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
공대 교수 말고 인문사회대 교수 하였어도
잘 했을 것 같구먼요.. ^^
심하게 말해서,
요새 교수란 작자들.. 아무 생각없는 사람들.. 많습니다..
미친 넘 같은 넘들.. 골빈 넘 같은 넘들.. 무개념 인간들..
저도 그 중에 하나겠지요.. 허..................................ㄹ
학생들.. 대부분..
아무 의식 없습니다.. 조국, 통일? 국가, 사회, 역사, 정치, 문화, 경제..?
다만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지요.. 그런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버스 통학하는 학생..
아우디 타고 다니는 학생..
서울 홍대 앞에는 최고의 이름 모를 외제차들..
학교앞에서 자취하며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들..
고시원 쪽방에서 김밥, 라면으로 살아가는 학생들..
비엠따블유.. 조수석에 여학생 태우고 희희낙락하는 아이들..
일반 시민의 보통 아이들..
때로 촛불 드는 학생들..
모두 무슨 생각들 하며 살고 있을까요..?
올바른 선거에 지역대결이 오늘의 대한민국 이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죄인 입니다, 내가 찍은당 내 지역의당으로 그것들이 깡패당인것
이제야 알았습니다,다음번에도 눈감고 무조건식 투표한번만 더 하겠습니다,
무조건 깡패당 빼고...
아마 얼빠진 잉간덜 다 죽어야 울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겁니다. 옛날엔 그래도 선비같은 나라였다는데 지금은 아우디나 벤츠에 다리벌리는 여자들이나 고작 돈 몇푼에 신념을 팔아넘기는 잉간들이 너무도 많은 것같습니다. 이번에 헛소리로 스타가 된 변희재란 잉간도 원래는 노무현 지지자였거든요. 이번 장례식에 2백만 가까이 움직였다고 하는데 전 그들의 진심을 아직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집없는 철거민이기에 불에 타죽어야하는 세상... 서민하고 너무도 친했기에 말년 제대로 보내보지도 못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하직해야 하는 세상... 착하다는 이유로 아니면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것도 아니라면 공부못한다는 이유같지않은 이유로 왕따만 당하다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우리의 아이들... 이게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랍니다. 경제를 어떻게 살릴것인지 대안도 없이 주가3000을 얘기하니까 몰표를 준 게 울나라 백성들입니다.
예전에 백범 김구선생이 서거하시고 나서 전쟁이 나자마자 이승만의 결재에 따라 민족계열에 있던 수십만의 정치범이나 보도연맹원들이 재판도 없이 학살된적이 있습니다. 물론 전쟁전에도 500명의 게릴라를 잡겠다고 8만이나 되는 아무 죄없는 제주도민이 학살된 적도 있구요.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때처럼 피바람이야 불지는 않겠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속설이 있으니 ............
먼저 전임 대통령이신 노무현 님께 머리숙여 영면을 빕니다
노무현 전임 대통령께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연설중 진보.개혁 세력이
권력.기득권층에게 도전해서 600년 동안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
그래서 부모님들이 바람 부는데로 물 흘러 가는데로 보아도 못 본척
들어도 못 들은척 살라고 하셨다 합니다...
전임 대통령이던 그 자신도 그리 당했지만 앞으로도 많은 피를 흘려야
전임 대통령이 만들고자 했던 학력 학연 혈연 지역등을 떠나 모두가 평등한 세상
열심히 일한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올겁니다
아버님이 돌아 가셨을 때는 그냥 슬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결 하셨을 때는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 했습니다..
전 노대령께서 서거후 국민들에 애도의 불꽃이 전 국민적이라 할수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임기중 정치철학이 많은국민들께 일맥 상통하지않했을가 합니다 !. 그런대
왜 그분께서 검찰의 수사앞에서는 검찰의 거센 칼날앞에 놓여 괴로워 할적에 국민들은 침목만 지키고 있었는지!.서거후와 같이 불꽃이 검찰의 수사에 맛서 질타와 비난의
불꽃을 피웠다면 전 노대령께서 서거라는 국단에까지 가셔설 가합니다 그리고 얼른에서도 검찰의 수사앞에서 못한것만 부각시켜놓고 서거후 그분의 업적과 잘한것과 좋은
점만을 부각 시키고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 에 있어서도 임기중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와 존중을 받으셨던 노대령께서 600달러 사건에 휘말여 수사를 받게되어 많은 국민들
이 슬퍼하고 있다고 보도를 했다라면 전 노대령께서 혼자서 외로히 괴로움에 못이계 극단의 선택을 하셨을가 !.이렇게 말하면 설마 서거까지야 하실여고 누가 생각이나 했으
리야 하실지모르나 우리나라 국민은 정치에 너무 무관심하지는 않는것인지 그리고 얼른에서도 잘한것과 못한것을 분명하게 부각시켜 국민들께 알여야 되는것 아닌지요
무엇무엇은 잘한다 무엇무엇은 잘 못한다 이렇게 국민들께 진실 그대로를 전해줘어야 하는것아닌지요 그냥 정치적 눈치에 떠밀여 딸아가는 얼른 그래서는 안되것아닌지요 .
