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朝 鮮 時 代 의 女人을 보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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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朝 鮮 時 代 의 女人을 보고나서........

G 5 665 2006.02.06 13:23
역사의극히미미한~일부분을가지고
풍습이니~ 관습이니말하는건극히위험한발상입니다
물론생활상도아니고요~~~

상류층계급인양반은차지하고도일반평민층에서도
그런일은없었읍니다
극히일부분인하층민의부류에서의일부를가지고
``풍습``이란용어가등장하는자체가놀랍읍니다

해방 이후도 친일사관이 판을 친 덕분에
우리 겨레가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하되곤 했습니다만~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들이었는데.......




아래는네이버 (조선시대 여인복식)에서퍼왔읍니다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
re: 조선시대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게 여인들의 복식이었나요?

k4092g (2005-05-30 11:32 작성, 2005-06-11 03:01 수정) 이의제기 | 신고

질문자 평


조선 말기의 풍속을 나타내는 사진들을 보셨군요.

조선시대의 여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들 생산과 양육 그리고 집안일이죠.

그 중에서도 아들생산은 참으로 중요한 임무여서 기자(祈子, 아들을 낳기를 기원)신앙과 출생의례, 금기 등이 참으로 발달하였습니다.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면 칠거지악으로 쫓겨나거나 소박 맞을수도 있었죠.따라서 조선 여인들의 아들 생산은 결혼생활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절대임무였습니다. 그만큼 조선사회에서 부계로 이어지는 핏줄의 전통은 여성들에게 심한 압박감이었죠.

아들을 생산하더라도 조선의 영아 생존율은 극히 낮았었습니다.어느 자료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조선의 평균수명은 40대초반으로 나왔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이것은 40대에 대부분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갓난아이들이 많이 깍아내렸다는 것을 말하죠.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3.7일 금기, 100일잔치, 첫돌 등 의례들이 크게 부각이 되죠. 이 양육 또한 조선 여인들의 중대한 임무였습니다.


이미지출처 http://apwinc.sookmyung.ac.kr/herstory/WomenArt/photgrph/framep.html

님이 말씀하시는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들은 양반들이 아닙니다. 일반 서민들이죠.

그렇다고해서 일반서민들에게 유교라는 가치관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조선중기 이후 후기로 접어들면 서민들에게도 유교의 가치관이 파고들어 전반적으로 유교가 민중들의 의식에 뿌리깊게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면 님처럼 의아해 할 겁니다.

유교가치관이 서민이나 천민 사이에서도 깊게 자리잡은 사회에서 어찌하여 젖가슴을 드러내고 사진을 찍을수 있는가 라고 생각되실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 사진들 속의 주인공들은성적(性的)인 도발 즉섹스얼리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위에 사진들은 모두 서민들로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젖을 먹이는 단계라는 것을 말합니다.위에서 말했듯이 아들생산은 곧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말하죠.아들생산은 그처럼 자랑스럽고 일반적인 유교가치관을 뛰어넘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 모유수유단계라는 것을 젖가슴을 드러내어 표시합니다.모유수유단계가 아닌 여성들이 젖가슴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항상 아기가 보채면 언제라도 모유를 먹일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이것은 조선후기 서민들의 빡빡한 삶 그리고 아들을 생산했다는 자부심과 맞물려 일생활에 적응된 된 겁니다.

ps. 1)

조선 후기 모든 서민여성들이 아들을 낳고 모유수유단계에 저런 차림은 한 것으 아닙니다.젖가슴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드러내지 않기도 했다는 것이죠. 저것은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지 풍습이라고 해서 꼭 저런 차림으로 다녀야 하는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ps. 2) 기생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민족문화 디렉토리에 똑같은 질문을 올리셨더군요.

그 디렉토리에 답변 중에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기생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사진을 아래의 왼쪽 사진의 제목이 기생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기생이 아들 낳아 모유를 먹인다고 자랑할리가 없습니다.

기생들은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하는 여성을 말하는데 기생들도 나름대로 계급이 있죠. 제일 낮은 수준의 기생을 3패라 합니다. 그리고 기생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매춘을 하는 여성[사당패, 술집 주모 등]들도 자신의 상품인 몸을 함부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상품과도 같은 매춘의 직업여성이 자신이 아들을 낳아 갓난아기를 기른다고 광고하면 자신의 상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당연히 안하겠죠.젖가슴을 내놓고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위사진들처럼 행해졌다는 것은 추측의 비약입니다.이런 추측은 단순히 성적인 시각으로만 추측하고 말하는 겁니다.

만일 기생이 은퇴(?)하여 결혼해서 그 집의 가문을 이은 아들을 낳았다면 어느정도 일리가 있겠죠.하지만 기생의 신분으로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
re: 조선시대 짧은 저고리는 후기에 주로 기생층에서 입었던 옷

sol119 (2005-05-30 11:47 작성) 이의제기 | 신고

질문자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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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990319님이 이야기 하신 것이 대부분 타당성이 있습니다. 조선은 유교사회이기에 철저한 예의범절이 살아있어서 여성들이 많은 옷을 껴입었습니다.

