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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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1 육지고래 17 2,188 2008.11.14 23:20
[스크랩] ★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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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가 있었다.

80년대 이전까지 군대에서 사병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노래이다.

물론 정식 군가는 아니고,

진중가요라고도 할 수 없는 통속적인 노래이다.



이 곳에 소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저속한

그 노래의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도 한 갑 두 갑

일년에 열두 갑

치마 밑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

치마 밑에 불이 붙어…



노랫말의 내용은 인천에 있는 성냥공장 아가씨가

치마 밑에다 몰래 성냥을 감추고 나오다가

불이 나서 경을 쳤다는 내용이다.



성적으로 한창 왕성한 시기에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던 사병들인지라

약간의 외설성이 담긴 이런 노래가 불려진 것은 이해가 갔다.



불현듯 그 노랫말이 떠오르면서

새삼스럽게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1) 하필이면 성냥 공장 아가씨일까? (방직공장, 신발공장이 아니고)

2) 하필이면 인천일까?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도 있는데)

3) 하필이면 하찮은 성냥을 감추고 나왔을까? (돈이나 귀금속이 아니고)

4) 한루에 한두 갑이면 일년이면 수백 갑이지 왜 열두 갑일까?

5) 성냥은 황에다 힘을 주어 그어야 불이 붙는데, 불은 왜 났을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그 의문이 대부분 풀렸다.

우리 나라에 성냥이 보급된 경로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1880년 개화승(開化僧)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 갔다가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과 동행 귀국할 때

처음으로 성냥을 가지고 들어왔으나,

일반에게 생활용품으로 대중화하기는 국권피탈 후인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인천에 조선성냥[朝鮮燐寸]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군산·수원·영등포·마산·부산에 공장을 설립하여

생산 판매함으로써 가정용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공장설치도 일체 허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술도 배우지 못하게 하여,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서는 성냥 1통에 쌀 1되라는 비싼 값으로 판매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 처음으로 한국 사람의 손으로

인천에 대한성냥을 비롯하여 전국에 300여 개의 수공업 형태의 공장이 설립되어

월간 400만 포의 성냥을 생산 공급하게 되었으며,

한국전쟁 후에는 150여 개 업체로 정리되었고,

1970년대부터 자동화시설로 전환함에 따라

업체 규모의 대형화로 업체수가 20개로 감소되었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


즉, 우리 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은 일본인이 인천에 세운 조선성냥이고,

일본인들은 성냥의 독점화를 위하여 조선인의 기술 습득을 막았다.

그로 인해 일제 강점기 때는 성냥 한 통이 쌀 1되였다.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성냥공장도 인천의 대한성냥이었고,

성냥공장이 자동화시설을 갖추고 대형화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또한, 우리 나라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이전까지

국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다.

소득 수준이 낮았으니 국민 대부분이 돈이 없었고 소비도 많지 않았다.

신발도 짚신을 신거나 집 주위에서는 맨발로 다닐 만큼 절약했고,

옷도 천을 사다가 집에서 해 입는 경우가 많았다.

군것질은 보통 사람에게는 사치였고,

외식이란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절약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성냥이었다.

전기가 일상화 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도

매일 불(남포불, 등잔불, 촛불 등)을 켜기 위해 성냥이 있어야 했고,

전기 밥솥이 없으니 밥을 짓기 위해서도 성냥이 있어야 했으며,

라이터가 귀한 시절이니 담뱃불도 성냥이었다.

즉, 성냥은 집집마다 반드시 소비해야하는

당시로서는 불황이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이다.



1) 방직공장이나 고무신공장보다 성냥 공장이 더 필요 했으니,

성냥공장 아가씨였고,

2)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성냥 공장과 해방 이후 최초의 성냥공장이

인천에 있었으니 인천의 성냥공장이었으며,

3) 성냥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고 한 통에 쌀 1되의 고가였으니,

감춰서라도 가지고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4) 그러면 하루에 한두 갑이면 1년이면 수백 갑인데, 왜 열두 갑일까?

이 부분은 필자의 상상이다.

하루에 한두 갑이란 조그만 휴대용 성냥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치맛속이라고 해도,

커다란 성냥통을 몸에 숨기고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년에 열두 갑이란 큰 성냥통으로 열두 갑일 것이다.

하루에 작은 성냥갑으로 한두 갑을 훔쳤다면,

1년이면 큰 통으로 열두어 갑 쯤 될 것이다

성냥공장 아가씨들은 가난한 부모를 위해서

또는 힘들게 공부하는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서

먹을 것을 아끼고, 입을 것을 절약하며 일을 했다.

그러다가 명절 때 귀성하는 날

그 아가씨들이 고향에 가져가는 선물 보따리 속에는

귀금속은 아니지만 집에서 꼭 필요한 생필품인 성냥

눈물겨운 그 성냥이 들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훔치다가 들켜서

인간 이하의 수모를 받기도 했을

그 시절의 누이를 생각하면 서러운 마음도 든다.



5) 치마 밑에 감춘 성냥에서 왜 불이 났을까?

최초의 성냥은 마찰성냥이었다.