그리고 대통령 선거때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에서 당선되어 대통령이 나왔다라면 전 노대령께서 검찰의 수사앞에 노이계 됐을가합니다 그리고 저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전노대령께서 가장 잘하신것이 권위주의 타파 금권선거 타파 서민 정책.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 높히 평가합니다 못한것은 전 김대중께서 했빛 정책 후 대복지원 마구 퍼
주기식 정책 실패라생각합니다 왜 물른 그로인해 남북이 화해야 평화를 지속 영원히 유지 될수만있다면 그도 좋은것이나 언제까지고 대한민국이 복한의 요구만을 들어주며
끝없이 끌여 갈수는 없는것지요 언젠가는 정책이 밖이면 지금 이명박 정권처렴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어데서 마구 그냥 쏟아지는 경제로 살수도없는것이고
복한의 요구를 무작정 다 받아줄수도 없는일 그렇게된면 언제고 지금처럼 미사일이다 핵폭탄이다 하면서 위험을 줄것은 뻔한일 아니겠습니까 그르니 잘한것과 못한것
을 분명 구별도 해야지요 !.글이 너무 길어 이쯤 하겠습니다 젊은이 분들께서 선거때가 되면 꼭 투표좀 빠짐없이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치가 잘못가면 나라는 망하고 국민은 비참해집니다 .
모래밖에 없고, 풀한포기 없는 삭막한 사막에서,
자기는 오아시스를 점유하고, 거대한 저택을 지어놓고, 굶주린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나만 믿으라고,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자기는 쌀밥에, 고기에, 좋은 옷을 입고, 굶다굶다 지쳐 쓰러져 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나만 믿으라고,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자기는 좋은차에, 멋있는 신발을 신고, 누더기에 추위로 떨고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나만 믿으라고,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저사람은 오아시스를 점유하고, 거대한 저택을 지어놓고 살고 있으니..
나도 조금만 기다리면 저렇게 되겠구나..
저사람은 쌀밥에, 고기에, 좋은 옷을 입고 있으니..
나도 조금만 기다리면 저렇게 되겠구나..
저사람은 좋은차에, 멋있는 신발을 신고 있으니
나도 조금만 기다리면 저렇게 되겠구나..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자식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되는거 하나 없음을..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자식들은...믿지 않습니다..
부모도, 부자도, 국가도...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자식들은...관심이 없습니다..
부모의 말도..부자의말도..국가의 말도..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자식들은...소용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말해봐야..부자에게 말해봐야..국가에게 말해봐야..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요..부모가,부자가,국가가..
우리 모두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자신만 믿을 뿐입니다..
누가 이들을 머라고 한단 말입니까?
뭐 길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서민을위한다.
조중동탓이다.?
임대아파트 산다는 사람이 서민을 위한단사람이
천평이 넘는 저택에 삽니까?
백억이 넘는 돈을 그것도 양놈 돈으로 받습니까(
청와대에서)
그것이 생계형입니까?
변희재요?
진중권이 얘기 해 볼까요.
현대회장 정몽헌이 죽었을때
뭐라 했으까요?
시체치우기도 지겨우니
자살세 라도 걷자..
한겨레?
대우건설 남상국이 한강에 다이빙 했을때
죽을수 있는
용기로 꿋꿋이 살지 왜 죽어..
이렇게 주장 했습니다..
노무현 죽고나서 진씨.. 한겨레
뭐라 했을 것 같나요?
참 갑갑 합니다...
지는요.상류층도 아니고 중산층도 아입니다.
25년째 농사를 짓고 있지만 포플리즘이
뭔지는 아는 농민 입니다.
대통령은요..
서민만 위하는 것 만이 유능함이 아닙니다.
정치.. 외교.. 국방.. 미래..등등...
이러한 것 들이 선행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늦은 밤에 죄송 합니다..조사님들
대물 하십시요.
님이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님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살았 을 수 있으니까요..
대통령은 서민을 위하는 것이 유능함이 아니람 말도 옳습니다
정치..외교..국방..미래 이러한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치..외교..국방..미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서민이라도 잘살게 하는것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어차피 지나간일..기다려 보지요..
그리고 여의치 않으면 다음번엔 눈 똑바로 뜨고..
