수향산방으로 바뀜)을 이렇게 추억한다.

   성북동 32-3, 근원(近園) 선생이 선생의 취미를 살려서 손수 운치있게 꾸미신 한옥. 안방, 대청, 건넌방, 안방으로 붙은 부엌, 아랫방, 광으로 된 단순한 기역자 집. 다만 건넌방에 누마루를 달아서 사랑채의 구실을 했고 방마다 옛날 창문짝들을 구해서 맞춘 정도로 집은 빈약했으나, 이백 평 남짓되는 양지바른 산마루에 집에 붙은 개울이 있고, 여러 그루의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는 후원과 앞마당엔 괴석을 배치해서 풍란을 꽃피게 하며, 여름엔 파초가 잎을 펴게 온실도 만들어졌고 운치있게 쌓아올린 돌담장에는 앵두와 개나리를 피웠다. 앞마당 층계를 내려가면 우물가엔 목련이 피었었다.(<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김향안, '월하의 마음', 환기미술관)

   김향안은 1954년 프랑스로 그림 유학을 떠난다. 다음해 김환기 역시 파리에서 미술평론을 공부하고 귀국 후 홍익대 미술대학장으로 있다가 1964년 도미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았다.
   그녀는 1974년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남편의 유작과 유품을 돌보는 한편, 1978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해 김환기의 예술을 알리는 데 힘썼다. 1992년에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付岩洞)에 자비로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는데, 사설 개인 기념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이상과 김환기의 아내였던 여인, 내가 정작 이 여인에게 반한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김향안은 1986년 월간 '문학사상' 지에서, 그녀가 변동림이었을 때 불과 4개월을 같이 산 첫 남편 李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어 가는 충분한 시간이다.(...) 천재는 또 미완성이다."
   또 그녀가 김향안으로서 30년을 함께 한 김환기의 아내였을 때에는,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가진 예술가의 동반자로 살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웬만하면 전 남편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생전에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고 기록으로도 인터뷰를 남겼고 실천으로도 남겼다.  
   두 천재 예술가를 가까이에서 지켰던 그녀는 88세로 2004년 세상을 뜰 때까지 일찌감치 눈을 감은 두 배우자의 예술혼을 기리고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보존하는 일을 신념처럼 펼쳤다.
   첫 남편이었던 李箱의 기념사업으로는, 모교 보성고 교정에 1990년 5월 이상의 기념비와 문학비가 세워지기까지, 교우회가 발벗고 나서기도 했지만, 김향안 여사의 의지와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또 두번째 남편 김환기 화백과 관련해 그녀는 김환기의 미술세계를 이끌고 완결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화가 생전에는 작품활동에 감흥을 불러일으킨 예술의 반려였으며, 사후엔 유작과 유품을 정리해 결국 환기미술관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내가 반한 이 여자, 그녀는 2004년 88세로 운명한 변동림과 김향안으로 불리는 여자였다.


   ***경주월드(Essay-by Deili. 2009. 2. 25 '내가 반한 이 여자'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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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1 떡망상어 09-02-25 21:48 0  
날개의 이상.... 그 삶의 뒷면에는 변동림이라는 분이 계셨다는걸 알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1 경주월드 09-02-27 17:29 0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임상 실험한 천재 작가 이상, 한국 문학사의 돌연변이이자 스캔들이었습니다.
 
오기가 있어서 바로잡았습니다.
1 칼있어마 09-02-27 14:27 0  
잘 지내시는지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짜~안해 오는 이상!
그의 변두리 사정은 전혀 몰랏는데, 변동림이란 기구한 삶의 흔적을 엿볼수 잇엇네요!
애환이 담긴 사연 잘 읽고 갑니다.
맨날맨날 행복하소서!  ^_^
1 경주월드 09-02-27 17:38 0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멋이 있어요.^^
이상에 머물다 보면, 인상적인 초상, 자의식의 파탄, 도저한 미완성성, 다다적 자아, 뭐 이런 저런 것들이 밀려들어 복잡해집니다.
어쩌면 그때 잘 죽었지요. 더 살았으면 여러 사람 미치게 만들었을 겁니다.^^
1 경주월드 09-02-27 17:20 0  
변동숙과 변동림은 배 다른 자매이고 변동숙이 구본웅의 계모로 들어오니 변동림은 이모가 됩니다.
이상과 구본웅은 나이 차(네 살)가 나도 친구처럼 지냈지만 이상이 변동림과 결혼을 하니 이상은 졸지에 구본웅의 이모부가 돼버렸지요.
그러므로 본문 중의 '이복오빠인 화가 구본웅'은 '이질인 화가 구본웅'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1 허거참 09-03-01 22:38 0  
60년대에 김향안이 쓴 책 중에 하나가 내게도 있는데..
<파(빠?)리의 oo>이라고.. 파리의 추억인지 회상인지 낭만인지.. 기억이..
어딘가 처박혀 있을 텐데 찾기가 쉽지않네요..
찾아보려 했다가 다른 일 때문에 그냥 지나갔는데..ㅎ
*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인가..?
60년대초쯤에 경복궁 미술관에서 직접 보았는데.. 100호쯤 되는 그림이었지요..
당시 국전이 해마다 열렸는데.. 그 그림이 국전 대상을 받았지요, 아마..^^
푸른 계통의 작은 사각형(네모)을 수백개 아니 천여개쯤 그려넣은 추상화 그림..
이른바 현대화 화풍의 선구자 역할을 일찌감치 떠맡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 후에는 다시 반추상 그림으로 전환하더군요..
산과 달과 기러기.. 이런 걸 주로 조합해서 환상적 분위기의 조형을 했는데..
그만 뉴욕으로 가더니.. 소식이 뜸해지더만요..
*
그가 44년에 고희동 주례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결혼을 했다고요..
고희동은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 60년~61년에 참의원을 하였는데..
그가 출마하면서 벽에 붙은 선거 포스터를 본 기억이..눈에 선합니다..ㅎ
그의 한자 이름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화가였다고..ㅎ.. 길진섭은 좌파 화가..
고희동의 집이 우리동네(가회동, 계동) 옆 동네에 있었지요.. 원서동에..
계동골목 중간에는 한국화(동양화)화가 배렴의 집도 있었고..
가람 이병기.. 김성수.. 친일파 윤덕영의 집도.. ㅋ
*
김환기의 결혼 1년 후 종로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는 45년8월1일에는
나의 부모가 결혼식을 올렸다 하더군요.. 그것도 센세이션이었다 하던데..ㅋ
어쨌든 날짜를 따져보면 내가 해방동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ㅎㅎㅎ
요새 같으면 하니문 베이비라나 뭐라나 .. ㅋㅋ
*
더불정하고 박거사하고 금욜 추도에서 볼락 선상낚시하고 토욜에는 고성 상족암에 가서 캠핑하고 오늘 일욜 귀가.. 이제야 댓글 올립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김향안 여사..
그를 떠올리면 웬일인지
김기창의 아내 박내현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1 경주월드 09-03-04 19:04 0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국전이 아니고 한국일보가 1970년에 창설한 ‘한국미술대상전’이었지요.^^
환기미술관에서 발행한 김환기, 김향안의 수필집(일기, 산문 등)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전면점화를 그리는 데 꼬박 4주일이 걸렸다더군요.
김향안이 쓴 책 같이 좀 봅시다요.^^
45년 8월 1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해방동이라면...^^
우리만 알자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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