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아,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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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 백석...

G 8 473 2006.09.05 10:32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
.
.

[주]백석을 사랑하시는 님을 뵈니 너무 반가워 '흰 바람벽이 있어'의 앞 벽을 붙혀봅니다.
사진도 한 컷 올리겠습니다.

이 가을에 님과 함께 저 백석의 북방에서
대구국을 끓여놓고 한 잔 들고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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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G 하 선장 06-09-06 00:36
시인은 시대를 넘지 못하고
시대가 시인을 낳는 것입니까요? 절대 아니겠죠!
가난한 시인의 아픈 평화가
그래도 제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첨 알아보는 시인인 것 같은데,
저 분이 누군지 검색을 해 볼려다 관두었습니다.
글의 느낌만으로
그 분의 마음을 함 헤아려 보고 싶었습니다.
월드님의 외로운 댓글에 이만하면
제가 두서없이 일조하게 됐습니까요?
아이고, 죄송요!




G 경주월드 06-09-06 10:03
제 앞의, 백석이란 대명으로 글을 쓰신 분께서^^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옮기셨는데 전반부는 생략하고 후반부만 게재했습니다.
이 시의 앞의 전반부를 읽어보시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제 답글은 백석 시의 전반부입니다. 평안도 사투리의 시어가 생소하지만 당시의 시인 중, 북방 사투리를 가장 적절하게 시어로 표현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백석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1930년 조선일보에 '그 母의 아들'로 등단합니다. 그해 도일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고 1934년 귀국하여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합니다.
1935년 고향의 '정주성'을 발표하고 이듬해 그 유명한 장정본인 200부 한정 '사슴'을 발표하는데 이 시집은 조선일보 동료 화가인 정현웅의 합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속해서 소개한 '남신의주...'의 인물컷이 정현웅이 북한에서 백석의 중년을 그린 것입니다.
1936년 함흥의 영생고보로 직장을 옮기는데 위의 첫번 째 사진이 백석이 가르치는 영어 수업 장면입니다.
이후의 백석의 삶은 그야말로 처절한 유랑의 삶이 됩니다. 경성에서 함흥으로 다시 경성으로 만주로 이어지는 시인의 역정에서 걸출한 작품이 탄생합니다. 아실테지만 한설야같은 골수 볼세비키 혁명 문학가도 백석이 없는 '관북의 소조한 거리'를 '암야에 별을 잃은 것 같이 서운한 일'이라 했습니다.
이 두편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남신의주...'는 백석의 후반기 시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이 시는 조선일보 동료였던 허준이 백석으로부터 입수하여 소개되는데 '남신의주'는 해방 후 좌우의 대립이 극심하던 1948년 10월에 '학풍' 창간호에 실립니다.
백석의 시를 한참 읽다보면 저절로 관북의 바람찬 한기의 바람벽과 아내와의 대구국이 오버랩 되지요. 저만의 감상이 아닌 대개의 평론가들의 시평입니다.
백석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현지 북방인이지만 초기의 행보가 모더니즘에 근거했기때문입니다. 그의 고향이 평북 정주인데도 월북인으로 분류된 것은 당시의 서울 혹은 평양중심주의로 편을 가른 이념의 잣대였지요. 프로문학의 선은 분명하니까요.
어쨌든 백석은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혁명작가는 더우기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적 바탕이 혁명과는 이질적인 서정적 자연주의에 기초했기 때문이었죠.
백석은 북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전쟁 후 아동문학가로 전향을 하고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표합니다.
역시 장정과 삽화는 월북화가 정현웅이 맡았습니다. 그는 20년만에 백석의 프로필을 다시 그렸습니다.(소개한 컷)
숙청과 복권을 거듭하면서 모진 게 생명이라 백석의 끈질긴 연명은 지금까지 알려진 1963년의 사망이 아닌 듯합니다. 백석 연구가 송준씨(소설가)에 의하면 1995년 84세로 운명했다는 자료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백석, 한 편의 시를 온 몸으로 쓴 유랑의 작가...
지금도 대구국이 생각나네요...
G 경주월드 06-09-06 10:04
아,힘들다...^^
눈이 아프네요.
G 목단 06-09-06 15:45
백석의 짧은 시들...


흰 밤

옛 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는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靑布

별 많은 밤
하늬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짖는다




山비

山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닐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노루

山골에서는 집터를 치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절간의 소 이야기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보다 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首陽山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七十이 넘은 노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山나물을 추었다

..................

위의 몇개는 `사슴`에 실린 것이고
나머지는 흩어져 있는 것을 찾아 올립니다.

G 경주월드 06-09-07 10:01
목단님,
또 한 분의 백석 펜이 계셨군요.^^
'절간의 소 이야기'는 저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스크랩하겠습니다.

백석에 관한 사진을 모아 봤습니다.
http://kr.blog.yahoo.com/fish20017/folder/13.html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야후의 제 닉네임은 강나루입니다.)
G 백석 06-09-07 14:55
월드님, 목단님, 애쓰셨네요,, 고맙심다,,
G 煥鶴 06-09-07 19:26
뭐시 아는게 있어야 뎃글에 뭐라고 하지..
엥~멀뚱히 구냥 뭔지도 모르고 읽고갑니다..^^
G 경주월드 06-09-07 22:35
백석님,^^
의미있는 시간을 공유토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면,
기꺼히 달려 가겠습니다.

환학님, 아무려면 어때요. 그냥 취미대로 사는 거지요.^^
요즘 제가 30년대 할배님들^^에게 혼이 빠졌습니다. 전혀 코드가 맞지 않을 것 같은데도 이 어른들에게 다가가면, 묵향의 필력이랄까요, 뭐 그런 저런 사연에 밤을 홀딱 새기 일쑤니...
또 한가지, 이 분들은 저같이 희미한 의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논리적 가치관이 분명하고 세상의 흔적에 구차한 변명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2,30대의 젊은 나이에 이념의 최전선에서 결코 운명을 빙자하지 않고 갈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부럽지요, 저는 아직 단 한 번도 세상을 제 페이스로 끌어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이 분들에게 홀딱 빠진 이유가 이 부분입니다. 그럼, 이 나이에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저도 몰라요. '내가 왜 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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