서민이라도 위한 분을 뽑았으면 좋겠으면 합니다
님도 즐낚하시고 대물 하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님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살았 을 수 있으니까요..
대통령은 서민을 위하는 것이 유능함이 아니람 말도 옳습니다
정치..외교..국방..미래 이러한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치..외교..국방..미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서민이라도 잘살게 하는것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어차피 지나간일..기다려 보지요..
그리고 여의치 않으면 다음번엔 눈 똑바로 뜨고..
서민이라도 위한 분을 뽑았으면 좋겠으면 합니다
님도 즐낚하시고 대물 하시길 바랍니다
《Re》홍길동 님 ,
한쪽만 쳐다보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포퓰리즘을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말해 봤자 소용없을터... 고 정몽헌 회장의 가까운 지인이었던
도올 김용옥의 글입니다. 잘 읽어 보십시오. 그 분을 누가 죽였을런지...
글이 길어 셋으로 나눠 올립니다.
정몽헌회장의 죽음 무엇을 의미하나?
2003년 08월 05일 18시00분
제목: <도올담세> 정몽헌회장의 죽음 무엇을 의미하나?
[문화일보] 2003-08-05 (특집) 기획.연재 05면 03판 6764자 스크랩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우리민족의 동량들이 이 조선역사의 무대에서 이렇게 하나 둘 스러져가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충격! 충격! 또 충격! 나는 어제만 해도 충격속에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가늠할 겨를도 없이 붓을 옮기고 있었다. 내 인생에 아마도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이토록 슬픈 심사에 잠겼던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도, 어떤 친지가 세상을 떴을 때도 이와같은 슬픔을 느껴보진 못했다.
장자는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두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며 기뻐했다.(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 문상을 간 친구 혜자(惠子)가 놀라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이와같이 대답했다:
“인 생이란 본시 그 태어나기 이전의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요. 그저 삶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거요. 비단 형체가 없었을 뿐아니라 본시 기도 없었던 거요.(察其始, 而本无生. 非徒无生也, 而本无形. 非徒无形也, 而本无氣.)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기가 뭉쳤다 흩어지는 것일 뿐, 그것이 뭉쳐 태어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생일이라 기뻐하고 축하하면서 그것이 흩어질 때는 기일이라 슬퍼하고 저주하는 것이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요. 아내가 죽어 이제 황천길을 가는데 즐거운 노래하나 들려주지 않는다면 어찌 무정하다 하지 않겠소?”
莊子부인과 顔回의 죽음!
장자가 그의 부인의 죽음을 기쁨으로 대한 것은 그의 부인의 삶이 천수를 다했기 때문이었다. 천수를 다한 사람의 죽음은 당연히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공자는 안회가 죽었을 때 지나칠 정도로 통곡하고 애곡했다.(顔淵死, 子哭之慟.) 너무 지나치게 애통해 하신다고 제자들이 공자에게 말씀드리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위해 애통해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애통해 하리오?”(非夫人之爲慟, 而誰爲?) 안회의 죽음은 천수를 다하지 못한 불의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만약 정몽헌의 죽음이 천수를 다한 죽음이었다면 나는 기뻐 만장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그의 기가 흩어짐을 축복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정몽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까닭은 그의 죽음은 분명 불의(不意)의 죽음이며, 그 불의의 죽음의 배면에는 우리가 꼭 되씹어 보아야 할 의미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의미가 그의 기가 흩어짐을 막고 있고, 우리에게 슬픔을 자아내며, 사회적 반성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만 쳐다보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포퓰리즘을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말해 봤자 소용없을터... 고 정몽헌 회장의 가까운 지인이었던
도올 김용옥의 글입니다. 잘 읽어 보십시오. 그 분을 누가 죽였을런지...
글이 길어 셋으로 나눠 올립니다.
정몽헌회장의 죽음 무엇을 의미하나?
2003년 08월 05일 18시00분
제목: <도올담세> 정몽헌회장의 죽음 무엇을 의미하나?
[문화일보] 2003-08-05 (특집) 기획.연재 05면 03판 6764자 스크랩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우리민족의 동량들이 이 조선역사의 무대에서 이렇게 하나 둘 스러져가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충격! 충격! 또 충격! 나는 어제만 해도 충격속에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가늠할 겨를도 없이 붓을 옮기고 있었다. 내 인생에 아마도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이토록 슬픈 심사에 잠겼던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도, 어떤 친지가 세상을 떴을 때도 이와같은 슬픔을 느껴보진 못했다.
