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임상 실험한 천재 작가 이상, 한국 문학사의 돌연변이이자 스캔들이었습니다.
오기가 있어서 바로잡았습니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임상 실험한 천재 작가 이상, 한국 문학사의 돌연변이이자 스캔들이었습니다.
오기가 있어서 바로잡았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짜~안해 오는 이상!
그의 변두리 사정은 전혀 몰랏는데, 변동림이란 기구한 삶의 흔적을 엿볼수 잇엇네요!
애환이 담긴 사연 잘 읽고 갑니다.
맨날맨날 행복하소서! ^_^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짜~안해 오는 이상!
그의 변두리 사정은 전혀 몰랏는데, 변동림이란 기구한 삶의 흔적을 엿볼수 잇엇네요!
애환이 담긴 사연 잘 읽고 갑니다.
맨날맨날 행복하소서! ^_^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멋이 있어요.^^
이상에 머물다 보면, 인상적인 초상, 자의식의 파탄, 도저한 미완성성, 다다적 자아, 뭐 이런 저런 것들이 밀려들어 복잡해집니다.
어쩌면 그때 잘 죽었지요. 더 살았으면 여러 사람 미치게 만들었을 겁니다.^^
이상에 머물다 보면, 인상적인 초상, 자의식의 파탄, 도저한 미완성성, 다다적 자아, 뭐 이런 저런 것들이 밀려들어 복잡해집니다.
어쩌면 그때 잘 죽었지요. 더 살았으면 여러 사람 미치게 만들었을 겁니다.^^
변동숙과 변동림은 배 다른 자매이고 변동숙이 구본웅의 계모로 들어오니 변동림은 이모가 됩니다.
이상과 구본웅은 나이 차(네 살)가 나도 친구처럼 지냈지만 이상이 변동림과 결혼을 하니 이상은 졸지에 구본웅의 이모부가 돼버렸지요.
그러므로 본문 중의 '이복오빠인 화가 구본웅'은 '이질인 화가 구본웅'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이상과 구본웅은 나이 차(네 살)가 나도 친구처럼 지냈지만 이상이 변동림과 결혼을 하니 이상은 졸지에 구본웅의 이모부가 돼버렸지요.
그러므로 본문 중의 '이복오빠인 화가 구본웅'은 '이질인 화가 구본웅'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60년대에 김향안이 쓴 책 중에 하나가 내게도 있는데..
<파(빠?)리의 oo>이라고.. 파리의 추억인지 회상인지 낭만인지.. 기억이..
어딘가 처박혀 있을 텐데 찾기가 쉽지않네요..
찾아보려 했다가 다른 일 때문에 그냥 지나갔는데..ㅎ
*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인가..?
60년대초쯤에 경복궁 미술관에서 직접 보았는데.. 100호쯤 되는 그림이었지요..
당시 국전이 해마다 열렸는데.. 그 그림이 국전 대상을 받았지요, 아마..^^
푸른 계통의 작은 사각형(네모)을 수백개 아니 천여개쯤 그려넣은 추상화 그림..
이른바 현대화 화풍의 선구자 역할을 일찌감치 떠맡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 후에는 다시 반추상 그림으로 전환하더군요..
산과 달과 기러기.. 이런 걸 주로 조합해서 환상적 분위기의 조형을 했는데..
그만 뉴욕으로 가더니.. 소식이 뜸해지더만요..
*
그가 44년에 고희동 주례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결혼을 했다고요..
고희동은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 60년~61년에 참의원을 하였는데..
그가 출마하면서 벽에 붙은 선거 포스터를 본 기억이..눈에 선합니다..ㅎ
그의 한자 이름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화가였다고..ㅎ.. 길진섭은 좌파 화가..
고희동의 집이 우리동네(가회동, 계동) 옆 동네에 있었지요.. 원서동에..
계동골목 중간에는 한국화(동양화)화가 배렴의 집도 있었고..
