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한 산 모후산 >>
ㅇ 일시 : 2009.6. 21 (일)
ㅇ 장소 : 화순 모후산, 뒤풀이 보성 율포해수욕장
ㅇ 누구 : 장성 한마음산우회따러서
ㅇ 일정 : 운암동 문화예술회관(08:10) - 2순환도로-화순- 모후산 주차장(09:40) - 모후산 안내 청취(09:50) - 등산시작(10:00) - 용문재(10:40) - 모후산(11:10) - 오디 2점후 점심( 11:20) - 하산 (11:50) - 집게봉(13:50) - 유마사구경(14:40 - 하산완료 주차장(14:50) - 뒤풀이 촌닭 백숙 - 율포출발(15:40) - 율포해수욕장 도착(16:30) - 뒤풀이2차 낙지(17:00) - 귀광(18:00) - 뒤풀이 2차(19:00) - 귀가 (22:50)
母后山 : 모후산은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왕과 왕비가 태후를 모시고 이곳까지 피난을 왔던 산이다. 공민왕은 수려한 산세에 반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여 남짓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 모후산은 어머니의 품속같은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이곳 동복현감인 서하당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하여 모후산을 母護山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모호촌이라 하였다.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에, 6.25전쟁 당시 빨치산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지금도 당시에 파놓은 참호가 발견된다. 산막골에는 8.15광복 전까지 15호 가량 거주하였으나 모두 소각당해 폐촌이 되었고, 빨치산의 본거지라 하여 유마사의 사찰건물은 모두 소각되었다. 인근의 무등산과 조계산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항상 맑은 계곡물과 수려한 산세에 이끌려 많은 산악인들이 찾는 곳이다.
등산로 초입부의 유마사는 당나라 사람 유마운과 딸 보안이 백제시대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온다. 보안의 현명함에 반한 젊은 승이 겁탈하려하자, 보안이 제월천에 잠긴 달을 건져 젊은 승을 굴복케 한 전설이 전해진다. 그리고 보안교는 치마로 바위를 싸온 보안이 놓았다고 한다. 지금은 옛자취를 볼 수 없다. 유마사는 6.25전쟁 때 사찰건물이 소각된 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유마사에는 고려 전기 작품으로 짐작되는 팔각원당형의 해련지탑(보물1116호)이 있다. --월간 사람과 산 2006년 5월호에서 발췌
히어리님 사진 슬쩍해서 편집 ㅎㅎㅎ
2009.6.20 토요일 모후산 가자는 후배 보석의 전화에 갈팔질팡하다가 일요일 07;50 무조건 집을 나서고 막걸리 2병 싸넣는다.
대공원주차장에 파킹하고 예술회관 후문에 가니 산행대장님 일행들과 악수를 나눈다.
08:10 장성한마음산우회버스가 도착하고 반갑게 마주하는 회장님, 총무님, 많은 분들과 같이 화순으로 출발한다.
밝은 미소가 가득한 총무님 인사, 그리고 회장님의 인사
7월 백두산 특별 해외산행을 설명하신다.
2005년 직장에서 해외문화탐방 기회로 중국과 백두산을 가 본 기억이 난다.
5월 하순에 백두산은 운 좋게도 전날 눈이 와 설경, 야생화천지, 여름 등 3계절을 맛보는 행운을 잡았었다.
주암호 바박이 드러난 가뭄상태, 이러다가 제한급수, 3일제급수 걱정이 앞선다.
유마사입구 하천은 돌쌓기 호안시공이 한창이다.
몇년전 하루 500mm 기록적인 폭으로 인하여 하천이 범람하고 무너졌다는 모후산 안내여성의 이야기로 알게 된다.
4년전 처음 산을 알게 된 해 유마사를 옆으로 모후산을 간 기억이 난다.
그 당시보다 많이 신경 써 등산길을 정비하고 야생화와 임목간벌, 식수 등 많은 것들이 변해져 있다.
모후산이 보이지 않고 안개와 습도가 높은 탓인지 40분 거리 용문재가 그리도 힘든 경우는 처음이다.
작년 여름 새벽 2시까지 주님과 친하다가 당일 남덕유산 오를 때와 힘든 게 비슷한 것 같다.
그날도 안개낀 날씨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게 비슷한 상황
잠시후 용문재에 도착하니 산행대장님 일행 3분이 먼저와 기다라고 모후산 관리인이 희망프로젝트 일환으로 근무하고 있다 |