장자는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두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며 기뻐했다.(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 문상을 간 친구 혜자(惠子)가 놀라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이와같이 대답했다:
“인 생이란 본시 그 태어나기 이전의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요. 그저 삶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거요. 비단 형체가 없었을 뿐아니라 본시 기도 없었던 거요.(察其始, 而本无生. 非徒无生也, 而本无形. 非徒无形也, 而本无氣.)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기가 뭉쳤다 흩어지는 것일 뿐, 그것이 뭉쳐 태어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생일이라 기뻐하고 축하하면서 그것이 흩어질 때는 기일이라 슬퍼하고 저주하는 것이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요. 아내가 죽어 이제 황천길을 가는데 즐거운 노래하나 들려주지 않는다면 어찌 무정하다 하지 않겠소?”
莊子부인과 顔回의 죽음!
장자가 그의 부인의 죽음을 기쁨으로 대한 것은 그의 부인의 삶이 천수를 다했기 때문이었다. 천수를 다한 사람의 죽음은 당연히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공자는 안회가 죽었을 때 지나칠 정도로 통곡하고 애곡했다.(顔淵死, 子哭之慟.) 너무 지나치게 애통해 하신다고 제자들이 공자에게 말씀드리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위해 애통해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애통해 하리오?”(非夫人之爲慟, 而誰爲?) 안회의 죽음은 천수를 다하지 못한 불의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만약 정몽헌의 죽음이 천수를 다한 죽음이었다면 나는 기뻐 만장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그의 기가 흩어짐을 축복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정몽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까닭은 그의 죽음은 분명 불의(不意)의 죽음이며, 그 불의의 죽음의 배면에는 우리가 꼭 되씹어 보아야 할 의미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의미가 그의 기가 흩어짐을 막고 있고, 우리에게 슬픔을 자아내며, 사회적 반성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몽헌의 죽음? 한 기업인이 기업을 운영하다가 힘이 버겨워서 좌절하고 죽음을 택했다? 이렇게 정몽헌의 죽음을 바라보면 우리민족은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의 개인적인 좌절로 해석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조선반도에 얽힌 세계사의 갈등을 한 몸에 구현하다가 그 갈등에 희생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러한 역사적 인간들의 희생위에서 하나님의 의지를 구현하여 왔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몽헌은 희생당한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여운형, 김구, 장덕수, 송진우 같은 이들의 죽음과 같은 맥락에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그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과 갈등을 풀어나가다가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정몽주나 사륙신을 우리가 기억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정몽헌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법정에 나가 대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사업도 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엽적 사태의 인과적 결말로서 그의 죽음을 종결짓는다면 그것은 그의 영혼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산사람에게 짓는 죄는 용서받을 길이 있지만, 영혼에 짓는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이점 우리민족이 깊게 각성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시대의 의인(義人)이요 지사(志士)이신 적십자총재 서영훈선생의 말씀이다. 분향소에서 나를 붙잡고 유수와 같이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감회를 흘리신다.
정말, 정말, 정몽헌은 왜 죽었을까? 그토록 소탈하고 정직했던 정몽헌, 그는 왜 죽었을까? 그의 정확한 사인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그의 사유 내면의 정확한 인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7 월 중순에도 제가 직접 모시고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LA, 시카고, 워싱턴을 순방하고 왔지요. 미국의 도시 플랜닝이 잘 되어 있으니까 그 시스템을 연구해야 겠다구, 개성공단을 구상하시면서 도시개발 컨설팅회사들을 둘러보고 오신 것입니다. 그만큼 최근까지 일에 의욕을 보이셨고 여행중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밝으셨어요. 바로 엊그제 토요일 아침 7시반경에도 제가 사무실에서 뵈었는데 밝은 표정으로 현안을 물으셨어요. 그리고 9시반부터 10시간 동안이나 검찰취조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를 가까이 모시고 있는 현대아산 부사장 심재원선생의 말이다.
“우리 형하구 나는 한 방을 썼지요. 그래서 정두 많이 들었구 서로 좋아두 했지요. 그런데 형은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죠. 겉으로 별 말이 없어요. 그런데 내성적인 것 만큼 아주 저돌적인 데가 있어요. 고집이 세고 결단력이 강해요.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장사꾼이라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가 금강산사업이니 개성공단이니 그런 타산안맞는 짓을 하겠어요? 형의 내성적인 의분이 없었더라면 그런 남북협력사업은 누구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에요.”
역시 장례식장에서 만난 정몽준의원의 말이다.
“정 말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황당했습니다. 누구도 예측못한 사태였습니다.” 심재원부사장의 말대로 그 누구도 낌새를 채지 못했던 사태라면, 우리는 정몽헌의 의식속에서 흘러간 필름들을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그것을 과연 소심하고 세심한 인간의 일시적 내성의 저돌성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가족과 만찬을 하셨다는데, 그때도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나는 장례식장 한켠의 구석방속에서 거의 실신하다시피 누워계신 정몽헌회장님 사모님께 여쭈었다. 정회장과 똑같이 소탈하신 분이었다.