마찰성냥이란 나뭇개비 끝에 붙어 있는 발화성 약제를

황이 아닌 벽이나 구둣굽 등에 마찰시켜도

어느 곳에서나 발화되는 성냥을 말한다.

황린성냥·적린성냥·황화인성냥이 이에 속한다

마찰성냥은 황린을 발화연소제로 사용한 것으로

독성과 자연발화의 위험이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제조금지되고,

그것을 보완한 것이 지금의 안전성냥이다.

물론 마찰성냥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 데도 옷속에 불이 붙을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 '치마 밑에 불이 붙어'인 것이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이 노래는 젊은 사병들의 이성에 대한 욕구를 표현한 외설적인 노래이다.

그러나 그런 노래가 탄생한 이면에는 가난했던 옛날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우리 누이들의 눈물겨운 아픔이 스며있는 성냥공장 아가씨!

외설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부르기에는 죄스러운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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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댓글
1 백도사랑 08-11-14 23:41 0  
주말인데 어디 안가는교????????? 요즘 고리 아픈일이있어 ~~오늘 이슬이 한잔하고 그런데 요즘 세상은 얼굴 뚜껍은 넘이 너무많네요~ㅠㅠㅠㅠ
1 갈매기사랑 08-11-17 12:06 0  
지난번 이야기 해샇티마는 그기 해결이 잘 안되는가베--
1 개구장이오빠 08-11-19 20:23 0  
누가 햄을 그리도 괴롭히나요?
내 사랑 학꽁치......작금 가면 마니 나오는지요
프리랜스 백수가 돼는 그 날까지......파이팅
1 구름도사 08-11-15 00:10 0  
성냥이 귀할때라니 아마 가져나오는것도
쉽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그렇다고 볼때 성냥을 갑채로 가져나오는것은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성냥갑은 또 갯수로 관리를 할수도 있고요.
그렇게 유추를 해본다면 하루에 한갑 두갑이란것은
갑이 아니라 한개 두개이고 그렇게 모인것이 일년이면
 열두갑이 되지않나 생각됩니다.
성냥끼리 마찰로 불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불이
났다는것은 그래서일수도 ....ㅎ
1 해룡선생 08-11-15 00:47 0  
아`이고  그노래  저히들  사춘기 시절때  엉가이도  부르고  다였지요  그르다가  어른들께  들키면  지팡이로  칠듯이  쫓아 오기도  했구요  그래도  그시절이  다시온다면  얼마나 좋을고 !.  그때  10대  시절  생각이  나내요 !.
1 수향 08-11-15 00:59 0  
이런건 어디에서 찾아서 오리는지 신기합니다..ㅎㅎ
오늘은 한 잔 안 자셨나보죠...?
1 왕뽈레기 08-11-15 09:45 0  
하하하 참으로 잼있는 글입미더..오전 한때 한창 웃고 감미더
1 벤자리님 08-11-15 10:19 0  
ㅎㅎㅎ 저~~~~~~~~~~이 노래 마니도 불럿답니다 근데 고땐(68년도) 걍 킬킬거리며 불렀었는데 지금 생각허니 의문점이 많군요..옛 진해훈련소 군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가네요 오늘도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가 되십시요
1 배스사냥 08-11-15 10:35 0  
그 시절 누이들을 생각하니 맴이 짠 한게....가슴 한 쪽이 시려오네요...
헌데 성냥은 수집하신 건가??
저는 아직 나이가 적어서인지
아리랑은 기억이 납니다.
참 추억의 성냥갑입니다.
제가 이렇게 느끼는데 다른분들은 더 느껴지시겠지요.
저도 문득 옛 생각이 납니다.
잠시나마 추억에 젖어 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1 소풍가는세야 08-11-15 15:25 0  
낚시광장 갔다가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확' 풀어집니다...^^

'불티나'나오기전까지 정말 성냥이 생활필수품이었는데...

저기 마찰성냥이라고 써 놓으신것은 '딱'성냥이라고 불렀고

다방책상이나 신발바닥 혹은 혁대바클에 대고 멋지게 불붙여서

호기롭게 담배불 댕기던 생각이 납니다...

군가까지...^^

별 것 아닌 것 같은 것을 일일이 찾아서 재밌게 써 놓으신 것

잘 보고 갑니다...
1 팔공산 08-11-15 19:43 0  
&%*&^*(&^&*%&&.......................
호래기
마이 마이
나온다 캅디다
1 유결자화 08-11-15 21:17 0  
^^
재미있는글 읽고갑니다...^^
저역시 귀에 익은 노래 기억 나는군요...
그시절 서부 영화보면 구두에 마찰로 성냥불을 켜는것이 그렇게 멋지게
보였는데...^^크린트 이우스트 죤웨인..등등..^^
1 연락선 08-11-16 15:02 0  
오데서 요런 기림을 쎄비와가지고
아래에 다 베리나심더 처갓집 물건 다 익카다고요
45 갈매기사랑 08-11-17 12:02 0  
어째 사위 보디마는 사위캉 논다꼬 낚시는 안댕기십니까 -ㅎㅎ
거제도 감생이 엄청 솟아진다는데---
1 곤지암 08-11-18 14:00 0  
요즘 팀팀한가베 공부도 열심히하고......................
감생이 잡으로 함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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