가람 이병기.. 김성수.. 친일파 윤덕영의 집도.. ㅋ
*
김환기의 결혼 1년 후 종로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는 45년8월1일에는
나의 부모가 결혼식을 올렸다 하더군요.. 그것도 센세이션이었다 하던데..ㅋ
어쨌든 날짜를 따져보면 내가 해방동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ㅎㅎㅎ
요새 같으면 하니문 베이비라나 뭐라나 .. ㅋㅋ
*
더불정하고 박거사하고 금욜 추도에서 볼락 선상낚시하고 토욜에는 고성 상족암에 가서 캠핑하고 오늘 일욜 귀가.. 이제야 댓글 올립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김향안 여사..
그를 떠올리면 웬일인지
김기창의 아내 박내현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파(빠?)리의 oo>이라고.. 파리의 추억인지 회상인지 낭만인지.. 기억이..
어딘가 처박혀 있을 텐데 찾기가 쉽지않네요..
찾아보려 했다가 다른 일 때문에 그냥 지나갔는데..ㅎ
*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인가..?
60년대초쯤에 경복궁 미술관에서 직접 보았는데.. 100호쯤 되는 그림이었지요..
당시 국전이 해마다 열렸는데.. 그 그림이 국전 대상을 받았지요, 아마..^^
푸른 계통의 작은 사각형(네모)을 수백개 아니 천여개쯤 그려넣은 추상화 그림..
이른바 현대화 화풍의 선구자 역할을 일찌감치 떠맡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 후에는 다시 반추상 그림으로 전환하더군요..
산과 달과 기러기.. 이런 걸 주로 조합해서 환상적 분위기의 조형을 했는데..
그만 뉴욕으로 가더니.. 소식이 뜸해지더만요..
*
그가 44년에 고희동 주례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결혼을 했다고요..
고희동은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 60년~61년에 참의원을 하였는데..
그가 출마하면서 벽에 붙은 선거 포스터를 본 기억이..눈에 선합니다..ㅎ
그의 한자 이름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화가였다고..ㅎ.. 길진섭은 좌파 화가..
고희동의 집이 우리동네(가회동, 계동) 옆 동네에 있었지요.. 원서동에..
계동골목 중간에는 한국화(동양화)화가 배렴의 집도 있었고..
가람 이병기.. 김성수.. 친일파 윤덕영의 집도.. ㅋ
*
김환기의 결혼 1년 후 종로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는 45년8월1일에는
나의 부모가 결혼식을 올렸다 하더군요.. 그것도 센세이션이었다 하던데..ㅋ
어쨌든 날짜를 따져보면 내가 해방동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ㅎㅎㅎ
요새 같으면 하니문 베이비라나 뭐라나 .. ㅋㅋ
*
더불정하고 박거사하고 금욜 추도에서 볼락 선상낚시하고 토욜에는 고성 상족암에 가서 캠핑하고 오늘 일욜 귀가.. 이제야 댓글 올립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김향안 여사..
그를 떠올리면 웬일인지
김기창의 아내 박내현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국전이 아니고 한국일보가 1970년에 창설한 ‘한국미술대상전’이었지요.^^
환기미술관에서 발행한 김환기, 김향안의 수필집(일기, 산문 등)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전면점화를 그리는 데 꼬박 4주일이 걸렸다더군요.
김향안이 쓴 책 같이 좀 봅시다요.^^
45년 8월 1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해방동이라면...^^
우리만 알자고요...^^ㅎㅎ
국전이 아니고 한국일보가 1970년에 창설한 ‘한국미술대상전’이었지요.^^
환기미술관에서 발행한 김환기, 김향안의 수필집(일기, 산문 등)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전면점화를 그리는 데 꼬박 4주일이 걸렸다더군요.
김향안이 쓴 책 같이 좀 봅시다요.^^
45년 8월 1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해방동이라면...^^
우리만 알자고요...^^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