“전혀 눈치 못챘습니다. 우울한 내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특별한 말씀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뜻밖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기억해냈다.
“아참, 김선생님을 만나뵈고 돌아와선 너무도 즐거운 표정이었어요. 알고보니 우리 보성선배라고 너무 좋아하셨는데…”
―그래도 기억나는 뭔 말씀이라도 없으셨습니까?
“이 런 말을 하셨어요. 우리가 부시 뒷다리만 잡고 가면 패망할텐데, 남북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고 얼른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야할텐데, 얼른 정신차리고 우리끼리 대화를 해야 할텐데… 평상시 하시던 말씀이었지만… 핵포기의 해법은 경협밖에 없다고… 그런 말씀을 마지막 자리에서도 한 두마디 하셨어요.”
선구자로서 巨步 남겨!
여기에서 우리는 정몽헌의 죽음의 한 깊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역사적 사상(事象)에는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이 있다. 토요일날 짓궂게 당한 검찰의 취조에서 정몽헌은 진저리치는 혐오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 혐오감은 검찰에 대한 저주라기 보다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실존적 혐오감은 그의 섬세한 감성에 깊은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감성적 절망감을 끝까지 통제했다. 그의 주변의 심복도, 부인도, 마지막까지 술자리를 같이 한 친구까지도, 그의 감성적 상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성적 근인(近因)을 넘어서는 이성적 원인(遠因)의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원인의 실마리는 그의 부인에게 남긴 마지막 이야기로부터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죽자마자 한나라당 대변인은 말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했겠느냐는 식의 논평을 했다. 그리고 홍사덕총무는 “정몽헌회장이 세상을 떠났으니 북쪽에서 현대와의 경협계약관련 사실을 날조할까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고인의 명예를 찾기 위해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운운. 참으로 얼빠진 인간들의 췌언이다. 바로 자기들이 부정해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공과를 이제와서 마음 편하게 형량하겠다는 것이다.
“아니 정치라는게 무엇입니까? 정치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인간의 실존의 전폭적 포기, 한 인간의 전 존재를 거는 결단 앞에서 한가로운 논평을 일삼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지요. 아니 도대체 한나라당 의원이 어느 누구가 한명이라도 금강산을 다녀왔습니까? 박종웅의원 한명이 다녀갔다든가? 바로 전쟁의 치열한 대결의 장속에 평화로운 관광의 놀라운 코스모스를 만들어 놓은 현대아산의 사업을 한번두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으로 이미 정치인들의 각성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당연한 우리역사의 현실에 대한 체험을 거부한다는 것이 도대체 있을 수가 있는 얘깁니까?”
장례식장에서 같이 식사를 나눈 정범구(鄭範九)의원, 매우 명료한 의식과 언변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경영' 넘은 도덕적 열정!
“금 강산사업이고 개성공단사업이고 이 모든 것이 우리 국가가 해야할 일, 우리 공동체가 해결해야만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너무도 당연한 국가사업을 일개 기업에게 떠맡겨놓고 자기 책임은 회피한채 자기로부터 소외시켜 이러쿵 저러쿵 평가만 한다. 정회장의 자살은 그가 정치인들처럼 무책임하고 뻔뻔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죠.”
그의 죽음은 여운형, 김구, 장덕수, 송진우 같은 이들의 죽음과 같은 맥락에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그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과 갈등을 풀어나가다가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정몽주나 사륙신을 우리가 기억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정몽헌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법정에 나가 대답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사업도 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엽적 사태의 인과적 결말로서 그의 죽음을 종결짓는다면 그것은 그의 영혼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산사람에게 짓는 죄는 용서받을 길이 있지만, 영혼에 짓는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이점 우리민족이 깊게 각성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시대의 의인(義人)이요 지사(志士)이신 적십자총재 서영훈선생의 말씀이다. 분향소에서 나를 붙잡고 유수와 같이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감회를 흘리신다.
정말, 정말, 정몽헌은 왜 죽었을까? 그토록 소탈하고 정직했던 정몽헌, 그는 왜 죽었을까? 그의 정확한 사인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그의 사유 내면의 정확한 인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7 월 중순에도 제가 직접 모시고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LA, 시카고, 워싱턴을 순방하고 왔지요. 미국의 도시 플랜닝이 잘 되어 있으니까 그 시스템을 연구해야 겠다구, 개성공단을 구상하시면서 도시개발 컨설팅회사들을 둘러보고 오신 것입니다. 그만큼 최근까지 일에 의욕을 보이셨고 여행중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도 밝으셨어요. 바로 엊그제 토요일 아침 7시반경에도 제가 사무실에서 뵈었는데 밝은 표정으로 현안을 물으셨어요. 그리고 9시반부터 10시간 동안이나 검찰취조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를 가까이 모시고 있는 현대아산 부사장 심재원선생의 말이다.