겉저고리 안에는 ‘속적삼’, ‘속저고리’를 입었고, 속옷도 아닌 것이 속옷처럼 쓰인 ‘허리띠’가 있습니다. 이 ‘허리띠’는 조선 후기로 오면서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자 겨드랑이 밑의 살을 가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에는 겉치마를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 허리 부분을 부풀리는 3, 5, 7층의 무지개빛 ‘무지기’를, 허리 아랫도리를 부풀려 보이게 한 ‘대슘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벗기면 그 안에는 ‘너른바지’가 있습니다. ‘아니 너른바지를 벗으니 그 속엔 또 ‘단속곳’이 나오고, ‘속바지(고쟁이)’가 나옵니다. 끝일까요? 아닙니다. 그 속엔 또 ‘속속곳’과 ‘다리속곳’까지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철저한 의생활이었습니다. 다만 일반 서민층에서는 이보다는 좀 더 간편한 차림이었겠지요.

그리고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입었던 것은 애기엄마이거나 계집종보다는 기생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한복도 더디지만 유행은 분명 있었습니다. 조선 초,중기까지만 해도 여성 저고리의 길이가 길어서 1580년경 청주 한씨 덧저고리의 길이는 무려 81cm나 되어 엉덩이까지 내려올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길었던 저고리가 1616년대에는 63cm, 1700년대에도 42cm 정도로 점점 짧아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1780년경에는 27cm로 줄어들더니 1890년대는 무려 19.5cm로 짧아지는데 급기야 1900년대는 14.5cm까지 짧아져 젖가슴이 보일 정도로 섹시한 한복이 됩니다. 그런 저고리를 혼자는 입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 뒤 1930년대부터 26cm 정도로 다시 길어져 현재의 모습처럼 정착이 되었습니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서 젖가슴이 보일 정도가 된 것도 조선 후기에 와서 생긴 일입니다.

따라서 짧은 저고리가 조선시대 보편적인 모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조선 후기에 와서 생긴 그것도 일부계층에 의한 것입니다. 특히 위 heroin0님이 말씀하신 부정적인 이야기는 많은 과장이 들어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전 마을에서 불미스러운 남녀관계가 있으면 멍석말이를 해서 내쫓는다든지 상당히 엄격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근친 상관이나, 한 여인이 온 동네 남정네와 놀아나는 일은 흥미로운 추측에 불과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인들이 했을 법한 자기부정의 이 말은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heroin0님의 연세가 어느 정도이고, 어떤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지만 시골에 살았던 저의 6-70년 풍경엔 “시골에서 니여자 내여자가 따로 없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는 말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물론 간간히 부정한 관계가 들통나고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은 90년 대 이후에도 있는 그런 정도일 뿐입니다. (나는 51년생으로 60~70년대에 10~20대를 지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도 친일사관이 판을 친 덕분에 우리 겨레가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하되곤 했습니다만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들이었는데 이런 것을 닮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엔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했다는데 사실 이런 정도의 당파싸움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정도이며, 오히려 우리의 당파싸움은 생산적이었다는 학자의 평가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겨레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글자 한글을 가진 것을 비롯해서 문화적으로 대단히 위대한 민족입니다. 스스로 긍정적인 모습이 되어 헤쳐 나갈 때 세계의 대접을 받으며, 당당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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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G nonanda 06-02-06 17:27
*그 빠쁜 와중에도 좋은자료을 올려 주셌네!
마음이 쪼메 시원해졌네...!

호미님! 눈 피해는 엄는교?
G 난정 06-02-06 17:51
^^ 끝까지 읽을까말까 하다 쭉 ~~ 보았읍니다.
답글을 드리긴 드려야 되는디. 금방 까먹어 버렸읍니다 .
고령은 눈 않옵니까? 수고하세요.^^*
G 이면수 06-02-06 18:12
!!@ @ # _,._$ % +,.+^& * * & ^ %*,.* $ # @ !

그래서 어찌라고요 ?

아 ~~ 머리아퍼 ~~~ (탁재훈 버젼).............................. " Ω
G 거제우연낚시 06-02-06 20:37
눈 피해는 없으신지요??
스스로 한민족 자손임을 뿌듯해 하며
님의 나라 사랑하심을 느껴 봅니다.
G 솔향기 06-02-06 21:03
젖가슴을 꺼내서 아기에게 젖을물리던 모습 ~
청소년시절 시내버스에서 유난히 많이본것같은데...
요즘엔 모습을 볼수가없네 ~

히 ~ 위 글을 읽는데...난왜 이런생각이 나지요 ?
아기 밥주는모습 보고싶따 ~~~~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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