“우리 형하구 나는 한 방을 썼지요. 그래서 정두 많이 들었구 서로 좋아두 했지요. 그런데 형은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죠. 겉으로 별 말이 없어요. 그런데 내성적인 것 만큼 아주 저돌적인 데가 있어요. 고집이 세고 결단력이 강해요.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장사꾼이라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가 금강산사업이니 개성공단이니 그런 타산안맞는 짓을 하겠어요? 형의 내성적인 의분이 없었더라면 그런 남북협력사업은 누구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에요.”
역시 장례식장에서 만난 정몽준의원의 말이다.
“정 말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황당했습니다. 누구도 예측못한 사태였습니다.” 심재원부사장의 말대로 그 누구도 낌새를 채지 못했던 사태라면, 우리는 정몽헌의 의식속에서 흘러간 필름들을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그것을 과연 소심하고 세심한 인간의 일시적 내성의 저돌성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가족과 만찬을 하셨다는데, 그때도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나는 장례식장 한켠의 구석방속에서 거의 실신하다시피 누워계신 정몽헌회장님 사모님께 여쭈었다. 정회장과 똑같이 소탈하신 분이었다.
“전혀 눈치 못챘습니다. 우울한 내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특별한 말씀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뜻밖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기억해냈다.
“아참, 김선생님을 만나뵈고 돌아와선 너무도 즐거운 표정이었어요. 알고보니 우리 보성선배라고 너무 좋아하셨는데…”
―그래도 기억나는 뭔 말씀이라도 없으셨습니까?
“이 런 말을 하셨어요. 우리가 부시 뒷다리만 잡고 가면 패망할텐데, 남북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고 얼른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야할텐데, 얼른 정신차리고 우리끼리 대화를 해야 할텐데… 평상시 하시던 말씀이었지만… 핵포기의 해법은 경협밖에 없다고… 그런 말씀을 마지막 자리에서도 한 두마디 하셨어요.”
선구자로서 巨步 남겨!
여기에서 우리는 정몽헌의 죽음의 한 깊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역사적 사상(事象)에는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이 있다. 토요일날 짓궂게 당한 검찰의 취조에서 정몽헌은 진저리치는 혐오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 혐오감은 검찰에 대한 저주라기 보다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실존적 혐오감은 그의 섬세한 감성에 깊은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감성적 절망감을 끝까지 통제했다. 그의 주변의 심복도, 부인도, 마지막까지 술자리를 같이 한 친구까지도, 그의 감성적 상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성적 근인(近因)을 넘어서는 이성적 원인(遠因)의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원인의 실마리는 그의 부인에게 남긴 마지막 이야기로부터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죽자마자 한나라당 대변인은 말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했겠느냐는 식의 논평을 했다. 그리고 홍사덕총무는 “정몽헌회장이 세상을 떠났으니 북쪽에서 현대와의 경협계약관련 사실을 날조할까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고인의 명예를 찾기 위해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운운. 참으로 얼빠진 인간들의 췌언이다. 바로 자기들이 부정해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공과를 이제와서 마음 편하게 형량하겠다는 것이다.
“아니 정치라는게 무엇입니까? 정치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인간의 실존의 전폭적 포기, 한 인간의 전 존재를 거는 결단 앞에서 한가로운 논평을 일삼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지요. 아니 도대체 한나라당 의원이 어느 누구가 한명이라도 금강산을 다녀왔습니까? 박종웅의원 한명이 다녀갔다든가? 바로 전쟁의 치열한 대결의 장속에 평화로운 관광의 놀라운 코스모스를 만들어 놓은 현대아산의 사업을 한번두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으로 이미 정치인들의 각성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당연한 우리역사의 현실에 대한 체험을 거부한다는 것이 도대체 있을 수가 있는 얘깁니까?”
장례식장에서 같이 식사를 나눈 정범구(鄭範九)의원, 매우 명료한 의식과 언변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경영' 넘은 도덕적 열정!
“금 강산사업이고 개성공단사업이고 이 모든 것이 우리 국가가 해야할 일, 우리 공동체가 해결해야만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너무도 당연한 국가사업을 일개 기업에게 떠맡겨놓고 자기 책임은 회피한채 자기로부터 소외시켜 이러쿵 저러쿵 평가만 한다. 정회장의 자살은 그가 정치인들처럼 무책임하고 뻔뻔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죠.”
나는 이 순간 지금으로부터 2700여년전 황하주변에서 유행했던 노래 한구절을 떠올렸다. ‘시경’ ‘위풍’(魏風) 석서(碩鼠)라는 시였다.
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
큰쥐야, 큰쥐야.
내 찰기장을 먹지마라.
내 그토록 다년동안그대를 모셨거늘,
날 돌보려 하지 않는구나.
장차 너를 떠나,
저 낙토로 가리.
낙토여, 낙토여,
거기서 내 쉴 곳을 얻으리.
여 기서 ‘큰쥐’(碩鼠)라 한 것은 주자(朱子)의 주석대로 탐욕에 눈이 어두운 관리들의 잔학한 정치(民困於貪殘之政)를 은유한 것이다. 아마도 정몽헌의 자살심정을 이토록 리얼하게 표현한 시는 없을 것 같다. 정몽헌은 자기가 그토록 다년간 섬긴 세력들에게서 끊임없는 압박을 받았고, 그 압박속에서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저 죽음의 낙토(樂土)야 말로 그의 마지막 안식처였을까?
우리 는 정몽헌의 죽음을 이러한 이스케이피즘(escapism)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는 없다. 그의 죽음은 현실의 도피가 아닌 현실의 타개라는 적극적 선택이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현대의 대북사업은 끝장났다고 내심 쾌재를 올릴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대북사업의 비극적 종말’로서 그의 죽음을 종결짓고 마는 불상사를 범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몽헌 개인의 비극적 종말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비극적 종말이다. 입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목터지게 부르면서 마음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불통일(不統一)’을 외치고 있는 이중인격자들의 음험한 흉계속으로 우리역사가 함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交交黃鳥, 止于棘.
誰從穆公, 子車奄息.
維此奄息, 百夫之特.
臨其亢, 칥칥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꾀꼴꾀꼴 꾀꼬리,
가시나무에 멈추네.
누가 목공을 따라갔나?
자거 엄식이로다.
아∼ 그대 엄식이여!
백사람과 맞먹는 뛰어난 인물.
그 죽음의 구덩이에 임하여,
부들부들 떨었네.
저 푸른 하늘이시여!
우리 좋은 사람을 죽이다니.
만일 대속할 수만 있다면,
내 이몸을 백번이라도 바치련만.
이 것은 BC 621년 진나라 목공이 죽었을 때, 자거라는 훌륭한 집안의 세아들을 순장시킨 사건을(‘좌전’ 문공 6년조) 애처롭게 느낀 국민들의 심정을 토로한 노래이다. 역사는 과연 이러한 이들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한국 정치의 놀음판은 이와같이 피의 대속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일까? 췌췌기율(칥칥其慄)! 순장묘지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일당백의 국가동량 자거 엄식의 모습, 췌췌기율, 부들부들 떨었네! 사랑하는 세자식과 아내와 만찬을 끝내고 죽음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그의 심정, 췌췌기율! 어찌 우리 모두 동감치 않을 수 있으리오?
여야 一心으로 사태파악!
죽음이상의 형벌은 없다. 자신에게 사형이라는 형벌을 집행한 정몽헌의 항변에는 남북경협사업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들어 있다. 그를 두 번 다시 죽이지 않는 길은 바로 현대아산의 대북경협사업에 대하여 온 국민이 새로운 컨센서스를 일으키는 것이다.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 평양정주영체육관의 완공이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태까지의 공과를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 검찰도 필요이상의 이면을 들춰내는 작업에 눈을 붉히지 말아야 한다. 실정법에 저촉되는 절차적 문제에 관하여 이미 현대아산이라는 집단은 과도하게 죄값을 치룬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긍정적 사고를 해야한다. 보다 밝은 우리민족의 자주적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우선 남북 경제협력기금 중 교류협력기금으로 지출되는 금강산관광지원금 200억원을 국회에서 집행해주어야 한다. 2002년이래 현대아산은 이 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사교육비로 15조원을 쓰고 있다. 쓰잘데 없는 학관비 등으로. 그런데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남북화합의 산교육장을 체험하는데 창조적으로 쓰일 수 있는 200억원을 동결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결코 현대아산에 지급되는 돈이 아니요 학생들의 교육비로 보조되는 것이다. 우선 연 200억원의 금강산관광지원금만 풀려도 현대아산은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가 대북사업권을 따기 위해 1조원 이상을 국가를 대신해서 지불하고 이제 200억원 현금때문에 죽고사는 지경이 되었다? 여야의원들은 모두 큰 마음으로 사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김윤규사장은 어제밤 나에게 금강산에 뿌려질 정몽헌회장의 유분과 함께 세워질 시비의 비문을 하나 부탁했다. 나는 밤새 짓고 썼다.
며칠 후 나는 이 시비를 걸머지고 슬픈 영가의 눈물을 금강산에 뿌리게 될 것이다.
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
큰쥐야, 큰쥐야.
내 찰기장을 먹지마라.
내 그토록 다년동안그대를 모셨거늘,
날 돌보려 하지 않는구나.
장차 너를 떠나,
저 낙토로 가리.
낙토여, 낙토여,
거기서 내 쉴 곳을 얻으리.
여 기서 ‘큰쥐’(碩鼠)라 한 것은 주자(朱子)의 주석대로 탐욕에 눈이 어두운 관리들의 잔학한 정치(民困於貪殘之政)를 은유한 것이다. 아마도 정몽헌의 자살심정을 이토록 리얼하게 표현한 시는 없을 것 같다. 정몽헌은 자기가 그토록 다년간 섬긴 세력들에게서 끊임없는 압박을 받았고, 그 압박속에서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저 죽음의 낙토(樂土)야 말로 그의 마지막 안식처였을까?
우리 는 정몽헌의 죽음을 이러한 이스케이피즘(escapism)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는 없다. 그의 죽음은 현실의 도피가 아닌 현실의 타개라는 적극적 선택이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현대의 대북사업은 끝장났다고 내심 쾌재를 올릴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대북사업의 비극적 종말’로서 그의 죽음을 종결짓고 마는 불상사를 범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몽헌 개인의 비극적 종말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비극적 종말이다. 입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목터지게 부르면서 마음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불통일(不統一)’을 외치고 있는 이중인격자들의 음험한 흉계속으로 우리역사가 함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交交黃鳥, 止于棘.
誰從穆公, 子車奄息.
維此奄息, 百夫之特.
臨其亢, 칥칥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꾀꼴꾀꼴 꾀꼬리,
가시나무에 멈추네.
누가 목공을 따라갔나?
자거 엄식이로다.
아∼ 그대 엄식이여!
백사람과 맞먹는 뛰어난 인물.
그 죽음의 구덩이에 임하여,
부들부들 떨었네.
저 푸른 하늘이시여!
우리 좋은 사람을 죽이다니.
만일 대속할 수만 있다면,
내 이몸을 백번이라도 바치련만.
이 것은 BC 621년 진나라 목공이 죽었을 때, 자거라는 훌륭한 집안의 세아들을 순장시킨 사건을(‘좌전’ 문공 6년조) 애처롭게 느낀 국민들의 심정을 토로한 노래이다. 역사는 과연 이러한 이들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한국 정치의 놀음판은 이와같이 피의 대속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일까? 췌췌기율(칥칥其慄)! 순장묘지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일당백의 국가동량 자거 엄식의 모습, 췌췌기율, 부들부들 떨었네! 사랑하는 세자식과 아내와 만찬을 끝내고 죽음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그의 심정, 췌췌기율! 어찌 우리 모두 동감치 않을 수 있으리오?
여야 一心으로 사태파악!
죽음이상의 형벌은 없다. 자신에게 사형이라는 형벌을 집행한 정몽헌의 항변에는 남북경협사업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들어 있다. 그를 두 번 다시 죽이지 않는 길은 바로 현대아산의 대북경협사업에 대하여 온 국민이 새로운 컨센서스를 일으키는 것이다.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 평양정주영체육관의 완공이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태까지의 공과를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 검찰도 필요이상의 이면을 들춰내는 작업에 눈을 붉히지 말아야 한다. 실정법에 저촉되는 절차적 문제에 관하여 이미 현대아산이라는 집단은 과도하게 죄값을 치룬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긍정적 사고를 해야한다. 보다 밝은 우리민족의 자주적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우선 남북 경제협력기금 중 교류협력기금으로 지출되는 금강산관광지원금 200억원을 국회에서 집행해주어야 한다. 2002년이래 현대아산은 이 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사교육비로 15조원을 쓰고 있다. 쓰잘데 없는 학관비 등으로. 그런데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남북화합의 산교육장을 체험하는데 창조적으로 쓰일 수 있는 200억원을 동결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결코 현대아산에 지급되는 돈이 아니요 학생들의 교육비로 보조되는 것이다. 우선 연 200억원의 금강산관광지원금만 풀려도 현대아산은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가 대북사업권을 따기 위해 1조원 이상을 국가를 대신해서 지불하고 이제 200억원 현금때문에 죽고사는 지경이 되었다? 여야의원들은 모두 큰 마음으로 사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김윤규사장은 어제밤 나에게 금강산에 뿌려질 정몽헌회장의 유분과 함께 세워질 시비의 비문을 하나 부탁했다. 나는 밤새 짓고 썼다.
며칠 후 나는 이 시비를 걸머지고 슬픈 영가의 눈물을 금강산에 뿌리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